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고전에서 배우는 처세의 비법

‘공자 왈 맹자 왈’은 고리타분한 옛날이야기가 아니다. 성현들의 말씀에서 배우는 신의 한 수.

2023-02-01     김구용 에디터

 

 

 

논어(論語)

공자(孔子, B.C.551~B.C.479)의 가르침을 집대성한 책. 제자들이 공자 생전의 가르침과 어록을 정리해 엮었다. “자기 자신을 수양하고 집안을 다스린 후 나라를 통치해 세상을 평안하게 한다(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처럼 개인의 수양과 통치 법도에 대한 공자의 가르침이 주 내용. 공자와 제자들의 대화로 구성되어 있다.

 

겸손하되 당당하게 말하라

누군가를 칭찬할 일이 있을 때 괜한 경쟁심으로 머뭇거리면 자기만 속 좁은 사람이 된다. 또 스스로를 평가할 때 무조건 겸손하기만 해도 자칫 자신감 없어 보일 수 있다. 자공(子貢, B.C.520?~B.C.456?)은 공자의 질문에 안회가 자신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사실을 화끈하게 인정했다. 그러고 나서 자신도 “하나를 들으면 둘, 셋은 안다”며 범상한 인물이 아님을 강조했다. 공자는 이런 자공의 태도에 대단히 만족해 그를 칭찬했다.

 

공자가 자공에게 물었다. 

“너와 안회 중에 누가 더 낫다고 생각하느냐?” 

자공이 대답했다. 

“회는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알지만 저는 하나를 들으면 둘, 셋을 알 뿐입니다.”

 

 

한비자(韓非子)

중국 전국시대 한비(韓非, B.C.280?~B.C.233)를 비롯한 법가(法家) 사상가들의 가르침을 집대성한 책. 한비는 인간을 “이해타산적이며 악한 존재”로 보고 애초부터 도덕의 힘이 아닌 상벌로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시황은 한비의 사상에 깊이 감명해 철권통치의 논리적 기반을 마련했다.

 

간결하게 말하라

관중(管仲, ?~B.C.645)은 간단한 비유를 통해 환공에게 부에 대한 인간의 탐욕을 정의했다. 서양의 대화법 중 ‘KISS 화법’이 있다. ‘Keep It Short & Simple’을 일컫는다. 짧고 명확하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것이 안 되는 사람에게는 ‘Keep It Short, Stupid(짧게 해, 이 멍청아!)’로 쓰이기도 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핵심을 말하는 것이 설득의 기술이다.

 

제환공이 재상 관중에게 물었다.

“부(富)에도 한계가 있는 것이오?”

관중이 대답했다.

“부의 한계는 스스로 만족했을 때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만족하지 못해 패가망신하곤 합니다. 따라서 부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부하를 친구, 스승으로 모셔라

진정한 리더는 부하를 친구처럼 대한다. 그래야 위기의 순간이 닥쳤을 때 리더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 중국을 통일한 주나라 문왕은 태공망을 발탁할 때 이 단순한 한마디로 모든 신하를 감동시켜 충성심을 이끌어냈다. 현존하는 최고의 경영전략가 게리 해멀은 저서 <지금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에서 “상사는 직원의 길을 열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지, 절대로 자원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라고 지적했다.

 

주문왕이 전쟁에서 이긴 뒤 전장의 언덕에 올랐다. 마침 신발 끈이 풀리자 직접 허리를 굽혀 끈을 묶었다. 이를 본 태공망이 말했다. 

“폐하, 신하에게 시키시지요.”

그러자 주 문왕이 대답했다.

“최고의 군주 밑에 있는 신하는 모두 스승이요, 보통 군주 밑에 있는 신하는 모두 친구요, 하급 군주 밑에 있는 신하는 모두 시종이요, 지금 이곳에 있는 신하들은 모두 선왕 때부터 있던 이들이므로 이 일을 시킬 사람이 없소.”

 

 

장자(莊子)

도가의 대표적 사상가인 장자(莊子, B.C.365?~B.C.270?)와 제자들의 글을 모은 책. 내편(內篇), 외편(外篇), 잡편(雜篇) 등 33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개인적인 해탈과 인간 존재에 대한 탐구를 우화(偶話) 형식으로 이야기한다. 장자는 현실세계를 유한한 것으로 보고 인간이 진정한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현실 세계를 초월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공자와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있는 그대로 말하라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의 말은 짧고 간결하며 힘이 넘친다. 반면 준비가 덜 되고 자신감이 없으면 말에 힘이 없고 중언부언한다. 또 핵심을 짚지 못해 상대를 지루하게 만든다. 특히 프레젠테이션이나 협상을 할 때 지나친 수식을 구사하다 보면 일을 그르치기 십상이다. 말재주로 상대를 설득하려 들면 가식적인 모습을 읽히게 된다. 가장 좋은 것은 장자가 말한 대로 자신의 의도를 간결하게 전하는 것이다.

 

초나라의 자고가 제나라에 사신으로 떠나면서 조언을 듣기 위해 공자를 찾았다.

“이번에 사신으로 가는 일은 매우 중요한 사안입니다. 제가 감당할 수 없을까 걱정입니다.”

공자는 몇 가지 조언을 해준 후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제일 좋은 것은 초나라 왕에게 받은 명을 그대로 전하는 것이다. 들은 대로 전하는 것이 뭐가 어려운가? ”

 

 

상대방의 말을 인용하라

사람들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명언이나 격언을 인용한다. 그들의 언어는 무게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훌륭한 사람이나 유명한 사람의 말에 상당한 무게감을 둔다. 안회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스승 공자의 말을 인용했다. 효과는 확실하다. 어느 누구도 자기 자신이 한 말을 부인하기는 어려운 까닭이다. 사회생활도 마찬가지다. 내가 설득해야 하는 사람이 한 말 중 적절한 표현이 있다면 그 말을 인용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자신이 직접 한 말은 모든 논리를 뛰어넘기 때문이다.

 

안회가 스승 공자를 떠나 위나라로 가기로 결심했다. 애제자와의 작별이 아쉬운 공자가 물었다.

“왜 위나라로 가려 하느냐?”

“위나라 군주는 정치를 잘못해 나라가 도탄에 빠졌다 합니다. 스승님께서는 일찍이 제게 ‘잘 다스려지는 나라를 떠나 어지러운 나라로 가라. 의원의 집에 환자가 많은 법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배운 대로 행하고 싶습니다.”

 

 

사기(史記)

중국 전한 무제 시대에 사마천(司馬遷, B.C.145?~B.C.86?)이 저술한 역사서. 왕에게 충언을 고하다 미움을 사 궁형(거세)을 받고 감옥에 갇힌 사마천이 피눈물을 흘리며 쓴 책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최고 역사서로 손꼽힌다. 유려한 문체와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가득해 역사서는 물론 문학작품으로서도 높이 평가받는다.

 

어려울수록 해학을 잊지 않는다

장의(張儀, ?~B.C.309)는 뛰어난 화술로 전국시대 왕들에게 정책을 간언하던 논객이다. 그는 익살과 유머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자칫 감정싸움으로 번질 수 있는 상황을 한마디 유머로 부드럽게 넘기는 대목에서 그의 해학이 잘 드러난다. 이처럼 심각한 상황을 단번에 반전시키는 것이 해학의 힘이다. 미국 최고의 세일즈 컨설턴트 제프리 지토머는 “고객을 웃게 할 수 있다면 사게 할 수 있다”라고 말해 세일즈의 해답이 웃음과 유머라고 정의했다. 최근 직장이나 조직 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유형으로 꼽히는 사람은 바로 ‘유머 있는 사람’이다.

 

위나라 논객 장의가 초나라 재상과 술을 마시다가 재상의 보물을 훔쳤다는 누명을 썼다. 수백 대의 매를 맞고 풀려난 장의를 보고 아내가 타박했다.

“당신이 유세(토론과 설득)를 배우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요.”

그러자 장의가 혀를 쑥 내밀며 말했다.

“내 혀는 아직 그대로 있는지 봐주시구려.”

기가 막힌 아내는 웃으며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변명하지 마라

인생을 살다 보면 누구나 실패와 좌절을 겪는다. 문제는 얼마나 잘 대처하고 재기하느냐다. 이런 능력을 ‘회복탄력성’이라고 한다. 리더는 위기의 순간 희망을 말하고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하지만 위기가 닥쳤을 때 자존심만 생각하고 위기의 원인을 남에게 돌리는 것은 망하는 지름길이다. 항우(項羽, B.C.232~B.C.202)처럼 말이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이렇게 평했다. “항우는 스스로의 공만 자랑하고 옛것을 본받지 않았다. 죽음에 이르러서도 하늘만 탓하고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니 어찌 황당하지 않은가.”

 

항우가 유방의 군대에 쫓겨 동성 땅에 이르렀을 때 그의 휘하에는 겨우 28기의 기병만 남아 있었다.

“내가 병사를 일으킨 지 벌써 8년, 70여 차례의 전투를 치렀다. 그간 패배를 몰랐고 천하통일을 눈앞에 뒀으나, 지금 이렇게 곤경에 처했다. 이는 하늘이 나를 버린 것이지 내가 전쟁을 못한 것이 아니다.”

항우는 이 말을 남기고 유방의 군대를 향해 돌진했고, 자결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