(사)웰다잉문화운동 강명구 소장 “삶을 정리한 ‘생애보’로 웰다잉에 이를 수 있다”

웰다잉(well-dying)에는 몇 가지 오해가 있다. 웰다잉은 죽음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살아온 생애를 정리하는 데 더 큰 가치를 둔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강명구 소장은 그런 인식의 전환을 위해 불철주야 뛰고 있다. 오직 더 많은 이가 웰다잉에 이르도록 하기 위하여.

2022-11-10     이영민 에디터

 

 

 

Profile 강명구•1953년생•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명예교수•現 (사)웰다잉문화운동 웰다잉문화연구소 소장

 

흔히 ‘품위 있고 존엄하게 생을 마감한다’는 의미로 알려진 웰다잉. ‘품위’와 ‘존엄’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 탓에 특별한 업적을 남긴 몇몇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얘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강명구 교수는 “누구나 웰다잉을 실천할 수 있고, 그 준비 과정도 어렵지 않다”라고 단언한다. 

강명구 소장은 웰다잉의 목표를 크게 세 가지로 꼽는다. 첫째, 연명치료 거부, 호스피스 완화 치료, 장기 기증 등 육체적 생명의 아름다운 마무리. 둘째, 엔딩 노트와 유서 쓰기, 장묘 문화 개선 등 사회적 관계의 아름다운 마무리. 셋째, 유품 사전 정리, 사회적 유산 기부, 성년후견제도 등 사회적·물질적 유산의 아름다운 마무리. 이 세 가지 삶의 마무리를 균형 있게 실천하는 일이 자신의 소명이라고 말하는 강명구 소장을 만나 평범한 우리가 웰다잉에 이르는 방법에 대해 물었다.

 

웰다잉은 무엇인가? 

말 그대로 ‘잘 죽는’ 방법이다. 죽어가는 과정을 미리 계획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삶의 마무리를 위해 현재의 삶을 잘 사는 방법을 생각하게 한다는 데 더 큰 가치가 있다. 생각해 보면 살아 있는 시간을 잘 보내야 모두가 꿈꾸는 평안한, 후회 없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하루하루를 잘 살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삶과 죽음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연결되어 있는 것이고, 현재에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이 웰다잉의 본질이다. 

 

웰다잉 문화운동은 어떤 식으로 진행하나? 

죽음과 관련해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잘 살펴보고 문제 제기를 통해 정치, 캠페인 등을 벌인다. 지금도 정책 입법 활동이나 사회적 이슈를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다. 극심한 고통을 겪는 말기 환자에게 의사가 약물 등을 제공해 스스로 삶을 종결할 수 있도록 돕는 ‘조력존엄 사법’을 발의한 것도 웰다잉 문화운동의 일환이다. 임종 과정에서 생명 연장을 위한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착용 등의 연명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홍보하고 서명 운동을 벌인 것 역시 웰다잉 문화운동 중 하나다. 이 같은 활동이 어느 정도 성과는 거뒀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보통 죽는 과정을 준비하는 정도로만 알고 있다

실제로 ‘어떻게 하면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 생각하는 이가 적지 않다. 그러나 죽음이라는 건 존엄이냐 아니냐 하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생명의 마무리, 즉 죽음에 이르는 전 과정을 잘 마무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명의 마무리’는 어떤 가치가 있나?

사람은 노년기에 ‘절대적 의존기’를 거친다. 절대적 의존기란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시기를 말한다. 최근 우리나라는 100세 시대를 맞이했지만 그런 물리적 수명 말고 건강수명을 고려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건강수명은 67세다. 즉 70세 정도부터 약 100세까지는 병을 앓으며 지낸다는 말인데, 75세가 넘어가면서 가족, 간병인 같은 타인에게 의존하는 시기가 시작된다. 

 이 시기에는 혼자 힘으로 침상에서 일어나지 못한다거나 금융, 생활, 조리, 목욕까지 도움을 받아야 한다. 절대적 의존기가 길어질수록 사회적 부담은 커진다. 인사말로 “오래 사셨으면 좋겠다”라고 하지만 누군가는 그에 따른 부담을 고스란히 져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웰다잉은 절대적 의존기를 어떻게 지낼 것인지에 대해 준비하자는 것이다. 미리 생각해 두지 않으면 절대적 의존기에 타인이 결정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삶이 끝날 때까지 자신의 의지로 산다는 건 중요한 것 같다

물론이다. 그런 의미에서 웰다잉 문화운동은 ‘생명의 마무리’, ‘물질적 삶의 마무리’, ‘사회적 관계 마무리’ 등 세 가지로 나눠 진행한다. 생명의 마무리는 앞서 말했고, 물질적 삶의 마무리도 유산 문제를 자신이 결정한다는 데 의의가 있다. 

 유산 하면 재산 상속만 생각하는데, 내가 사용하던 물건을 물려주는 것도 포함한다. 고인 생전 삶의 기억을 물려주고 이어받는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아쉽게도 우리나라에는 그런 문화가 생소하다. 보석 등 귀중품을 물려주는 경우는 있으나 아버지가 쓰던 낡은 물건을 넘겨받아 갖고 다니는 자식은 흔치 않다. 

 

‘사회적 관계 마무리’와 관련한 웰다잉 문화운동은 어떻게 진행되나?

자신이 어떻게 살았는지 정리하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다. ‘생애보 쓰기’가 대표적인 예다. 우리 대부분은 ‘나 따위가 뭐라고 생애보를 남기나’ 한다. 하지만 자기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살아온 흔적 중에는 뭐가 있는지를 남겨두는 건 의미가 크다. 아무리 평범한 인생을 살았더라도 사회적 의미는 있기 마련이다.

 

삶이라는 책의 첫 페이지를 내 힘으로 열지 못하고, 마지막 페이지 역시 내 힘으로 닫지 못한다. 열고 닫는 건 내 힘으로 닿지 않는 영역이니, 우린 그저 책의 가운데 페이지만 채우며 사는 거다. 웰다잉은 책이 덮이는 마지막 순간을 현명하게 ‘대면’하기 위한 마음의 훈련이다.

 

나 혼자만 잘한다고 웰다잉 문화가 정착될까?

아니다. 우리 주변에는 생을 기록하는 문화가 없을뿐더러 추모하는 문화도 생소하다. 자신의 묫자리는 비싼 돈을 들여 정하면서 정작 자기 삶의 기억을 남기는 곳은 없는 셈이다. 

 장례식만 해도 부조금 낸 뒤 절하고 육개장 한 그릇 먹고 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고인이 누군가의 가족, 지인인 줄 알고는 있지만 자신과는 특별한 관계가 아닌 경우도 많다. 즉 우리 장례문화는 유족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문화이지 고인 중심이 아니다. 그런 환경에서 진정한 추모는 이뤄질 수 없다.

 

사회적 관계 마무리의 이상적인 사례가 있다면?

미국의 경우 지역사회에 ‘히스토리컬 소사이어티(historical society)’라는 조그마한 아카이브가 있다. 해당 지역에 살던 이의 유산, 기록 등을 보관하는 장소다. 공공기관이 개인의 일기장, 기타 생필품 등을 보관해 기억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것이 이상적인 사회적 관계 마무리인 것이다. 

 

‘물질적 삶의 마무리’는 유족을 위한 것일까?

그런 면이 없지 않다. 우리나라는 유서, 유언을 남기는 문화가 널리 퍼져 있지 않기 때문에 유족 간 갈등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오죽하면 2021년부터 상속 분쟁이 이혼 소송보다 더 많아졌을까.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별의별 사연이 많다. 심지어 아직 사망하지 않았는데도 부모 자식 간 분쟁이 일어난다. 그렇게 갈등 속에 죽음을 맞이하면 부모에게 섭섭한 자식이 추모조차 하지 않을뿐더러 남은 자식끼리 싸움이 벌어진다. 

 

유족으로 인한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개인이 해결하기 어려운 일이다. ‘내가 자식을 잘못 길러서’라고 한탄한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고. 그래서 기부든 상속이든 자기 재산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 생각이 정리되면 유서, 유언으로 남기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지역사회를 위시해 추모 문화가 이뤄진다면 웰다잉에 다가갈 수 있을까?

그렇다. 종교 단체의 추모나 우리가 아는 영결식은 형식화되어 있다. 또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고인을 지인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추모한다는 것도 사회적 허사다. 그런 인사치레가 무슨 의미가 있나? 그런 내용 없는 허사가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고, 이를 바꾸려면 지역사회, 공공기관 등이 앞장서서 문화 자체를 뒤바꿔야 한다. 

 

 

소장님 자신의 생애보에 들어갈 핵심 문장 하나만 꼽는다면?

웰다잉 문화운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지만 정작 내 개인 생애보는 아직 정리하지 못했다. 추후 나는 일기를 남길 생각인데, 그걸 어떤 형태로 남길지는 고민 중이다. 생애보에 쓰고 싶은 말은 단 하나다. “끝까지 열심히 살자!” 지금의 내 모토이기도 하다.

 

우리는 잘 죽기 위해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자기 삶의 의미는 스스로 찾아야 한다. 의미를 찾는 방법은 정해져 있지 않다. 어떤 활동이 됐든 스스로 의미 있는 일을 찾는다면 그 자체로 웰다잉 하는 길이다. 예를 들어 자원봉사를 한다면 그것이 자신에게 힘을 주고 삶의 의미를 찾게 해줄 것이다. 그것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값진 일이 될 것이다. 

 

생애보를 남기는 것이 누구에게나 쉬운 일은 아니다

물론이다. 하지만 잘 써야 한다는 부담감을 내려놓으면 된다. 생애보에는 대단한 업적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남기고픈 말을 쓰면 된다. 예를 들어 전업주부였던 사람은 ‘나는 이런 엄마로 살았다’라고 남기면 된다. 혹은 ‘나는 이런 남편(부인)으로 살았다’라고 쓸 수도 있다. 직업을 떠나 일을 하던 사람이라면 자신이 그 일을 하며 가졌던 자부심에 대해 써도 좋다. 조사해 보니 죽어가는 사람 중 열에 아홉은 자기 일에 자부심이 컸다. 그런데 쑥스럽고 지나친 겸손 탓에 하고 싶은 말을 남기지 않고 돌아가신 경우가 대부분이다. 안타까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