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홍수 속에서 진짜를 찾는 눈이 필요하다

‘AI의 창작물을 예술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는 답을 찾지 못했다. 그사이 AI는 진화해 ChatGPT까지 출현하며 논의는 재점화됐다. 재밌는 점은 현시대의 예술을 정의하는 데 그 답이 있었다는 것.

2023-04-17     이영민 에디터

 

 

예술가의 시선

LED 기둥을 통해 상영되는 디지털 작품은 ‘일월오봉도’를 표현한 것이다. 이진준 교수는 AI 딥러닝(AI가 스스로 정보를 학습하듯 다층구조의 인공신경망 방식으로 정보를 처리하는 기술)을 이용해 작품을 만들었다. AI가 자연의 변화를 포착하고 언리얼 엔진(사실적 이미지를 실시간으로 만들어내는 3D 소프트웨어) 등 다양한 현대 미디어 기술 기법을 적용했다.Sun, Moon and Five Mountains : Jinjoon Lee, 2022, 1.5m×1.5m×3m×8box, LED Digital Sculpture and Video Installation in Changgyeonggung.

 

‘AI는 인간 예술의 종말을 불러올까?’ 최근 몇 년간 예술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이슈 중 하나다. 이 물음에 대해 수년간 AI 등 최첨단 기술을 활용해 작품 활동을 해온 뉴미디어 아티스트 이진준은 “그럴 것 같지 않다”라고 말한다. 예술과 기술을 직접 융합하고 있는 당사자로서 몸소 체감한 소신이다.

“‘창작의 다양성’과 감상에서의 ‘감각적 확장’이라는 점에서 AI 예술이 무조건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고는 볼 수 없다. 오히려 우리 사회와 인간의 다면적 측면이 널리 수용됐으면 하는 게 개인적 바람이다.”

사실 AI가 어떤 식으로든 예술계를 변화시킬 것이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편향과 윤리, 소유권 등과 관련해 우리가 답해야 할 중요한 질문들은 여전히 남아 있다.

 

첨단 기술은 예술의 촉매제

이진준 교수는 2001년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미술대학 조소과에 편입해 학사와 석사 과정을 마쳤다. 이후 영국 왕립예술대학 현대미술 석사,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순수미술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2021년에는 인류의 지적 발전에 혁신적 공헌을 한 인물에게 수여하는 영국 왕립예술학회 종신석학회원 자격을 받았다. 현재는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교수와 뉴미디어 작가로 활동 중이다. 카이스트에 설립한 그의 연구실 ‘TX lab’에서는 데이터과학, NFT, XR, AI 등 새로운 기술을 이용한 예술과 건축, 디자인, 공연 퍼포먼스(future opera)에 관한 총체적 경험을 연구한다. 그는 ChatGPT 등 AI 기술을 예술에 접목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본다. 예술의 발전 과정은 항상 기술 발전과 궤를 같이해 왔다는 것이 그 이유다. 실제로 새로운 기술이 예술계에 격변을 일으킨 것은 AI가 처음이 아니다. 이 같은 일은 지난 수 세기 동안 반복되었다. 대표적인 예가 붓, 안료, 전기 등의 발명이다. 신문물은 새로운 예술의 탄생을 견인했다. 이 교수는 “지금의 AI 등 첨단 기술도 뉴미디어아트 활성화에 유용한 촉매제가 되고 있다”며 “인간의 감각적 지평을 열어주고 있는 이러한 기술의 발전으로 향후 어떤 예술이 탄생할지 설렌다”라고 밝혔다.

 

ChatGPT 창작물, 예술이라고 하기엔 한계 뚜렷

그렇다면 이진준 교수가 바라본 AI의 창작 능력은 어느 정도일까? 구글 딥드림 등 AI 아티스트의 실력에 대해 묻자 그는 “AI의 작품은 모방 예술에 가까울 뿐”이라고 답했다. 다소 냉소적인 평가에는 이유가 있다.

“예술의 정의는 시대마다, 문화·환경에 따라 달라져 왔다. ‘좋은 예술’과 ‘나쁜 예술’의 기준 역시 달라지기 마련이다. 2023년 현재, 좋은 예술이란 인간의 마음을 얼마나 움직이느냐가 관건이다. 그러려면 예술의 가치에 대한 본질적 질문이 더욱 중요해진다. 인간의 존재론적 고민, 세상을 치유하는 예술, 그리고 ‘우리의 존엄과 취향을 고양하는 예술이 무엇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그러나 AI의 사고력은 아직 그만한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 AI가 그린 작품의 기술적 완성도가 뛰어난 건 사실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좋은 예술이라고 볼 수 없다.”

AI가 직접 그린 것이 아닌, AI를 활용한 인간의 예술 활동이라면? 인간이 주도하기에 ‘좋은 예술’을 위한 고민을 담아낼 수 있지 않을까? 이 물음에 이 교수는 “아이디어 추출 단계에서 ChatGPT 등의 AI를 활용하는 건 적극 권하지만, 가벼운 아이디어로 예술이 완성되는 시기는 이미 오래전에 끝났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빠른 결과도 좋지만, 역사에 남을 만큼 훌륭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지루한 반복과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이는 시대가 아무리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룰과 같다.

“독창성이 보편성에 이르는 길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요즘처럼 빠른 결과를 원하는 시대에는 잠깐 반짝이다 사라지는 콘텐츠가 시선을 확 끌어당기겠지만, 역사에 남은 예술과 예술가들은 그런 걸 좇지 않는다. 그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진중하게 예술과 기술, 그리고 인간 삶에 대한 통찰 가득한 시선으로 그것들의 융합을 시도하고 있을 것이다.”

 

진짜 예술가를 찾는 일은 점점 어려워진다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또 하나 있다. ChatGPT가 내놓는 결과물을 창작물로 볼 것이냐 하는 문제다. ChatGPT 같은 생성형 AI 모델의 창작 활동은 순전히 머신러닝의 결실이다. 수백만 개에서 많게는 수천억 개의 데이터를 학습해 새로운 패턴을 생성해 내는 것이 핵심이다. 이는 창작물로 간주할 수 있으나, 한편으로는 다양한 예시에서 소스를 가져와 이어 붙인 합성물로 볼 수도 있다. 이진준 교수는 후자라고 평가한다.

“창작은 늘 모방에서 출발했다. 다만 그 결과를 선택하고, 최종 완성을 결정짓는 것은 예술가의 감각과 철학이었다. 예술계에서 철학, 역사, 미학 등의 인문학이 강조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단순한 데이터가 정보가 되고, 그것이 다시 지식과 지혜가 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식과 지혜가 예술가의 영감으로 거듭난다면, 그제야 비로소 예술의 창작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토록 한계가 뚜렷한 AI를 우리는 어떻게 다뤄야 할까? 현재 AI와 예술은 어떤 접점을 만들어가고 있을까? 이 교수에 따르면, AI 아티스트 출현으로 순기능과 역기능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예술가들은 제작 과정에서 단순히 기술적 도움을 받는 단계를 넘어 작품의 콘셉트 기획을 비롯해 프로세스 전반에 AI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물론 창의력이라는 인간의 통찰에 관한 영역은 여전히 예술가가 결정한다. 그러나 아름다운 작품을 다양한 스타일로, 아주 빠르게 만들어내는 AI의 특성을 활용한 사이비종교, 유사 과학 같은 그릇된 태도를 가진 예술가들 또한 많이 나타나고 있다. 이 교수는 “수없이 만들어지는 그럴듯한 예술과 정보의 홍수 속에서 진짜 예술가를 찾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라며 “결국 우리는 인지적 위기(ethnological crisis)를 겪게 될 가능성이 높으니 이를 경계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Profile  이진준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교수
영국 왕립예술학회 종신석학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