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뒤흔든 비선 실세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권력의 일인자 뒤에 숨어 죽은 새도 살릴 만큼 더 막강한 힘을 행사한 비선 실세. 나라를 움직인 그들의 일대기를 알아보자.
백악관을 좌지우지한 비선 실세
조앤 퀴글리 Joan Quigley (1927~2014, 미국, 무속인)
점성술에 관심이 많았던 영부인 낸시 레이건은 평소 신뢰하던 조앤 퀴글리가 1981년 3월 30일 레이건의 피격을 정확히 예측하자 점성술을 더욱 맹신하기 시작했다. 낸시는 조앤에게 매달 의뢰비 3000달러를 지급하며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걸어 대통령 일정에 조언을 구했다. 조앤은 대통령 연설부터 일정, 외교 정책, 심지어 암 수술 날짜까지 결정하며 온갖 정책에 손을 댔다. 오죽하면 조앤 스스로 점술가가 국정을 이렇게나 휘두를 수 있었던 것은 로마 시대 이래 처음이라 말했을까.
레이건의 톡트린 정책이 그의 작품?
레이건은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 회담할 때에도 조앤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녀는 물병자리인 고르바초프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좋아하는 만큼 곧 개혁 개방을 추진할 것이라 예언했다. 레이건은 그녀의 조언에 따라 정책을 구상했고, 결국 레이건 독트린 정책을 발표해 임기 직후 소련 해체를 이끌었다.
법률을 악용해 대리청정
에디스 윌슨 Edith Wilson (1872~ 1961, 미국, 영부인)
건강이 나빠진 대통령을 대신해 영부인이 국정을 운영한 사례가 있다. 미국 제28대 대통령 우드로 윌슨의 아내 에디스 윌슨이 그 주인공. 1919년 윌슨 대통령이 뇌경색으로 반신불수가 되자 에디스 윌슨은 이 사실을 숨긴 채 대통령의 남은 임기 동안 국정을 운영했다. 그녀는 약 1년 5개월간 내각, 의회, 언론에 대통령의 건강 상태를 숨겼으며, 단지 대통령이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침실에서 집무 수행 중이라고 둘러댔다. 상식적으로 부통령이 국정을 운영하는것이 맞지만 에디스는 당시 미국 헌법상 대통령이 사망한 경우 부통령이 권한을 승계한다는 원칙을 악용해 권한을 넘기지 않았다.
그 와중에 노벨 평화상까지 수상
에디스 윌슨은 집무 불능 상태의 남편을 꼭두각시로 세운 채 국정을 계속 운영해갔다. 1919년에는 금주법이 통과되고, 1920년에는 여성의 투표권이 수정헌법 19조로 명시되었다. 심지어 윌슨 대통령은 그해 12월에 제1차 세계대전 직후 유럽 평화에 기여했다는 명분으로 노벨 평화상까지 수상했다. 물론 모두 다 남편 우드로 윌슨의 업적으로 남아 있지만, 사실상 에디스가 이룬 업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윌슨 대통령은 퇴임 후 반신불수 상태로 3년 넘게 살다 사망했다. 그의 사망으로 자연스레 그녀의 행적이 발각됐으며, 미국은 이 사건으로 비로소 대통령직 승계 원칙 규정을 헌법에 명시했다.
노태우는 박철언의 작품
박철언 (1942년생, 대한민국, 정치인)
박철언은 노태우 전 대통령의 부인 김옥숙의 고종사촌 동생으로 노태우를 대통령으로 만든 인물이라고 평가받는다. 2005년 박철언이 쓴 회고록 <바른 역사를 위한 증언: 5공, 6공, 3김 시대의 정치비사>에 따르면 그는 1987년 노태우를 위한 특공대 ‘월계수회’를 만들어 싱크탱크 역할을 자처했다. 또 ‘보통 사람들의 시대’라는 표어를 제시하며 노태우가 손가방을 들고 다니는 모습을 연출해 서민적인 면을 강조하는 등 노태우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전력투구했다. 월계수회 회원은 약 200만 명에 달했으며, 박철언은 이들의 정신 무장을 위해 ‘노태우 스쿨’까지 만드는 치밀함을 보였다.
박철언과 월계수회
노태우 당선 후 박철언은 제13대 국회의원과 정무 제1장관, 체육청소년부 장관 등을 지냈다. 곧이어 월계수회 회원들은 정부 산하 기관과 행정부, 검찰, 경찰 할 것 없이 주요 요직을 독식했다. 덕분에 월계수회 수장 박철언의 권력은 하늘을 찔렀다. 당시 그의 업무 영역은 제한이 없었다. 남북 협상과 공산권 국가와의 교류 역시 그가 추진한 구상이었다. 박철언의 이러한 월권 행위에 당시 야당인 민정당이 견제했으나 노태우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젊은 사람이 일 좀 해보려는데
왜 도와주진 않고 막느냐?
- 야당의 비난에 대한 노태우 전 대통령의 답변
우리나라의 권력 서열이 어떻게 되는 줄 아느냐.
최순실 씨가 1위, 정 씨(정윤회)가 2위이며,
박근혜 대통령은 3위에 불과하다.
- 박관천(前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
비공식 국가 서열 1위
최서원(최순실) (1956년생, 대한민국)
최서원의 아버지 최태민은 불교, 기독교, 천도교를 합쳐 영세교를 만들었다. 그는 난치병을 치료한다며 혹세무민한 사이비 종교인이었다. 최태민은 1975년 박근혜에게 “꿈속에 육영수 여사가 나타나 근혜를 도와주라”라고 했다며 세 차례에 걸쳐 편지를 보냈고, 박근혜는 이에 대한 화답으로 최태민을 청와대로 불렀다. 박근혜와 친분을 쌓은 최태민은 영세교의 이름을 ‘대한구국선교단’으로 바꾸고 그녀를 명예총재로 추대하며 자신의 딸 최서원과 친분을 쌓게 했다.
최태민의 공작 덕에 박근혜의 정신적 지주로 자리 잡은 최서원은 훗날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자 그녀를 방패 삼아 모든 권력을 휘둘렀다. 대통령 연설문 작성과 인사 개입, 정무회의 진행은 기본이었고 행사용 의상 담당 업체까지 직접 선정하는 등 대통령과 관련한 일은 하나부터 열까지 관여했다. 박근혜는 최서원을 ‘최 선생님’이라 불렀고, 최서원은 자신의 논현동 사무실에 비선 모임을 따로 만들어 비전문가들과 국정에 대해 논의했다. 최서원은 현재 육영재단에 있는 육영수 여사 유품까지 빼돌려 암시장에 넘겼다는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최초의 현직 대통령 파면
꼬리가 길면 당연히 밟히는 법. 결국 2017년 박근혜는 역사상 처음으로 대통령 자리에서 파면당했다. 최서원 역시 2020년 6월 대법원 판결로 징역 18년과 벌금 200억원이 최종 확정되어 청주여자교도소에 수감되었다.
꾸준한 트럼프 바라기
로저 스톤 Roger Stone (1952년생. 미국, 정치인)
도널드 트럼프의 40년 지기이자 정치 컨설턴트로 알려진 로저 스톤은 일생을 트럼프와 함께했다. 그는 1972년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의 눈에 띄어 정치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로비스트로 활동하며 트럼프와 친분을 쌓았고, 정재계를 가리지 않고 뽐내는 트럼프의 막대한 힘에 반해 1998년 ‘트럼프 대통령론’을 처음 언급했다.
2016년 트럼프가 대선에 출마하자 로저 스톤의 입이 쉴 새 없이 바빠졌다. 그는 트럼프와 정치 공작 분야를 나눠 각종 낭설과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로저 스톤은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남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성 추문을 막기 위해 관계자들의 입을 막았다는 헛 소문을 내고 힐러리의 최측근인 후마 애버딘이 테러 조직과 관련있다는 소문도 확산시켰다. 미국 검찰은 2016년 미국 대선 판도를가른 결정타였던 힐러리 이메일 해킹 사건이 로저 스톤이 꾸민 일이라고 주장했다.
은혜 갚은 트럼프
로저 스톤은 ‘트럼프 당선’이라는 목표를 이루었지만 자신에게 쏟아진 고소장은 피할 수 없었다. 그는 러시아 내통 혐의, 공무 집행 방해, 허위 진술과 증인 매수 등 7개 혐의가 인정돼 징역 3년 4개월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트럼프는 임기 말 “로저 스톤은 러시아 사기극의 피해자”라는 말을 남기며 로저 스톤을 특별사면했다. 그 후 로저 스톤은 자신의 SNS에 춤추는 영상을 올려 많은 이에게 질타를 받았지만 정작 본인은 아무렇지 않다는 반응을 보여 더욱 공분을 샀다.
아베의 뒷배
일본회의 (1997년 창립)
일본 최대 규모의 우파 조직으로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창립 회원이다. 이들은 평화헌법을 개정해 일왕이 다시 행정권과 사법권을 갖고 다스리는 천황제 부활을 외치며 자위대를 재편해 동아시아로의 군사 진출과 패권 장악을 주장하고 있다. 21세기에 맞지 않는 허무맹랑한 주장이지만 일본 중의원 중 40%가 일본회의 회원이다. 제4차 아베 내각 의원 20명 중 15명이 일본회의 소속이니 아베의 결정은 곧 일본회의의 뜻이었다.
아베 정권의 결정은 대부분 일본회의에서 나온 내용과 일맥상통했다. 아베가 이토록 일본회의를 따르는 이유는 일본회의가 아베를 키워주었기 때문. 아베는 굵직한 정치인 집안 출신으로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 기시 노부스케의 외손자이자 외무장관을 지낸 아베 신타로의 아들이다. 아베 역시 대를 이어 정치인이 되고자 자신의 세력을 만들었고, 그렇게 모인 사람들이 일본회의를 설립해 정치 초년생인 그를 적극 지지해주었다.
총리는 일본회의의 나팔수
아베가 지지율 하락으로 사퇴하자 일각에선 일본 정치에 새바람이 불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아베에 이어 총리 자리에 오른 스가 요시히데 역시 일본회의 회원이자 부회장을 역임한 인물이며, 그가 꾸린 내각도 20명 중 14명이 일본회의 소속 회원이었다. 스가는 정권 교체 1년 만에 코로나19로 지지율이 하락해 사퇴했지만 뒤를 이어 새로운 총리가 된 기시다 후미오 역시 내각 인원 21명 중 14명을 일본회의 회원으로 구성했다. 게다가 아베가 현재 일본 회의 특별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어 기시다 내각은 ‘아베 시즌 3’라고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