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과 유혹의 탱고
격정과 애감을 절절하게 노래하며 사람의 마음을 어루지는 선율. 탱고는 음악이자 춤이며, 3분짜리 이야기다.
탱고의 발생지, 부에노스아이레스
1880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보카 항구. 오랜 항해 끝에 항구에 도착한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채 배에서 내렸다. 이들은 대부분 가난한 이탈리아의 남부와 남프랑스에서 온 남자들이었다.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찾아온 약속의 땅 신대륙. 일단의 사람들은 미국 뉴욕항으로 향했고, 또 일부는 이렇게 남미 아르헨티나로 몰려들었다. 그 당시 아르헨티나는 새로운 도시 건설에 여념이 없었다. 수도를 ‘좋은 공기’라는 뜻의 부에노스아이레스(Buenos Aires)로 정하고 유럽 이주민들을 받아들였는데 이때 대거 몰려온 이들이 이탈리아인이었다.
이탈리아 이민자들의 유혹의 노래, 탱고
이민 온 이탈리아 남자들에게 주어진 일은 아르헨티나의 특산품인 스테이크를 자르고 바르는 정육 일이었다. 이탈리아에서 빈둥거리며 지내던 남자들에게 이 노동은 너무나 고되었고 부모와 애인이 있는 정든 고향으로 돌아가고픈 향수를 더욱 자극했다. 그래서 외로움과 슬픔을 달래려 보카 항구에 늘어선 술집과 홍등가를 드나들게 된다. 이들은 이 홍등가에서 인신매매로 팔려온 여인들 과 어울렸는데 남자에 비해 현격히 적은 여자들을 놓고 칼부림까지 일어날 정도였다. 이 보카의 선술집에서 남자와 여인들은 함께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다. 바로 이것이 쿠바의 무곡 하바네라(탱고의 리듬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침)와 우루과이 내륙 팜파 지역 인디오들의 느릿한 민속 음악인 밀롱가에 뿌리를 둔 탱고였다.
탱고 리듬의 음악은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숨겨진 성격,
아르헨티나 민족을 이루는 다양한 유랑민들의 향수라고도 할 수 있는
우울함을 표현한다.
- 홀리오 데 카로(탱고 밴드 리더) -
탱고의 왕, 카를로스 가르델
탱고 최초의 세계적인 슈퍼스타는 프랑스 마르세유 출신의 카를로스 가르델(Carlos Gardel)이었다. 갱 출신이었던 싱어송 라이터 가르델은 주옥같은 가사를 쓴 알프레도 레 페라와 파트너를 이뤄 ‘포르 우나 카베자(영화 <여인의 향기>의 주제곡)’ 등 아르헨티나인들의 삶의 애환을 달래주고 심금을 울리는 명곡을 끊임없이 발표했다. 그는 아르헨티나와 남미뿐만 아니라 아메리칸드림의 꿈을 품고 미국으로 이주한 히스패닉들의 진정한 영웅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가르델은 최고 전성기를 누리던 서른일곱 나이에 비행기 추락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지금도 아르헨티나인들은 아바스토(Abasto) 시장에 위치한 가르델의 동상을 찾아 그를 기린다.
독특한 음색의 악기 ‘반도네온’의 등장
초기 탱고는 갖고 다니기 편리한 기타, 바이올린, 플루트, 아코디언 등으로 연주되었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1890년대에 새로운 악기가 도입된다. 바로 탱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에스프레소 같은 진한 음색의 ‘반도네온(Bandoneon)’이다. 독일의 프리드리히 반트(Friedrich Band)가 오르간을 대체할 교회용 악기로 만들었던 반도네온은 아일랜드 뱃사람들에 의해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상륙하게 된다. 가장 유명한 탱고 작곡가이며 탁월한 반도네온 연주자인 아스토르 피아졸라(Astor Piazolla)는 반도네온을 이렇게 설명했다. “아코디언은 신맛이 나는 날카로운 소리를 낸다.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악기다. 반면 반도네온은 벨벳 같은 소리, 종교적인 소리를 낸다. 슬픈 음악을 연주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경쾌하면서도 애잔한 반도네온의 음색이 아르헨티나 탱고 자체의 성격을 변화시키게 된 것이다.
탱고는 ‘영원한 전통이라는 법칙’ 에 갇힐 수 없다.
이제 전형적인 탱고를 버릴 때가 온 것이다.
- 아스토르 피아졸라 -
새로운 탱고(Nuevo Tango)의 기수, 아스토르 피아졸라
30~40년간 똑같은 리듬과 비슷한 음악으로 각광받으며 춤춰오던 탱고는 1960년대에 들어서자 젊은 세대들에게 외면을 받게 된다. 이에 대해 피아졸라는 “로큰롤의 세계적 대유행에 따라 청년들은 전통 탱고를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비틀스의 등장은 탱고에게 죽음을 선언하는 것과 같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탱고가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클래식적이며 다변화된 감상용 탱고를 작곡하기 시작했다. 탱고 악기에 전자 기타를 도입하고 반도네온 협주곡을 만드는 등 모두가 반대하며 폭력수단까지 동원해 저지하려 했던 피아졸라의 이 외로운 탱고 개혁은 결과적으로 젊은 세대를 탱고로 돌아오게 만들었다. 탱고의 아방가르드를 이끌었던 피아졸라 덕분에 탱고는 오늘날 전 세계인들이 즐기고 사랑하는 열정의 음악이 되었다.
매혹의 춤, 탱고
탱고(Tango)는 ‘만지다, 가까이 다가서다’라는 뜻의 라틴어 ‘Tangere’와 ‘맛보다’는 뜻의 ‘Gusto’, ‘마음을 움직이다’라는 뜻의 ‘Movere’가 합쳐진 말이라고 한다. 그래서 탱고를 추는 남녀는 맞잡은 두 손을 놓는 법이 없다. 서로 다리를 교차하면서 몸의 균형을 잡는 것이 탱고의 기본으로 모든 동작은 두 몸이 한 몸으로 겹쳐지도록 짜여진다. 꼭 맞잡은 손, 서로 엇갈린 다리, 밀착된 가슴과 상대방을 갈구하는 시선은 다른 어떤 춤의 형태보다도 관능적이고 열정적이다.
말이나 그림으로서 보여지는 세상과는 다르다.
모든 감정과 느낌이 몸짓과 꼭 잡은 손목의 비틀림, 발바닥의 재빠른 스텝, 그리고 서로 맞댄 어깨의 선을 통해 또 하나의 세상을 보여준다.
- 루이스 브라보 -
추천 탱고 음반 리스트
세계 오페라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는 아르헨티나 테너 마르셀로 알바레스가 가르델의 탱고를 부른 앨범. 리릭 테너의 멋스러운 ‘포르우나 카베자’, ‘라 쿰파르시타’ 등 모두 가르델과는 색다른 탱고 칸시온(노래)의 맛에 빠져들게 한다. 특히 합성한 가르델과 알바레스의 2중창 ‘내 사랑 부에노스아이레스’도 망향의 정에 빠져들게 한다.
탱고의 역사를 알고 싶다면? 또 탱고가 과연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바로 이 영화, 랄로 쉬프린이 음악을 맡은 카를로스 사우라 감독의 <탱고>를 봐야 한다. 탱고의 변천사는 아르헨티나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 탱고의 여러 명작곡가들의 곡이 다양한 편곡으로 담겨 있다. 가르델과 피아졸라밖에 모른다면 이 앨범을 꼭 들어볼 것.
탱고 음악과 세계 음악사의 물꼬를 바꾼 피아졸라의 혁명적인 탱고 앨범 3부작 중 하나인 <거친 댄서와 순환하는 밤>. 그중에서도 이 앨범은 탱고 초기의 홍등가에서 벌어졌던 이민자들, 푸주한과 창녀들의 삼각관계 등을 통해 탱고 초기의 모습을 그의 시선으로 재현해내고 있다.
오페라를 만들고 싶었던 피아졸라의 열망은 아르헨티나의 건국과 탱고 초기의 역사를 판타지와 신화가 있는 오페레타로 완성시킨다.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지키는 수호천사 마리아의 환생과 영혼, 악마의 등장이 이 작품의 문학성을 높여준다.
아스토르 피아졸라의 음악을 오늘날 전 세계 클래식 아티스트들이 앞다투어 연주하도록 레퍼토리한 일등공신은 바로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다. 피아졸라에게 바치는 헌정 앨범으로 그의 최고 베스트 명곡들만을 클래식적으로 편곡한 기념비적인 앨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