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주는 춤꾼에서 창업 전문가가 된 신강식 대표
고등학생 댄서에서 범상지 않은 대학생, 직장인을 거쳐 한 기업의 수장이 된 신강식 대표를 만났다. 그에게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서 흔들리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걸어온 비결에 대해 물었다.
공자는 일찍이 “40세가 되어서는 유혹에 흔들리지 않게 됐다(不惑)”라고 말했지만, 이는 평균 수명이 환갑에도 못 미친 옛날 옛적 이야기. 지금의 40대는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에너지가 넘치고 하고 싶은 것도 많다. 각자의 욕망에 충실하게 살며 자기만의 영역을 구축한 40대 신중년을 소개한다.
‘연쇄창업마’라는 별명을 가진 신강식 대표는 학창 시절 경남 지역에서 알아주는 댄서였다. 춤추던 소년이 한 기업의 수장이 되기까지 약 15년의 세월이 걸렸다. 그 사이 그는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대학과 전공, 직장을 여러 차례 옮겼다. 하지만 삶의 궤도를 바꿀 때 망설임은 없었다. 하고자 한 일은 꼭 해내야 직성이 풀리기 때문이다.
1983년생. 이제 갓 마흔이 된 신강식 대표에게 ‘중년’이란 단어는 낯설다. 어느새 성큼 다가온 중년이란 단어에 놀랄 틈도 없이 그의 하루는 바쁘게 돌아간다. 그간 ‘하고 싶다’고 생각한 일이라면 망설임 없이 척척 해낸 신강식 대표를 만나 그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현재 하는 일에 대해 소개해달라
파워포인트 디자인 에이전시 ‘파파타팩토리’를 운영하고 있다. 파워포인트와 모션 그래픽을 활용해 기업 소개서, 공모전 기획안 같은 문서를 보기 좋게 만드는 일을 한다. 디자인뿐 아니라 내용이 부실한 경우 조언을 건네기도 한다. 지난해 론칭한 ‘파파타랩스’는 파워포인트 템플릿을 공유하고 판매하는 플랫폼이다. 파워포인트 제작, 발표 스킬 관련 직무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파파타스쿨’도 있다.
파워포인트 분야에서 알아주는 전문가라고 하던데
사회 초년생 시절 광고 대행사에서 일했다. 업계 특성상 밤새는 날이 부지기수였지만 그만큼 많이 성장했다. 그때 가장 많이 한 일이 파워 포인트를 이용해 기획안을 만드는 것이었다. 2011년쯤 그간 쌓은 노하우를 공유하고 싶어 파워포인트 실무 지식을 공유하는 블로그를 오픈했다. 틈날 때마다 올린 포스팅을 보고 외주 작업을 문의하는 경우도 간혹 있었다.
현업에 밀접한 내용이어서인지 포털 사이트 메인에도 몇 번 소개됐다. 그렇게 입소문이 나면서 방문자 수가 많이 늘었다. 그 덕에 2018년 <신프로의 쉽고 빠른 파워포인트 디자인>이라는 책도 냈다.
알아주는 춤꾼이었다던데
중학교 축제 때 춤추는 친구들을 보고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때부터 춤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에 입학해 정식으로 댄스팀을 발족하고 전국을 돌며 춤을 췄다. 경남 지역 대회뿐 아니라 전국 단위 대회에서도 성과를 냈다. 상금이나 공연비를 모아 꾸준히 팀을 꾸려 나갔다. 땀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진리를 그때 깨달았다. 소규모나마 팬클럽도 있었다. (웃음)
광고 일을 하게 된 계기는?
대학생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하게 됐다. 고향인 경남 하동과 가까운 4년제 대학교의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했는데 적성에 맞지 않았다. 제대후 삼촌이 운영하는 옥외광고 대행업체에서 일하면서 광고업계에 눈을 떴다. 무에서 유를 창출하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어린 나이에 막연히 CF 감독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경기도 안성에 있는 예술대학교 광고제작과로 옮겨갔다. 처음엔 고향과 동떨어진 곳이라 부모님께서 걱정하셨지만 결국 내 선택을 응원해주셨다.
광고 공부가 적성에 맞았나?
예술대학교여서 특이한 친구가 많았다. 덕분에 재미있게 학교생활을 했다. 고등학생 때는 춤만 추느라 학업과 거리가 멀었는데 좋아하는 공부를 하니 신이 나서 열심히 했다. 성적도 우수한 편이었다. 졸업하고 광고 대행사에 취직했다.
회사 생활은 어땠나?
기획안 작성, 컨퍼런스 개최, 대학생 서포터즈 운영 같은 다양한 업무를 경험했다. 대학생을 위한 공모전 정보 사이트인 ‘대티즌’의 리뉴얼 작업을 주도적으로 진행하기도 했다. 그런데 일을 할수록 스스로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배우고 싶은 마음에 방송통신대학교 경영학과에 편입했다. 회사 생활과 병행하려니 생각보다 힘들더라. 블로그 운영을 하면서 외주 작업도 같이 할 때라 체력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웠다. 결국엔 학교도, 회사도 그만뒀다.
‘노인 한 명이 사라지는 것은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
라는 말이 있지 않나.
연륜에서 비롯한 경험과 지혜는 무시하기 어렵다.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 지금,
양질의 노하우를 서재에 차곡차곡 쌓는 중이라 생각한다.
앞으로도 도전하기를 망설이지 않고,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며 읽고 싶은 책이 많은 도서관을
만들어가겠다.
‘여행대학’은 꽤 유명한 프로젝트였다.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동창이 여행 관련 멘토링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여행대학’을 만들 계획이라며 합류를 권했다. 해외여행 한 번 가본 적 없었지만 구미가 당겼다. 커리큘럼 기획, 거점공간 관리 등 전반적 운영에 참여했고, 여행 공모전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획안 작성, 파워포인트 제작 수업도 열었다. 이런 경험을 양분 삼아 2014년 파파타팩토리를 창업했다.
입사와 퇴사를 반복한 결단력은 어디서 나오나?
지금은 어떤 선택이든지 아내와 딸을 생각해 리스크를 최소화하려 하지만 그때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지금보다 젊었고 책임질 가정도 없었으니까. 어머니께선 항상 “하고 싶은 대로 해라. 네 끼니 정도는 내가 챙겨줄 수 있다”라고 하셨다. 그래서 좀 더 마음 편하게 하고 싶은 것들을 실천에 옮길 수 있었다. 그래도 고민은 많이 했다.
요즘 취미는 무엇인가?
사회생활하면서 아주 잠깐 댄스 학원을 다닌 적이 있기는 하다. 기타, 드럼 같은 악기를 배우기도 했다. 근래에는 골프 연습에 푹 빠졌다.
그래서 골프 사업을 시작했나?
골프를 시작하면서 이런저런 장비를 갖추다 보니 좀 더 손쉽게 장비를 구매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보자를 위한 라운딩 세트처럼 하나만 구매하면 모든 준비가 끝나도록 말이다. 제조업에 오래 종사한 친구한테 이 아이디어를 말했더니 굉장히 관심을 보이더라. 그 친구와 나, 여행대학 동료까지 셋이 의기투합해 ‘MIC’라는 골프 잡화 브랜드를 내고 라운딩용 파우치를 첫 제품으로 선보였다. 제품 디자인에 적극 참여해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얻었다. 다른 제품도 계속해서 출시할 계획이다.
살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결혼한 이후 매해 아내와 1년치 목표를 세운다. 그때마다 최우선에 두는 것은 ‘진실하고 겸손한 사람이 되자’, ‘진취적인 삶을 살자’는 거다. 열심히 한다면 결과는 얼마든지 바뀐다고 본다. 진실, 겸손, 진취적인 사고방식을 마음에 새기고 앞으로도 내실을 다지면서 성실히 나아가겠다.
스스로 중년이라 생각하나?
이제 갓 마흔이 됐다. 40대가 중년인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한창 때이지 않나. 아직은 나와 동떨어진 단어처럼 느껴진다. 달라진 게 하나 있다면 예전에는 아메리카노를 자주 마셨는데 이젠 에스프레소가 더 좋다. 희석하지 않은 진한 맛에 가끔 쓴맛이 강하게 느껴지긴 해도 자꾸 당긴다. 사회의 쓴맛을 그만큼 경험했기 때문일까? (웃음) 이런 변화도 나이드는 과정 중 하나일거라 생각한다.
어떤 중년이 되고 싶나?
“저 사람은 참 멋져”라는 소리를 듣는 멋쟁이 중년을 꿈꾼다. 누군가 본받고 싶어 하는 어른이 되고자 노력한다. 그러려면 내가 잘 살아야 하니까 어떤 일을 하든 책임감을 느낀다. 후배들을 위해 발판을 잘 닦아 나가겠다.
올해 목표는?
재작년에 작성한 버킷 리스트를 확인해보니 거의 이뤘더라. 당시 목표는 2세 계획, 도서 <파워포인트 디자인 실무 강의 with 신프로> 출간, 골프 실력 증진 등이었다. 올해도 하고 싶은 일이 정말 많다. 그중 개인적인 목표를 한 가지 밝히자면 골프 프로 입단 테스트에 도전해보고 싶다. 물론 쉽진 않을 것 같다.
인생 목표는 무엇인가?
지난해 론칭한 파파타랩스와 MIC가 올해 목표치를 달성하는 등 사업이 술술 풀리길 바란다. 그 결과, 어떤 시도든 자신 있게 도전할 수 있는 시간적·금전적 여유를 갖고 싶다. 이 모든 건 가족을 위해 하는 일이니 우리 가족이 행복하길 바란다. 가족이 곧 나의 원동력이다. 지금껏 그랬듯, 건강 관리에도 더욱 신경 쓰려 한다. 마지막으로 언젠가 나만의 드럼 연습실을 꾸미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