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을 마시고 감각을 깨우다, 천재 피아니스트 유니가 전하는 와인의 밤

2025-03-12     정지환 에디터

 

 

와인을 마시면 어떤 음악이 탄생할까. 즉흥연주의 대가 유니가 음악에서 와인으로 감각을 확장했다. 장르를 넘나드는 자유로운 선율처럼, 와인 한 잔이 만들어내는 순간의 울림이 음악으로 승화된다. 와인 한 잔을 손에 들고 유니의 즉흥연주를 감상하는 흔치 않은 기회. 시음회와 연주회의 경계를 넘나드는 현장을 소개한다.

 

ⓒ Den

 

와인과 음악을 아우르는 현장

단순한 테이스팅을 넘어 감각을 확장하는 현장이었다. 피아니스트 유니가 소개하는 유니와인과 그의 독보적인 음악 장르인 ‘Free Classic and Jazz’ 즉흥연주가 만나는 특별한 시음회. 그 1부는 독일 와인 시음회로 시작됐다. 참가자들은 네 가지 와인을 앞에 두고, 각각 번호가 적힌 잔을 순서대로 음미했다. 화이트와인 두 종, 레드와인 두 종으로 구성된 시음 리스트는 가벼운 맛에서 깊은 맛으로 자연스럽게 흐름을 맞췄다. 단순히 마시는 것을 넘어 와인의 개성을 비교하며 자신의 취향을 탐색하는 과정이었다.

2부는 공연장 홀에서 이어졌다. 독특한 점은 시음한 와인 중 한 잔을 선택해 공연장으로 가져갈 수 있다는 것. 보통 공연장에서는 물 이외의 음료는 반입이 금지되지만, 이곳은 와인과 함께 즉흥연주를 감상하는 이색적인 현장이었다. 천재 피아니스트 유니가 연주를 시작하자 와인 향과 피아노 선율이 어우러지며 감각이 더욱 선명해졌다.

 

ⓒ 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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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채로운 독일 와인

독일 와인의 특징인 미네랄리티가 이번 시음회에서도 두드러졌다. 시음한 네 가지 와인은 모두 개성이 뚜렷했고, 순서대로 맛보며 차이를 경험하는 재미가 있었다.

첫 번째 와인은 ‘호프켈러 뷔르츠부어거 슈타인베어그 실바너 GG’. 밝은 색감의 화이트와인으로, 잔을 코끝에 가까이 가져가자 시트러스와 사과, 배 같은 과일 향이 물씬 났다. 한 모금 입에 머금자 높은 산도 때문인지 입안이 깔끔해졌다. 식전주로 적절하지 않을까. 해산물과 페어링이 떠오르는 가볍고 산뜻한 느낌이 좋았다.

두 번째 시음한 ‘카스텔 아프릴레스 실바너’는 개성이 더욱 뚜렷했다. 구운 레몬과 스모크 향이 남으며, 약간의 청량감도 느껴졌다. 스파클링와인은 아니지만 미세한 탄산감이 느껴져 색다른 즐거움을 주었다.

세 번째 와인은 ‘카스텔 슐로스베어그 슈패트부어건더’, 피노 누아 품종의 레드와인이다. 맑은 빛깔 속에서 아몬드 향이 은은하게 퍼졌고, 가벼운 보디감이 느껴졌지만 베리 향이 입안을 감돌았다. 개인적으로 육류 요리와 페어링하기 좋은 와인이라는 인상이 강했다.

마지막으로 테이스팅한 ‘한스뷔어싱 입호퍼 크론스베어그 슈패트부어건더’.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다. 같은 피노 누아지만 색이 조금 더 짙었고, 산미는 부드러웠다. 부르고뉴 피노 누아와 유사한 스타일로, 정제된 산도와 은은한 피니시가 기분 좋은 여운을 남겼다. 개인적으로도 가장 마음에 든 와인으로, 오래 음미하고 싶을 정도로 균형감이 뛰어났다.

 

천재 피아니스트가 소개하는 독일 와인

2부가 시작되자, 관객들은 각자 가장 마음에 든 와인 한 잔을 들고 공연장으로 향했다. 에디터 역시 한스뷔어싱 입호퍼 크론스베어그 슈패트부어건더 잔을 들고 객석에 자리를 잡았다. 공연장은 관객으로 가득 찼고, 분위기는 기대감으로 가득했다.

유니의 연주가 시작됐다. 피아노 선율이 흐르자 와인의 향과 맛이 더욱 풍부하게 느껴졌다. 연주가 끝나는 순간, 피아노의 여운이 와인의 향기와 어우러졌다. 이어진 유니의 목소리는 무대 위를 부드럽게 감쌌다. 단순한 설명을 넘어, 한 편의 음악처럼 흐르는 와인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마치 즉흥 연주처럼 와인의 세계가 눈앞에 펼쳐졌다. 유니는 직접 다녀온 독일 와이너리의 사진과 영상을 소개하며 와인 산지와 역사, 지역별 특징을 설명했다. 단순히 제품 정보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자 와인의 매력이 더욱 생생하게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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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실바너 와인이 인상적이었다. 유니는 이 와인을 머금으면 초록색이 떠오른다고 했다. 그러면서 음악과 색을 연상하는 방식으로 ‘소풍’이라는 제목의 곡을 즉흥으로 연주했다. 피아노 선율이 마치 잔디밭과 나무가 가득한 풍경을 그리는 듯했다. 듣는 이 모두가 초록색과 어울린다고 느낄 만큼 와인의 맛과 음악이 자연스럽게 연결됐다.

 

한 관객이 독일 와인의 맛을 ‘솜사탕’ 같다고 표현하자, 유니는 웃으며 “그러면 사라질 틈 없이 계속 마셔야겠네요”라고 농담을 던졌다. ‘솜사탕’을 주제로 유니의 즉흥연주가 펼쳐졌다. 청춘드라마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경쾌한 멜로디였다. 흥미로웠던 점은, 가벼운 멜로디 속에서도 베이스가 강조됐다는 것. 유니는 독일 와인을 단순히 가벼움을 넘어 깊은 풍미를 지닌 것이라고 해석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공연의 마지막은 유니의 미공개곡 ‘Holiday in the Moon’으로 장식됐다. 유니는 연주자뿐 아니라 싱어송라이터의 면모까지 드러내며 와인과 음악이 하나 되는 밤을 완성했다.

 

와인과 함께하는 감각의 향연

공연은 한밤의 꿈처럼 끝났다. 시간이 이렇게 빨리 흘렀나 싶을 정도로 몰입감이 대단한 밤이었다. 특히 흥미로웠던 점은 현장 분위기가 ‘와인을 평가하는 자리’가 아닌 ‘와인과 함께 노는 공간’이었다는 점이다. 보통 시음회 하면 와인의 특징을 분석하고 기록하는 장면을 떠올리지만, 이곳에서는 달랐다. 참석자들은 와인을 음미하며 음식과의 조화를 즐기고, 자유롭게 대화를 나눴다.

공연장에 와인 잔을 들고 들어서는 모습도 이색적이었다. 격식 있는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와인을 탐색하는 과정이 놀이처럼 느껴졌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체험 방식이 오히려 와인의 매력을 더욱 깊이 느끼게 했다.

와인 시음회가 익숙지 않은 사람도 이런 자리라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을 것이다. 형식적인 테이스팅 대신 와인과 음악을 곁에 두고 감각적으로 경험하는 자리. 이런 방식의 시음회가 더 자주 열린다면 와인이 더욱 친숙한 문화로 자리 잡지 않을까.

공연이 끝난 후, 유니는 미소를 지으며 무대를 내려왔다. 잔잔한 여운이 공연장에 퍼졌다. 와인의 깊은 향과 선율이 어우러져 꿈같은 시간이 막을 내렸다. 한 잔의 와인처럼 긴 여운을 남긴 특별한 밤. 다음엔 어떤 마법 같은 순간이 펼쳐질까. 누구나 이 황홀한 밤이 다시 오길 바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