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화두 던진 ‘CES 2024’, 가전·IT 넘어선 거대 ‘모빌리티 쇼’

지난 1월 9일,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LVCC) 일대에서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 ‘CES 2024’가 화려한 막을 올렸다. 이 거대한 모빌리티 쇼에서는 가전과 IT를 넘어 인공지능(AI)과 모빌리티가 미래를 바꿀 핵심 키워드로 주목받았다.

2024-01-26     정치연(전자신문 전자모빌리티부 기자)

 

ⓒshutterstock

 

CES 2024, 세계 최대 규모의 박람회

미국소비자가전협회(CTA)가 주관하는 이번 CES 행사 주제는 ‘올 투게더. 올 온(All Together. All On)’이다. 1년 만에 다시 찾은 라스베이거스는 개막 준비로 전년보다 무척 활기찬 모습이었다. 사실상 코로나19 엔데믹 이후 첫 정상화 분기점을 맞은 세계 최대 규모의 박람회다.

 

올해는 전 세계 곳곳에서 13만여 명이 CES를 다녀간 것으로 전해진다. 현지 공항과 컨벤션센터, 호텔 등 라스베이거스 도심 주변에는 늦은 밤까지 전시회 준비를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한국인을 쉽게 마주할 수 있었다. CES에서 한국 기업이 차지하는 위상이 여느 해보다 높아졌다는 점을 체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한국정보통신기술산업협회(KICTA)에 따르면 CES 2024에 참가를 신청한 기업과 기관은 4124개에 달했다. 이 가운데 한국 기업과 기관은 772개로 미국(1148개)과 중국(1104개)에 이어 세 번째 규모다. 한국의 참가 규모는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앞선 신기술을 제시하는 한국 스타트업 활약도 눈길을 끌었다. 스타트업 전시관 유레카 파크의 전체 1200개 참가 기업 중 한국이 512개로 1위를 차지했다. 이어 미국 250개, 프랑스 203개, 대만 99개, 네덜란드 72개, 일본 44개, 중국 22개 순이었다.

 

LG전자가 공개한 미래 모빌리티 콘셉트 알파블을 탑재한 콘셉트 카 ⓒ정치연 기자

 

CES 2024 주도한 한국 기업들

삼성과 LG는 물론 현대차, SK 등 한국 대표 기업들은 CES 참관객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삼성전자는 모두를 위한 AI 전략을 발표하며 AI 컴패니언 볼리를 깜짝 공개했다. LG전자는 차량용 디스플레이 알파블을 탑재한 콘셉트 카로 참관객들의 이목을 끌었다.

 

현대차그룹은 CES 2024에 역대 최대 규모 전시 공간을 꾸렸다. 현대차와 기아, 현대모비스, 슈퍼널, 제로원 등이 CES 2024 현장에 마련한 전시 공간 총면적은 6437m2 규모로, 국제경기 규격 축구장(6400~8250m2)의 크기와 맞먹었다. 현대차그룹은 정의선 회장을 비롯한 1000여 명의 임직원이 CES 현장을 찾아 AI와 모빌리티 등 혁신 기술을 확인했다.

 

SK그룹은 최태원 회장의 진두지휘 아래 7개 계열사가 공동으로 탄소 감축에 성공해 기후 위기가 사라진 넷제로 세상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3년 연속 CES에 참가한 HD현대는 정기선 회장의 기조 강연과 함께 인류 혁신의 기반이 되는 육상에서의 미래 비전을 강조했다.

 

ⓒces.tech

 

700개 기업이 참가한 모빌리티 경연장

CES 2024에서 가장 주목할 핵심 전시 분야는 단연 모빌리티였다. 첨단기술 집약체인 자동차 산업에 AI 기술이 접목되면서 자동차가 단순 이동 수단을 넘어 우리 라이프스타일을 바꾸는 새로운 미래 모빌리티 시대로의 청사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주요 기업들은 자동차나 파워트레인 같은 하드웨어(HW)보다 자율주행과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등 전장부품을 중심으로 한 소프트웨어(SW) 솔루션을 전시관 전면에 배치했다.

 

주최 측에 따르면 올해 CES에 차량 및 모빌리티 기술 분야를 주요 전시 카테고리로 등록한 참가 기업은 700여 개에 달했다. 완성차와 전장부품 기업은 물론 모빌리티를 미래 먹거리로 삼으려는 빅테크, 스타트업 등 글로벌 IT·전장 기업들이 자사만의 경쟁력을 강조하며 시장 진출을 본격화했다.

 

현대차가 발표한 수소 기반 퍼스널 모빌리티 콘셉트 다이스(DICE) ⓒ정치연 기자

 

한국 대표 기업의 모빌리티 기술

현대차그룹은 차량 및 모빌리티 카테고리 참가 기업 중 가장 큰 규모의 부스를 꾸렸다. 현대차는 주요 발표 내용으로 수소와 SW로의 대전환을 제시했다. 장재훈 현대차 사장과 송창현 현대차·기아 SDV 본부장 사장이 각각 수소 솔루션과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 중장기 전략을 발표했다. 현대차는 SW와 AI를 기반으로 사람과 모빌리티, 데이터, 도시를 연결해 사용자 중심 생태계를 구축하는 미래 변화상을 공개했다. 수소에너지 생태계 구축에 관한 솔루션도 소개했다.

 

5년 만에 CES 무대에 복귀한 기아는 미래 신사업으로 제시한 목적기반차량(PBV) 중장기 로드맵을 발표하며 소형부터 대형까지 PBV 콘셉트 카 다섯 대를 선보였다. 현대모비스는 차량용 투명 디스플레이와 e코너 시스템을 장착한 모비온 등 20가지 신기술을 공개했다. 스트라드비젼과 드림에이스, 소프트베리 등 국내 스타트업도 자사만의 모빌리티 신기술을 알렸다.

 

 

혼다가 발표한 신형 전기차 ‘혼다 0 시리즈(Honda 0 Series)’ ⓒshutterstock

 

다양한 신기술이 즐비한 전시

메르세데스-벤츠와 BMW 등 글로벌 주요 완성차 기업 역시 AI를 기반으로 한 SW 기술 발표에 시간과 공간을 할애했고, 벤츠는 AI 기술을 접목해 직관적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는 MBUX 가상 어시스턴트를 발표했다. BMW 역시 새로운 SW 기반 신기술을 공개했다. 혼다는 신형 전기차를 내놓고 미래 전동화 전략을 가속하겠다고 선언했다.

 

항공·해상 모빌리티 기업들의 참가도 눈길을 끌었다. 미국 미래항공모빌리티(AAM) 법인 슈퍼널은 2028년 상용화를 목표로 한 전기수직이착륙기(eVTOL) 시제품을 발표했다. 라이즈에어로테크놀로지스와 HT플라잉카, 브런즈윅, 볼보 펜타 등도 다양한 미래 모빌리티 전시물을 공개했다.

 

빅테크들도 CES를 찾았다. 구글은 LVCC 센트럴홀 야외무대인 센트럴 플라자에서 음성만으로 차량 제어와 구동이 가능한 새로운 안드로이드 오토 등을 내놓고 참관객들을 맞았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자율주행과 SDV(Software Defined Vehicle) 기술 솔루션을, 아마존 역시 모빌리티 서비스를 중심으로 전시관을 꾸렸다.

 

모빌리티 핵심 키워드는 AI와 SDV

CES 2024를 관통한 모빌리티 전시 기업들은 AI를 기반으로 한 SDV를 화두로 던졌다. SDV는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를 의미한다. 전기차와 자율주행, AAM 등 모빌리티 시대가 도래하면서 HW 대신 SW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전시에 참가한 자동차 기업은 물론 가전과 IT 기업까지 올해 CES를 통해 자사의 SDV 전략과 경쟁력을 선보이며 총성 없는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SDV 시장 선점을 위해 이종 산업 간 협약을 맺는 합종연횡도 활발히 이뤄졌다.

 

현대차그룹의 SW 전략

CES 2024에 참가한 대표 완성차 기업인 현대차는 웨스트홀에 차량을 전시하지 않았다. 모든 전시물은 수소에너지와 SW로의 대전환을 위한 비전으로 채우며 그룹 차원의 관련 기술 역량 공개에 집중했다. 현대차는 CES 개막 하루 전 미디어데이에서 수소 사회를 앞당길 HTWO 그리드(Grid) 솔루션과 그룹의 중장기 SW 전략 SDx(Software-defined everything)를 공개했다.

 

현대차그룹 글로벌 SW 센터 포티투닷은 전시관 내에 그룹의 중장기 전략 SW 기반의 모든 것, 즉 SDx로의 확장을 가속할 SDV 핵심 기술, 실증 서비스를 소개했다. 현대차 전시관 내 SW 분야 대표 전시물은 SDV 전기·전자 아키텍처였다.

 

SDV의 핵심 HW 구조를 구현한 것으로 차량 카메라, 레이더, 센서들이 도로를 인식하고 차량에 내장된 통합 제어기가 작동해 자율주행이 이뤄지는 동작 구조를 구현했다. 통합 제어기 HPVC를 중심으로 SDV화를 이뤄 단순해진 차량 HW 구조를 직관적으로 볼 수 있었다. CES 2024 기간 포티투닷과 삼성전자는 2025년 개발을 목표로 진행 중인 AI 기반 SDV 플랫폼에 삼성 반도체를 탑재하는 내용을 담은 업무협약(MOU)을 맺으며 두 기업 간 미래 차 동맹을 한층 강화했다.

 

메르세데스-벤츠가 선보인 G클래스 전기차 ⓒ정치연 기자

 

벤츠, 인간과 유사한 인터페이스를 선보이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첨단 SW와 생성형 AI 기반의 MBUX 가상 어시스턴트로 참관객들의 큰 관심을 받았다. 메르세데스-벤츠 역사상 가장 인간과 유사한 인터페이스다. 메르세데스-벤츠의 운영체계(OS) ‘MB.OS’를 바탕으로 자연스럽고 공감적인 상호작용을 보여줬다. 네 가지 감성을 지닌 MBUX 가상 어시스턴트는 고객의 요구에 맞춰 기능을 실행한다.

 

아울러 3D 게임 엔진으로 구현된 그래픽을 활용하는 MBUX 서라운드 내비게이션이 경로 안내와 어시스턴스 기능을 통합적으로 제공한다. MBUX 가상 어시스턴트는 메르세데스-벤츠가 출시할 MMA 플랫폼 기반 신차부터 순차 탑재한다.

 

마르쿠스 셰퍼 메르세데스-벤츠 최고기술책임자(CTO)는 “AI 발전을 통해 미래의 벤츠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운전자를 이해하게 될 것”이라며 “자동차는 물론 다른 영역에서도 고객의 삶을 향상시키고 보완하게 된다”라고 밝혔다.

 

챗GPT 기능을 탑재한 폭스바겐 신차 © volkswagen

 

BMW가 공개한 증강현실(AR) 글라스 © BMW

 

폭스바겐은 챗GPT, BMW는 증강현실(AR)

폭스바겐은 IDA 음성 어시스턴트에 챗GPT를 통합한 차량을 처음 소개했다. 이를 통해 음성 명령으로 운전 중 검색된 콘텐츠를 확인할 수 있게 했다. 폭스바겐은 챗GPT 기능을 탑재한 차량을 올해 2분기부터 순차 적용해 시장에 선보일 방침이다. BMW는 증강현실(AR) 글라스를 비롯해 새 인포테인먼트 경험을 제공하는 오퍼레이팅 시스템 9, 생성형 AI, 원격 주차 등 미래 BMW 차량에 적용할 디지털 기술을 잇달아 발표했다.

 

2026년 출시 목표인 차세대 전기차 0 시리즈를 공개하고 독자적인 차량용 OS를 기반으로 한 사물인터넷(IoT), 커넥티드 기술을 접목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AI와 빅데이터를 활용해 음악과 같은 사용자의 취향, 주행 중 행동, 성향을 차량이 학습해 다양한 사용자 맞춤 제안을 하는 방식이다.

 

SW 신기술 적용하는 전장부품업계

전장부품업계도 SDV 시장 대응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하만은 삼성과의 긴밀한 협력 관계를 바탕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를 거친 레디 제품 포트폴리오를 선보였다. 새로운 레디 커넥트 TCU를 비롯해 네오 QLED를 탑재한 레디 비전과 레디 디스플레이, 삼성 엑시노스 프로세서를 탑재한 레디 업그레이드 어드밴스 등을 공개했다.

 

HL만도는 아마존웹서비스(AWS)와 손잡고 차량 안전도를 높이는 SW 개발을 선언했다. HL만도는 SDV를 구현하기 위해 AWS의 실시간 IoT 데이터 전송 기술을 활용, 데이터 기반 차량용 SW 마이코사(MiCOSA) 솔루션을 개발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일렉트로비트는 대화형 자동차 OS를 선보였다. OS의 복잡성을 줄이는 동시에 차량 수명 전반에 걸쳐 안전과 보안을 지원하도록 설계된 제품이다. 일렉트로비트의 오픈소스 OS인 우분투 기반 EB 코르보스 리눅스를 탑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