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 특별함을 찾아서
오래된 카메라와 렌즈로 기록하는 반짝이는 ‘현재’.
언제부터 사진을 찍기 시작했나?
2002년 전공의 3년 차 때 취미로 시작했다. 지인이 카메라와 눈의 구조가 흡사하니 한번 배워보라고 권유했다. 입문하고 보니 카메라로 세상을 보는 것이 의사가 환자를 진찰하는 과정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사로서 환자의 상태를 면밀히 살펴봐야 하는 것처럼 사진도 카메라로 피사체를 유심히 관찰하고,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찾아야 한다. 20년 가까이 사진을 취미로 삼다 보니 그 유사성이 더욱 깊이 다가온다.
본격적으로 사진을 찍게 된 계기가 있나?
한때 토이 카메라를 사용한 적도 있다. 그러다 2003년에 라이카 M3와 50mm Summicron 렌즈를 중고로 구입했다. SLR 카메라를 쓰다가 레인지포커스(RF) 방식의 카메라를 쓰려니 어색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백화점 옥상정원에 있는 우체통 모형을 라이카로 촬영해 블로그에 올린 사진이 포털사이트 메인에 소개됐다. 갑자기 블로그 방문자가 늘어 깜짝 놀랐다. 요샛말로 ‘감성 사진’이었는데,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져주니 금세 재미를 붙이게 됐다. 댓글 반응도 꽤나 좋았다.
여러 카메라 중 라이카를 사용하는 이유는?
이제는 기능이 많은 카메라는 오히려 어렵게 느껴진다. 단순하게 살아야 큰 걱정 없이 건강하지 않나. 물건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라이카 필름 카메라는 간결한 구조가 특징인데, 그 단순함 속에 집요하고 섬세한 철학을 녹여내 더욱 감동적이다. 작동할 때 번거롭기도 하지만 그게 오히려 주도적으로 촬영하게 하는 힘을 만들어준다. 한 가지, 예전에는 월급을 모아 라이카 제품을 구입하는 뿌듯함이 있었는데, 지금은 가격이 너무 오른 듯해 아쉽다.
요즘도 M3를 사용하나?
근래에는 M4를 자주 쓴다. 꼭 갖고 싶었던 렌즈를 중고로 구입할 때 덩달아 산 물건이다. 오래 사용하면서 겉면 페인트칠이 약간 벗겨졌는데 꽤 멋스러워 보여 마음에 든다. 전자부품이 있는 M6와 기계로만 이루어진 M4는 셔터 소리부터 다르다. 수리 부분에서도 M4가 좀 더 안정적이어서 마음이 편하다.
기계식 보디는 사용하기 불편할 것 같은데
손에 익으면 오히려 빠른 촬영이 가능하다. 이제는 렌즈를 어느 정도 돌려야 초점이 맞는지 알다 보니 피사체를 보자마자 카메라를 들어 찍을 수도 있다. AF 카메라가 초점 잡는 짧은 시간마저 건너뛰는 거다. 또 거리를 천천히 산책하며 느긋하게 사진을 찍는 편이라 크게 무리가 없다. 렌즈는 50mm Summicron 1세대와 28mm Summaron을 주로 쓴다. 50mm로는 풍경, 인물, 정물 등 모든 피사체를 소화할 수 있고, 표현에 따라 광각처럼 보이게 할 수도 있다. 사진이 무난하고 사실적으로 나와 질리지 않는다. 화려하면 싫증 나기 쉽다.
렌즈가 엄청나게 많은데, 어떻게 모은 건가?
만년필 등 원래 무언가 수집하는 취미가 있다. 올드 렌즈도 그중 하나인데, 해외여행을 할 때도 무조건 현지 카메라 가게에 간다. 그렇게 하나둘 모은 렌즈가 100개쯤 된다. 라이카 제품의 가격이 지금처럼 비싸지 않을 때라 가능했다. 현행 렌즈는 욕심내지 않는다. 가격이 너무 사악하다.(웃음)
올드 렌즈의 매력은?
오래된 렌즈 중 일부는 ‘전설’로 불리며 굉장히 고가에 거래되지만, 대부분은 허점이 많다. 코팅을 하지 않아 빛 반사에 약하고, 연약한 유리를 사용해 손상되기도 쉽다. 색을 선명하게 표현하지 못하기도 한다. 디지털카메라나 스마트폰으로 일정한 수준의 사진을 찍을 수 있지만, 변별력이 낮아 오히려 지루하다. 각기 다른 허점을 지닌 올드 렌즈야말로 개성이 뚜렷하니 그 특성을 최대한 살린 사진을 찍으려고 노력하게 된다. 한마디로 재미있다. 만약 상태가 매우 좋은 올드 렌즈를 구한다면 운이 따른 것이다. 누군가 그 렌즈를 아주 오랫동안 보석처럼 귀하게 다루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특히 아끼는 올드 렌즈가 있다면?
1932년산 ‘헥토르(Hektor)’라는 멋진 이름의 렌즈는 생산량이 적어 구하기 쉽지 않았다. 렌즈 앞에 붙이는 필터 사이즈도 요즘 것과 달라 안경점에서 안경알을 깎아 필터로 쓴다. 올드 렌즈이니만큼 허점이 조금 있는데, 수차 때문에 사진에 회오리 모양의 독특한 보케가 생긴다. 그 나름의 느낌이 좋아 만족스럽다. 현대의 비구면 렌즈를 사용하면 만날 수 없는 사진이다.
1931년산 ‘엘마(Elmar)’도 코팅이 되어 있지 않아 물리적으로 약한 데다 역광에 취약하다. 니켈로 만들어 내구성도 좋지 않다. 그러다 보니 괜찮은 상태의 렌즈를 만나기가 어려운데 운 좋게 구했다. 무코팅 렌즈는 원래 흑백사진 촬영에 유리하지만 빛을 잘 사용하면 풍부한 색감의 사진도 얻을 수 있다. 렌즈 특징을 잘 이해하고 장점을 극대화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일이 즐겁다.
필름 카메라를 선호하는 이유는?
필름으로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꽤 큰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필름 구입부터 촬영, 현상, 인화까지 디지털 촬영보다 품이 더 들지만 이렇게 번거로운 과정이 조금 더 따뜻하고 다정하게 느껴진다. 디지털 음원이 있음에도 LP 음악을 찾아 듣는 것과 같은 맥락이 아닐까. 피사체, 눈, 카메라 렌즈, 필름으로 이어진 빛이 한 장의 사진으로 남는다는 사실이 매력적이다. 물론 디지털카메라도 함께 쓴다.
암실 작업도 직접 하나?
예전에는 집에서 현상하고 흑백사진은 직접 인화도 했는데, 지금은 믿을 수 있는 업체에 맡기고 있다. 병원 근처 소규모로 운영하는 곳이라 접근성도 좋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은 남이 끓여준 라면, 남이 타준 커피라는 말도 있지 않나. 내가 모든 작업을 완벽히 컨트롤하기 어렵기 때문에 후작업은 다른 이에게 맡기는 게 마음 편하더라.
사진 촬영은 주로 언제 하나?
출근할 때도 카메라 가방(DOMKE F-2)을 들고 다닌다. 20년째 사용 중인데 뜯어진 부분을 실로 꿰매 사용할 정도로 애착을 느끼는 물건이다. 평소에도 이런 오래된 것, 사라져 가는 것에 깊은 감명을 받는다. 일상 속 흔해 보이는 풍경을 흔하지 않게 만드는 게 사진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게 빠르게 변하는 현대사회에서 붙잡고 싶은 풍경을 찍곤 한다. 점심시간마다 병원 인근 성북동, 혜화동, 삼선동 등으로 자주 산책을 나간다. 점심시간이 1시간 30분이라 가능한 일이다.
또 매일 한강공원에 나가 찍은 사진이 수백 장이다. 같은 장소여도 날씨, 계절에 따라 다른 풍경을 포착할 수 있다. 이때는 주로 스마트폰으로 찍어 페이스북에 올리는데 양이 방대해서인지 출간 제의도 여러 번 받았다.
영향을 받은 사진가가 있다면?
196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서울 골목 풍경을 카메라로 담은 김기찬 선생님, 딸 윤미가 태어나서 결혼할 때까지의 모습을 촬영한 전몽각 선생님의 사진을 특히 좋아한다. 앞서 말했듯, 흘러가는 시간을 사진에 기록하는 방식은 내가 추구하는 방향이기도 하다. 보통의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 사진으로 전하고 싶다. 그래서 일상 속 사소해 보이는 것들을 카메라에 담곤 한다.
어떤 사진을 추구하나?
오래된 것들에 대한 애착,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 우리는 누구나 평소 경험하는 일상에서 아무나 가질 수 없는 나만의 순간을 갖고 싶어 한다. 그리고 이런 순간들은 담아두지 않으면 구체화할 순간을 놓치게 된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는 세상이지만 사실 가장 많이 변하고 있는 건 나 자신이다. 그래서 그 순간을 기록하려 애쓰고 있다.
본인의 사진 스타일을 설명한다면?
사진을 보는 이로 하여금 촬영 전후의 상황, 내가 느낀 감정 등을 상상하게 만드는 걸 좋아한다. 사진엔 어쩔 수 없이 내 생각과 삶이 배어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사진을 찍는다는 건 나를 알아가는 과정 같다. 사진의 방향성이 모호해질 때면 스스로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사진을 촬영하며 기억에 남은 순간이 있다면?
여행 갈 때 라이카 sofort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꼭 챙긴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폴라로이드 사진 하나면 친구가 될 수 있다. 한 악기 상점에서 피아노 치는 청년을 만났다. 그 청년의 사진을 찍어주고 같이 피아노 연주를 한 것도 기억난다. 카페, 식당, 시장 등 스치는 인연 하나하나가 소중하다. 폴라로이드 사진을 받고 기뻐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나도 행복해진다.
그동안 이런저런 전시회에 참여했다
사진을 자주 찍다 보니 자연스레 사진을 취미로 삼은 이들과 교류하게 됐다. 이제명 원장님의 제안으로 2017년부터 매년 라이카 동호회 전시에 참여하고 있다. 해마다 다른 주제의 사진을 선보이는데 2018년에는 어머니, 아들 등 가족의 사진을 메인으로 출품했다. 2020년 전시에서는 1950년대 생산된 라이카 바르낙 카메라에 3.5cm 무코팅 니켈 엘마를 사용했다. 무코팅 렌즈인데도 사진이 선명하게 나온다.
라이카 특유의 톤이 있다는 평에 대해
단정 지어 말하긴 어렵지만 라이카뿐 아니라 다른 브랜드의 카메라도 각기 다른 특유의 느낌을 지니는 듯하다. 그런데 그런 특유의 톤이 내 결과물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라이카와 함께 다른 브랜드의 카메라도 사용하고 있는데, 어떤 카메라를 쓰든 일관된 톤을 유지하도록 세팅해 두었기 때문이다. 디지털카메라, 스마트폰에도 적용해 놨다. 그 결과 그때그때 손에 잡히는 걸로 즐겁게 촬영하게 됐다.
사진이라는 취미에 흥미를 느낀 독자들에게 조언한다면?
라이카 외에 다른 브랜드의 카메라도 함께 사용하는데, 어떤 기종이든 각각의 단점을 굳이 들춰내는 편은 아니다. 고유의 특징을 즐기는 게 사진 찍는 재미인 것 같다. 오래된 것, 사라져 가는 것에 아쉬움을 느끼는 사람이라 라이카에 더 정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그게 라이카라는 브랜드의 힘일 터. 하지만 꼭 라이카가 아니더라도 사진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말을 건네는 작업 자체가 흥미롭다. 사진에 처음 입문하는 사람이라면 매일 같은 풍경을 찍어보는 것도 좋다. 한때 매일 책상 사진을 촬영했는데, 그러다 보니 ‘나다운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순간이 오더라. 일상에서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은 풍경, 소중한 가족이나 친구부터 찍어보기를 권한다. 가족을 촬영한 사진은 언제 봐도 행복이 충만해진다.
필름 카메라는 다정한 매력이 있다.
내가 세상을 바라보면 그 빛이 풍경에 닿았다가
망막으로 돌아온다.
그 빛이 다시 렌즈를 거쳐 필름에 맺힌다.
내 망막과 필름이 같은 빛을 나눠 가지는 것,
또 그 안에 내 마음이 담긴다는 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