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묘비명(墓碑銘)
한평생 예술을 위해 영혼을 바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삶을 한마디로 정리한 묘비명은 우리에게 또 하나의 예술로 다가온다.
벗들이여 부탁하네. 제발 참아주게.
여기 묻힌 것은 티끌도 파헤치지 말아주게.
무덤의 돌 하나 건드리지 않는 자에게 축복이,
내 뼈를 옮기려는 자에게 저주 있으리.
생전에도 ‘영국 최고의 극작가’ 지위에 올랐던 셰익스피어. 너무 유명한 나머지 사후에 자기 무덤이 도굴될 것을 걱정해 이런 비문을 남겼다.
까마귀의 비문… 더 이상은 없다.
Quoth the Raven… Nevermore.
1845년 그가 발표한 시 ‘까마귀’는 희망을 원하는 어떠한 질문에도 ‘더 이상은 없다’라고 답하는 까마귀의 모습을 담고 있다. ‘까마 귀’의 유명한 시구 ‘Nevermore’를 묘비명으로 썼다.
돌아오라는 부름을 받았다.
Called Back.
‘은둔의 시인’으로 일컬어지는 그는 죽음을 주제로 한 작품을 많이 썼다. 그런 만큼 묘비명은 오히려 종결편처럼 간단명료하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Δεν ελπίζω τίποτα. Δε φοβούμαι τίποτα. Είμαι λέφτερος.
그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를 관통하는 주제인 ‘자유’는 작가가 품은 평생의 화두이기도 했다. 그가 남긴 묘비명은 짧고 간결하지만 그의 인생을 가장 정확하게 투영하고 있다.
일어나지 못해 미안합니다.
Pardon me for not Getting Up.
헤밍웨이는 유아기에 어머니가 자주 여장을 시킨 탓에 트라우마가 생겨 마초같이 강인하고 거친 성격으로 살았다. 묘비명에서도 그의 성격을 엿볼 수 있다.
밀라노 사람 앙리 베일: 살았노라, 썼노라, 사랑했노라.
Errico Beyle, Milanese: Scrisse, Amo, Vise.
로마 황제 카이사르의 명언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를 연상시키는 이 묘비명은 스탕달이 생전에 직접 썼다고 알려졌다. 그의 본명은 마리 앙리 벨(Marie-Henri Beyle)이다.
오래 살다 보면 이런 일이 생길 줄 알았다.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버나드 쇼는 생전에 미리 자신의 묘비명을 써놓았다.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라는 해석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는 지나친 의역이다.
최고는 아직 오지 않았다.
The Best is Yet to Come.
20세기를 대표하는 위대한 엔터테이너로 삶을 마감한 그의 묘비명은 그의 인생관을 대변하는 듯하다.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영감을 주는 한 마디로 다가온다.
이게 다야!
That’s All Folks!
그가 연기한 포키 피그가 단편 애니메이션 <루니 툰>이 끝날 때 외치는 클로징 멘트를 묘비명으로 썼다.
모두가 누군가를 언젠간 사랑한다.
Everybody Loves Somebody Sometime.
배우이자 가수인 그가 발매한 곡 ‘Everybody Loves Somebody’가 그의 묘비명으로 쓰였다. 유쾌한 성격으로 모두가 사랑한 그에게 어울리는 말이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말은 아니지만,
세상을 바꿀 두뇌에 영감을 줄 것이다.
I’m not Saying I’m Going to Change the World, but I will Spark the Brain that will Change the World.
힙합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아티스트인 투팍 샤커는 그의 묘비명처럼 여전히 후대에 영감을 주는 인물로 남았다.
좋아… 이제 가야겠어.
O.K… I Gotta Go Now.
짧지만 강렬한 그의 묘비명. 그가 속했던 밴드 라몬스의 곡 ‘Blitzkrieg Bop’에서 “Let’s Go!”를 반복하는데, 세간에선 이 가사와 연관된 묘비명이라고 추측한다.
내가 떠나도 로큰롤은 계속된다.
I may be Gone, but Rock and Roll Lives on.
1970년대 ‘토요일 밤 라이브(SNL)’의 전성기를 이끈 희극인 존 벨루시는 2인조 밴드 ‘블루스 브라더스’로 활동하기도 했다. 음악에 대한 그의 열정이 엿보이는 묘비명이다.
당신의 영혼에 충실하라.
KATA TON DAIMONA EAYTOY.
록스타이자 시인이었던 그의 묘비명. 묘비에는 그리스어로 적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