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을 노래한 불멸의 청년, 시인 윤동주
올해는 시인 윤동주가 세상에 태어난 지 딱 100년이 되는 해다. 이전에도 그는 사랑받는 시인이었지만, 최근 들어 윤동주 열풍이 더욱 뜨겁다. 왜 윤동주는, 그리고 그의 시는 이토록 많은 이에게 사랑받는 걸까?
문화 아이콘이 된 시인
윤동주 열풍은 출판계에서 시작됐다. 지난해 2월 초판 복각본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출간되자마자 서점 판매량에서 선두를 다툰 것. 뿐만 아니라 소설, 영화, 뮤지컬 등 다양한 장르에서 윤동주를 만날 수 있었다. 올해 초에는 TV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서 래퍼 개코와 가수 황광희가 부른 곡 ‘당신의 밤’이 각종 음원 차트 1위를 달렸다. 윤동주의 삶을 랩으로 만든 노래다. 암울한 일제강점기, 좌절과 불안을 담담한 의지로 표현한 윤동주의 시가 오늘날 불안한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고민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많다.
삶 자체가 시가 되다
윤동주의 시는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어 그의 삶과 연결 지어 생각할 수밖에 없다. 1917년 중국 길림성 명동촌에서 태어난 윤동주는 사촌 송몽규와 함께 명동소학교에 입학하면서 문예에 두각을 나타냈다. 은진중학교를 거쳐 평양 숭실학교에 입학했지만, 신사 참배 강요에 항의해 자퇴한다. 이후 고향 용정에서 광명학교를 졸업하고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해 문학에 대한 열의를 불태웠다.
윤동주는 더 깊게 공부하기 위해 송몽규와 함께 일본 유학을 떠났다. 이때 어떨 수 없이 창씨개명을 한 것을 내내 수치스러워했다. 일본에서 공부하던 그는 독립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체포된 뒤 광복을 6개월 남겨둔 만 27세의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끊임없는 자아 성찰로 성숙한 내면세계를 보여주다
윤동주의 유년 시절은 그야말로 행복이 가득한 자유로운 세계였다. 비교적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착실한 모범생이었고, 민족주의적이고 기독교적인 환경에서 자랐다. 그는 그런 유년 시절의 아름답고 조화로운 세계에서 시를 쓰며 살고 싶었다.
그러나 온 민족이 비탄에 빠져 있는데 혼자만 그렇게 살 수는 없었다. 윤동주는 민족 해방을 위한 용기와 신념을 얻기 위해 오랜 갈등과 괴로움의 시간을 보냈고, 내면의 모순이 사라질 때까지 자아 성찰을 계속했다. 그 시간들은 오롯이 시가 되었다.
일제강점기에 한글로 쓴 시
윤동주는 간도(중국 길림성의 동남부 지역)에서 태어나 일본 후쿠오카 감옥에서 죽었다. 그럼에도 그가 ‘민족 시인’임을 의심하는 이는 없다. 나라의 주권을 잃고, 말과 글을 잃고, 이름마저 잃어버린 시대. 그는 일제의 한글말살정책에도 굴하지 않고 한글로 시를 썼다. 결국 윤동주는 한글로 시를 써 치안유지법을 위반했다는 혐의로 체포돼 징역 2년을 선고받는다.
윤동주의 시는 어렵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암송할 정도로 시대를 초월해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윤동주의 시. 쉽고 서정적인 느낌이 들어서이지만, 사실 윤동주 시를 해석하기는 쉽지 않다. 대중에게 발표하기 위해 쓴 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정신적 갈등을 일기처럼 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꽤 많은 시가 우리에게 친숙한 까닭은 학창 시절에 배운 덕이다. 하지만 학창 시절 밑줄 그으며 공부하고 외운 기억은 이제 잊어버리자. 그의 시는 가슴으로 느껴야 한다.
자화상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 1939.9
윤동주가 시마다 날짜를 기록한 이유?
평생 절친했던 동갑 친구이자 사촌인 송몽규는 윤동주와 함께 소학교 때부터 글을 쓰곤 했다. 그러던 중 1935년 은진중학교 3학년이던 송몽규가 <동아일보> 신춘문예 콩트 부문에 당선되었다. 함께 습작하던 친구의 작품이 신문에 실려 온 나라에 알려진 것이다. 이는 소년 윤동주에게 큰 문학적 자극이 되었다. 이때부터 윤동주는 ‘자기 작품’을 소중히 챙기고 시를 쓸 때마다 그것을 지은 날짜를 기록하며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의 문학적 출발점이 된 것이다.
길
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 1941.9
대표작을 쏟아낸 북아현동 하숙집
연희전문학교 졸업반이던 윤동주는 가족적이던 하숙집에서 7~8명의 하숙생이 들끓는 북아현동의 전문 하숙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함께 영어 성서를 공부한 이화여전 여학생을 좋아해 그녀가 사는 동네로 이사한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불편하고 뒤숭숭한 생활 가운데 윤동주는 진학에 대한 고민, 시국에 대한 불안, 가정에 대한 걱정 등으로 무척 괴로워했다. 이 시기에 그의 대표작으로 널리 알려진 중요한 작품들이 탄생했다. ‘길’도 이때 작품으로 마지막 연에서 ‘지조’를 택해야 한다는 강한 자기 다짐을 엿볼 수 있다.
별 헤는 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을 불러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佩), 경(鏡), 옥(玉)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랜시스 잼,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슬히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 1941.11
예언이 담긴 시?
‘별 헤는 밤’은 유년 시절 고향의 아름답고 행복했던 세계를 동경하며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은 시다. 그리고 그러한 동경이 ‘봄 동산’의 밑거름이 될 거라는 인식을 보여준다.
이 시에서 돋보이는 시어 중 하나는 ‘이름’이다. 그리운 대상을 부를 땐 굳이 그 이름을 강조하면서 자신의 이름자는 흙으로 덮어버린다. 이것은 시를 쓸 무렵 윤동주의 의식을 강하게 억압하고 있던 문제, 창씨개명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추측한다.
그러나 봄이 오면 ‘내 이름자 묻힌 언덕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것이라고 한 마지막 구절은, 지금 그의 유고 시집이 널리 읽힌다는 사실을 놓고 볼 때 시인의 위안이 담긴 예언처럼 느껴진다.
서시(序詩)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1941.11
부끄럼의 시작은 중학교 편입 실패?
윤동주의 시는 ‘부끄럼의 미학’이라고 한다. 특히 ‘서시’는 인간의 삶이 지닌 근원적인 ‘부끄럼’을 진지하게 성찰한 명시(名詩)로 여겨진다. 윤동주는 언제부터 부끄럼의 본질을 알았을까? 학자들은 숭실학교 편입 시험 실패를 그 시기로 본다.
공부 잘하기로 손꼽히는 송몽규, 문익환(목사), 윤동주는 상급 학교로 가기 위해 5년제인 숭실학교로 편입해야 했다. 같이 시험을 봤는데 윤동주만 한 학년 아래로 입학 허가를 받은 것이다. 한참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여서 심각한 고뇌를 겪었을 터이지만, 이후 시에 대한 그의 창작 욕구는 더욱 뜨거워졌다.
참회록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만 이십사 년 일 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 온다. - 1942.1
창씨개명 5일 전 쓴 시
연희전문학교 졸업 후 윤동주는 일본에 유학해 대학 과정을 밟기로 했다. 그러나 유학은 물론 일본으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필요한 ‘도항증명서’를 작성하기 위해서는 창씨개명이 반드시 필요했다. 그는 입학을 앞두고 버틸 때까지 버티다 창씨개명을 했다. ‘참회록’을 쓴 지 닷새만의 일이다.
그는 슬픔 속에서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으며’ 선량함으로 치욕에 맞선다. 거울을 닦는 행위는 자신의 현재 모습을 정직하게 투시하는 것이다. 동시에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을 기약하는 희망적인 참회를 하고 있다.
쉽게 쓰여진 시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릴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쓰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 1942.6.3
실제로 시는 쉽게 쓰여지지 않았다
시집에 덧붙인 친구 강처중의 발문 중 일부다. “동주도 친구들에게 굳이 거부하는 일이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동주 자네 시 여기를 좀 고치면 어떤가’ 하는데 대하여 그는 응하여 주는 때가 없었다. 조용히 열흘이고 한 달이고 두 달이고, 곰곰이 생각하여 시(詩) 한 편을 탄생시킨다. 그때까지는 누구에게도 그 시를 보이지를 않는다. 이미 보여주는 때는 흠이 없는 하나의 옥(玉)이다. 지나치게 그는 겸허 온순하였건만, 자기의 시만은 양보하지 않았다.” *육첩방: 3평 정도의 일본 다다미방
윤동주를 만나는 다양한 방법
윤동주문학관(서울 청운동)
윤동주는 연희전문학교 재학 시절 종로구 누상동에서 하숙 생활을 했는데, 이런 인연으로 종로구에서 2012년 인왕산 자락에 버려진 수도 가압장과 물탱크를 개조해 윤동주문학관을 만들었다. 윤동주의 작품과 일대기 영상 등 다양한 자료를 전시하는 이곳은 재생 문화 공간으로 호평받고 있다.
연세대학교 핀슨홀 윤동주 기념실(서울 신촌동)
1938년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한 윤동주는 기숙사 핀슨홀에서 2년간 생활하며 시를 썼다. 지금 이곳엔 그 시절 흔적을 모아놓은 윤동주 기념실이 있다. 당시를 재현한 시인의 책상과 육필 원고, 사진 자료 등을 볼 수 있다.
영화 <동주>
일제강점기, 평생을 함께한 친구이자 라이벌이었던 윤동주와 송몽규의 삶을 담았다. <왕의 남자> 이준익 감독 작품으로 윤동주를 연기한 배우 강하늘의 호연이 돋보인다. 개봉 당시 117만 명 관객을 동원해 저예산 영화로는 큰 성공을 거뒀다.
그림책 <소년>(보림)
‘가만히 하늘을 들여다보려면 눈썹에 파란 물감이 든다.’ 윤동주의 시 ‘소년’이 한 권의 그림책으로 탄생했다. 작가 이성표는 “마음에 소년을 품은 사람들. 중년의 사내들에게 소년을 선물하고 싶다”고 말했다.
창작 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
윤동주의 생애와 작품을 음악, 노래, 춤과 극에 담았다. 2012년 초연부터 관객과 평단 모두에게 호평받은 작품으로 이번이 네 번째 공연. 높은 완성도가 기대된다.
참고 도서 현대어판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더스토리), 초판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소와다리), <윤동주 시의 이해>(고려대학교 출판부), <윤동주 평전>(서정시학) 사진 연합포토, 연세대학교 대외홍보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