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환상을 선물하는 영원한 피터팬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1946~)

2010-03-01     DEN(덴)
1986년 40세.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BAFTA) 무대에 선 스티븐 스필버그 

 

나는 밤에만 꿈꾸는 것이 아니라 

하루 종일 꿈을 꾼다.

-스티븐 스필버그-

8mm 카메라로 영화 감독을 꿈꾼 문제아

컴퓨터 기술자인 아버지와 피아니스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과학과 감성을 고루 갖춘 아이로 자란 스티븐 스필버그. 학교 공부보다 장난을 더 좋아하고 고등학교 내내 낙제점을 받은 문제아로 학교에서도 매번 괴롭힘을 당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12세에 아버지로부터 받은 8mm 카메라를 통해 렌즈 너머의 세상을 발 견한 후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은 영화 감독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

 

1947년 1세.

영화적 감각으로 전교 스타가 되다

학교에서는 지진아로 통했지만 영화를 만들 때만큼은 거침이 없었던 스필버그. 이 고등학생 아마추어 영화감독은 동네 병원과 활주로를 폐쇄해가며 아무도 못 말릴 만큼 카리스마 넘치는 감독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렇게 만든 습작이 청소년 대상의 영상 페스티벌을 석권하는가 하면, 16세에 만든 첫 장편영화를 동네 극장을 빌려 상영해 하루 만에 500달러를 벌어들이는 등 영화적 천재성을 발휘했다.

Episode 1. 어제의 적을 오늘의 동지로 만든 영화의 힘

스필버그는 어릴 때 덩치 큰 아이에게 늘 얻어맞으면서 지냈다. 그때 ‘이길 수 없으면 타협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그는 자기를 때리는 아이에게 자신이 만드는 영화의 주인공 역할을 제의했고 그 결과 둘은 가장 친한 친구 사이가 되었다. 하지만 스필버그의 영화 <백 투 더 퓨처>(1985년)에 등장하 는 깡 패 소년이 스필버그를 때리곤 하던 아이를 본뜬 것이라  하니 마음의 상처는 여전히 남은 모양.

 

1975년 29세.
새로운 특수효과를 통해 상상 속 장면을 실감나게 스크린 위에 구현해냈다고 평가받는 영화 [죠스]. 이 영화를 통해 스필버그는 무명의 가능성 있는 감독에서 할리우드 최고의 흥행 감독으로 거듭났다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의 비공식 영화 수업

스필버그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대학에 진학했지만 여전이 영화에 대한 열정은 식을 줄 몰랐다. 학교 수업을 2일에 몰아서 듣고 나머지 시간에는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출근하다시피 했다. 히치콕 같은 거장 감독의 촬영을 구경하며 비공식적인 ‘영화 수업’을 받은 셈. 22분짜리 단편영화 <앰블린>(1968년)이 베니스 영화제와 애틀란타 영화제에서 수상하며 유니버설 영화사의 중역들의 눈길을 끌었고 20세에 정식 감독으로 계약을 맺는다. 스필버그가 1984년 동료들과 설립한 자신의 프로덕션 ‘앰블린 엔터테인먼트’의 사명이 여기서 비롯됐다고. 

 

Episode 2. 스필버그에게 3번이나 낙방의 아픔을 준 USC영화학교

영화를 공부하고 싶었던 스필버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영화학의 명문으로 잘 알려진 USC(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영화학교에 지원하지만 떨어지고 대신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영문과에 진학한다. 포기하지 않고 편입을 준비하지만 세 차례나 입학을 거부당해 USC와의 인연은 없어 보였다. 그가  유명해진 이후에야  USC 측은 그에게 명예 학위를 수여하고 학교 이사장 으로 선임하며 그간의 설욕을 풀어주었다.

 

 

1982년 36세.

 

영화를 만드는 것은 그에게 놀이와도 같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지구상의 그 누구보다도 

내게 신선한 자극을 주는 사람이다.

-마이클 잭슨-

자신의 흥행기록을 스스로 뒤집은 흥행술사

<죠스>를 시작으로 스필버그는 흥행의 마술사로 거듭나기 시작한다. <미지와의 조우>, <인디아나 존스>, <E.T.>, <쥬라기 공원> 등 만드는 영화마다 흥행에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세운 흥행 기록을 자신이 갱신한다. 스필버그는 엉뚱한 상상력을 재미있는 이야기로 풀어나가는 힘을 가진 천부적인 ‘이야기꾼’으로서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Episode 3. 어린 시절의 경험을 영화에 녹여낸 스티븐 스필버그

어린 시절 그는 학교에 가는 게 싫어 온도계를 전등에 달구는 방법으로 열이 높은 것처럼 꾀병을 부리곤 했다. <E.T.>에서 꼬마 주인공 엘리어트가 써먹었던 수법이 사실은 스필버그의 실제 경험담. <그렘린>에 등장하는 어지럽혀진 방, <백 투 더 퓨처>에 등장하는 깡패 소년 역시 어린 시절의 경험을 그대로 영화에 반영한 것이다. 

 

Episode 4. 영원한 피터팬, 스티븐 스필버그와 마이클 잭슨

<E.T.>를 40번이나 보고, <죠스>를 100번이나 보았다는 마이클 잭슨은 스티븐 스필버그의 열혈 팬임을 자처했다. 1984년 함께 영화를 만들며 휴가를 보낸 적도 있었던 절친한 두 사람의 공통점은 ‘피터팬 신드롬’이 아닐까? 스필버그 역시 “나는 늘 스스로가 피터팬이라고 느낀다”고 고백했을 만큼 환상과 모험을 사랑한다. 60세가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비디오 게임을 즐기는 아이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2002년 56세.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 촬영장
최근 스필버그와 여러 작 품에서 호흡을 맞추며 그의 페르소나로 손꼽히는 톰 크루즈. 스필버그는 배우뿐 아니라 영화 스태프들도 항상 같은 멤버들과 작업하기를 좋아하는 의리남이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신화는 현재진행형

흥행을 위주로 하는 정통 할리우드 영화제작 스타일 때문에 스필버그는 예술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성장하기를 거부한다는 비평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쉰들러 리스트>가 오스카의 선택을 받으면서 그런 오랜 비평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흥행 면에서도 대성공을 거둠으로써 평단과 대중의 사랑을 동시에 받는 거장 감독으로 자리매김한다. 그는 여전히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를 연출하는 흥행술사이면서 동시에 <라이언 일병 구하기> 같은 영화를 만드는 진지한 작가다. 2007년에는 <타임>지가 선정한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이름을 올리며 사회 전반에 영향을 끼치는 거장으로도 인정받았다. 다른 감독들은 은퇴할 나이지만 스필버그는 <틴틴의 모험> 시리즈를 기획하는 등 미래의 영화 계획들을 차곡차곡 진행시키는 ‘가장 기대되는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1987년 41세.
영화 [태양의 제국] 촬영장유치한 어린이용 영화만 만든다는 비판에 정면으로 반박하기 위해 만든 영화. 태평양전쟁을 배경으로 한 소년의 성장 과정을 그렸다.
Episode 5. 스탠리 큐브릭이 직접 감독을 부탁한 영화 <A.I>

영화 <A.I.>(2001년)는 본래 영화계의 거장 감독 스탠리 큐브릭이 1983년부터 구상해온 프로젝트로 많은 영화인들이 기다리던 작품이었다. 

그러나 화려한 테크닉과 완벽주의로 유명한 큐브릭 감독은 본인보다 스필버그의 따뜻하고 섬세한 감성이 더 어울릴 것이라고 판단, 감독권을 스필버그에게 넘겨주게 된다. 1999년 큐브릭이 타계한 이후 그가 생전에 구상한 내용 위에 스필버그의 상상력을 더해 완성한 <A.I>는 개봉당시 ‘최근 할리우드 영화 중 가장 야심찬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1992년 46세.

 

어떤 것이든 완벽하지 않으면 만족하지 않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열정은 바로 꼬마의 

순수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로이 샤이더(영화 <죠스>의 배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