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웰다잉문화운동 공동대표 원혜영 “생애보와 유언장 쓰기가 생활 문화로 자리 잡아야 한다”

원혜영 대표의 목표는 누구나 자기 삶의 주인으로서 인생을 잘 마무리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 첫째 실천 덕목이 생애보와 유언장 쓰기다. 이것이 생활 문화로 자리 잡으면 웰다잉에 한층 가까워진다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2022-12-05     이영민 에디터

 

 

 

최근 웰다잉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지만 갈 길은 멀다. 그러는 사이에 우리 사회는 1000만 노인 시대를 코앞에 뒀다. 웰다잉을 실현하기에 너무 늦은 건 아닐까? 속단하기는 어렵다. 세상일은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법. 자기 삶의 마무리를 고민하는 이가 1000만 명에 육박하니 그 파급 속도 또한 빨라졌다. 수명이 늘면서 죽음을 준비할 시간도 늘었다. 5선 국회의원 원혜영 대표가 은퇴 후 웰다잉 문화 운동에 열을 올리는 이유다.

지금 이야말로 웰다잉에 대한 빠른 이해와 실천이

필요한 적기라고 판단한 것이다.

 

웰다잉의 목표와 가치는?

인생의 모든 순간에는 준비와 결정이 필요하다. 죽음이라는 순간에 이르렀을 때도 미리 잘 준비했을 때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다. ‘죽음 준비’라는 건 내 일생을 잘 정리하고 가족과 사회에 부담을 덜어주는 일이면 된다. 그러니 별로 어려울 건 없다. 

 

삶을 완성하는 마지막 조각이 죽음이란 말인가?

세상 모든 일은 마지막이 중요하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끝이 좋으면 다 좋다>처럼 모든 일이 그렇다. 아무리 중간 과정이 즐겁고 만족스러웠을지라도 마지막이 실망스러우면 그 삶이 행복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삶과 죽음은 연결돼 있고, 죽음은 삶을 완성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본다. 

 

우리나라 추모 문화의 현주소는?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장례에는 추모 문화가 없다. 고인을 그리며 생각 하는 것을 추모라고 하는데, 그러려면 돌아가신 분이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정도는 알아야 한다. 그걸 바탕으로 고인에 대한 에피소드를 회상하고 사랑, 감사, 슬픔 등의 감정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장례식은 조문객을 접대하는 데 치중해 있고, 남 보기에 얼마나 성대하고 웅장한지를 중요시한다. 심지어 값비싼 재료로 무덤이나 비석을 만드는 데 치중한다. 

 

올바른 추모 문화 조성을 위해 무엇부터 실천해야 할까?

생애보 쓰기를 권장한다. 생애보는 개인의 인생 박물관으로, 약력이나 일상 같은 개인의 삶을 가족, 지인과 함께 나누고 기억하기 위해 작성하는 걸 말한다. 작가를 섭외해 대신 쓰게 해도 되지만, 자기 삶을 정리하는 것인 만큼 스스로 하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Profile 원혜영 •1951년생 •풀무원식품 창업주 •제14·17·18·19·20대 국회의원 •現 사단법인 웰다잉문화운동 공동대표12 

 

생애보 하면 왠지 특별한 사람만 쓰는 것 같다

생애보는 물론 자서전도 특정 사람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우리 역사는 평범한 사람 하나하나의 삶이 쌓여 이뤄진다. 그런 점에서 아무리 평범한 인생을 살았다고 한들 그 삶 자체가 하나의 역사인 것이다. 

 생애보는 자기 삶을 기록하며 스스로를 기억하고, 부고 시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추모할 수 있게도 한다. 또 후대에 남겨 자손들이 되뇌도록 한다면 세대 간 중요한 이음 고리가 생긴다. 예를 들어 아버지, 어머니가 어떤 분인지 기억한다는 건 단순히 핏줄이 이어지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생애보는 어떻게 작성해야 할까?

멋있게 써야겠다는 생각을 버리는 것이 먼저다. 잘 쓰려고 하다 보면 시작조차 하기 쉽지 않다. 담담하게 할 말을 써 나가면 된다. 일단 쓴 뒤 나중에 수정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 좋은 연습이 된다. 어차피 내 인생에 대해 쓰는 건데 부담 가질 필요 뭐 있나.

 

유언장 부분은 어떤가?

유언장은 생애보와 다른 면에서 써보기를 권한다. 유언장에 재산을 어떻게 할 것인지 정해놓으면 나중에 분쟁이 생기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미국은 인구의 56%가 유언장을 작성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통계조차 잡을 수 없을 정도로 그 비율이 미미하다. 이는 문화 차이다. 나는 웰다잉의 일환으로 유언장 쓰기 문화를 만들고 싶다.

 

그 외에 웰다잉을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생명, 즉 신체에 관한 결정을 해야 한다. 이를테면 연명치료를 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만약 이를 미리 결정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아마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생명이 연장되고 있을 것이다. 그런 무의미한 연명치료가 과연 얼마나 가치 있을까?

 치료해서 회복된다면 당연히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하지만 가능성이 없는 데도 연명의료를 통해 억지로 삶을 연장하는 것은 환자는 물론 가족에게도 고통을 준다. 그 시간에 통증을 완화하는 치료에 집중하면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추억을 쌓고, 작별 인사를 전하는 것이 훨씬 인간다운 삶의 마무리가 아닐까? 이제는 이런 것을 한번 생각해 볼 때가 됐다. 

 

웰다잉 문화 운동 차원에서 ‘다섯 가지 결정’을 제시한 것도 눈에 띈다

삶을 마무리하면서 결정해야 할 일에 대한 일종의 가이드라인이다. 가족, 사랑하는 사람들과 긴 이별 앞에서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막연하게 추측하지 않도록 웰다잉 문화 운동에서 세부 사항을 대신 정리해 알려주는 것이다. 

 

 

소위 잘난 사람만 생애보를 쓰고 유언장을 남기는 것이 아니다.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 하나하나의 삶도 그에 못지않게 소중하다. 생애보나 유언장을 쓸 때처럼 잠시 멈춰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보고

정리하는 기회를 갖는 것은 큰 축복이다.

 

왜 하필 다섯 가지인가?

미국 42개 주에서 활발히 전개하고 있는 파이브 위시즈(five wishes) 캠페인에서 차용했다. 파이브 위시즈는 1500만 명이 작성한 ‘삶의 아름다운 마무리 운동’으로 다섯 가지 희망 사항을 큰 카테고리로 잡고, 각 항목에 서너 가지 세부 항목을 붙였다. 

 만약 ‘편안하고 통증 없는 호스피스, 완화 의료 돌봄을 미리 결정하고 싶다’고 한다면 그 세부 항목에 있는 ‘임종할 때 좋아하는 시, 노래로 위로받기를 원한다’를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실제 부고 시 고인은 자신이 좋아하던 시나 노래를 들으며 위로받을 수 있다. 이는 허례허식인 장례식보다 훨씬 가치 있는 일 아닐까. 

 

앞으로 계획은?

웰다잉 문화를 정착시키고 싶다. 문화라는 건 정부, 지방자치단체 등 특정 기관이 나서서 이끄는 톱다운 방식으로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반면 개개인이 일상에서 자발적으로 뭔가를 하고자 하는 마음이 일면서 점차 주변으로 확산하는 바톰업 방식이라야 훨씬 자연스럽고 오래갈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저마다 죽음을 준비해야 하고, 그와 관련해 결정할 것을 평소 체크해 보는 연습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그걸 위해 노력 중이다. 

 

삶의 마무리를 생각해 보는 마음부터가 웰다잉의 시작이 아닐까?

그렇다. 박경리 선생은 말년에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라는 수필집을 냈다. 그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선생은 버리는 훈련을 꾸준히 해왔기에 마지막에 버릴 것만 남은 것이다. 그러니까 웰다잉이라는 것은 결국 삶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한 버리기 훈련이라고 생각한다. 연명의료, 유품 정리, 생애보 쓰기 등은 생명·물질·사회적 마무리를 위해 버리고 갈 것을 정리하는 과정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