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현근 에코락갤러리·에코캐피탈 대표
“K-미술의 파워는 급성장한다”
새로운 형식의 온라인 갤러리 플랫폼을 만들어 미술계에 화제를 몰고 온 장현근 에코락갤러리 대표. 그는 사업 시작 후 5년 만에 성공을 확신할 수 있었다. 신진 작가의 등용문이자 미술 애호가의 파트너로 자리 잡은 저력이 궁금하다.
신사동 한복판에 위용을 드러내며 우뚝 서 있는 하림타워. 하림 그룹 본사이자 장현근 에코락갤러리 대표의 사무실이 있는 곳이다. 4층에 자리한 그의 사무실에 들어가니 온 벽면을 장식한 그림이 눈에 띈다. 유화, 동양화, 사진, 조각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이 벽과 선반 곳곳을 빈틈없이 채우고 있다. ‘누가 갤러리 대표 아니랄까 봐’ 싶었는데,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가 생각보다 많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우선 에코락갤러리의 모태인 여신 금융회사 에코캐피탈도 함께 이끌고 있다. 두 개의 대표이사 직함을 지닌 동시에 사진 작업을 하는 작가이자 한국인의 역사와 문화를 인류학적으로 고찰하는 자칭 ‘얼치기’ 인류학 애호가이기도 하다.
질문 하나를 던지면 대답이 끝도 없이 이어졌는데, 신기하게도 결론은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을 만큼 명쾌했다. 그는 “인류는 미술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으며, 그래서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누구나 즐기고 소유할 수 있다”고 말한다. 또 사람들이 왜 미술에 관심 있어 하는지, 미래 한국 미술 시장이 성장할 수 있는 배경은 무엇인지, K-콘텐츠의 저력이 어떻게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갖게 될지에 대한 통찰력이 있었다. 장현근 대표는 오랫동안 웅크리고 있던 한국 미술 시장의 부흥기를 고대하고 있다. 그리고 그 선두에 에코락갤러리가 서기를 희망하고 있었다. 이 모든 자신감이 어디서 오는지 궁금하다.
“미술은 인생의 불완전성을 보충해 주는 역할을 한다.”
- 아르놀트 하우저, 미술사학자
에코락갤러리는 미술업계의 블루오션을 개척해 화제를 모았다. 갤러리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그 과정을 들려달라
에코캐피탈에서 처음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에코캐피탈은 하림 그룹의 여신, 할부·리스 회사로, 특히 농축산 분야에서 금융을 지원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에코캐피탈에서 취급하는 할부 금융상품을 미술 작품 판매에 접목해 보자는 아이디어가 회사 차원에서 나왔고, 이를 구체화한 끝에 에코락갤러리가 탄생했다. 에코락갤러리는 우리나라 최초로 미술품 할부 금융상품을 만들어 운용하는 갤러이기도 하다.
미술품으로 할부 금융상품을 만든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보통 사람들은 미술품이 고가라는 선입견을 품고 있다. 자동차 할부판매처럼 매달 적은 비용으로 자동차를 소유하듯 미술품도 같은 방식으로 소유할 수 있다. 에코락갤러리 홈페이지에는 한 달에 5000원을 냈을 때 소장 가능한 미술 작품 5600여 점이 일목요연하게 전시되어 있다. 매달 커피 한 잔값만 있으면 청년 작가의 작품을 소장할 수 있다는 의미다. 우리는 작가에게 판매 대행 수수료를 받으니 소비자들은 따로 이자를 내지 않는 구조다. 소비자는 최장 60개월까지 무이자 할부 프로그램을 이용해 미술 작품을 소유할 수 있다.
미술계에서 이단 혹은 별종으로 취급받지 않았을지 궁금하다
미술 시장에서는 금융과 미술을 접목한 사례가 없다 보니 우리가 처음 등장했을 때 생소하게 여겼다. 미술계 사정을 잘 모르는 금융기관이 홍보 차원에서 하는 일이라 여겼고, 3년 안에 사업을 접을 것이라는 말도 들었다. 그래서 미술사와 미학 공부를 병행하며 이 일을 성공시키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다. 이 과정을 기록한 노트만 119권이다. 이제야 미술계와 미술 시장을 조금 알게 된 것 같다.
온라인 미술 거래 플랫폼이라는, 과거에 없던 방식으로 시장에 승부를 걸었는데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나?
미술 시장도 시장이다. 시장원리만 작동한다면 큰 자산시장으로 커질 거라고 생각했다. 여기에서 시장원리의 핵심은 거래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동안 미술 시장은 작품 실거래 노출을 꺼렸다. 그래서 우리가 ‘미술품 거래소’라는 미술품 실거래가 조회 앱을 만들었다. 이곳에서는 미술품 실거래가를 아파트 실거래가처럼 투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미술품 거래소에서는 에코락갤러리가 거래한 1401건, 작가가 외부에서 거래한 2783건 등 총 4184건의 대한 민국 청년 작가 작품의 실거래가를 조회할 수 있다. 몇 년 후 2만~3만 건의 실거래 정보가 쌓이면 누구나 이 정보를 바탕으로 미술 작품을 사고팔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건강한 미술 시장을 구축할 수 있다.
에코락갤러리 설립 이후 어떤 결과물을 거두었는지 궁금하다
현재 등록된 신진 작가의 수만 2199명이고 이들의 작품 3만2606여 점이 등록되어 있다. 명실공히 국내 최대 규모의 미술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에코락갤러리를 통해 발굴하거나 성장한 작가를 소개해달라
눈에 띄게 성장한 작가로는 김보미, 이동구, 양정수, 안나영, 채정완, 강덕현, 송영학, 송진욱, 이아람, 이준원 등을 꼽을 수 있다. 주로 신진 작가로, 해를 거듭할수록 인기가 늘고 있다. 작품이 완성되기도 전에 사겠다는 사람이 등장할 정도다.
하림에서 갤러리를 운영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도 많을 텐데, 어떻게 처음 하림과 인연을 맺게 되었나?
하림 그룹 계열사인 NS홈쇼핑에 마케터로 입사해 회사와 인연을 맺었다. 홈쇼핑에서 보험 상품을 판매하기도 했고, 무역과 대북 무역 사업 등 전략 사업을 담당했다. 그 후 방송과 상품을 충괄하는 영업 담당 임원으로 지내다가 2011년부터 그룹 내 금융회사인 에코캐피탈의 경영을 맡게 되었다.
증권회사, 홈쇼핑, 금융회사 등 다양한 과거 이력이 눈에 띄는데
첫 사회생활은 한국투자증권(구 동원증권)에서 시작했다. 당시 동원그룹 김재철 회장님의 면접을 통과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동원증권에서 일하던 시절, 지금의 미래에셋금융그룹 창업주인 박현주 회장님을 모시고 일한 적도 있다. 그 후부터 지금까지 약 19년 동안 하림 그룹 김홍국 회장님을 모시고 있다. 그러고 보니 내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준 세 사람 모두 당대에 사업을 일으킨 창업주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분들에게 도전 정신을 배워 지금도 끊임없이 도전하고 있다. 주변 사람들은 내가 또 다른 새로운 일을 벌일까 봐 걱정을 많이 한다.(웃음)
갤러리를 운영하면서 힘들 때는 언제인가? 반대로,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사업을 처음 시작했을 때 멀리 지방에서 온 젊은 작가들이 작품을 팔지 못해 의기소침한 상태로 다시 내려가곤 했다.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정말 힘들었다. 개인적으로 한두 점씩 구입해 지금은 100여 점 소장하게 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 신진 작가들이 지금은 전작을 완판하며 대기 고객이 생길 정도로 인정받고 있다. 그들의 성공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며 큰 보람을 느낀다.
본인도 에코락갤러리의 작가던데, 주로 어떤 작업을 하나?
사진을 찍지만 본격적인 사진작가는 아니다. 미군 부대에서 카투사로 복무할 때 처음 사진 인화와 인연을 맺었다. 그 후 30년간 취미로 사진을 찍어왔다. 우리는 모든 것이 완벽한 이상향, 즉 이데아를 꿈꾼다. 그 이데아를 복제한 것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고, 예술은 바로 이 현실을 복제한 셈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복제를 거듭할수록 그 가치가 떨어진다고 했는데, 그의 말에 약간 투정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현실에서 부족함을 느끼니 이상향을 꿈꾸며 사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예술이 그것을 가능하게 해준다고 믿고 있다.
에코락갤러리를 통해 세상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
음악, 영상, 뷰티 등 한국 문화 콘텐츠가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다음은 미술 차례다. 작품을 소장한다는 것은 우리의 문화 지성과 국격이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술 시장이 건강하다면 인간의 선한 의지인 미술품 향유에 대해 미술품 자산가치 상승으로 보답할 것이다. 우리가 대한민국 청년 작가의 작품을 하나씩만 소유한다면 세계 최고의 미술 시장으로 거듭날 수 있다. 상상력을 넓히면, 미술사를 빛낼 미래의 거장도 이곳에서 탄생할 수 있다. 지금껏 우리가 아는 미술계 거장은 대부분 유럽과 미국에서 나왔다. 이들의 공통된 특징이 엄청난 자본이 몰려든 거대 미술 시장을 배경으로 활동했다는 것이다. 우리도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다. 후대에는 거장의 미술품을 관람하기 위해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찾아 여행을 올 수도 있다. 지금 우리가 유럽 여행을 가는 것처럼. 그런 날을 꿈꾸며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