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위한 식테크, 바이오필릭 디자인

세계적인 식물인간환경학 전문가 박신애 교수가 말하는 식물을 통해 질병을 예방하고 업무 효율을 높이는 법.

2023-04-17     진주영 에디터

 

현대 사무실에서 빠진 것은?

전 세계에 압도적 IT 네트워크를 구축한 구글의 이스라엘 텔아비브 본사는 책상보다 풀과 나무가 많아 사무실이라기보다는 식물원을 방불케 한다. 사진, 동영상, 문서 같은 자료를 세계 어느 곳에서나 업로드하고 다운로드할 수 있는 공유 폴더 체계를 운영하는 또 다른 IT 기업 드롭박스의 사무실 곳곳에도 커다란 화분이 파라솔처럼 잎을 길게 늘어뜨리고 있다.

세계 최대 온라인 쇼핑몰을 기반으로 콘텐츠 사업까지 확장한 아마존은 아예 도심 한가운데에 열대우림을 만들었다. 2018년 1월 일반인에게 공개된 ‘더 스피어스(The Spheres)’는 아마존의 시애틀 다운타운 본사 옆에 위치한 3개의 유리 돔 형태 사무실을 일컫는다. 돔의 높이는 24~29m이고 규모도 블록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이니, 기업명처럼 남미 아마존의 생태를 도심에 재현한 이곳은 거대 온실에 가깝다. 실내에는 50개국에서 온 4만여 그루의 식물을 식재했는데, 그중에는 수령 50년이 넘는 고무나무와 높이 17m에 달하는 녹슨 무화과도 있다. 중앙에 있는 가장 큰 돔의 계단 통로는 아시아의 식충 종을 포함해 2만5000그루의 식물이 있는 4층짜리 살아 있는 벽으로 덮여 있다.

아마존 부사장 존 쇼틀러(John Schoettler)는 더 스피어스 오프닝 행사에서 “직원들이 협력하고 혁신할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이 필요했다. 현대 사무실에서 무엇이 빠졌는가? 우리는 잃어버린 요소가 바로 자연에 있음을 발견했다”며 다양한 식물로 둘러싸인 사무실을 설계한 이유를 밝혔다.

 

 

삭막한 공간에 자연을 입힌 ‘바이오필릭 디자인’

장소는 저마다 목적에 맞는 양식을 지니고 있다. 카페는 바쁜 하루의 쉼터가 될 수 있도록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하기 마련이고, 음식점은 서비스하는 메뉴에 따라 테이블의 개수와 조도를 달리한다. 같은 학교 시설일지라도 초·중·고등학교가 다르다. 초등학교는 아이들에게 어울리는 밝고 명랑한 색감이 도드라지는 반면, 중·고등학교는 보다 차분한 면학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중점을 둬 설계한다. 병원, 사무실, 상점, 미술관, 박물관, 도서관, 체육관 등 모두 각각의 목적을 바탕으로 건물의 내외관을 단장한다.

바이오필릭 디자인의 선구자이자 생태학자 스티븐 켈러트(Stephen R. Kellert)는 건축물에서 자연을 통해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이용하는 프레임 워크를 개발했다. 그가 규정한 바이오필릭 디자인 요소는 세 가지다. 자연광, 공기, 물, 불, 식물, 동물, 날씨, 자연경관, 생태계 같은 자연을 직접 체험하는 ‘직접적 자연 체험(Direct Experience of Nature)’이 첫 번째다. 두 번째는 ‘간접적 자연 체험(Indirect Experience of Nature)’으로 자연 이미지·재료·색채, 자연적인 모양과 형태, 자연의 기하학, 생태 모방 등 자연을 묘사한 각종 사물을 디자인에 활용하는 것이다. 마지막은 전망과 은신처, 이동성과 길 찾기, 공간의 문화적·생태적 애착을 경험하는 ‘공간과 장소의 체험(Experience of Space and Place)’이다. 공간의 구획 혹은 중심을 통합하거나 데크, 문, 아트리움, 현관 등 전환하는 공간을 인간의 휴식과 웰빙을 염두에 두고 설계한다.

 

 

숲에 가지 않아도 숲을 느낄 수 있는 시대  

2021년 여의도에 들어선 복합몰 더현대 서울은 높이 3300제곱미터의 5층 식당가에 꾸민, 여의도공원을 70분의 1로 축소한 플랜테리어로 화제를 모았다. 천연 잔디를 깔고 30여 그루의 나무와 다양한 꽃을 보기 좋게 배치한 이곳에서는 스피커를 통해 새소리까지 울려 퍼진다.

팬데믹 이후 건강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헬스케어 분야의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이 가속화되고 있다. 현재 웨어러블 기기부터 체외 진단 기기, 디지털 치료제, 원격의료 플랫폼 등 다양한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이러한 디지털 헬스 케어의 특징은 집단적이기보다 개인적이고 의료에 있어서도 대면 진료가 아니라 비대면 진료를 선호한다. 그리고 공공장소가 아니라 집 혹은 타인과 거리를 둘 수 있는 너른 땅 같은 지극히 사적인 공간을 요한다. 그 공간을 채울 것으로 모두가 당연하다는 듯이 식물을 떠올렸다.

인간의 본능이 좇는 싱싱하고 풍요로운 자연을 증강현실 속에서 복원시키고 이를 통해 건강을 관리하는 일상은 먼 미래의 일 같지만 실제로는 곧 일어날 또 다른 현실이다. 스마트워치 같은 디바이스를 이용해 나의 바이오리듬과 라이프스타일 정보를 기록하고 데이터화해 건강을 관리하는 일이 매일 일기를 쓰는 것보다 더 흔한 일상이 된 지 오래다. 그리고 언젠가 VR 기기가 이 자리를 대체할지도 모른다. 그때는 태초의 자연이 정말 내 방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 과학과 가까워질수록 자연과의 거리도 좁혀지는, 아이러니한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Profile 박신애
• 건국대학교 시스템생명공학과 교수
• 그린포러스(주) 대표
• 내 몸과 마음을 살리는 녹색의 힘, 식물 치유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