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사실을 담은 소설들

문학은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라 했던가. 현실에 살을 붙인 두 권의 소설.

2024-05-09     정지환 에디터

 

 

 

잉크 냄새 나는 소설

책의 엔딩 크레딧

안도 유스케, 북스피어

김보미 에디터

잡지 한 권을 만들기 위해선 매달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친다. 먼저, 에디터와 객원 필진이 원고를 작성한다. 디자이너가 원고와 각종 자료를 디자인 포맷에 맞춰 대지에 앉힌 뒤 파일을 인쇄소로 보내면, 감리를 거쳐 종이에 내용을 찍어낸다. 잉크가 다른 면에 찍히지 않도록 세심하게 건조 후 네모반듯하게 엮는다. 가제본 확인 절차도 거친다. 원고가 ‘책’이라는 형태로 독자에게 전달되기까지 적어도 다섯 명 이상의 사람이 투입된다.

 

대부분 사람은 이러한 과정을 잘 알지 못하거나, 원고와 디자인만 완성되면 책이 나온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나도 그랬고, 작가 안도 유스케도 마찬가지였다. 이제까지 열 권이 넘는 책을 썼지만 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는 3년 넘게 인쇄업계를 취재해 소설을 썼다.

 

<책의 엔딩 크레딧>은 책 제작 과정에 없어서는 안 되지만 판권 면에 이름이 실리지 않는 출판·인쇄업계 프로들의 이야기다. 인쇄 회사 영업 사원, 출판사 편집자, 디자이너, 인쇄 기술자가 분투하는 모습을 다큐멘터리처럼 상세히 그렸다. 독서 인구가 줄어드는 현실 속, 장인과도 같은 마음으로 일을 대하는 열정파 영업 사원 우라모토와 하루하루 실수 없이 일을 마치는 것이 목표인 현실파 동료 나카이도의 모습을 통해 일을 대하는 마음가짐을 다뤘다는 점도 흥미롭다. 출판사와 인쇄소의 일상을 따라가다 보면 판권 페이지의 무게를 다시금 헤아리게 된다. 애서가, 애독가에게 추천한다.

 


 

 

 

강렬한 인생을 단호한 문장으로

하얼빈

김훈, 문학동네

정지환 에디터

군더더기를 싫어한다. 단문을 선호하는 이유다. ‘글을 더 잘 썼더라면, 이보다 더 간결하게 쓸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늘 갖는다. 글쓰기를 업으로 삼으면서 처음 필사(筆寫)한 책이 김훈의 <칼의 노래>다. 단문을 선호하는 나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선배가 이 책을 추천했다. 다른 작가들의 배우고 싶은 문체가 여럿 있지만, 뼈대는 여전히 김훈의 문장을 지향한다. ‘김훈의 문장을 하나라도 더 배우고 싶다’는 마음으로 <하얼빈>을 읽었다.

 

<하얼빈>은 안중근의 생애를 담은 소설이다.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여지없이 뛰어드는 영웅, 한 가정의 가장이자 천주교인이라는 정체성으로 거사를 주저하는 청년. <하얼빈>은 우리가 알고 있는 영웅이자 청년인 안중근의 대비되는 내면을 조명한다.

 

안중근의 삶과 김훈의 문장은 짧고 강렬하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소설 속 안중근의 말과 행동은 김훈의 문장에 담겨 묵직하게 뻗어 나간다. 김훈은 미사여구를 생략하고 안중근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묘사한다. 담백한 문장에는 청년 안중근의 고뇌가 응축되어 있다. 한 문장씩 곱씹어 읽은 탓에 완독하는 데 긴 시간이 걸렸다.

 

김훈은 작가로 활동하는 내내 안중근의 생애를 소설로 담고자 했다. 그런 의미에서 <하얼빈>은 김훈의 인생 과업이다. 번외로, 영화 <하얼빈>이 올해 개봉한다. 하얼빈 의거를 다룬다는 점은 같지만, 김훈의 소설과는 관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