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명한 상속 설계, 유언대용신탁
사후 재산을 둘러싼 가족 간 분쟁을 예방하고 싶다면 상속을 사전에 계획하는 것이 좋다. 우리은행 신탁부 신관식 세무사와 함께 인생의 마지막 설계를 도와줄 유언대용신탁에 대해 살펴봤다.
2022년, 우리나라 사망 인구수는 약 35만 명이었다. 앞으로 2050년까지 사망 인구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2022년 기준 1만9000여 명이 상속세를 신고했는데, 이는 사망 인구의 약 5%를 상회하는 수치다. 상속세는 망자가 소유하고 있던 재산에 대한 세금이다. 현행 세법이 계속 유지된다면 서울에 있는 똘똘한 아파트 한 채 이상을 소유하고 부채가 없을 경우 누구나 상속세를 걱정하거나 부담할 수 있다. 게다가 상속세는 망자의 재산으로 산정하지만 실제 세금을 내는 것은 배우자와 자녀, 즉 가족이다. 현금화하기 쉽지 않은 재산을 물려받아 현금으로 세금을 납부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유족에게 망자가 남긴 유산은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 될 수도 있다.
대법원 <사법연감> 자료에 따르면 여러 명의 가족이 망자의 재산을 각자 나눠 갖는 데 서로 협의하지 못해 가정법원에 심판을 구하는 ‘상속재산분할심판청구’ 건수는 2022년 기준 2776건에 이른다. 그뿐 아니라 망자의 재산을 전혀 받지 못했거나 조금밖에 받지 못한 상속인이 망자의 재산을 더 많이 받아간 다른 상속인에게 자신의 법적 권리, 즉 유류분만큼 돌려달라고 법원에 청구하는 ‘유류분반환청구소송’의 접수 건수는 2022년 기준 약 1872건에 이른다.
본인 사망 이후 유족에게 재산을 어떻게 물려줄 것인지를 고민하는 사람이 점점 늘고 있다. 그 고민을 해결할 방법으로는 ‘유언대용신탁’과 ‘유언(유언서)’이 있다.
유언대용신탁과 유언서, 무엇이 다를까
먼저 유언대용신탁이란 ① 위탁자가 신탁회사 등 수탁자와 신탁계약을 하고 ② 위탁자 본인 재산의 소유권을 수탁자에게 이전하며 ③ 위탁자 살아생전에는 위탁자 본인이 신탁계약의 수익자로서 신탁에서 발생하는 이익 등을 향유하다가 ④ 위탁자가 사망할 경우 다른 법정상속인들의 협의 절차를 거치지 않고 ⑤ 신탁계약에 근거해 위탁자가 지정한 사후 수익자에게 신탁재산을 이전하는 제도다. 유언대용신탁은 2012년 7월 26일 시행된 신탁법(제59조)에 근거를 두고 있다.
유언서란 법정 방식에 의해 유언을 기재한 서면을 말한다. 유언이란 유언자가 본인 사망 후 법률적・재산적 효과를 발생시키려는 목적으로 유언자가 살아 있을 때 하는 의사 표시이며, 유언자의 사망으로 그 효력이 생긴다.
유언은 반드시 만 17세 이상의 자연인이 유언자 본인의 독립적 의사 능력에 따라 행해져야 한다. 상대방의 수락을 필요로 하지 않는 단독행위이기 때문에 유언자는 본인 의사에 따라 자유롭게 유언을 할 수 있고, 살아 있을 때 언제든지 유언을 변경하거나 철회할 수 있다. 다만, 민법에 따른 일정한 방식과 엄격한 요건에 따라 작성되어야만 그 효력이 발생한다.(민법 제1060~1111조)
유언대용신탁의 유리한 점은
유언대용신탁의 이점으로는 일정한 재산 관리, 효력 발생, 재산 집행의 신속성, 오류 수정 및 위조・변조・분실 위험 감소를 들 수 있다. 먼저 재산 관리 측면에서 살펴보자. 유언서에 기재된 재산(유증* 재산)은 유언서에만 기재되어 있다. 따라서 유언자가 사망할 때까지 실제 재산 관리는 유언자 본인 스스로가 살아 있을 때까지만 할 수 있다. 유언대용신탁의 신탁재산은 위탁자의 다양한 요구와 지시 등에 따라 자산관리에 전문화된 신탁회사 등 수탁자가 관리, 운용 등의 업무를 수행한다. 특히 위탁자 생전은 물론 사후에도 사후수익자가 재산을 받아가기 전까지 일정한 재산 관리가 이뤄진다.
* 유증: 유언으로써 자기 재산의 전부 또는 일부를 무상으로 수유자에게 주는 행위
다음으로, 효력 발생 측면에서 유언대용신탁이 유리한 이유를 살펴보자. 유언서는 민법상 엄격한 방식과 요건이 요구된다. 따라서 민법에서 정한 방식과 요건에 부합되지 않으면 무효가 될 수 있다. 유언은 자필증서, 녹음, 공정증서, 비밀증서, 구수증서 등 다섯 가지 방식에 의해서만 해야 한다. 자필증서 유언을 제외하고 유언서를 작성하거나 유언서를 변경하기 위해서는 1명 또는 2명의 증인이 필요하고, 공정증서 유언(유언 공증)을 제외한 유언서는 법원의 유언서 검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러나 유언대용신탁은 위탁자와 신탁회사 등 수탁자간 합의만으로 계약이 성립하고, 약관 이외 계약서상 문구와 방식도 특별한 제한이 없다. 그뿐 아니라 증인 없이 계약할 수 있고, 증인 없이 신탁계약 내용을 변경할 수 있으며, 더더욱 법원의 유언서 검인 절차도 필요하지 않다.
* 유언서 검인: 유언서의 위조·변조를 방지하기 위해 법원이 유언서의 방식 및 내용에 대해 형식상의 조사를 하는 것으로, 법원은 상속인 전원과 이해관계인을 입회시켜 유언서 검인 신청인의 사정 등을 청취한 후 검인조서를 작성
유언대용신탁은 수익자가 재산을 받아가기 전까지
일정한 재산 관리가 가능하며,
유언서보다 요건이 엄격하지 않다.
위조·변조·분실의 위험이
적다는 것도 이점이다.
유언대용신탁은 사후수익자로 하여금 신탁회사 등 수탁자로부터 신속·정확하게 신탁재산을 받아갈 수 있도록 한다. 유언서를 남긴 유언자가 본인 이외의 어떤 누구에게도 유언서의 존재나 유언서의 보관 장소 등을 말하지 않고 사망할 경우에 상당 기간 유언집행자*, 수유자, 상속인은 유언서의 존재와 유언서의 내용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즉 수유자가 유언자의 유증 관련 재산을 확인하고 실제로 자신의 재산으로 이전하는 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그러나 유언대용신탁에서 신탁회사 등 수탁자는 위탁자의 사망 사실을 확인한 후 사후수익자에게 신탁계약의 수익자가 되었음을 통지한다. 그뿐 아니라 신탁 부동산의 주소를 사후 수익자가 알고 있다면 등기사항전부증명서 확인 등을 통해 부동산이 어느 신탁회사에 신탁되어 있는지 확인이 가능하다.
* 유언집행자: 유언의 내용을 실현시키기 위한 집행 업무의 권한을 가진 사람으로 유언자가 직접 지정할 수도 있고, 상속인이 당연 취임하는 경우도 있으며, 가정법원이 선임할 수도 있음
마지막으로 유언대용신탁은 오류를 수정할 수 있고, 위조·변조·분실 위험이 적다는 이점이 있다. 유언서는 공정증서 유언을 제외하고 유언서에 요구되는 민법상 엄격한 요건, 절차, 형식을 충족하지 못한 채 보관될 수 있는 데다 보관 중에 위조·변조·분실 등의 위험이 항상 존재한다. 반면, 유언대용신탁은 계약상 하자와 오류를 위탁자 생존 시 언제든지 변경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유언대용신탁 계약서는 신탁재산이 부동산인 경우에는 신탁원부*로 등기되어 있고, 금전 및 증권 등의 경우에는 신탁회사 등 수탁자의 전산 시스템 및 별도 금고에 안전하게 보관하기 때문에 위조·변조·분실의 위험이 적다.
* 신탁원부: 부동산 등 등기·등록해야 하는 재산을 신탁하는 경우 등기·등록신청서에 위탁자, 수탁자, 수익자, 신탁관리인의 성명과 주소, 신탁 목적, 신탁 재산의 관리 방법, 신탁 종료 사유, 기타 신탁 조항을 기재한 서면을 첨부해야 하는데, 이 서면을 신탁원부라고 함. 신탁원부는 등기부의 일부로 간주되며, 등기소(등기국)에 가면 누구나 발급 가능함
유언서의 유리한 점은
반면, 유언서는 보수·수수료, 비밀성 측면에서 유리하다. 먼저 유언서에 있어 자필증서 유언은 비용이 전혀 발생하지 않는다. 공정증서 유언(유언공증)의 경우에도 유언서 작성 전 상담 수수료 등을 제외하면 재산가액에 따라 달라지지만 최대 300만원이다. 그러나 유언대용신탁은 일반적으로 신탁을 설정할 때의 보수, 신탁재산을 관리 및 운용하는 데 따른 보수, 위탁자 사망 이후 신탁재산 집행에 따른 보수가 발생한다. 추가적으로 신탁 보수 등에 부가가치세가 붙는 경우도 있고, 신탁재산이 부동산 등 등기・등록해야 하는 재산이라면 등기·등록을 하는 데도 비용이 추가 발생할 수 있다.
또 유언서에 기재된 재산은 유언자가 사망할 때까지 유언자 명의로 되어 있다. 유언자가 유언의 내용을 수유자 등에게 미리 말해 주지 않을 경우 유언 내용과 보관 장소, 유증 관련 재산, 수유자 등을 유언자 본인 이외에는 전혀 알 수 없다. 그러나 유언대용신탁에서 만약 신탁재산이 부동산인 경우에는 등기사항전부증명서 또는 등기소·등기국에 가서 신탁원부를 발급받아 누구든지 신탁계약의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주식인 경우에는 신탁회사로 명의개서*되고, 주주명부 또는 주식 등 변동상황명세서, 금융감독원의 공시자료(DART) 등을 통해 누구나 신탁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본인 사후 재산 분배에 관한 사항을 본인이 사망할 때까지 아무도 모르게 처리하고 싶다면 신탁은 매우 불리하다.
* 명의개서: 주식의 처분(신탁 포함), 양도, 상속, 증여 등이 있는 경우에 양수인이나 수탁자, 상속인, 수증자 등의 이름과 주소를 회사의 주주명부에 기재해 주주의 명의를 변경하는 것
신탁 가능 재산은?
신탁의 기본법은 신탁법인데, 신탁법에서 신탁재산을 제한하는 조항은 없다. 다만 부동산 신탁사, 은행, 증권사, 보험사 등 영리 목적의 신탁회사(수탁자)는 자본시장법을 적용받는다. 따라서 위탁자가 신탁회사(수탁자)와 신탁계약을 할 때 신탁 가능한 재산은 ① 금전, ② 증권, ③ 금전채권, ④ 동산, ⑤ 부동산, ⑥ 지상권, 전세권 등 부동산에 관한 권리, ⑦ 무체재산권(지식재산권)으로 크게 일곱 종류로 제한된다.(자본시장법제103조)
유언대용신탁은 재산 승계에 완벽한 제도는 아니다.
그러나 가족 간 유산 다툼을 줄이고,
소중한 재산이 온전하게 후대에 이어질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유언대용신탁 활용은 이렇게
그렇다면 유언대용신탁을 어떻게 활용하는 것이 좋을까? 간단한 사례를 통해 활용 방안을 살펴보자. A씨는 현재 중대한 수술을 앞두고 있지만, 평생 독신으로 살아온 데다 형제들과도 10년 넘도록 왕래하지 않고 있다. 그나마 여태껏 그를 봉양해 준 건 막내 조카 B씨다. A씨가 그의 모든 재산을 B씨에게 주는 것이 가능할까? 가능하다면 참고하거나 유의해야 할 사항은 무엇일까?
A씨가 생전에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고 사망하는 경우, 그의 형제자매가 민법상 선순위 법정상속인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B씨는 재산을 전혀 받을 수 없다. A씨 형제자매가 A씨보다 먼저 사망하는 경우에는 형제자매의 자녀들이 대습상속인이 되는데, 만일 B씨가 대습상속인 중 한 명이 되더라도 재산의 일부만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즉 협의분할 형태로는 A씨의 의도대로 B씨에게 모든 재산을 주기 어렵다.
이런 상황이라면,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유언대용신탁을 활용해 볼 수 있다. ① A씨가 위탁자로서 신탁회사 등 수탁자와 신탁계약을 하고 사후수익자를 B씨로 지정한다. ② 위탁자는 본인 재산을 수탁자에게 맡긴다. ③ 위탁자가 사망하기 전까지는 A씨가 신탁재산에 대한 권리와 이익을 수익자로서 향유한다. ④ 향후 A씨가 사망하면 신탁회사 등 수탁자는 신탁재산을 사후수익자인 B씨에게 지급한다.
다만 신탁 설정에 따른 신탁 보수와 등기대행수수료, 소득세 및 상속세 등 세금이 발생할 수 있다. 또 현행 민법에 따라 A씨가 사망하면 A씨의 형제자매가 B씨를 상대로 유류분반환청구소송을 진행할 수 있고, 법원의 판결에 따라 B씨는 유언대용신탁을 통해 받은 재산 중 일부를 A씨 형제자매에게 반환하게 될 수도 있다.
유언대용신탁이 본인 사후 재산을 승계하는 데 완벽한 제도는 아니다. 그러나 가족 간 분쟁과 불화를 줄이고, 망자가 평생 일군 소중한 재산이 되도록 온전하게 후대에 이어질 수 있게 하는 방법이라는 점에서는 분명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