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팬들이 인정하는
비틀마니아 한경식

한경식은 국내 비틀스 팬이 신뢰하는 비틀스 전문가 중 한 명이다. 대기업 샐러리맨으로 살던 그가 어떻게 비틀스에 빠져들었고, 인생을 바쳐 그들의 삶과 음악을 기록했는지 들었다.

2022-04-04     DEN 에디터
Profile 한경식 •1962년생 •파스텍 고문

인천에서 나고 자란 한경식 고문은 공학도로 대학을 졸업한 후 LS산전(현 LS일렉트릭(주))에서 직장 생활을 했다. 비교적 바르고 정확했던 그의 인생 로직에 난데없이 비틀스가 등장했고, 이후 45년이라는 긴 시간을 비틀스와 함께 살았다. 평범한 회사원과 비틀마니아를 병행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으나 성실하고 우직하게 샛길로 빠지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팬심을 드러냈다.

그는 비틀스 책을 여러 권 냈다. 그리고 그 책들은 평범한 음악 서적의 수준을 뛰어넘는다. 비틀스 전곡 해설집인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와 비틀스 초기 행보를 담은 <비틀스 신화>는 국내 비틀스 팬도 인정하는 역작. 비틀스 팬이 넘쳐나는 일본에서조차 이런 책들은 찾기 힘들 정도다. 그는 팬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이 이것뿐이었다고 말한다. 자신이 비틀스에게 받은 수많은 위안과 위로를 이렇게나마 보답하고 싶었다는 것이 그의 고백이었다.

 

 

어릴 때부터 음악을 좋아했나? 음악과 친근한 분위기에서 성장했는지 궁금하다

음악에 푹 빠져 산 건 아니다. 80학번이니 주로 라디오를 통해 음악과 접했다. 부잣집이라면 전축이 있었겠지만 우리 집은 평범했다. 양희은과 산울림의 노래를 좋아해 자주 들은 기억이 난다.

 

비틀스를 처음 알게 된 건 언제였나?

고등학교 1학년 때다. 당시 아홉 살 차이 나는 형님이 영어 공부를 열심히 했다. 덕분에 집에 <타임>이나 <뉴스위크> 같은 잡지가 많았다. 형님이 모아놓은 잡지를 몰래 뒤적이다 한 페이지에 나도 모르게 시선이 꽂혔다. 남자 4명이 있는 사진인데 그땐 누군지도 모르면서 이상하게 마음에 훅 들어왔다. 그후 라디오에서 비틀스 음악을 틀어주면 귀 기울여 들었고, 결국 빠져들게 되었다.

 

비틀스를 좋아하는 과정 중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1980년 12월 8일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대학교 1학년 때였는데, 그날 존 레넌이 총에 맞아 사망했다는 소식을 TV 뉴스를 통해 들었다. 존 레넌 개인에 대해서는 잘 모르던 때였지만, 비틀스 멤버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 후 존 레넌과 관련된 특집 기사가 쏟아져 나왔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죽음은 비틀스에 좀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게 비틀스를 향한 짝사랑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렇게 비틀스를 오래 좋아할 줄 알았나?

서서히 잊힐 것이라고 생각했고, 언젠가는 팬심도 접힐 줄 알았다. LS에 입사해 일본에 출장을 갔는데, 우리나라와는 차원이 다른 비틀스 문화가 있었다. 팬층이 엄청나게 탄탄했고 관련 자료와 서적이 놀랄 만큼 많았다. 때를 같이해 1995년에는 비틀스 앤솔로지 프로젝트가 발표되었다. 비틀스는 이미 신화가 되어 부활하고 있었다. 나는 일본과 달리 국내에 비틀스 관련 서적이 너무 빈약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고, 아무도 하지 않는다면 내가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비틀스가 내 안에서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더 커진 것이다. 마흔이 되기 전까지 책을 쓰자고 다짐했고, 글쓰기를 시작했다. 그때가 1997년이었다.

 

1997년은 IMF로 온 나라가 고생하던 때라 글쓰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1997년 말 IMF가 시작되면서 회사에서도 정리해고가 이슈였다. 함께 일하던 많은 동료가 회사를 떠났다. 나는 운좋게 살아남았다. 하지만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있었고, 심리적으로 굉장히 힘들었다. 그 시간을 비틀스 책을 쓰면서 버텨냈다. ‘Let it be’를 들으며 많이 위로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쓴 책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를 시중에서 구하기 힘든 이유가 무엇인가?

힘든 과정을 거쳐 2001년 7월에 <The Beatles Collection>이라는 책이 나왔고, 한 달 정도 인터뷰하러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래서 책이 잘 팔릴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다.(웃음) 2017년에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라는 이름의 개정판이 나왔다. 지금은 중고로만 살 수 있는데 값도 비싸고 시장에 잘 나오지도 않는다. 작년부터 재개정판을 준비 중인데 저작권이 처음 책을 낼 때와 달라져 엄두를 못 내고 있다. 하지만 언젠가는 꼭 내고 싶다.

 

대기업 회사원으로 일하며 책을 쓴다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인터뷰를 하러 다닐 때는 회사 눈치가 보이긴 했다.(웃음) 휴가를 써서 최대한 회사에 피해가 가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다. 동료들은 좋아해 주었지만, 회사는 별로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출근 전까지 글을 썼고, 퇴근하면 다시 글쓰기에 몰두했다. 당시 하루에 4시간 남짓 잔 것 같다. 학창 시절에 공부를 그렇게 했으면 S대 갔을 텐데.(웃음)

 

가족이 싫어하지 않았을까?

그때는 몰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후 아내가 소외감을 느꼈다고 얘기하더라. 남들은 남편이 퇴근한 뒤에 함께 두런두런 얘기도 나누는데, 비틀스에게 남편을 완전히 빼앗겼으니 그럴 만도 하다. 지금 생각하니 많이 미안하다. 하지만 당시의 내 목표는 마흔이 되기 전에 책을 내는 거였다. 마흔이 되면 뭔가 꺾이는 것 같았고, 그 시기를 넘기면 아예 못할 것 같아 30대 후반을 치열하게 내달렸다. 마흔은 굉장히 젊은 나이인데 말이다.

오래 전부터 스크랩해 온 비틀스 기사들

 

비틀스 전문가로서 비틀스의 음악적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한마디로, 대체 불가능한 밴드다. 내가 45년간 비틀스 음악만 들었겠나? 다양한 장르, 다양한 뮤지션의 음악을 열심히 들었다. 하지만 결국에는 다시 돌아와 비틀스 음악을 듣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어느 누구의, 어떤 음악으로도 대체되지 않는 지점이 있다. 쉬우면서도 편안하고, 듣고 있으면 위로받고 행복해진다. 그게 비틀스 음악의 힘이다.

 

45년간 비틀스 팬으로 살았다. 본인이 생각하는 비틀스는 어떤 밴드인가?

한마디로 정의하긴 어렵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가수가 앨범을 발표하면 수록곡 전곡이 좋은 경우는 드물다. 대표곡 한두 곡이 사랑받는 게 일반적인데, 비틀스는 앨범 수록곡 대부분이 히트한 전무후무한 기록을 갖고 있다. 이건 그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노래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비틀스의 라이벌은 비틀스 내부에 있다’는 말이 있다. 존 레넌과 폴 매카트니, 후반기에는 조지 해리슨까지 가세해 3명이 곡을 만들었고, 이들이 피 튀기는 경쟁을 하며 앨범에 곡이 실리는 과정을 거쳤다. 

특히 싱글의 A면을 두고 존과 폴이 벌인 신경전은 대단했다. 우리는 노래를 만들 때 ‘작사는 존, 작곡은 폴이 담당했다’고 생각한 시절이 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둘 다 작사·작곡을 했고, 히트곡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불꽃 튀는 싸움을 벌였다. 후반기에 조지 해리슨까지 뛰어들었으니, 세 천재의 경쟁에서 살아남은 곡이 좋지 않을 리 없었다. 비틀스는 이런 과정을 통해 음악사적으로 위대한 업적을 남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비틀스 멤버로 사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내부 경쟁이 치열한 만큼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것이다. 또 하나, 20대 초반에 밴드 활동을 시작했다면 시간이 흘러 20대 중·후반에는 여자친구가 있거나 한 집안의 가장이 되었으니 처음만큼 응집력이 강하진 못했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벌고 유명해져도 늘 좋은 건 아니었다. 멤버 각자가 비틀스라는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존 레넌의 애인이었던 오노 요코가 밴드 해체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알려졌다. 사실인가?

오노 요코는 지금 봐도 굉장히 특이한 여성이다. 존 레넌이 그녀의 그런 독특한 세계에 빠져들었고, 영향을 많이 받았다. 비틀스 멤버 사이에 불문율이 하나 있었는데, 레코딩할 때 애인이나 아내는 절대로 녹음실에 들어올 수 없었다. 하지만 존 레넌이 오노 요코와 함께 녹음실에 들어왔고, 나머지 멤버들이 그 상황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기록에 따르면, 오노 요코는 녹음하는 곡에도 참견했다고 한다. 한 몸처럼 붙어다니는 존 레넌과 오노 요코 때문에 밴드의 결집력이 약화되면서 해체에 이르렀다.

하지만 오노 요코 때문에 밴드가 깨졌다고 단언하긴 힘들다. 존 레넌은 오노 요코가 아니었어도 밴드를 벗어나기 위해 또 다른 탈출구를 찾았을 인물이다. 밴드 해체는 단지 시간의 문제였다.

 

존 레넌과 폴 매카트니, 어느 쪽을 좋아하나?

비틀스 해체 이후 솔로 시절의 각종 차트 기록을 보면, 폴 매카트니가 존 레넌에 비해 압도적 우위였다. 당시에는 존 레넌보다는 폴 매카트니가 더 인정받았다. 하지만 존 레넌이 사망하면서 이런 분위기가 바뀌었다. 개인적으로는 정말 슬프고 안타까운 죽음이지만,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남으로써 그는 신화가 됐다. 이제는 비틀스 하면 존 레넌을 먼저 떠올릴 만큼 그의 대중적 인지도가 훨씬 높다.

 

끝으로, 한경식의 삶에 비틀스는 어떤 의미인가?

비틀스 없는 삶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들이 없었다면 내 삶은 굉장히 재미없었을 것이다. 고1 때 만난 후 지금까지 45년간 비틀스 덕분에 풍요롭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었으니 큰 행운이다. 나 역시 지금까지 늘 순탄한 생활을 한 건 아니다. 어렵고 힘든 시기를 겪을 때마다 비틀스의 노래로 위안을 받았다. 다시 태어날 생각은 없지만(웃음), 다시 태어나도 비틀스를 좋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