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끼리 집 지은 남자들
가족에 대한 책임과 사회적 의무에 등 떠밀려 내 이상과 거리가 먼 인생을 좇아 달려온 중년의 삶. 우린 생각한 대로, 마음먹은 대로 살고 있을까? 여기 자기만의 놀이터를 만들어 행복한 삶을 살고자 하는 세 남자가 있다. 그들은 사는 동안 한 번은 나만의 진정한 행복을 위해 일상을 벗어나려 한다.
50대 친구끼리 아지트를 지었다기에 찾은 경기도 광주 퇴촌. 아저씨들이 티격태격한다. 가만히 보니 싸우는 건 아니다. 그들은 난생처음 경험하는 잡지 촬영을 위해 서로를 향한 조언에 열심이었다. 괜히 툴툴거리는 한 명과 까불대며 놀리는 다른 한 명, 친구들이 듣든 말든 자기 말만 하는 또 다른 한 명까지, 그들의 수다는 흔한 말로 가관이었다. 그 나이에 왜들 그러는 걸까?
“티격태격하는 데는 서로에 대한 신뢰가 깔려 있다”는 한 사람의 말에서 그들이 얼마나 오래 우정을 쌓아왔는지를 알았다. 그러고 보니 체통도 염치도 느껴지지 않는 50대 남자들의 수다에서 자연스러운 우정이 엿보였다. 친구끼리 이야기할 때 칭찬이나 좋은 점을 이야기하겠는가? 대부분 험담으로 날밤을 샌다. 이들은 급기야 한데 모여 마음껏 수다를 떨 만한 집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세 사람은 어떤 관계인가?
정호진(이하 ‘정’): 한국외대 일본어과 동기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는데 아직 철이 덜 들어서 서로 치고 박고 여전히 대학 시절처럼 왁자지껄하게 지내고 있다.
우리만의 놀이터를 짓게 된 계기는?
최창섭(이하 ‘최’): 우리 셋 말고 또 다른 친구가 운영하던 이탤리언 레스토랑이 원래 아지트였다. 그런데 코로나19 영향으로 폐업하게 됐고, 그 대안으로 우리만의 공간을 만들기로 했다.
50대 남자들이 생각하는 게 뻔하지 않나. 계곡이 있는 나무숲에서 자연을 벗 삼아 여유 있는 한때를 보내고, 밤이면 모닥불 피우며 캠핑을 즐기는 우리만의 공간을 꿈꿨다. 하지만 생활권에서 너무 멀거나 원시림처럼 으스스한 분위기는 배제했다. 우리 세 사람의 생활권이 서울임을 감안해 경기도 광주 퇴촌으로 정했다.
퇴촌에는 연고가 전혀 없나?
이상엽(이하 ‘이’): 그렇다. 서울에서 한 시간 정도면 닿을 만큼 접근성이 좋았고, 도로나 마트, 상가 등 인프라도 적당했다. 전원생활을 누릴 수 있으면서도 주위에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정: 서울과 달리 공기도 좋다.
최: 원래 양평, 가평, 홍천을 먼저 알아봤다. 의기투합해 물색했지만 마음에 드는 땅을 찾지 못하고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퇴촌을 발견했다. 이후 인터넷에서 매물을 검색해 보니 적당한 시세의 땅이 있었다. 바로 이곳이다. 폐가가 있는 땅이었지만 낮은 산으로 둘러싸여 자연 친화적인데다 햇볕도 잘 들어 포근하기까지 했다.
집 이름은 지었나?
최: 지금 짓는 중이다. 얼마 전 방영한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서처럼 ‘정심제’로 할까도 생각했다.(웃음)
정: 이름을 공모 중이다. 다양한 의견이 오가고 있다.
이: 우리 셋 말고 후배, 지인, 지인 친구들까지 아이디어 내느라 분주하다.
후배나 지인에게도 지분이 있나?
정: 주인은 우리 셋이고, 각자 지인이 다 같이 쓸 수 있다. 그래서 친한 친구, 사업장 동료, 친지에게도 정원에 있는 나무를 기증받았다.
최: 그게 의미 있는 것 같다. 현재 정원에 열두 그루 나무가 있는데, 모두 기증받은 거다. 여러 사람이 함께 가꿔가는 공간이란 점에서 이 집을 만든 취지와 딱 들어맞는다.
이: 그런데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기증한 사람들에게 이 집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대접을 한다. 그걸 알고는 많은 지인이 기증하려고 줄을 섰다. 정원에 있는 바비큐 그릴, 골프 연습 시설, 식탁까지 모두 지인들이 기증한 것이다. 그들에게 대접하려면 고생깨나 하게 생겼다.(웃음)
여러 사람이 계속해서 사용하고 가꿔가다 보면 집의 모습도 차츰 변해가겠다
이: 그렇다. 준공을 막 끝낸 지금이 100% 고정된 모습이라고 할 순 없다. 외부 시설을 추가하거나 뺄 수도 있고, 봄이 오면 꽃도 심어볼 생각이다.
최: 안 그래도 이 친구(정호진)가 정원 한편에 아궁이를 만들고 있다. 봄쯤 완성되면 거기서 음식을 만들어 먹고 불멍도 할 생각이다. 놀거리가 그렇게 하나씩 늘어날 것이다.
우리만의 놀이터를 꾸리는 데 특별히 의도한 콘셉트가 있나?
이: 일반적인 우리나라 아파트에서 볼 수 없는 공간이었으면 했다. 그래서 층고를 높게 해 이국적인 느낌을 살렸다. 천장 바로 밑에는 창을 둬 채광에 신경썼다. 창은 리모컨으로 작동할 수 있다.
정: 실제로 이 집의 층고는 8m나 된다. 보통 남자들이 그렇듯이 우리 셋 다 답답한 걸 죽기보다 싫어한다. 그래서 개방감을 최우선 순위로 두고 층고를 높이 설계했다.
최: 개인 공간도 따로 없다. 이 집에는 침실이 3개 있지만, 전부 누구의 방도 아니다. 방을 개인 공간으로 삼으면 공용으로 활용하는 데 지장이 있기 때문이다.
셋 다 아파트에 살면서 하지 못하는 것을 하려고 한다.
목공, 골프, 멍때리기, 바비큐 뭐든 좋다.
우린 각자 생각하는 방식으로 이 집을 열심히 누릴 작정이다.
바를 만든 것은 누구 아이디어인가?
최: 여기, 이 친구(정호진)의 로망이었다.
정: 어차피 다들 술을 즐기고, 바에 모이면 이렇게 분위기가 좋지 않나. 얼마 전 끝난 ‘2022 카타르 월드컵’도 여기 모여서 같이 봤다. 흥분해서 소리 지르고 난리도 아니었다.
이: 자기(정호진) 하고 싶은 거 다 하려고 한다.(웃음) 아궁이는 아직 완성하지도 못했는데 벌써부터 커다란 솥단지를 사 와서는 어디다 둬야 할지 난감해해 우리에게 잔소리를 듣고 있다.
정: 친구 사이여도 나 하고픈 걸 하기 어렵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제약이 조금 따를 뿐, 그냥 무시하고 꿋꿋이 하면 된다.(웃음)
집을 짓는 과정이 어렵진 않았나?
이: 감정평가사 친구(최창섭)가 땅을 고르고, 나도 집을 지어본 적이 있어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혼자라면 그 스트레스를 감당할 생각에 걱정이 앞섰을 텐데 셋이서 함께 하니 확실히 부담이 3분의 1로 줄었다. 아마 혼자 했으면 절대 못 했을 거다.
정: 한 번은 집터를 최대한 높이고 싶어 지금보다 1m 정도 높였었다. 그런데 근처 사시는 어르신이 민원을 넣으셨다. 이 집터가 너무 높아 어르신 거주지에 그늘이 지고, 비가 오면 토사 등이 쓸려 내려올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이었다. 그런 돌발 상황들에 대처하는 것이 쉽진 않았다.
건축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또 있나?
최: 설계를 의뢰할 곳을 물색하던 중 건축 박람회에 참가한 한 회사를 선정했다. 홍보를 잘하길래 별 생각 없이 맡겼는데 그게 실수였다. 설계도면이 나왔는데 너무 마음에 안 들었다. 우리는 바꿔달라고 계속 요구했는데 들어주지 않았다. 이미 설계비로 500만원 정도 지출한 상황이라 우리도 물러서기 어려웠다. 그래도 아닌 건 아닌 거니 어쩔 수 없이 다른 업체에 의뢰했다.
정: 집을 지어보니 한 가지 깨달은 게 있다. 설계 단계에서 만족하지 못하면 아예 원점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는 게 낫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설계비 500만원을 포기한 게 전혀 아깝지 않다. 오히려 그 돈이 아까워 그대로 강행했다면 두고두고 후회했을 것이다.
이: 우리도 일을 쉽게 풀어가려다 보니 기준 없이 건축 회사를 선정한 것이다. 손해 본 설계비 500만원은 수업료였다고 생각한다.
주로 무얼 하며 지내나?
이: 멍때리기 하는 걸 좋아한다. 특히 비 오는 날 여기 와서 혼자 음악 틀어놓고 멍하니 있으면 그걸로 힐링이 된다.
정: 나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해서 손님을 불러 같이 논다. 당장 이번 주만 해도 아내와 아내 친구 5명이 모이는데, 내가 고기 구워줘야 한다.(웃음)
이: 이 친구(정호진)는 목공도 좋아해 아궁이나 선반을 직접 만들기도 한다. 실내 바의 디자인도 직접 했다.
최: 나는 주말이면 취미로 야구를 한다. 얼마 전에 야구단 15명과 같이 먹고 놀고 자고 갔다.
사용 시기가 겹치지 않으려면 예약이라도 해야겠다
이: 우리끼리 네이버 밴드를 만들어 일정을 적고 있다. 공용 공간이니 사용하고자 하는 사람이 예약해서 서로 스케줄을 조정하는 거다.
정: 밴드에 경비 지출 내역을 공지하기도 한다. 집 지을 때부터 우리 셋이 공동 계좌를 만들어 비용을 모아 관리하고 있는데 공과금 등 지출 내역을 공유한다. 또 우리 셋 없이 지인끼리 왔다 갈 때를 대비해 분리수거장 위치나 바비큐 그릴 사용법 등 이용 수칙을 안내장으로 만들어 거실 스위치 옆에 붙여놓았다. 누구나 편히 이용하되 정리를 잘해 놓고 가도록 하는 것이다.
최: 우리 셋 중 자기 손님이 머물다 가면 호스트가 알아서 한 번 더 들러 청소와 정리를 하는 룰도 암묵적으로 존재한다.
50대가 됐어도 남자 여럿이 모이면 깔깔대고 어린애처럼 놀게 되지 않나?
최: 그렇다. 많은 모임을 하면서 얻은 결론도 그와 같다.
정: 나는 유튜브로 칵테일 만드는 걸 배워 친구들에게 해준다. 술맛보다도 같이 모여 작당 모의하는 것 자체가 즐겁다. 희한하게도 남자끼리 모여 있으면 분위기가 꼭 그렇게 흘러간다.
요즘 중년 사이에 ‘나다운 삶’이 화두다. 각자 본인다운 삶이란?
이: 자신이 어느 위치에 있고, 어떤 삶을 살아갈지를 명확히 해야 나다운 삶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과연 그걸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적어도 50대인 지금의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정: 나도 항상 여유 있고 행복하게 지내자고 다짐해 왔다. 그 다짐대로 사는 것이 나다운 삶이라고 생각한다. 이 집을 계기로 나다운 삶에 한 걸음 더 나아가기를 바란다.
최: ‘바쁘게 살자’는 게 인생 모토였다. 바쁘게 살다 이따금씩 여유를 갖는 삶이어야 나태해지지 않을 것이라고 여겼다. 그래야 가끔 맛보는 휴식의 달콤함 또한 더욱 증폭될 것이고. 그래서 항상 바쁘게 살려고 노력한다.
우리만의 놀이터가 생기고 일상이 어떻게 달라졌나?
이: 나는 혼자 즐기는 걸 좋아하다 보니 일상의 탈출구 같은 게 생긴 느낌이다.
정: 나는 친한 사람들과 언제든지, 장소 제약 없이 즐길 수 있다 보니 주변인과 친목이 두터워졌다. 나이 들수록 사람들과 관계를 다지기 쉽지 않은데 천만 다행이다.
최: 나는 골프, 축구, 야구 등 모임을 굉장히 많이 한다. 한 모임당 최소 10명은 된다. 많은 인원이 식당에서 모임을 하려면 부담이 큰데, 이 집이 생겨 즐거움이 배가됐다. 얼마 전 기온이 영하 15℃까지 떨어진 날에도 축구단 13명이 이 집에서 함께 묵었다.
앞으로 계획은?
정: 아름답게 가꿀 생각이다. 우선 펜스 쪽에 장미를 심을 생각이다.
이: 여태까지는 만들어온 과정이었다면 앞으로는 누려야 하지 않겠나.
최: 텃밭도 만든다며?
정: 텃밭은 조금 부담이….
이: 텃밭은 당분간 안 하는 걸로.(웃음)
정: 공부 좀 하면서 천천히 시간을 갖고.
이: 넌(정호진) 너무 뭔가를 하려고 해.
정: 아니, 텃밭 하려면 매일 와야 해서….
1. 건축 사무소를 정할 때는 짓고 싶은 모델을 고른 뒤 그 집을 지은 사무소가 어느 업체인지 알아본다.
2. 부지는 지목이 ‘대’(100평 이내)와 ‘농경지’(200~300평)가 함께 있는 것을 매입한다.
3. 주차장에 자갈을 깐다. 잡초가 자라지 않아 관리하기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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