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으로 들어온 자율주행
꿈의 기술로 꼽히던 자율주행이 생활 속으로 성큼 들어왔다.
교통 서비스의 판도를 바꿀 자율주행에 대해 자세히 알아본다.
“앗, 운전대를 놓으면 어떻게 해요!”
늦은 밤 택시를 탄 A씨는 깜짝 놀라 소리쳤다. 택시가 출발하는데도 기사가 운전대를 잡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기사는 당황하지 않고 걱정하지 말라며 웃었다.
“자율주행택시라서 괜찮아요.”
공상과학(SF) 영화 속 한 장면이 아니다. 지난 9월 26일부터 서울 강남 일대 자율주행자동차 시범 운행 지역에서 자율주행택시가 달리고 있다. 서울시와 카카오모빌리티가 자율주행택시의 시범 운행을 시작한 것이다. 운행 시간은 평일 밤 11시부터 다음 날 오전 5시 사이이고, 운행 지역은 현재 서울 역삼동, 대치동, 서초동이다.
시범 운행인 만큼 요금은 받지 않는다. 자율주행택시를 타려면 스마트폰용 택시 호출 앱 ‘카카오T’를 통해 호출하면 된다. 출발지와 목적지를 시범 운행 지역 안에서 설정하면 부를 수 있는 자율주행택시가 표시된다.
그러나 자율주행이라고 해서 운전자가 없는 것은 아니다. 유사시 안전을 위해 운전자가 반드시 탑승하지만 기본 주행은 자동차가 스스로 알아서 한다. 운전석에 앉은 운전자가 운전대와 페달을 조작하지 않아도 자동차가 저절로 달리고 멈추며 방향지시등을 켜고 회전한다. 단, 자율주행이 금지된 어린이보호구역에서는 운전자가 직접 운전해야 한다. 이때 자동차는 수동 운전을 요청하며 작동을 운전자에게 맡긴다.
시범 운영에 투입된 자율주행택시는 모두 세 대다. 그만큼 쉽게 타기는 힘들다. 서울시는 시범 운영 상황을 보고 2025년 상반기까지 운행 지역을 서울 논현동, 신사동, 압구정동, 대치동으로 확대하고 요금도 유료로 전환할 계획이다.
그런가 하면, 아예 운전대와 페달이 없는 택시도 등장했다. 전기자동차를 만드는 미국 테슬라는 운전석에 사람이 앉을 필요 없는 완전무인자율주행택시 ‘사이버캡’ 시제품을 10월 10일 공개했다. 사람 대신 인공지능(AI)이 택시를 운전해 ‘로보 택시’로 부른다. 그 바람에 운전석에서 운전대와 페달이 사라졌다. 오직 화면표시장치(디스플레이)와 의자만 설치됐다. 그만큼 AI 자율주행에 자신이 있다는 뜻이다.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는 2026년 말까지 사이버캡을 대량생산하겠다고 밝혔다. 가격은 한 대당 약 3만달러(약 4000만원) 미만으로 책정했다. 테슬라는 사이버캡뿐 아니라 자율주행으로 움직이는 버스 ‘로보밴’ 출시 계획도 발표했다. 로보밴은 최대 20명의 승객과 화물을 실어 나를 예정이다.
테슬라뿐만이 아니다. 구글 자회사 웨이모도 미국 일부 도시에서 자율주행택시의 상용 서비스를 시작했다. 또 중국검색업체 바이두도 중국 내 10개 도시로 자율주행택시 서비스를 확대했다.
총 6단계 자율주행
꿈의 기술로 꼽히던 자율주행이 생활 속으로 성큼 들어왔다. 자율주행은 말 그대로 운전자 없이 자동차가 스스로 알아서 도로를 달리는 것이다. 그러려면 자동차가 도로, 신호 등, 장애물 등 주변 상황을 스스로 인지해 판단한 뒤 자동차를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역할을 자동차에 장착하는 다양한 기기와 소프트웨어가 대신한다.
주변 인식은 영상 카메라와 라이더, 레이더 장치 등이 한다. 라이더(LIDAR, Light Detection and Ranging)는 초당 수백만 개 레이저 광선, 즉 빛을 발사해 주변 상황을 파악하는 장치이고, 레이더는 전파를 쏘아 주변을 탐지한다. 이렇게 탐지한 주변 상황을 판단해 자동차를 제어하는 것은 AI 등 소프트웨어의 몫이다. AI는 자동 운행과 첨단 운전자보조시스템(ADAS), 차선 유지 장치 등을 제어해 자동차를 운전한다.
흔히 오해하는 것 중 하나가 자율주행은 전기자동차만 가능한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자율주행에 필요한 각종 기기와 장치, 소프트웨어를 장착하면 전기자동차뿐 아니라 기존 내연기관 자동차도 자율주행이 가능하다.
자율주행은 미국자동차학회(SAE)에서 0부터 5단계까지 총 6단계로 구분한다. 0은 수동 운전을 말하며, 1단계와 2단계는 운전자를 보조하는 수준이다. 후진할 때 충돌 경보부터 장거리 운행 시 일정 속도와 차선을 유지하며 달리는 크루즈 컨트롤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3단계부터 사람들이 인식하는 자율주행에 해당한다. 자동차가 스스로 주행하며 특별한 상황에서만 운전자가 개입하는 것이다. 4단계는 고속도로 등 특정 구간에서 운전자가 없어도 되는 수준이며, 5단계는 모든 주행 환경에서 사람이 없어도 자동차가 알아서 판단하고 달리는 완전자율주행이다. 서울 강남에서 시범 운영하는 자율주행택시의 경우 3단계와 4단계 사이에 해당한다.
세계 곳곳에 도입되는 자율주행
자율주행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세계 곳곳에서 자율주행 기술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이미 전 세계 유명 자동차업체부터 구글, 테슬라, 마이크로소프트 등 거대 정보기술(IT) 기업까지 자율주행 개발에 뛰어들었다. 해외 시장조사업체 프레지던스 리서치는 전 세계 자율주행 시장이 2032년 2조3600억 달러(약 3190조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은 2011년부터 네바다, 미시간, 캘리포니아, 플로리다 등 30여 개 주에서 자율주행을 시범 운행하고 있다. 애리조나주는 2015년 세계 최초로 운전자가 동승하지 않는 무인자율주행 서비스를 승인했다.
더욱 의미심장한 것은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이 2022년부터 완전자율주행차에 수동 제어 장치를 의무적으로 장착하지 않아도 되도록 규정을 바꿨다. 즉 운전석에 운전대와 페달을 설치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테슬라가 사이버캡을 괜히 내놓은 것이 아니다.
중국도 자율주행 분야에서 빼놓을 수 없는 나라다. 중국은 2021년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우한 등 16개 도시를 자율주행 시범 도시로 지정해 자율주행차를 운영하고 있다. 특히 베이징, 충칭, 우한에서는 운전석에 사람이 타지 않아도 되는 4단계 수준의 완전무인자율주행택시 서비스를 허가했다.
우리나라에서도 4단계 수준의 완전무인자율주행 시험을 시작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6월 국내 최초로 무인 자율주행 시험을 허가해 국내 신생기업(스타트업) 라이드플럭스가 올해 안에 서울 상암동에서 무인 자율주행차를 시험운행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라이드플럭스는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에 자율주행 장치를 부착해 운전자가 운전석에 앉은 상태로 2개월, 이후 운전자가 보조석으로 이동한 상태에서 2개월, 다시 사람이 전혀 타지 않는 완전 무인 상태에서 3개월 등 총 7개월간 자율주행 시험을 할 계획이다. 완전무인자율주행 상태에서는 원격관제를 받는다. 자동차에 사람이 타지 않지만 멀리 떨어진 원격관제센터에서 차량의 주행 상태를 지켜보는 것이다. 원격관제를 하는 이유는 돌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서다. 갑자기 도로에 장애물이 나타나거나 차량에 이상이 발생하면 원격관제센터가 개입해 차량을 안전하게 정차시킨 뒤 원격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원격관제는 자율주행에서 중요하다. 일반 AI가 데이터로 학습해 진화하듯 자율주행차는 원격관제 상황을 학습해 진화한다. 따라서 원격관제 상황에 대한 데어터가 쌓이면 자율주행차도 진화해 원격으로 제어가 필요한 상황을 점차 줄일 수 있게 된다.
자율주행버스도 국내 일부 지역에 등장했다. 라이드플럭스가 정부 실증사업의 일환으로 올해부터 제주 중문단지와 첨단과학기술단지를 오가는 자율주행버스를 운행 중이다. 서울시의 자율주행택시처럼 카카오 모빌리티 앱에 출발지와 목적지를 입력하면 해당 구간을 자율주행버스가 달리는 방식이다.
왜 자율주행인가
자율주행은 교통 서비스를 근본적으로 바꿔놓을 수 있다. 완전무인자율주행이 실현되면 사람들이 자동차를 굳이 사지 않고 서비스를 이용하는 식으로 바뀔 수 있다. 즉 월정액을 내고 넷플릭스를 구독하듯 자율주행차를 구독하는 것이다.
구독 서비스를 우선 도입할 수 있는 분야는 승용차보다 버스, 트럭 등 상용차 분야다. 승객이나 화물을 실어 나르는 버스와 트럭은 최소 12시간에서 24시간 운행한다. 따라서 3교대 인력이 필요하다. 그렇다 보니 버스와 화물운송 서비스업체는 인건비 절감을 위해 자율주행 서비스를 도입할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버스와 화물트럭은 정해진 구간을 움직이는 특성이 있어 자율주행을 적용하기 쉽다.
따라서 업계에서는 무인 자율주행 적용 시기가 승용차보다 버스, 트럭 등 상용차 분야에서 더 빠를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국토교통부에서도 2~3년 내 상용차의 자율주행 서비스를 상용화한다는 계획이다. 여기에 맞춰 라이드플럭스 같은 자율주행 스타트업은 월별 이용료를 받는 구독형 자율주행 서비스를 구상하고 있다. 버스와 택시, 트럭 등 운송 서비스 회사에 자율주행 소프트웨어를 제공하고 구독료를 받는 것이다. 이를 위해 라이드플럭스는 일부 자동차 제조사와 손잡고 자율주행 장비를 장착한 상용차 제조를 준비하고 있다.
승용차 분야에서도 완전자율주행이 실현돼 구독형 서비스가 등장하면 도시의 여러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주차난이다. 승용차의 경우 하루에 차량이 달리는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주차 공간에 세워둔다. 사실상 세워놓기 위해 차량을 사는 셈이다. 따라서 자동차를 사지 않고 자율주행 서비스를 이용하면 그만큼 주차 공간이 필요없어 관련 비용을 줄이고 주차난도 해소할 수 있다. 그래서 라이드플럭스 창업자 박중희 대표 같은 일부 기업인은 자동차를 공공재로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동차를 소유하지 않고 필요할 때마다 호출해 이용하면 환경 문제부터 주차비, 보험료 등 이런저런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말한다. 또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음주운전부터 인지능력이 떨어지는 노인들의 운전 부주의로 발생하는 교통사고도 줄일 수 있다고 본다.
오작동, 해킹 등 넘어야 할 과제도 많아
하지만 자율주행이 넘어야 할 과제가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안전이다. 자율주행에서 최근 거론되는 안전 문제가 팬텀 브레이킹이다. 팬텀 브레이킹이란 자율주행차가 특별한 돌발 상황이 없는데도 갑자기 급정거하는 현상이다. 쉽게 말해 자율주행 장치가 착각을 일으키는 것이다. 현재 미국 도로교통안전국에서 팬텀 브레이킹 현상에 대해 조사를 진행 중이다.
또 사람 대신 소프트웨어가 차량을 움직이는 만큼 소프트웨어 해킹과 오작동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미국에서 자율주행 상태로 달리던 테슬라 차량이 프로그램 오작동으로 오토바이를 들이받아 오토바이 운전자가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으며, 구글의 자율주행차도 프로그램 오작동으로 차선을 잘못 바꿔 버스와 충돌했다. 미국 GM의 자회사 크루즈가 선보인 무인 자율주행택시도 지난해 샌프란시스코에서 교통사고를 일으켜 운행이 8개월 이상 중단됐다.
특히 해킹은 심각하다. 이스라엘 보안업체 업스트림 시큐리티가 발표한 2024년 자동차 사이버 보안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자동차 해킹 관련 다크웹 활동이 165% 증가했다. 지난해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국제 해킹대회 폰투온에서 프랑스 보안업체 시낵티브 연구원들이 2분 만에 테슬라 차량을 해킹해 자동차 문과 짐칸을 원격으로 여닫는 모습을 시연하기도 했다. 만약 달리는 자율주행차를 해킹해 문을 강제로 열면 끔찍한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해킹은 정보 유출 문제와 직결된다. 자율주행차는 운행하며 각종 정보를 수집해 학습한다. 이때 수집한 정보가 해킹을 통해 해외로 유출될 경우 문제가 될 수 있다. 만약 서울 시내를 달리는 자율주행차의 정보를 북한이 해킹하면 안보 문제와 직결된다. 이런 우려 때문에 미국 상무부는 미국에서 달리는 자율주행차에 중국산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사용을 규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미국 정부는 자율주행차가 수집하는 정보가 중국에 유출될 가능성을 우려한 것이다. 과거 데이터 유출을 우려한 미국이 중국 화웨이의 이동통신 장비 사용을 규제한 것과 마찬가지다.
또 버스, 트럭, 택시 등 운송회사에 자율주행차가 도입되면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사실상 운송회사 입장에서는 자율주행차를 도입하면 인건비를 줄이면서 24시간 운용할 수 있다. 그만큼 줄어드는 일자리를 사회적으로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해야 한다.
아울러 자율주행차의 법적 책임을 누가 지느냐 하는 것도 과제로 남아 있다. 사람이 아닌 자율주행차가 사고를 낸 경우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것인지에 대한 문제다. 차량 제조사부터 서비스 회사 등 얽혀 있는 대상이 많고 각기 다른 소프트웨어와 장비를 사용하는 만큼 책임 소재를 명확히 가려내는 것도 쉽지 않다. 그만큼 보상이 까다로울 수 있는데다 보험 적용 문제도 어렵다. 따라서 정부에서도 관련 법과 제도를 선제적으로 정비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