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천대학교 길병원 심장내과 정욱진 교수 “폐고혈압, 조기 진단과 전문 치료로 생존율 높인다”

불치 영역에 머물러 있는 폐고혈압. 정욱진 교수는 조기 발견과 정밀 치료로 질병 극복에 다가설 수 있다고 말한다.

2022-12-05     이영민 에디터

 

 

 

고혈압과 폐고혈압은 어떤 차이가 있나?

그 차이를 알려면 순환계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우리 몸의 순환계는 ‘체순환계’와 ‘폐순환계’로 나뉜다. 체순환은 좌심실에서 뿜어진 혈액이 조직에 산소를 공급하고, 조직으로부터 이산화탄소를 받아 우심방으로 돌아오는 경로를 말한다. 반면 폐순환은 우심실에서 뿜어진 혈액이 폐에서 이산화탄소를 내보내고 산소를 받아들여 좌심방으로 돌아오는 경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고혈압은 체순환계의 혈압이 140/90mmHg 이상으로 높은 것을 의미한다. 이와 달리 폐고혈압은 폐순환계의 평균 폐동맥압이 20mmHg 이상인 경우다. 고혈압과 폐고혈압은 서로 전혀 상관이 없다.

 

폐고혈압이 고혈압보다 더 위험한 이유는?

폐순환계는 말랑말랑한 스펀지 같은 폐를 지나기 때문에 저항과 압력이 낮다. 만약 조금만 압력이 높아져도 굉장히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폐순환계로 피를 보내는 오른쪽 심장의 기능이 떨어지는 ‘우심부전’과 ‘심장돌연사’에 노출된다.

 

폐고혈압과 폐동맥고혈압의 차이는?

폐동맥고혈압은 여러 폐고혈압 가운데 한 가지 타입이다. 흔히 폐고혈압은 폐동맥고혈압, 좌심부전에 의한 폐고혈압, 폐질환 및 저산소증에 의한 폐고혈압, 만성혈전-색전성 폐고혈압, 명확하지 않은 복합적 요인에 의한 폐고혈압으로 나뉜다.

 폐동맥고혈압은 원인이 불분명하고, 선천성 심장질환이나 유전자변이 등의 이유로 발병하는 희귀질환이다. 인구 100만 명당 5~15명에게 발생하는데, 국내 폐고혈압 환자가 15만 명이라면 폐동맥고혈압 환자는 약 6000명으로 추산한다. 폐동맥고혈압은 빈혈, 심장, 폐질환 등과 유사한 증상을 보이고, 생존 기간은 약 2.8년이다.

 

생존율을 높일 방법은 없나?

조기 발견하고 전문 치료를 받으면 10~20년 생존 기간을 늘릴 수 있다. 통계를 보면 폐동맥고혈압의 발병부터 진단까지 약 1.5년 소요된다. 너무 오래 걸리는 셈이다. 빠르고 정확한 진단을 위해 전문 센터가 있는 병원을 방문하는 것이 중요하다.

 

진단에 오래 걸리는 이유는?

대중의 인지가 낮고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정밀검사가 필요한 것도 진단 속도를 늦추는 원인 중 하나다. 폐동맥고혈압은 폐 안쪽에 압력이 가해지는 질병이기 때문에 심장초음파검사를 해야 알 수 있다.

 또 확진 판정을 하려면 관을 몸에 집어넣어 관찰하는 정밀검사를 해야 한다. 이 때문에 미국에서도 폐동맥고혈압은 확진까지 무려 8년이 걸린다. 그사이에 우심부전, 심장 돌연사 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경과에 따라 약을 끊을 수도 있나?

현재로서는 꾸준한 약 복용이 증상 호전의 가장 좋은 대안이다. 폐고혈압은 고혈압보다 훨씬 위험하기 때문에 약 복용에 더욱 신경 써야 한다. 마음 같아서는 완벽히 치료한 다음 약을 서서히 줄여가는 것이 좋지만, 의료 기술이 아직 그 정도에 도달하지 못했다. 치료제가 굉장히 적은 데다, 병이 나빠질 때까지 아주 오래 걸리는 폐고혈압의 특성상 좋아지는 데까지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날씨가 추워지면 더 위험한가?

폐고혈압은 심혈관질환이다. 날씨가 추워지면 온몸의 혈관이 수축하고, 한껏 수축된 혈관에 피를 보내야 하기 때문에 심장이 스트레스를 받는다. 급격한 온도 변화는 더 위험하다. 따뜻한 실내에 머물다가 추운 실외로 나갈 때는 옷을 잘 여며 보온에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 혈관이 갑자기 수축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또 과도한 운동이나 흡연, 음주, 폭식 등은 굉장히 위험하다. 이런 행위는 심장에 부담을 주기 때문이다. 추운 날씨 탓에 가뜩이나 수축된 혈관이 더 수축되게 할 수 있다.

 

관리를 위한 식단이 따로 있을까?

식단에서 가장 중요한 건 ‘저염소식’이다. 식사는 약간 배고플 정도로 해야 하고, 짜게 먹으면 안 된다. 특히 염분이 혈액 속으로 흘러 들어가면 혈액량이 늘어나면서 심장에 무리를 주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그래서 국을 먹을 때도 밥을 말아 먹지 말고 웬만하면 건더기만 떠 먹어야 한다. 그 외 ‘세 끼를 먹되 간식과 야식은 피한다’는 원칙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

 

겨울철 관리를 위한 운동법이 있다면?

걷는 것이 제일 좋다. 꼭 뛰지 않아도 된다. 조금 빨리 걷기를 하루 30분씩, 일주일에 5회만 해도 된다. 체력 상태에 따라 30분을 채우지 않아도 상관없다. 첫째도 둘째도 심장에 무리를 주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땀이 날 듯 말 듯한 정도로 하는 것이 좋다. 한 번에 두세 시간씩 운동하거나 몸을 땀으로 흠뻑 적시는 정도의 운동은 금물이다. 아침 일찍 운동하는 것도 피해야 한다. 이때가 혈관이 가장 잘 수축되어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날씨가 따뜻해지는 오후까지 기다렸다가 운동하는 것이 낫다. 몸에 부담이 느껴지면 바로 앉아 쉬고, 웬만하면 평지를 걷기를 추천한다.

 

심부전에서 폐고혈압으로 발전할 수도 있나?

심부전이 무엇인지부터 정확히 알아야 한다. 우리 몸을 자동차에 비유하면 심장은 엔진에 해당한다. 엔진에 이상이 있는 상태를 심부전이라고 한다. 원인은 여러 가지인데, 어떤 이유든 심장 기능에 이상이 생기면 심부전 상태라고 생각하면 된다. 즉 심부전은 특정 질환이라기보다 ‘상태’를 의미한다.

 만약 평소 고혈압이 있다면 심부전을 일으킬 수 있다. 이 심부전이 심해지면 폐고혈압으로 악화되는 것이다. 즉 고혈압은 체순환계이고, 체순환계의 압력이 높아지면서 심장이 망가지기 시작한다. 이는 혈액의 흐름을 정체시켜 폐고혈압을 일으킨다.

 

심부전과 폐고혈압을 동시에 앓기도 하나?

그렇다. 현재 우리나라 심부전 환자 30~40%가 폐고혈압을, 폐고혈압 환자의 60~70%가 심부전을 앓고 있다. 둘 사이의 교집합이 꽤 크다는 의미다. 폐고혈압도 나쁜 질환인데 역시 나쁜 질환인 심부전이 겹치면 최악의 상태가 되는 것이다.

 결국 고혈압부터 폐고혈압까지 질병이 심화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해답은 명확하다. 고혈압 단계부터 관리를 잘해야 심부전이 안 생기고, 심부전 관리도 철저히 해야 폐고혈압이 안 생기는 것이다.

 

미리 알 수 있는 신호가 있나?

일단 피곤해진다. 걸을 때나 누웠을 때 숨이 차면 그보다 좀 더 심해진 것이다. 몸이 붓는 것도 폐고혈압, 심부전을 의심해 볼 만한 변화다. 이들 증상은 심장에서 피를 제대로 못 보내주면서 생긴다. 심장이 일을 제대로 못 하니 기운이 빠지고, 모든 장기에 피가 전달되지 않고 정체되면서 숨이 차고 몸이 붓는 것이다.

 

어떻게 진단하나?

1차 의료기관에서 엑스레이, 심전도, 피검사 등을 하는 것이 기본이다. 이들 검사에서 어느 정도 병의 증상을 감별해 낼 수 있다. 예를 들어 숨이 찬 원인이 빈혈 때문인지, 콩팥이 나빠졌기 때문인지, 아니면 심장이 커져서인지 판별할 수 있다. 폐혈관에 이상이 있다고 판단되면 그때 심장초음파검사를 하는 것이다.

 

관리와 예방에 대해 조언을 한다면?

빨리 알아차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폐동맥고혈압만 해도 40대 중반부터 많이 생긴다. 특히 중년 여성이 이 질환에 취약해 갱년기 증상과 함께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혹시 계단을 오를 때 숨이 찬데 특별한 병이 없다면 폐고혈압 때문인지 반드시 검사를 받아봐야 한다. 또 폐고혈압은 유전이 되기 때문에 가족력이 있다면 무조건 검사를 해야 한다.

 

 
 

심부전, 폐고혈압은 고혈압이 악화되어 발현하는 경우가 많다. 평소 고혈압이 있다면 그 관리만 잘해도 이들 질병을 예방할 수 있다. 만약 심부전, 폐고혈압을 진단받았다고 해도 절망하지 마라. 치료 방법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어 충분히 생존율을 높일 수 있는 질환이 되었다.

 

Profile 정욱진•가천대학교 길병원 심장내과 교수•대한폐고혈압학회 회장•대한심부전학회 학술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