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 한 장에 수백만 원? 식테크
정말 돈이 될까? 아니면 반짝 인기에 그치는 짧은 유행일까?
화초계의 비트코인, 몬스테라
‘식테크’란 식물과 재테크의 합성어로, 번식시킨 식물을 판매해 수익을 얻는 활동을 말한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홈 가드닝, 플랜테리어 등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 그와 동시에 희귀식물에 대한 수요도 높아진 것. 최근 몇 년 사이 식테크 시장에서 화제가 된 식물은 집에서도 잘 자라는 ‘몬스테라 알보’다. 몬스테라 품종 가운데서도 희귀한 무늬가 매력적인 몬스테라 알보는 한때 뿌리 하나에 수천만 원, 잎 하나에 수백만 원에 거래되기도 했다. 2021년 뉴질랜드의 한 경매 사이트에서는 희귀 몬스테라 알보 화분이 약 2150만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지금도 중고 거래 사이트에 ‘몬스테라 알보’를 검색하면 잎당 5만~30만원인 매물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바나나뿌리썩이선충이라는 해충의 유입을 막기 위해 국내 수입을 금지한 조치도 이 식물의 가격 상승을 견인했다. 전체 공급량이 줄면서 개인 간 거래가 활발해지다 보니 식테크 시장을 대표하는 식물로 자리매김한 것. 이 외에도 안수리움, 필로덴드론 등 병해충 유입 위험으로 수입을 규제한 실내 식물의 인기도 덩달아 치솟았다.
집 한 채 값과 맞먹은 식물의 정체
식테크라는 용어는 3~4년 전부터 흔하게 쓰이기 시작했지만 17세기 네덜란드에도 식테크 개념이 존재했다. 바로 튤립 파동이다. 아시아에서 자생하던 튤립이 유럽에 유입된 후 식물 애호가 사이에 큰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씨앗으로 단기간에 재배하기 어려운 튤립의 특성상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했다. 이런 이유로 튤립 구근의 가격이 급상승했고, 너도나도 시장에 뛰어들었다. 17세기 초 네덜란드는 유럽 금융의 중심지로 전 세계의 돈이 모여들다 보니 투자처를 찾지 못할 정도였다. 이 잉여 자금이 튤립 시장에 몰리면서 튤립 파동에 불을 지핀 것이다. 당시 고급 튤립 품종 한 뿌리의 가치는 집 한 채 값과 맞먹을 정도였다. 그러나 투기 열풍은 불과 4년 만에 거짓말처럼 사그라들었고, 네덜란드 전역이 혼란에 빠졌다.
현재로 다시 돌아와, 몬스테라 알보를 흥행시킨 식테크 이전에 ‘난테크’가 있었다. 한두 촉의 난초를 정성껏 가꿔 우수한 품질의 난초로 되파는 것. 난초 가격은 수십만 원에서 수억 원대까지 그 폭이 매우 넓다. tvN 드라마 <작은 아씨들>(2022)에는 국제 난초 경매시장에서 억대의 난초를 낙찰받는 장면이 나온다. 2021년에는 베트남에서 한 청년이 최상품 희귀 난초를 14억원짜리 슈퍼카와 교환해 화제를 모았다. 난초의 미래 가치를 따지면 슈퍼카 2~3대 값이라는 것이 거래가 성사된 이유. 그야말로 ‘억 소리’ 나는 시장이다. 우리나라에서는 20년 전에는 풍란이, 현재는 춘란이 난테크의 대표 주자다. 2015년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진행한 춘란 경매에서 난초 한 촉이 1억500만원에 거래되면서 한국 춘란 1억원 시대를 열었다.
난초뿐 아니라 다육식물도 오래전부터 식테크를 하기에 좋은 식물로 알려져왔다. 생명력이 강한 데다 관리하기 쉬운 것이 장점. 다육식물 역시 때마다 희소성을 인정받은 품종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랐다가 여러 이유로 수요가 줄면서 다시 가격이 떨어지고는 한다. 지금은 3만~5만원대인 방울복랑금은 5년 전 호가 100만원이라는 비싼 몸값을 자랑했다.
이처럼 다양한 식물이 재테크 종목으로 각광받는 이유는 단순하다. 집에서 부업 삼아 누구나 시도할 수 있다는 것. 앞서 살펴본 것처럼 목돈을 벌진 못하더라도 잘 가꾼 화분 하나면 소소한 용돈벌이는 가능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식물을 키우면서 얻는 심리적 만족감도 무시할 수 없다. 좋아하는 식물을 키우면서 돈도 벌 수 있으니 손해 볼 것 없는 장사다.
몬스테라 알보, 지금도 유효할까?
작년까지 월 2000만원 이상의 수익을 낸 원조 ‘식테커’ 박선호 대표에게 물었다.
식테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2019년 코로나19 확산으로 운영하던 학원의 재정이 어려워졌다. 그때 취미 삼아 학원 한구석에서 기르던 열대 관엽식물을 되팔았다. 당시에는 식물 시세도 제대로 몰랐는데 생각보다 비싼 값이 팔리더라. 그 덕에 학원 월세를 낼 수 있었다. 그 이후 새로운 기회라는 생각에 본격적으로 식테크에 뛰어들었다. 마침 수입 규제 등으로 몬스테라 알보 가격이 뛰면서 운때도 잘 맞았다. 작년까지만 해도 식테크로 벌어들이는 한 달 평균 수입이 2000만원 정도였고, 지금은 500만원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 몬스테라 알보 가격이 다소 낮아진 탓이다. 그래도 식테크 관련 유튜브 채널 <더필플랜트>를 운영하고, 도서 <식테크의 모든 것>을 출간한 덕분에 여전히 많은 이가 찾아준다.
식테크 시장에서 몬스테라 알보가 특히 주목받았다
팬데믹으로 해외여행이 어려워지자 이국적인 식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 같다. 몬스테라도 종류가 다양한데, 흔히 몬스테라 알보라고 통칭하는 것은 한 잎에 흰색과 초록색이 적절히 섞인 무늬종을 말한다. 흰 무늬가 선명하고 건강한 개체는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잎 하나에 100만원 이상의 시세를 형성했다. 이 외에도 노란색과 초록색이 섞인 옐로우 몬스테라는 잎당 200만~300만원, 도트 무늬가 인상적인 민트 몬스테라는 잎당 1000만원이었다. 가격이 내린 지금도 몬스테라 알보와 옐로우 몬스테라의 거래량은 안정적이다.
몬스테라 무늬종의 가격이 오른 이유는?
일단 병해충의 유입을 막기 위해 수입이 규제되면서 공급량이 줄었다. 게다가 몬스테라 알보는 유전자 변이로 흰색 무늬가 생긴 것이어서 씨앗 재배가 어렵다. 몬스테라 알보에서 채종한 씨앗을 심어도 무늬까지 유전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파리나 줄기를 잘라 흙이나 물에 꽂아 번식시키는 방법밖에 없다. 하나의 몬스테라 알보에서 번식 가능한 개체는 1년에 최대 20개 내외인데 그중 상품성 있는 개체는 10개 안팎이다. 이렇듯 수요에 비해 공급이 적으니 가격이 올라간 것이다. 과거 비싼 몸값을 자랑하던 식물 대부분이 씨앗 재배, 조직 배양 등 대량생산이 가능해지면서 그 가치가 떨어졌지만, 몬스테라 알보는 여전히 대량생산이 어렵다.
특히 무늬종은 원하는 대로 무늬를 키우기 힘들기 때문에 초록 잎과 흰 잎이 적절히 섞인 몬스테라 알보의 가치가 높아졌다. 또 잎의 흰 부분은 초록 잎에 비해 광합성에 불리해 건강하게 키우기가 어렵다. 수입 규제, 대량생산 곤란, 코로나19로 인한 플랜테리어 각광, 재테크 붐 등 복합적인 이유로 희귀 몬스테라의 가격이 치솟았다.
식테크의 장점은?
식물을 키우며 얻는 ‘힐링’을 기본값으로 설정하고서 다른 장점을 말해 보자면 우선 초기 자본에 대한 부담이 적다. 지금보다 몬스테라 시세가 저렴하던 시절, 300만~500만원 정도를 투자했다. 화분이 준비됐다면 이를 둘 만한 적당한 실내 공간만 있으면 된다. 나 역시 학원 창가에 두고 식물을 키웠고, 지금은 집에서 약 300개의 화분을 관리한다. 몬스테라의 경우 관리 자체가 까다로운 식물은 아니다. 또 일상 습도에서 사계절 내내 잘 자라기 때문에 굳이 비닐하우스, 온실 등을 설치할 필요가 없다. 집에서도 좋은 품질의 몬스테라를 키울 수 있다. 물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주면 된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흔히 반음지 식물이라 해서 화장실, 안방 등에서 키우는데 생각보다 많은 양의 햇볕이 필요하다.
또 식테크의 가장 큰 장점은 1차산업인 작물 재배업에 속하기 때문에 수입 금액 10억원까지 소득세가 면제된다는 것. 다만 별도 매장을 갖고 있으면 판매업으로 분류돼 세금 혜택을 받지 못하므로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등 온라인 판매처를 적극 활용하길 권한다.
반대로 단점이 있다면?
식물 시장의 가격을 예측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꾸준히 성장하는 식물 특성상 가격이 내려가더라도 번식을 통해 어느 정도 본전 회수는 할 수 있겠지만 마음이 굉장히 쓰릴 것이다. 앞으로 어떤 식물이 제2의 몬스테라 알보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무턱대고 값비싼 식물을 구입했다가 큰 손해를 볼 수도 있다. 식테크로 고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식물에 관심을 갖고 거래량 등 시장 추이를 잘 살펴봐야 한다.
식테크를 시작하려는 이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거창하게 생각할 것 없다. 장기적으로 꾸준하게 관리할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유리 온실이나 비닐하우스 같은 설비를 구축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식물도 생명이니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대해야 한다. 번식 방법, 품종 특성 등 여러 방면에서 지식을 습득할 필요가 있다. 또 초기 자본을 과하게 투자하면 마음이 조급해진다. 취미로 키우되 수익이 날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가볍게 시작해 보기를 바란다.
식테크 고수 박선호의 화단 엿보기
식집사에게 추천하는 식물
키우기 쉽고 번식도 가능한데 예쁘기까지 한 식물 6종.
스킨답서스
화장실, 카페 등 공공장소에서 흔히 만나는 식물. 성장 속도가 빠른 데다 번식 난도가 낮아 식테크에 제격이다. 오래전부터 중고 거래 사이트에 매물이 올라오던 식테크계 스테디셀러. 수경재배로도 잘 자란다.
싱고니움
덩굴성 식물로 재배 난도가 낮고 번식 성공률이 높아 초보 식집사에게 안성맞춤. 모히토, 매직마블 등 무늬종의 인기가 높다. 관엽식물 중 실내에서 발생하는 유해 물질인 포름알데히드를 제거하는 데 탁월하다.
안수리움
식테크 3대장 중 하나. 몬스테라, 필로덴드론과 함께 병해충 유입 위험이 높아 수입이 금지됐었다. 선명한 잎맥이 인상적인 식물로 세계적으로 600여 종이 자생하고 있다. 크리스탈리넘, 클라리네비움 등이 각광받는다.
칼라디움
잎맥 사이에 난 보라색, 빨간색 등의 반점이 아름다운 식물. 알뿌리 식물로 구근을 분리해 번식한다. 밤 기온이 20℃ 이하로 내려가면 잎이 마르면서 겨울잠에 빠지고, 이듬해 봄 새순을 올려 키우는 재미가 쏠쏠하다.
칼라데아
수채화물감이 번진 듯 오묘한 잎 패턴으로 많은 사랑을 받는 관엽식물. 밤이면 수분 보호를 위해 잎을 오므리는 모습 때문에 ‘기도하는 식물’로도 불린다. 다른 관엽식물에 비해 관리하기 까다로운 편이지만 초보자도 충분히 기를 수 있다.
식집사를 위한 서재
아는 만큼 보인다. 식집사라면 이 정도는 알아야 하는 식물 정보.
BOOK
오늘부터 우리 집에 식물이 살아요
(권지연, 북센스)
대학과 대학원에서 환경조경학을 전공한 조경 디자이너 권지연이 플랜테리어 스튜디오 ‘위드플랜츠’를 운영하면서 여러 고객에게 들은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한 권의 책에 담았다. 식물 관리법은 물론 식물 배치와 스타일링까지 자세히 알려준다.
식물학자의 노트
(신혜우, 김영사)
식물학자이자 영국 왕립원예협회 국제 전시회에서 식물 일러스트로 금메달과 최고전시상,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한 신혜우 작가의 식물 에세이. 직접 그린 식물 세밀화와 함께 조곤조곤 풀어내는 식물 이야기가 인상 깊다.
정원생활자의 열두 달
(오경아, 궁리출판)
강원도 속초에서 정원 학교를 운영하는 가든 디자이너 오경아에게 듣는 실내외 가드닝 가이드. 정원을 가꾸기 위해 달마다 해야 할 일, 시기에 맞는 식물, 분갈이 방법 등 식물 키우기 노하우를 그림으로 쉽게 설명해 준다.
APP
그루우
새 식물 자랑, 가드닝 질문 등 식물 이야기를 자유롭게 나누는 커뮤니티 앱. 품종별 식물 특성을 정리한 ‘식물 도감’이 있어 언제든 검색해 보기 편하다. 또 식물 사진을 찍어 올리면 질병 유형, 관리법 등을 진단해 주는 AI 시스템도 흥미롭다. 가드닝 키트를 이용해 동시에 식물을 키우는 가드닝 클럽도 운영 중이다.
플랜트그램
쉽게 말해 식물 전용 ‘인스타그램’. 내 계정에 식물 사진을 올리고 다른 식집사의 식물도 구경할 수 있다. 식물 사진을 꾸준히 업로드하면서 나만의 식물 다이어리를 완성할 수 있다. 또 스케줄 기능을 통해 식물별 물주기, 분갈이, 영양제 주입 등 헷갈리는 정보를 기록해 두면 때맞춰 알림도 보내준다.
식물매니저 플립
플랜테리어 카페, 토분 매장, 화훼 단지, 식물 관광지 등 초보 식집사를 위한 모든 정보를 모았다. 식물 관련 유튜브 영상, 인플루언서 계정까지 알려주니 이 앱 하나면 초보 티를 벗을 수 있다. 또 여러 온라인 마켓에서 판매 중인 화분, 식물 같은 상품도 한눈에 보여줘 쇼핑하기에도 간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