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and story] 열정의 스포츠카, 페라리
“만약 당신이 차를 한 대 가질 수 있다면 어떤 것을 택하겠는가?”라고 묻는다면, 가장 먼저 떠오를 브랜드는 분명 페라리다. 페라리는 어떻게 슈퍼카의 기준이자 대명사가 되었을까?
레이싱에 참가하기 위해 차를 파는 브랜드
페라리의 시작은 엔초 페라리가 자신의 레이싱팀 ‘스쿠데리아 페라리(Scuderia Ferrari)’를 설립한 1929년으로 본다. 1898년 이탈리아 북부의 작은 도시 모데나에서 태어난 엔초 페라리는 열 살 때 자동차 경주를 처음 본 후 모터스포츠에 빠져들었다. 10대 때부터 운전을 한 그는 20대를 알파 로메오 레이싱팀 드라이버로 활약하며 보냈다.
그러나 알파 로메오와 불화가 계속되자 1939년 알파 로메오와 완전히 결별을 선언했고, 스쿠데리아 페라리의 운영에 매진한다. 하지만 모터 스포츠에 들어가는 비용은 감당하기 어려운 규모였다. 엔초 페라리는 팀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공공 도로에서 몰 수 있는 양산형 스포츠카를 생산하기로 결정했다.
페라리가 출시한 첫 차량은 1947년 5월에 선보인 ‘페라리 125S’다. 페라리 125S는 레이싱에 뛰어든 지 2주 만에 로마 그랑프리에서 우승하며 화려한 데뷔 소식을 알렸다. 오로지 레이싱에 집중하기 위해 부수적으로 자동차를 판다는, 집요한 레이서의 열정이 만들어낸 브랜드의 시작이다. 1949년 10월에는 첫 번째 공도용 스포츠카 ‘166 인터(Inter)’를 선보였고, 1952년에는 세계 3대 자동차 디자인 기업으로 꼽히는 피닌파리나를 합병하며 스포츠카를 예술품이자 명품 브랜드 반열에 올렸다.
브랜드의 상징, ‘도약하는 말’
페라리의 엠블럼은 브랜드 그 자체다. 원래 디자인은 제1차 세계대전 때 이탈리아의 국가 영웅이었던 전투기 조종사 프란체스코 바라카(Francesco Baracca)가 자신의 비행기에 그려 넣은 것으로, ‘바라카의 말(Baracca’s Cavallino)’이라고 불렀다. 엔초 페라리가 알파 로메오의 레이서로 활동하던 시절, 그의 우승을 목격한 바라카 백작 부인이 행운을 기원하는 의미로 전사한 아들의 휘장을 그에게 선물했다.
엔초 페라리는 이 문양을 변형해 말 꼬리를 올리고 배경에는 그의 고향 모데나를 상징하는 ‘카나리 옐로(Canary Yellow)’를 칠하고, 검은 테두리 상단에는 이탈리아를 상징하는 녹색과 흰색, 빨간색을 더해 이탈리아 브랜드임을 강조했다. 페라리 로고는 이탈리아어로 ‘Cavallino Rampante’, 영어로는 ‘Prancing Horse’인데, 의미는 ‘도약하는 말’이다.
사각형 프레임은 경주용 차량과 양산차 등 페라리가 생산하는 모든 차량의 기본 엠블럼이며, 방패형은 페라리 레이싱팀을 상징한다. 방패형 엠블럼은 간혹 차량의 측면 장식용 등으로 추가되기도 한다.
이탈리아의 색, 로소 코르사
수많은 스포츠카 브랜드가 있지만, 붉은색 스포츠카를 보는 순간 가장 먼저 페라리가 떠오른다. 이탈리아어로 로소(Rosso)는 ‘붉은색’, 코르사(Corsa)는 ‘경주’를 뜻한다. 1920년대 FIA는 각 브랜드별로 출신 국가를 알 수 있도록 레이싱카의 색상을 통일하라는 규정을 만들었다. 당시 붉은색은 이탈리아의 상징이었고, 페라리뿐 아니라 알파 로메오, 마세라티 등도 붉은색을 써야 했다.
그러나 1960대에 관련 규정이 폐지되자 각 브랜드는 스폰서나 브랜드 이미지를 고려한 색상을 채택했다. 하지만 페라리는 달랐는데, 그렇게 100년을 이어온 전통은 어느새 페라리의 정체성을 오롯이 담은 색으로 남았다. 참고로 페라리의 붉은색은 두 종류[Rosso Corsa(#d40000), Ferrari Red(#ff2800)]다.
이탈리아엔 종교가 둘 있습니다.
가톨릭과 페라리죠.
- 윌 벅스턴, <본능의 질주> 시즌 6
모터스포츠의 역사, 스쿠데리아 페라리
엔초 페라리가 1929년 창단한 레이싱팀 스쿠데리아 페라리는 1950년 포뮬러 1(F1)이 시작된 이래 74년간 단 한 해도 빠지지 않고 출전한 유일한 팀이다. 현재까지 F1을 비롯한 전 세계 레이스에서 5000회 우승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웠으며, 미하엘 슈마허, 니키 라우다, 후안 마누엘 판지오, 페르난도 알론소, 제바스티안 페텔 같은 전설적인 드라이버들이 스쿠데리아 페라리를 거쳤다.
F1에서 꾸준히 입지를 다진 스쿠데리아 페라리는 1970년대 ‘불사조’ 니키 라우다와 함게 영광의 시기를 맞았지만, 질 빌뇌브가 1982년 벨기에 GP에서 사고로 사망한 후 긴 암흑기에 접어들었다. 이후 1990년대 후반 ‘전설’ 미하엘 슈마허가 합류하면서 2000년대를 페라리의 시대로 만들었다. 이후 현재까지 부침은 있지만 끊임없이 우승에 도전하며 F1 기록을 새로 쓰고 있다.
양산차나 슈퍼카를 홍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F1에 출전하는 다른 브랜드와 달리 F1에 출전하기 위해 양산차를 생산하기 시작한 페라리는 애초 지향점이 달랐다. 수많은 경기를 통해 얻은 정교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최고의 차를 만들겠다는 엔초 페라리의 집념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혁신적인 모델을 끊임없이 선보이며 전 세계 슈퍼카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열광적인 팬덤, 티포시
100년에 걸친 역사와 F1에서의 실적을 바탕으로 쌓아 올린 ‘이탈리아 대표’라는 가치와 승리를 향한 집념, 긴 암흑기에도 굴하지 않는 도전 정신 등 스쿠데리아 페라리의 철학은 수많은 열성 팬을 만들었다. 이들은 단순히 모터스포츠를 즐기는 단계를 넘어 스쿠데리아 페라리라는 팀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경지에 이르렀는데, 이들을 일컬어 ‘티포시(Tifosi)’라 부른다. 티포시는 원래 이탈리아어로 ‘팬(Fan)’을 뜻하는 보통명사지만, 현재는 스쿠데리아 페라리의 팬을 지칭하는 말로 굳어졌다.
티포시는 때로 훌리건과 비교되는데, 이는 그들의 열정이 종종 상상 이상으로 과격하기 때문이다. 레이싱 도중 페라리의 드라이버를 방해하거나 피해를 입히면 그야말로 폭동이 일어날 것 같은 상황이 연출되곤 한다.
페라리의 미래는?
페라리는 2030년까지 완전한 탄소중립 달성을 목표로 내세웠으며 순수 전기, 하이브리드, 내연기관 등 세 종류로 파워트레인을 다각화해 보다 많은 고객에게 페라리의 주행 경험을 제공하겠다고 천명했다. 2026년까지 전체 라인업의 40%를 내연기관 모델로, 나머지 60%는 하이브리드 및 순수 전기 차량으로 구성할 계획이며, 2030년까지는 하이브리드와 순수 전기 파워트레인 비율을 각각 40%씩으로 확대하고, 내연기관 비율은 20%로 줄인다는 계획이다.
특히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된 전기차는 2025년 첫 번째 모델이 출시될 예정인데, F1 기술을 기반으로 개발된 동역학 제어 로직 및 유체 역학 시스템, 퍼포먼스 소프트웨어와 전동화 기술을 결합해 타 브랜드와 여전히 차별화된 페라리만의 주행 감성을 선보이겠다고 벼르고 있다. 이를 위해 전기차 엔진은 모두 페라리 마라넬로 공장에서 설계·조립하며, 전기차에 들어가는 핵심 기술과 부품, 소프트웨어 등은 모두 마라넬로 공장의 페라리 최고 기술자들이 연구개발 중이다.
연혁
1947 페라리 브랜드 창립 / 페라리 최초의 모델 ‘125S’ 발표
1949 첫 번째 공도용 스포츠카 ‘166 인터’ 파리 모터쇼 공개
1951 F1 그랑프리 첫 우승
1952 자동차 디자인 기업 ‘피닌파리나’와 파트너십 체결
1960 페라리 최초의 4인승 모델 ‘250 GT’ 출시
1972 페라리 차량 성능 테스트용 피오라노 트랙 개소
1975 페라리 최초의 8기통 미드리어 엔진 ‘308 GTB’ 출시
1984 슈퍼카 신드롬 불러일으킨 ‘288 GTO’ 출시
1987 페라리 창립 40주년 기념 모델 ‘F40’ 출시
1999 페라리 최초 100% 알루미늄 섀시 모델 ‘360 모데나’ 출시
2000~2010 총 열세 번의 월드 챔피언 타이틀 획득
2002 ‘엔초 페라리’ 출시
2010 페라리 테마파크 ‘페라리 월드 아부다비’ 개장
2011 페라리 최초의 사륜구동 모델 ‘FF’ 출시
2013 브랜드 최초의 한정판 슈퍼카이자 하이브리드 모델 ‘라페라리’ 출시
2020 페라리 최초의 PHEV 모델 ‘SF90 스트라달레’ 출시
2023 최초의 4인승 4도어 스포츠카 ‘페라리 푸로산게’ 출시
자료제공 드밀커뮤니케이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