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실존 인물

극적인 이야기를 접할 때면 ‘영화 같다’고 표현한다. 하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중에는 오히려 실화가 영화보다 더 흥미로울 때가 있다.

2021-12-03     진주영 에디터

맨몸으로 300명을 구한 전쟁 영웅

데즈먼드 도스 Desmond Doss

1919~2006, 미국, 군인

기관총 앞에 맨몸으로 돌격한 의무병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의무병 데즈먼드 도스는 1945년 5월, 일본 오키나와의 마에다 절벽(핵소 고지)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75명의 부상병을 구해내 명예 훈장을 받았다. 놀라운 사실은 총탄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일본군 참호 10m 앞까지 달려가 부상병을 들쳐 업고 나왔다는 것. 전장에 투입되기 전 일하던 조선소에서 대체 복무가 가능했음에도 조국과 사랑하는 이들을 지키기 위해 입대를 자처한 그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수많은 목숨을 살린 영웅이다.

 

총 없는 군인이 되기 위한 투쟁

1942년 4월, 스물세 살의 나이로 미 육군에 입대한 데즈먼드 도스는 종교적 이유로 총기 소지는 물론 관련 훈련을 거부한다. 게다가 안식일에는 훈련을 할 수 없다고 주장해 부대의 최고 골칫거리로 떠오른다. 그를 전투병으로 만들려고 했던 미 육군과의 갈등은 소송으로 이어져 연방대법원의 판결을 받기에 이른다. 의무병이라 할지라도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이 총을 들지 않는다? 쉽게 수긍하기 어려운 일임에도 당시 법원은 도스의 편을 들어줬다. 그럴 자유가 있다고 본 것이다.

“한 명만…,

한 명만 더 구하게 하소서.”

- 데즈먼드 도스의 기도 중

<핵소 고지>(2016)

출연: 앤드루 가필드, 테레사 팔머 

데즈먼드 도스가 참전한 여러 전투 중에서 마에다 절벽(핵소 고지) 전투를 집중해 보여준다.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되 그의 활약상을 일부 축소했는데, 실화가 오히려 거짓말 같아 관객이 감정이입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판단했기 때문. 영화 말미, 데즈먼드 도스와 그의 전우들이 등장해 당시 상황을 증언하며 감동을 배가한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을 앞당긴 천재

앨런 튜링 Alan Turing

1912~1954, 영국, 수학자·컴퓨터과학자

독일군 암호를 해독하다

앨런 튜링은 케임브리지 대학교 출신으로 스물네 살에 이미 획기적인 수학 논문을 발표한 천재였다. 평상시 암호학에 관심이 많던 그는 스물일곱 살에 독일군 암호인 ‘에니그마’ 해독 프로젝트에 책임자로 합류한다. 튜링은 자동으로 암호를 해독하는 전기기계식 계산기인 봄브(bombe)를 개발했고, 독일군 정보를 발 빠르게 취합해 전쟁에 선별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했다. 이후 정보 유출을 눈치챈 독일군이 에니그마보다 더 복잡한 로렌츠 암호를 사용하기 시작했을 때에도 튜링은 동료들과 함께 그에 걸맞은 암호 해독 장치이자 세계 최초의 컴퓨터인 ‘콜로서스’를 개발했다. 역사학자들은 앨런 튜링과 그 동료들 덕분에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이 2년 가까이 앞당겨졌다고 평가한다.

 

영웅의 비극적 최후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일급 기밀이었던 탓에 앨런 튜링의 업적도, 콜로서스의 존재도 훗날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위대한 업적과 달리 앨런 튜링의 끝은 비참했다. 당시 영국 동성애 금지법에 따라 화학적 거세형을 받은 그는 끝내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한다. 그러나 학문적 성과는 후세에 남아 천재 수학자이자 컴퓨터과학의 아버지로 역사에 이름을 새겼다.

“만약 컴퓨터가 인간을 속여

자신을 마치 인간인 것처럼 믿게 할 수 있다면

컴퓨터를 ‘인텔리전트’하다고 부를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

- 앨런 튜링

<이미테이션 게임>(2014)

출연: 베네딕트 컴버배치

앨런 튜링이 암호 해독 장치를 개발하는 과정을 자세히 담았다. 현실감을 높이고자 실제 암호 해독을 진행한 지역에서 일부 장면을 촬영했고, 봄브와 똑같은 모양의 기계를 제작했다. 하지만 영화에서 괴짜, 외골수로 묘사한 앨런 튜링의 성격은 실제와 정반대라고. 또 자신의 성적 지향을 최대한 숨기려고 한 영화 속 튜링과 달리 실제 튜링은 공공연하게 커밍아웃을 했다.

 


잡을 수 있으면 잡아보시지!

프랭크 애버그네일 Frank Abagnale

1948년생, 미국, 범죄자·기업인

10대에 데뷔한 천재 사기꾼

열여섯 살. 애버그네일이 집을 나와 수표 위조, 직업 사칭 등 각종 사기 행각을 시작한 나이다. 똑똑한 머리에 훌륭한 연기력, 뛰어난 위조 기술까지 고루 갖춘 그는 항공사 기장인 척 수십 차례 공짜 비행을 다니고, 의대 출신인 양 병원에서 전문의로 근무하기도 했다. 심지어 법무부 장관 사무실에 변호사로 취업했을 정도로 담력이 있었다. 그렇게 몇 년간 수백만 달러의 위조수표를 발행하며 전 세계를 누빈 그는 꼬리가 밟혀 20대 초반 나이에 FBI 지명수배자가 된다. 물론 타고난 사기꾼답게 수사망을 요리조리 피해 다녀 체포하기도 어려웠다.

 

보안 자문 전문가가 된 수표 위조꾼

그러다 결국 1969년 FBI에 체포된다. 위조와 사기 혐의로 12년형을 선고받았으나 위조 기술을 나라를 위해 사용하는 조건으로 석방된다. 이후 자신의 노하우를 백분 활용해 금융 범죄 해결사로서 법률 공무원, FBI 요원 등을 지도해왔다. 현재 미국 보안 컨설팅 회사의 최고경영자로 활약하며 과거와는 확연히 다른 삶을 살고 있다.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기꾼이 권위 높은 보안 자문 전문가로 탈바꿈했다니, 그 드라마틱한 변화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왜 양키 팀이 항상 이기는지 알아?

다른 팀이 유니폼에 기죽어서야.”

-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 중

<캐치 미 이프 유 캔>(2002)

출연: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톰 행크스

애버그네일과 그를 뒤쫓는 FBI 요원 칼 핸래티의 이야기. 쫓고 쫓기는 동안 애버그네일과 우정 아닌 우정을 쌓는 칼 핸래티는 아쉽게도 가상의 인물이다. 실제 주인공 애버그네일에 따르면 영화와 실화의 싱크로율은 80%. 극 중 애버그네일이 착륙 직후 달리는 비행기 안에서 화장실을 통해 탈출하는 장면은 실제로는 불가능하다. 영화 후반부에 실제 주인공 애버그네일이 프랑스 경찰 역으로 깜짝 출연해 보는 재미를 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