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의료 기술의 날개가 되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만큼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기 위해 AI 사용을 제한하자는 목소리가 거세다.
그럼에도 분석과 진료 보조 역할로 AI만 한 훌륭한 도구가 없다.
의료 분야의 AI 활용은 다른 분야와 달리 그 시작부터 한계를 지녔다. 기본적으로 생명을 다루는 분야이기 때문에 책임 소재가 명확해야 한다. 주체적인 AI 기술을 활용할 수 없는 이유다. 또 AI기술은 데이터 수집이 핵심인데, 각 나라마다 의료법이 달라 AI를 어디까지 활용할지도 다르다. 여러 한계점을 두고도 의료 AI 시장은 폭발적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AI 기술 특유의 가능성은 다른 분야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데이터 수집의 한계
의료 분야는 쇼핑이나 검색과 달리 전 세계가 공통된 데이터를 사용할 수 없다. 각 나라마다 국민의 유전형질이 다르고 건강 정보가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외국인들의 건강 정보를 활용한 AI를 국내에 그대로 적용하기에 무리가 있다. 그래서 다른 분야와 달리 의료 AI는 해외보다 자국민들의 건강 데이터를 활용한 자체 개발 AI가 중요하다. 물론 해외 AI 동향이 참고가 될 수 있겠지만 이를 활용하려면 해당 지역 구성원들의 데이터를 학습하는 것이 중요하다. 같은 이유로 세계 각국은 해외에서 등장한 AI가 자국민의 건강 데이터를 수집하고 활용하는 데 아주 민감하다. 그래서 의료 분야에서는 이 같은 데이터의 AI 활용이 지극히 제한되는 경우가 많다.
활용 제한에도 급성장하는 의료 AI 시장
이런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의료 AI는 아직까지 한정된 분야에서 활용된다. 지금까지 등장한 의료 AI는 주로 의사의 진료를 돕는 보조 도구 및 분석 도구로 쓰인다. 오픈AI의 대화형 AI ‘챗GPT’처럼 AI가 전면에 나서서 일을 주도할 수 없다. 즉 각국 규제와 법 체계 때문에 AI가 의사를 대신해 진료 행위를 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의료기관은 AI 도입에 관심이 많아 세계시장이 급속도로 커질 전망이다. 시장조사업체 프리시던스 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의사의 진료를 돕고 결과 분석 등을 하는 의료 AI의 전 세계 시장 규모는 2022년 10억7000만 달러(약 1조4700억원)에서 10년 만인 2032년에 217억 달러(약 29조7800억원)로 20배 가까이 급성장할 전망이다.
IT업계 공룡들의 의료 AI
따라서 전 세계 유명 정보기술(IT) 기업들은 모두 의료 AI 개발에 뛰어들었다. 구글은 구글 클라우드를 통해 의료 분야의 대화형 AI ‘메드팜2’를 개발했다. 메드팜2는 생성형 AI가 확보한 데이터를 토대로 학습해 의료 분야와 관련한 질문을 던지면 답을 해준다. 미국 메이요 클리닉이 의료진 교육을 위해 메드팜2를 도입해 활용하고 있다. 네이버에서도 AI가 환자들의 상담 내용을 의학적으로 자동 기록하는 ‘스마트 서베이’를 개발했다. 스마트 서베이는 환자들의 상담 내용을 의료 용어로 자동 변환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메타는 ‘ESM 폴드’라는 AI를 개발해 질병 치료제 개발을 위해 단백질 구조 분석 및 예측 등에 활용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세계적 제약회사 노바티스와 함께 2019년 ‘AI혁신연구소’를 세워 AI를 활용한 신약 연구를 하고 있다. 애플도 스마트워치인 ‘애플워치’로 확보한 이용자의 심전도 등 건강 데이터를 활용해 건강관리를 조언하는 AI ‘쿼츠’를 개발하고 있다.
AI로 신약 개발 기간을 단축하다
세계적인 제약 회사들도 신약 개발 기간과 비용을 줄이기 위해 AI 활용에 적극적이다. 얀센은 영국의 AI 스타트업 베네볼렌트와 손잡고 AI를 이용한 난치성 표적 신약 개발에 뛰어들었다. 머크도베네볼렌트와 엑스사이언티아 2개사에 투자한 데 이어 아톰와이즈와 협업해 AI로 에볼라 치료제용 후보 물질을 찾아냈다.
국내 제약업체 중에서는 대웅제약이 AI를 이용한 신약연구팀을 꾸렸고, 유한양행은 항암제 연구를 위해 AI 스타트업 아이젠사이언스와 손잡았다. SK케미칼 AI 스타트업과 함께 간염 및 폐섬유증 치료를 위한 후보 물질을 개발했다.
치료약 효과를 높이는 AI 기술
서울대학교 의대 출신 의사 4명이 설립한 스타트업 포트레이는 AI로 생체 정보를 분석해 신약 개발을 돕는 일을 한다. 이들이 AI로 분석하는 것은 공간전사체다. 공간전사체는 인체 조직의 위치 정보를 알려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편 배달을 위한 번지수 같은 것이다. 따라서 인체 내 공간전사체를 알면 암세포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그만큼 치료약을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어 치료 효과를 높일 수 있다. 이 업체가 개발한 AI는 공간전사체를 분석해 암 세포를 추적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와 함께 약물을 암세포에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한 신약 물질도 AI로 개발한다.
의료 AI, 아직 갈 길이 멀다
이처럼 다양한 분야에서 의료 AI가 활용되고 있지만 넘어야 할 산이 아직 많다. 가장 큰 문제는 AI를 이용한 진료 행위의 책임 소재다. AI의 도움을 받아 진료를 했는데 문제가 발생하면 의사, 병원, AI 개발업체 사이에 책임 문제가 대두할 수밖에 없다. 그만큼 환자의 건강과 생명이 달린 문제여서 다른 분야와 달리 의료 분야는 영상 판독이나 데이터 분석, 추적 등 제한된 영역 외 진료 전반으로 AI를 선뜻 확대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 이를 해결하려면 AI 진단에 대한 명확한 검증 및 국가 인증 체계 등 제도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AI가 찾아내는 질병
폐질환
국내에서는 AI 스타트업들이 암 진단을 위한 의료 영상 분석 등에 적극 나서고 있다. 대표적인 기업이 루닛이다. 의사들이 설립한 이 업체가 개발한 AI ‘루닛인사이트’는 방사선 촬영이나 컴퓨터단층촬영(CT) 영상 등을 AI가 분석해 폐암 징후 등을 찾아낸다. 특히 육안으로 확인하기 힘들 정도로 작은 크기의 이상 징후까지 발견해 의사의 진단을 돕는다. 앞으로 이 업체는 전신 암 진단까지 가능한 AI를 개발할 계획이다.
딥노이드가 개발한 ‘딥AI’도 흉부 방사선 촬영 사진과 뇌 자기공명혈관촬영(MRA) 영상 등을 분석해 의료진의 판독을 보조한다. 코어라인소프트 역시 흉부와 두경부의 CT 영상을 분석하는 다양한 AI 솔루션을 갖고 있다. 특히 ‘에이뷰 LCS 플러스’ 솔루션은 폐결절, 폐기종, 관상동맥석화 현상 등을 AI로 찾아낸다. 코어라인소프트는 AI 솔루션을 앞세워 독일, 이탈리아 등 유럽 5개국이 공동 진행하는 유럽 폐암 검진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고 있다.
뇌질환
제이엘케이는 뇌 촬영 영상 분석에 특화한 AI업체다. 이 업체는 CT와 MRA 등 각종 의료 촬영 장치로 찍은 영상 데이터를 AI로 분석해 뇌출혈, 뇌경색, 뇌동맹류, 치매 등 뇌와 관련된 다양한 질환을 분석한다. 이를 위해 이 업체는 한국인 뇌MR영상데이터센터와 독점계약을 맺고 센터가 10년간 확보한 140만 장 이상의 뇌 영상 데이터를 활용해 AI를 개발했다.
치매 진단을 위해서도 AI가 쓰인다. 한국전기연구원 전기의료기기연구단은 노인들의 언어, 뇌파 등을 수집 분석해 AI가 알츠하이머 징후를 찾아내는 AI를 개발했다. 연구팀은 100여 명을 대상으로 AI 실증 실험을 진행한 결과 6명의 경도인지장애 환자 및 7명의 의심 대상자를 선별했다.
심장질환
뷰노는 AI를 이용한 심전도 측정 의료 장치 ‘하티브 P30’을 개발했다. 이 장치는 AI가 이용자의 심전도를 분석해 심방세동, 빈맥 등 이상 징후를 찾아낸다. 이 업체는 의료 AI의 해외 진출을 위해 올해 초 일본 최대 의료 정보 업체 M3와 함께 일본에서 의료 AI 전문 스타트업 M3 AI도 설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