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스크는 싫지만, 테슬라는 타고 싶어 [십자말풀이로 알아보는 국제 상식]
각국 정치인의 가벼운 언행으로 유독 시끄러운 요즘. 크고 작은 전 세계 이슈를 모았다.
➀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이탈리아 ○○○을 초고속으로 취득해 특혜 논란이 일었다. 그는 자신이 ‘75% 이탈리아인’이라고 주장하며 이탈리아 국민에게 어필했다.
➁ 라오스를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들이 숙소에서 주는 ○○○ 술을 마시고 목숨을 잃었다. 이들이 마신 술은 메탄올을 섞은 밀주였다.
➂ ○○○의 독재자 바샤르 알아사드가 축출됐다. 53년간 대를 이은 알아사드 부자(父子)의 독재가 막을 내렸다.
➃ 영국 보수당 대표가 한 인터뷰에서 “○○○○은 약골들에게나 필요한 것”이라고 말해 논란을 불렀다. 그는 샌드위치를 음식으로 취급하지 않아 비난을 사기도 했다.
➄ ‘일론 ○○○가 미치기 전에 산 거예요’라는 문구의 스티커를 붙인 테슬라 차량이 늘고 있다. 머스크의 정치적 성향 때문에 공화당 지지자로 보이는 게 싫다는 이유다.
➅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 트뤼도 캐나다 총리를 ‘주지사’라고 불러 캐나다인들이 조롱당했다며 분노하고 있다. 농담이어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➀ 아르헨티나 대통령의 초고속 시민권 취득 논란
대선 유세에서 “과다한 복지예산을 삭감하겠다”며 전동 톱을 휘두르는 퍼포먼스를 선보인 아르헨티나 대통령 하비에르 밀레이가 지난달 취임 1주년을 맞았습니다. 그는 극우 성향으로 ‘아르헨티나의 트럼프’로 불리고 있는데요, 예전부터 트럼프를 존경한다며 ‘팬심’을 적극 내비쳤던 인물입니다. 이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팬 서비스’였을까요? 트럼프가 당선된 후 가장 먼저 만난 외국 정상이 밀레이입니다. 트럼프는 자신의 마러라고 저택으로 찾아온 밀레이에게 “아르헨티나를 다시 위대하게 만들어 달라”며 그를 추켜세웠습니다. 대선 슬로건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를 밀레이에게 선물한 셈입니다.
이렇게 미국에서 ‘한 건’ 챙긴 밀레이가 새해를 앞두고 ‘이탈리아 시민권’을 거머쥐어 이탈리아 여론을 들끓게 했습니다. 밀레이는 지난달 중순 이탈리아 로마를 방문했는데요, 그와 여동생 카리나가 동시에 이탈리아 시민권을 공식 취득했습니다. 이탈리아 ‘혈통’을 내세우며 패스트 트랙을 밟아 신속하게 시민권을 받았다고 합니다. 밀레이는 자신의 친가와 외가의 조부모 4명 가운데 3명이 이탈리아 출신이므로 “나는 ‘75% 이탈리아인’이다”라고 주장했는데요, 바라던 대로 ‘이탈리아 시민권’을 받은 겁니다. 외국 정상에 대한 예우도 작용한 결과일 테지만, 그에 대한 이탈리아 여론은 곱지 않습니다.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아이도 부모가 외국인이면 18세가 되어야 시민권을 신청할 수 있고, 신청 이후에 심사까지 4년이 걸리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그런데 조부모가 이탈리아인이라는 이유로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초고속으로 이탈리아 시민권을 받으니 ‘지나친 특혜’라는 지적이 쏟아진 겁니다.
아무리 ‘75% 이탈리아인’을 자처하며 이탈리아를 사랑한다고 외쳐도, 밀레이의 이탈리아 시민권 취득 과정은 비난을 피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우리나라 대통령이 이런 식으로 중국이나 일본 시민권을 받아 온다면 국민의 반응이 어떨까요? 밀레이 대통령은 이탈리아식 ‘로마의 휴일’을 너무 급하게 만끽하려 했던 것 같습니다.
➁ 동남아 여행 시 시음용 술, 조심하세요!
새해를 맞아 동남아시아 여행을 계획 중인 분들이 있다면, 현지에서 시음용으로 제공하는 술에 특별히 주의해야겠습니다. 얼마 전 라오스의 한 지역에서 외국인 관광객이 호텔, 식당에서 준 술을 마시고 잇따라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현지인들이 당국의 허가 없이 몰래 만든 술을 관광객들이 무심코 마셨다가 변을 당한 겁니다.
밀주(密酒)에 섞인 메탄올이 문제였는데요, 어떤 물질이기에 목숨을 앗아간 걸까요. 메탄올과 에탄올은 둘 다 알코올의 한 종류로, 색이 없다는 점도 같아 구별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름도 에탄올과 메탄올, 자음 하나만 다를 뿐입니다. 그런데 위험성은 생사를 가를 정도로 차이가 큽니다. 에탄올은 맥주, 와인, 증류주 등 술에 쓸 정도로 독성이 약한 반면, 메탄올은 연료나 부동액 같은 산업용 화학물질로 사용하는 독성 물질입니다. 소량을 섭취해도 체내 분해 과정에서 포름알데히드, 포름산 같은 유독 물질이 생성돼 시신경이 손상되거나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이렇게 위험한 물질을 왜 술에 섞은 걸까요. 에탄올보다 훨씬 싼 메탄올을 섞어 술의 양을 늘리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아주 오래전 우리나라 일부 술집에서 3000원짜리 싸구려 양주 ‘캪틴큐’를 비싼 양주에 섞어 팔곤 했던 장면이 떠오르네요.
가짜 술이 라오스에만 있는 건 아닙니다. 지난여름 태국에서도 메탄올이 섞인 술을 마시고 8명 이상 목숨을 잃는 비극이 벌어졌습니다. 제가 예전에 중국으로 여행 갔을 때에도 주요 관광지에는 ‘수정방’, ‘마오타이’ 등 명주와 겉모습은 같지만 성분은 다른 가짜 술이 수두룩했습니다. 작년 이맘때에는 중국 산둥성 칭다오 맥주 공장에서 한 남성이 맥주 원료인 맥아 보관 창고에 소변을 본 일도 있었습니다. 이제는 식음료에 장난치는 못된 행동은 세계 어디서든 완전히 사라지면 좋겠습니다. 가짜 술은 쳐다보기도 싫은데, 약 10년 전에 단종된 ‘캪틴큐’는 그립네요.
➂ 막 내린 시리아의 독재
아버지 하페즈 알아사드와 아들 바샤르 알아사드가 대를 이어 53년간 독재한 시리아가 드디어 압제에서 벗어났습니다. 지난달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이 붕괴한 것입니다. 시리아는 알아사드의 정부군과 반군의 내전이 꽤 오랜 기간 이어졌는데요, 알아사드는 자국민을 상대로 화학무기까지 동원해 ‘중동의 학살자’로 악명이 높습니다.
그런데 최근 러시아와 이란이 각각 우크라이나, 이스라엘과 전쟁을 벌이느라 알아사드에 대한 지원을 줄이자 반군이 무력으로 알아사드 정권을 축출한 것입니다.
러시아로 도주한 바샤르 알아사드 부부의 저택에서는 람보르기니, 롤스로이스, 페라리 등 수십 대의 최고급 차량과 각종 명품이 발견됐고, 정적(政敵)들을 가뒀던 감옥에서는 고문을 비롯해 끔찍한 만행을 저지른 흔적이 드러나 세계에 충격을 줬습니다.
약 10년 전에 저는 요르단에 있는 시리아 난민캠프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요, 당시 그곳에 거주하는 난민이 8만 명에 달했습니다. 그때 만난 시리아 난민이 알아사드를 언급하며 치를 떨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현재 알아사드가 해외에 숨긴 재산은 무려 17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미 국무부가 파악한 재산은 러시아 모스크바의 약 320억원 초고층 빌딩, 프랑스의 약 1360억원 부동산 등 수천억 원 규모입니다. 확인된 것보다 훨씬 많은 재산을 숨겨 두었다는 얘기입니다. 이에 따라 국제사회가 알아사드의 은닉 재산을 추적하고 있습니다. 알아사드가 해외로 빼돌린 재산이 다시 시리아 국민에게 돌아가고, 그 나라에 다시는 내전이 일어나지 않고 평화가 정착되기를 기대합니다.
➃ 직장인들의 소중한 점심시간을 무시한 대가
영국 야당 대표가 언론 인터뷰에서 “점심시간은 약골들에게나 필요한 것”이라고 말해 논란을 불렀습니다. 주인공은 케미 베이드녹 보수당 대표인데요, 대표 취임 1개월을 맞아 진행한 한 인터뷰에서 점심 먹을 시간은 있느냐는 질문에 “그런 시간은 약골들한테나 필요한 것”이라며 자기는 일하면서 먹는다고 답했습니다. 이때 먹는 음식에 대해서는 “스테이크를 가져다 먹는다”며 “샌드위치는 제대로 된 식사가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로 치면 ‘떡볶이가 식사거리가 되느냐’는 식일 겁니다. 그런데 보수당 대표의 말에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가 저격하면서 갈등이 커졌습니다. 스타머 총리는 대변인실을 통해 “베이드녹 대표의 발언에 놀랐다”며 “나는 점심으로 샌드위치를 즐긴다”라고 밝혔습니다. 또 샌드위치는 영국에서 유래한 음식으로 연간 경제 기여도가 약 14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한다며 관련 협회의 자료까지 언급했습니다. 한마디로 야당 대표를 겨냥해 망신을 준 것입니다. 이에 발끈한 베이드녹 대표도 “총리는 점심에 관한 내 발언에 간섭할 시간이 있으면 농민들에게 좀 더 신경을 써라”라고 맞받았습니다.
하지만 영국개혁당 대표도 “점심을 따로 먹는 시간은 약골에게나 필요한 것이라는 베이드녹의 생각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해 베이드녹이 수세에 몰린 모양새입니다. 수많은 직장인이 소중히 여기는 점심시간을 무시한 대가를 톡톡히 받는 셈입니다. “한가하게 밥 먹을 시간 있으면 일이나해라”라는 뜻과 다름없는 베이드녹의 발언은 일하면서 먹는 일부 ‘워커홀릭’에게는 당연한 것일 수 있습니다만, 저처럼 이메일을 ‘iamweak’로 쓰는 허약 체질에게는 과격한 말입니다. 이들에게 되묻고 싶습니다. “자는 시간도 약골한테나 필요하다고 하시지?!”
➄ 머스크는 싫지만, 테슬라는 타고 싶어
‘일론 머스크가 미치기 전에 산 거예요.’ ‘미친 X인 걸 알기 전에 산 차예요.’
미국에서 이런 스티커를 붙인 테슬라가 미국 대선을 전후해 부쩍 늘었다고 합니다. 테슬라 차주(車主)들이 왜 이런스티커를 붙이는 걸까요. 테슬라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의 행보와 관련이 있습니다.
그가 도널드 트럼프 당선의 일등 공신으로 꼽힐 정도로 친(親)공화당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자 테슬라 차주 중 민주당 지지자들이 불쾌한 상황이 된 것입니다. 테슬라를 타는 사람들을 머스크처럼 트럼프 지지자로 보는 시선이 부쩍 많아져 짜증이 난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들은 머스크가 정치색을 드러내기 전에 테슬라를 샀다고 써 붙이고 다니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들 중 일부는 “테슬라를 타는 것은 트럼프를 상징하는 빨간 ‘MAGA’ 모자를 쓰고 다니는 것처럼 불쾌하다”라고 성토할 정도입니다.
이런 스티커가 늘어나도 머스크의 입꼬리는 내려갈 것 같지 않습니다. 새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테슬라 주가가 가파르게 올랐기 때문입니다. 이 회사의 CEO인 머스크가 정부 실세가 된 영향을 받은 것이죠.
이에 머스크의 자산은 4470억 달러로 증가해 640조원에 이르게 됐습니다. 개인 자산이 4000억 달러를 넘어선 것은 역대 최초라고 합니다. 이 정도면 아무리 욕을 많이 먹어도 기분 상하지 않겠죠?
➅ 트럼프의 선 넘은 농담
1월 20일에 취임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선을 넘은’ 농담(?)이 논란입니다. 트럼프가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와 만찬을 한 뒤 자기 소셜미디어에 “위대한 캐나다주 쥐스탱 트뤼도 주지사와 함께한 저녁 식사가 즐거웠다”라고 남긴 것입니다. 주권 국가인 캐나다를 미국의 한 주(州)처럼 쓴 것인데, 농담이라고 해도 캐나다 국민이 발끈할 일입니다. 앞서 트럼프는 캐나다 국경을 통해 범죄와 마약이 미국에 유입된다고 주장하면서 25% 보복관세를 물리겠다고 했고, 이에 놀란 트뤼도 총리가 급히 트럼프를 찾아가 타협을 시도한 것입니다. 이때도 트럼프는 “우리 요구를 이행하지 못하면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는 게 낫겠다”라고 조롱했습니다.
트뤼도 총리는 태연한 척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그는 트럼프의 도발에 “상대방을 불안하게 만들어 불확실성과 혼란을 주려는 전략”이라고 평가하며 “놀라거나 겁내지 않는게 중요하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우라늄 등 대미 수출품에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고심 중이라고 합니다. 트럼프의 위협과 조롱에 대한 일종의 반격을 꾀하는 겁니다.
새해에는 가깝고도 먼 나라 미국과 캐나다가 서로를 존중하고 가까워지면 좋겠습니다. 트럼프에게도 한마디 하고 싶습니다. “이제 독설은 자제하고 덕담을 많이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