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주목한 피아니스트가 선보이는 독일 와인, 음악과 와인의 경계를 허물다

2025-02-12     정지환 에디터

 

천재 피아니스트 유니가 또 한 번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며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독일 와인이라는 특별한 예술을 품에 안고서다. 그가 연주로 보여준 섬세함과 깊이는 와인에 대한 그의 시선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1월 진행된 독일 와인 시음회는 단순한 테이스팅이 아니라 예술을 경험하는 자리였다. 세계적 뮤지션이 전하는 와인의 이야기는 과연 어떤 특별함을 품고 있을까?

 

ⓒ Den

 

곽유니

· 2001년 제13회 유재하음악경연대회 금상

· 2006년 키스피아노 1집 [愛]

· 2007년 키스피아노 2집 [French Kiss]

· 2008년 첫 해외 앨범 [True to You]

· 2014년 독일 데뷔 앨범 [Jugendstil]

· 2016년 독일 두 번째 앨범 [My Piano]

· 2024년 독일 세 번째 앨범 [Improvisations Live in Germany]

 

오랜만에 한국을 방문했다

그렇다. 이번 방문에서는 유니와인과 유니음악이 함께 한국에서 관객들을 만날 예정이다. 한국에서는 독일 와인이 여전히 낯선 편이지만, 그만큼 새로움을 선사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독일에서 활동하는 아티스트로서 와인은 단순한 술이 아니라 천년의 역사, 문화, 전통과 혁신 그리고 사람의 이야기가 담긴 하나의 예술이라 믿는다. 그 특별함을 한국에서 음악과 함께 더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었다. 돌아오자마자 와인 관련 일정으로 하루하루를 바쁘게 채우고 있다.(웃음)

 

와인 시음회를 기획했다

독일 와인과 음악을 페어링하는 자리다. 피아니스트가 소개하는 독일 와인 시음회라고 생각하면 쉽다. 이번 이벤트는 단순히 와인의 맛을 설명하는 것을 넘어, 이를 음악적으로 풀어내는 경험을 제공하고자 기획했다. 와인을 맛보고 그 감각을 음악으로 표현하면 보다 특별하고 잊지 못할 경험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음악도 단순히 듣는 경험이 전부는 아니지 않나. 음반 수록곡을 기대하고 녹음 현장을 상상하며 아티스트가 어떤 사람인지 추측하기도 한다. 와인도 마찬가지다. 레이블을 보며 어떤 맛일지 상상하고, 잔에 따른 후 냄새를 맡으며 기대감을 갖는다. 이런 모든 과정이 시각, 후각, 청각 같은 감각을 자극한다. 와인과 음악을 결합해 이런 감각을 재미있게 경험하는 자리를 만들고 싶었다.

 

소감이 남다를 것 같은데?

한국에 소개하는 와인은 독일에 머무는 동안 직접 시음하고 엄선한 제품이다. 수많은 와인 중에서 직접 꼽은 만큼 손수 만들지는 않더라도 애착이 남다르다. 독일 와인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얻는 즐거움이, 대중에게 음악을 소개할 때 느끼는 설렘과 동일한 이유다.

 

ⓒ Den

 

현장 기획이 어렵지는 않았나?

나는 공연장에서 그날에만 존재하는 요소들을 재료로 즉흥연주를 하는데, 즉흥연주의 가장 큰 특징은 현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모르고, 나 또한 어떤 음악을 연주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리스크를 감수하고 즐기는 스타일이다.

이번 와인 시음회도 비슷하다. 정해진 식순을 따르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사람들과 대화하고, 좋아하는 와인에 대해 이야기하며 함께 경험을 나눈다. 단순한 설명회가 아니라 참석자들과 와인에 대한 느낌과 생각을 공유하는 대화의 자리를 마련한 셈이다. 사람들이 서로의 감각을 적극적으로 나누고 공감할 수 있는 순간을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 이번 기획의 핵심이다.

 

흔히 접하는 시음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시음회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싶었다. 시음회 하면 보통 딱딱한 분위기를 연상하지 않나. 와인은 음악과 똑같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내려놓지 않으면 스스로의 틀에 갇혀 현장을 평가하게 될 뿐 분위기를 즐기기 어렵다. 이번 시음회는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이나 경험을 내려두고, 본능과 감각에만 의존해 와인의 맛과 현장 분위기를 즐길 수 있는 자리가 되기를 바랐다.

독일 와인을 즐길 때마다 혼자 음미하기보다는 친구들을 불러 함께 마시는 과정을 즐겼다. 와인을 따는 순간부터 냄새를 맡고 연주를 하며 그해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는 등 와인을 중심으로 다양한 감각과 기억을 나누곤 했다. 평소 내가 와인을 즐기는 방식대로 사람들과 독일 와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독일 와인의 숨겨진 이야기, 역사와 나의 와인 스토리를 음악과 함께 나누는 자리인 셈이다.

 

ⓒ Den

 

와인과 음악은 각각 고유의 텍스처를 지닌다.

와인의 첫맛부터 뒷맛까지 다양한 질감을 느낄 수 있듯,

음악도 한 작품 안에서 다양한 텍스처를 경험할 수 있다.

와인과 음악, 서로의 텍스처가 조화를 이루며

감각적인 시너지를 형성한다.

 

와인 선택 기준이 궁금하다

블라인드 테스트를 통해 오직 맛으로 엄선했다. 어떤 와인인지, 가격이나 평점 같은 외부 정보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맛에만 집중했다. 마치 조향사가 향에 집중하듯, 와인의 풍미에만 몰입해 선택했다. 이번 시음회에선 두 가지 화이트 와인과 두 가지 레드 와인, 총 네 가지 독일 와인을 엄선해 시음 기회를 제공했다.

 

절대미각의 소유자가 엄선한, 특별한 와인인 셈이다

비록 소믈리에는 아니지만, 아티스트로서 피아노를 고를 때와 악기의 음색, 소리, 터치 등 여러 가지 감각에 집중하듯 같이 와인을 선별할 때 감각에 최대한 집중하려고 노력한다. 와인을 열었을 때의 향, 색깔, 첫맛과 목 넘김, 뒷맛의 여운까지 모든 과정을 세심히 느낀다.

마치 조향사가 향수를 시향하며 감각을 분석하듯 와인도 개인적인 감각을 가감 없이 받아들이며 선택한다. 이렇듯 나만의 방식으로 내가 좋아하는 와인의 맛을 찾아가고, 와인의 맛을 이야기할 때도 독특한 나만의 감상을 전하는 편이다. 와인을 진심으로 대하는 모습을 보고 주변에서 절대미각이라는 별칭을 붙여줬다.

 

호프켈러 뷔르츠부어거 슈타인베어그 실바너 트록켄 GG.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유니의 미각을 사로잡은 와인이다.  ⓒ Den

 

블라인드 테스트 과정에서 유독 기억에 남는 와인이 있다면?

호프켈러 뷔르츠부어거 슈타인베어그 실바너 트록켄 GG가 기억에 남는다. 화이트 와인은 레드 와인만큼 큰 차이를 느끼기 어렵기 때문에 디테일한 차이에 집중했다. 독일 화이트 와인은 공통적으로 상쾌하고 달콤하며 시원한 풍미를 지닌다. 특히 실바너 품종은 같은 호프켈러 와이너리에서 생산하더라도 밭 이름에 따라 맛이 다르다. 같은 품종, 같은 지역임에도 밭마다 특성이 달라 이를 세심히 비교하며 고르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결과적으로 뷔르츠부어거 슈타인에서 생산된 와인이 내 취향과 맞아 이 와인을 선택했다.

현장 반응은 어땠나?

한국에서는 처음 보는 콘셉트라며 신선하다는 반응이었다. 와이너리와 와인에 담긴 이야기를 나의 관점에서 이야기하고 이를 음악으로 풀어낸 점에서 좋은 피드백을 받았다. 현장에서 한 참석자는 “이건 말도 안돼”라며 감탄을 표하기도 했다.(웃음) 직접 현장을 담은 사진과 영상을 공유하다 보니 진정성이 전해진 것 같다. 행사가 끝난 뒤에는 계속 이런 콘셉트의 시음회를 이어갔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도 전해 들었다.

 

ⓒ Den

 

독일 와인의 매력에 빠진 내 경험을 전하고,

현장에서 독일 와인을 접한 참석자들과

서로의 감각을 나누고 싶었다.

독일 와인이 생소한 사람도, 와인을 잘 모르는 사람도

자유롭게 즐기는 자리이기를 바랐다.

 

특히 반응이 좋았던 와인은 무엇이었나?

카스텔 와이너리의 아프릴레스 실바너다. 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포도 품종이 실바너인 만큼 풍미가 고급스럽다. 개인적으로 실바너의 풍미를 ‘상큼하고 풋풋한 첫사랑’ 같다고 표현하는데, 현장에서 실바너를 맛본 사람들도 상쾌하고 밝은 풍미가 돋보인다고 말했다.

올드 빈티지인 카스텔 슐로스베어그 슈패트부어건더도 인기가 좋았다. 연한 장밋빛에 사랑스러운 베리 향이 가득하고, 마지막에 버터 향이 스치는 우아한 와인으로, 부르고뉴 지방의 피노 누아를 연상시킨다. 여성 파트너와 와인을 즐기기 위해 청순한 피노 누아를 찾는 사람들에게 반응이 좋았다.

 

ⓒ Den

 

ⓒ Den

 

독일 와인을 소재로 즉흥연주를 선보였다. 기억에 남는 연주는?

레드 와인 카스텔 슐로스베어그 슈패트부어건더를 음악과 23페어링한 순간이 인상 깊었다. 개인적으로 이 와인을 맛볼 때 청순하면서도 섹시한 여인이 떠오른다. 현장에서도 그런 이미지를 연상하며 음악을 연주했다. 한 관객은 이 와인을 마시니 ‘레드 벨벳’이라는 단어가 연상된다고 했다. 와인의 실키한 질감과 마지막에 느껴지는 바닐라 터치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그의 아이디어에 영감을 받아 ‘레드 벨벳’이라는 제목으로 즉흥연주를 했다. 이렇듯 감각을 공유하고 소통하는 순간이 바로 와인을 예술적으로 즐기는 유니와인의 재미라고 생각한다.

 

2월에도 시음회를 계획하고 있다고

그렇다. 더 넓은 공간에서 보다 깊이 있는 경험을 선사할 수 있는 형태로 준비 중이다. 뛰어난 음향 시설과 함께 독일 와인과 음악이 만나 새로운 공감각의 향연이 될 것이라 기대한다. 단순히 와인을 맛보는 시간을 넘어, 그 안에서 감각들이 서로 어우러지는 특별한 순간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