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1호 레고 공인 작가 김성완

좋아하는 일만 해서 돈을 벌 수 있을까? 취미가 일이 되면 싫증이 나진 않을까? 대기업을 그만두고 레고 공인 작가가 된 (주)하비앤토이 김성완 대표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2023-02-01     진주영 에디터

 

 

 

Profile 김성완•1974년생•(주)하비앤토이 대표• 레고 공인 작가

 

2017년 대한민국 첫 번째 레고 공인 작가(LEGO Certified Professional, LCP)가 탄생했다. 레고 블록을 이용해 다양한 작품을 만드는 회사 하비앤토이의 김성완 대표가 그 주인공. 어릴 때부터 손재주가 남달랐던 그에게 레고 조립은 즐거운 취미 생활 중 하나였다. 2000년에는 온라인 레고 커뮤니티 ‘브릭인사이드’를 오픈했을 정도로 진성 ‘덕후’였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산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에 입사하는 등 탄탄대로 인생을 살던 그가 레고 작가로 전업한 것은 우연이자 필연이었다. 레고 커뮤니티 운영자라는 믿음직한 타이틀을 지닌 그에게 하나둘 작품 의뢰가 들어오기 시작한 것.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지금, 전 세계에 20여 명밖에 없는 레고 공인 작가로서 ‘덕업일치’의 길을 걷고 있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나?

지난해 연말까지 매우 바빴다. 명품 브랜드 매장 전시용 작품, 통신사 브랜드의 캐릭터 모형, 크리스마스 시즌 백화점에 전시할 트리 등 다양한 작품을 만들었다. 또 MBC에서 방영한 레고 창작 서바이벌 예능 <블록버스터: 천재들의 브릭 전쟁> 심사위원으로도 참여했다. 본격적인 방송 출연은 처음이라 많이 긴장했지만 무사히 마쳤다. 현재는 비수기여서 숨을 고르고 있다.

 

레고 공인 작가는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가?

덴마크 레고 본사가 인정한 브릭 아티스트라고 보면 된다. 본사와 직접 고용 계약을 맺는 것이 아니라 독립적으로 활동한다. 레고 공인 작가를 입증하는 로고 사용이 가능하고, 작품 활동을 위한 레고 블록을 저렴한 가격에 대량 구매할 수 있다. 한 작품을 만드는 데 수만 개 이상의 부품이 필요하기 때문에 무엇보다 가장 큰 혜택이라 할 수 있다. 또 꾸준한 작품 활동을 통해 레고를 많은 사람에게 알리는 일을 한다.

 

어떤 과정을 거쳐 선발되었나?

2013년 레고 본사에 그동안 만든 작품, 온라인 커뮤니티 활동 등을 모아 포트폴리오를 제출했고, 4년 뒤인 2017년 레고 공인 작가로 인정받았다. 오래 기다린 데다 보통 한 나라에서 한두 명만 선발하기 때문에 더할 나위 없이 기뻤다.

 

‘브릭인사이드’는 어떤 커뮤니티인가?

레고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다. 자신이 만든 작품 사진을 올리거나 제품 정보를 공유하는 등 레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다. 1990년대 말만 해도 신제품 출시, 구입처 같은 정보 찾기가 너무 어려웠다. 나라도 인터넷 사이트를 만들어 정보를 공유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정보 전달을 목적으로 하는 홈페이지였는데, 점차 방문자가 늘면서 지금의 커뮤니티 형태로 발전했다. 요즘도 종종 오프라인 모임을 가진다.

 

레고의 매력은 무엇인가?

블록 자체가 예쁘지 않나. 크기도, 색상도 다양하다. 지금 보유 중인 부품만 해도 5000종이 넘는다. 크고 작은 블록을 조합해 어떤 모양이든 만들 수 있다. 정해진 작업 방식도 없다. 그래서인지 규격화된 블록을 사용하는 데도 창작자에 따라 각기 다른 형태의 작품이 나온다. 창작에 한계가 없는 한편, 언제든 작품을 해체해 재활용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어떤 작품이 가장 기억에 남나?

10년 넘게 작업하면서 다양한 작품을 만들었다. 의뢰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한데, 기억에 남는 작업은 자주 갱신된다. 2019년에는 가로 5m, 세로 4m, 높이 1.2m 규모의 서울월드컵경기장 모형을 제작했다. 크기가 큰 데다 하중 계산 등 치밀한 설계가 필요해 까다로운 작업이었다.

 지난해에는 레고 블록으로 만든 루이 비통 가방을 쌓아 에펠탑 형태의 타워를 조립했다. 높이만 6m가 넘다 보니 설치하기도 쉽지 않았다. 또 가방의 기본 골격을 나무로 제작한 후 겉면을 레고 블록으로 마감하는 형태여서 목공품과 레고 블록의 사이즈를 맞추는 것이 무엇보다 어려웠다. 어려운 작업을 해낼수록 한 단계씩 발전하는 기분이 들어 좋다.

 

 

개인 작업도 하나?

의뢰받은 작품을 만들다 보면 한 해가 금방 간다. 그래도 내 작품을 하고 싶은 욕심이 있어 틈날 때마다 작업한다. 현재는 ‘인간과 고양이’를 주제로 한 연작을 준비하고 있다. 고양이가 라디에이터 위에 누워있거나 로봇 청소기 위에 올라타거나 사람 다리에 기대는 등 사람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모습을 담았다.

 

작업 시간은 얼마나 걸리나?

작품마다 다르다. ‘인간과 고양이’ 연작은 한 작품에 3~4만 개 부품을 쓴다. 2명이 2주가량 붙어서 조립에만 매달린다. 조립보다는 아이디어 구상 단계에 시간을 더 많이 할애할 때도 있다.

 

전공인 전산학이 작업에 도움이 되기도 하나?

레고 작업을 주요 사업으로 하는 회사가 거의 없다 보니 시스템이 전무했다. 5000종이나 되는 부품을일일이 노트에 기재해 관리하기는 어렵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활용해 재고 관리 시스템 등 필요한 프로그램은 직접 만들어 쓴다. 전산학과라고 하니 의아할 수 있는데, 컴퓨터공학과라 봐도 무방하다.

 

처음 레고 창작을 취미로 삼았을 때만 해도 조립보단 작품 수집에 관심이 더 많았다. 그런 내가 10년 넘게 레고 작가로 일하고 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인지는 직접 해봐야만 알 수 있다.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둔 이유는?

레고 창작을 업으로 삼으려고 퇴사한 건 아니었다. 당시 업무가 내 옷 같지 않아 이직을 고려하고 있었다. 삼성전자 퇴사 후 장난감 콘텐츠를 제작하는 벤처기업에서 일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레고 창작 의뢰가 많이 들어와 큰 고민 없이 시작한 일이다. 30대 초반엔 미혼이었으니 크게 두려울 것이 없었다. 지금이라면 그렇게 쉽게 인생의 방향을 바꾸지 못했을 것 같다.

 

현재 일에 만족하나?

회사를 다닐 때와는 다른 만족감이다. 내가 선택한 일이고, 또 즐거워서 하는 일이지 않나. 힘든 일이 있어도 참을 수 있다. 의뢰받은 작업이어도 설계, 제작, 설치 등 모든 과정에 참여하다 보니 작업을 마쳤을 때 느끼는 성취감이 남다를 수밖에. 매해 작업 규모가 커지는 등 커리어가 차곡차곡 쌓일 때도 보람차다.

 

취미가 일이 되면 싫어질 때도 있지 않나?

‘덕업일치’를 꿈꾸는 사람 중 비슷한 걱정을 하는 사람이 종종 있더라. 그런데 기호가 바뀌는 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좋아하는 일이어서 업으로 삼았지만 당연히 싫증 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는 과정인 거다. 나 역시 아직까지는 레고 작업에 재미를 느끼지만 언제 마음이 바뀔지 모르는 거다.

 다만 좋아한다는 이유로 무작정 뛰어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회사든 사업이든 본업을 지키면서 이리저리 많이 부딪혀보고 결정해도 늦지 않다. 경험자이기 때문에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10년 넘게 레고 작가로 일하며 후회한 적이 있나?

작품 규모 등 외형 면에서는 확실히 성장한 듯 보이지만 아직 내실이 부족한 편이다. 코로나19 확산 시기에는 사무실을 유지하기도 힘들었다. 10년 넘게 이 일을 했는데도 원체 시장이 크지 않다 보니 이런저런 애로 사항이 많다. 그렇다고 가만 있기보다 새로운 조립 기법을 도입하는 등 좀 더 업그레이드된 작품을 선보이려고 고민 중이다.

 

레고 작가로서 목표는?

아직 단독 전시회를 연 적이 없다. 의뢰 작업을 우선시하다 보니 개인 작품을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다. 비록 속도가 느리지만 나만의 개성이 강하게 드러나는 작품을 차츰 늘려가고 싶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자체 전시관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머지않은 미래에 이루고 싶은 장기 목표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