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몰랐던 테트리스의 모든 것

2024-08-15     김보미 에디터

마흔 살이 된 테트리스, 그 블록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

ⓒ unsplash

오락실 제왕의 탄생

1984년 6월 6일, 소련 과학 아카데미에서 근무하던 프로그래머 알렉세이 파지트노프가 컴퓨터의 성능을 시험하기 위해 퍼즐 게임을 프로그래밍하는 과정에서 테트리스가 탄생했다. 냉전시대 소련에는 개인용 컴퓨터를 가진 사람이 많지 않았지만, 테트리스는 소수의 컴퓨터 이용자와 프로그래머 사이에 조용히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당시 컴퓨터 이용자들은 플로피디스크에 게임을 복사해 가며 테트리스를 플레이했다고 전해진다.

 

저작권 분쟁의 시작

공산국가 소련은 개인의 지적재산권을 인정하지 않았고, 테트리스의 저작권은 소련에서 관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디스크에 복제된 테트리스 사본이 국경을 넘어 동구권 국가로까지 퍼져나간다.

1986년, 헝가리 출신 소프트웨어 유통업자 로버트 스타인은 헝가리에서 테트리스의 사본을 접하고 게임의 상업적 잠재력을 발견한다. 테트리스를 서양에서 컴퓨터게임으로 판매하기를 원한 그는 알렉세이 파지트노프와의 협의가 제대로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테트리스 라이선스를 영국과 미국의 소프트웨어 회사인 미러 소프트와 스펙트럼 홀로바이트에 판매했고, 이후 테트리스를 둘러싼 기나긴 저작권 분쟁이 시작된다.

미국은 물론 유럽에서도 테트리스는 선풍적 인기를 끈다. 로버트 스타인은 모스크바를 방문해 정식 계약서에 서명을 받으려고 시도하지만 협상이 계속해서 결렬된다. 결국 그는 1988년에야 컴퓨터 버전에 한해 소련 정부와 서면 계약을 체결한다. 그러나 로버트 스타인으로부터 라이선스를 산 영국의 미러 소프트는 미국 게임 회사 아타리 게임즈에 콘솔 버전의 라이선스를 판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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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의 장막 넘은 사각 블록

한편 일본에서 게임 회사를 운영하던 헹크 로허르스는 1988년 라스베이거스  에서 열린 가전 박람회에서 테트리스를 본 후 아타리 게임즈에 접촉해 일본에서 홈 비디오 게임기 버전의 테트리스를 판매하기 시작한다. 뒤이어 닌텐도의 휴대용 게임기 ‘게임보이’ 버전의 라이선스 취득을 위해 직접 소련으로 향한 헹크 로허르스는 그가 일본에서 판매 중인 테트리스를 선보이지만 예상대로 반응은 차가웠다. 소련은 당초 컴퓨터 버전을 제외한 라이선스를 다른 곳에 내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헹크 로허르스는 테트리스의 저작권을 보호하기 위한 새로운 파트너가 필요하다며 소련을 끈질기게 설득했다. 그 자리에 동석한 알렉세이 파지트노프는 헹크 로허르스가 사업에 대해 높은 이해도를 갖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일주일 뒤 헹크 로허르스는 게임보이 버전의 테트리스 라이선스를 취득, 테트리스를 닌텐도 게임보이에 탑재하는 데 성공한다.

 

다시 원작자의 품으로

세계적으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지만 소련 정부가 테트리스 판권을 소유하고 있어 알렉세이 파지트노프는 로열티를 지급받지 못했다. 소련 붕괴 이후에야 저작권을 돌려받을 수 있었지만, 이 역시 바로 수익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1996년 미국으로 건너가 ‘테트리스 컴퍼니’를 설립한 그는 테트리스를 전 세계 국가에 등록상표로 규정하고, 테트리스 컴퍼니와 계약 없이 게임을 서비스하는 곳을 찾아 서비스 중지를 권고했다. 그 여파로 한국에서도 2000년대 초중반 테트리스 게임 서비스를 중단하는 업체가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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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게임

1989년 테트리스는 닌텐도 게임보이용으로 발매된 후 3500만 장의 판매고를 올린다. 이는 게임보이용 게임 중 가장 많은 판매량이다. 판매량 2위를 기록한 ‘포켓몬스터: 레드·그린’과는 1만 장 가까이 차이가 난다. 테트리스 컴퍼니는 지금까지 5억 2000만 장이 넘는 테트리스를 판매했다고 밝혔다. 테트리스 사본은 7억 장 이상 판매된 것으로 집계된다.

 

테트리스에 ‘반드시’ 들어가는 BGM

테트리스는 배경음악에도 여러 버전이 있다. 테트리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음악은 아마도 아타리 게임즈의 자회사에서 발매한 테트리스 BGM일 것. 여기에 삽입된 곡인 ‘칼린카’는 기존 러시아 민요를 편곡한 것이고, ‘브래딘스키’는 작곡가 브래드 풀러가 작곡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식 라이선스로 출시된 닌텐도 게임보이 테트리스에 삽입된 곡은 러시아 민요 ‘코로베이니키(행상인의 노래)’다. 단순한 선율이 반복되며, 테트리스 블록이 떨어지는 속도가 빨라지듯 곡 템포가 조금씩 빨라지는 것이 특징이다. 테트리스 컴퍼니가 배포한 가이드라인에는 공식 라이선스를 받은 테트리스 게임을 만들 때 반드시 이 곡을 포함해야 한다는 규정이 명시돼 있다. 이렇게 ‘코로베이니키’는 전 세계인의 뇌리에 ‘테트리스 음악’으로 각인됐다.

 

테트리스 개발에 KGB가 연루돼 있다?

미국에서 테트리스가 선풍적 인기를 끌면서 ‘소련 정보기관 KGB가 미국인의 업무 능률을 저하시켜 미국과의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테트리스를 의도적으로 배포했다’는 ‘KGB 음모설’까지 제기됐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1989년경 소련 붕괴가 시작되면서 이는 단순한 루머로 판명 났다.

 

테트리스 레벨 157단계에 도달한 모습. ⓒ CNBC

테트리스, 뇌 건강에 효과 있을까?

2009년, 미국 신경과학자 리처드 하이어 박사는 테트리스가 두뇌 효율을 높이는 데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테트리스를 플레이하도록 한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을 대상으로 자기공명영상을 촬영한 결과, 테트리스를 플레이 한 집단에서 실험 전에 비해 적은 노력으로도 테트리스의 어려운 단계를 풀어내 두뇌 효율성이 높아졌다는 것. 그뿐 아니라 2017년에는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와 스웨덴 카롤린스카 연구소가 테트리스가 PTSD를 줄이는 데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시각 정보를 요구하는 테트리스 게임이 나쁜 기억을 머릿속에 저장하는 것을 방해한다’는 것이 연구진의 설명이다.

 

테트리스 ‘끝판왕’ 등장

이론적으로 게임이 영원히 지속될 수는 있지만, 블록이 떨어지는 속도가 점차 빨라지기 때문에 인간이 테트리스를 계속 플레이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특히 레벨 29에서는 블록이 떨어지는 속도에 맞춰 이동 키를 누르기가 매우 어렵다. 출시 이후 20년간 레벨 29가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 단계로 인식돼 온 이유다. 이후 개발자들이 인공지능을 이용하는 등의 방식으로 기록을 경신해 왔는데, 2023년 12월 13세 미국 소년이 소프트웨어 조작 없이 레벨 157에 도달하며 기록을 다시 썼다. 코딩의 한계로 화면이 정지되는 ‘킬 스크린’이 뜨면서 이 소년은 닌텐도 버전의 테트리스 게임을 마지막 단계까지 정복한 최초의 인간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