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 헤리티지로 다시 태어나다 [인터뷰]
테니스 셀럽이자 인플루언서 유희궁 씨는 테니스가 단순한 스포츠를 넘어 라이프스타일로 자리 잡았다고 말한다. 그와 함께 테니스 붐을 시작으로 변화하는 테니스 트렌드에 대한 궁금증을 알아본다.
· 유튜브 채널 <해리스 테니스> 운영
· 테니스 굿즈 브랜드 ‘에프터 테니스’ 대표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테니스는 ‘올드 스쿨’ 스포츠로 여겨졌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힙’한 스포츠로 떠올랐다. 멋을 중심으로 테니스를 즐겁게 알리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그 선두에는 ‘해리스 테니스’의 해리가 있었다. 유희궁 씨는 ‘해리스 테니스’의 해리라는 이름으로 SNS에서 활동하며, 테니스 문화를 유쾌하게 전파해 왔다. 자신이 즐거워하는 것을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었다며, 그동안의 활동을 단순 명쾌하게 설명한다.
테니스를 처음 접하게 된 계기는?
부모님 모두 예전부터 테니스를 치셨다. 그래서인지 어릴 때부터 테니스에 관심이 많았다. 아버지가 테니스 치시는 모습이 멋져 보였다. 30대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테니스에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부모님이 해외에 계시는데, 1년에 한두 번밖에 뵐 수 없어서 공감대를 형성할 방법으로 테니스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부모님과 함께 칠 수도 있고, 테니스를 주제로 대화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2015년 여름 처음 테니스를 치기 시작해 올해 10년 차가 됐다.
<해리스 테니스>의 ‘해리’라는 이름으로 SNS에서 테니스 셀럽 활동을 한다
영어 이름이 ‘해리’라서 지은 이름인데, 자연스럽게 부캐로 활동한 셈이 됐다.(웃음) 최근 테니스가 대중적인 스포츠로 자리 잡았지만, 10년 전만 해도 지금과 달리 올드한 스포츠라는 인식이 강했다. 내가 느낀 테니스는 즐거운 스포츠인데, 한국에서는 유독 테니스가 딱딱하고 정형화된 방식으로만 소비되는 것 같았다. ‘테니스가 얼마나 즐겁고 멋진 스포츠인지 알릴 방법이 없을까?’ 하는 생각으로 테니스 SNS 계정을 만들었다.
매일 테니스장에서 있었던 일을 가벼운 분위기의 콘텐츠로 제작했다. 진지하게 접근하기보다는 유쾌하게 표현하려 노력했다. 사람들이 테니스에 대한 선입견을 내려놓고 편하게 다가올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처음엔 팔로워가 몇십 명 수준이었는데, 계속 하다 보니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인지도가 높아졌다. 유명해지기 위해 시작한 건 아니지만, 점점 테니스장에서 나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생겼다. 테니스에 대한 진심이 전해진 것 같다.
테니스 웨어 브랜드 '에프터 테니스'를 창업했다. 창업 계기가 궁금하다
테니스를 즐기는 사람 대부분이 직장인이다. 주말이나 퇴근 후, 일주일에 몇 시간만 테니스를 치지만, 그들 머릿속엔 늘 테니스 생각이 가득하다. 나 역시 그렇다. 그러다 보니 코트 밖에서도 테니스 감성을 느끼고 싶었다.
예를 들어, 마우스가 테니스공처럼 펠트 재질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테니스공을 만지면 마음이 안정되듯, 일상에서도 그런 감각을 느낄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심지어 부장님한테 혼날 때도 티셔츠에 테니스공 패치를 붙여두고 만지면서 마음을 다스릴 수 있으면 어떨까 싶었다.
결국, 내가 테니스를 통해 느낀 감성을 담아 브랜드를 만들었다. 일상에서도 테니스 감성을 공유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주위 반응은 어땠나?
나쁘지 않았다. 첫 제품은 테니스공을 활용한 모자였다. 생각해 보니 테니스공이 직접 디자인 요소로 활용된 모자는 없었다. 그래서 <해리스 테니스>의 'H' 로고와 테니스공을 결합한 디자인을 만들었고, 출시하자마자 수백 개가 팔렸다.
테니스장에서 이 모자를 쓴 사람들이 보이면 자연스럽게 서로 인사를 주고받는 광경이 생겼다. 나를 좋아해 준 것도 감사했지만, 테니스 감성을 담은 디자인이 공감을 얻었다는 점이 더 기뻤다.
테니스에 대한 사랑이 엄청나다. 테니스의 어떤 매력에 빠진 건가?
정복할 수 없다는 점이다. 테니스는 어려운 운동이다. 실력이 쉽게 늘지 않는다. 대부분 스포츠는 일정 시간이 지나면 어느 정도 기본기를 갖출 수 있다. 나도 그랬다. 테니스를 하기 전에 사회인 야구를 7년 정도 했는데, 3~4개월 만에 감을 잡았다. 운동신경이 좋은 편이라 테니스도 6개월 정도면 마스터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산이었다. 처음 6개월은 성장 속도가 빨랐지만 1년이 지나면서 더뎌졌다. 그때부터는 단순한 연습으로 실력이 향상되지 않았다. 더 잘하는 상대들이 계속 나타났고, 할수록 부족한 점이 보였다. 지금도 포핸드, 백핸드가 완벽하지 않다. 서브도 아직 자신이 없다. 10년을 쳤는데도 말이다.
테니스는 완벽해질 수 없는 운동이다. 다른 스포츠는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더 이상 도전할 게 없어지지만, 테니스는 끝이 없다. 그래서 더 빠져들게 된다. 완벽해지지 않기에 계속 도전하고 싶어진다. 대개의 남자는 목표를 달성하면 흥미를 잃기 마련이지 않나. 테니스는 정복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흥미를 계속 유지할 수밖에 없다.
과거에는 중년 이상의 연령층에서 테니스를 주로 즐겼다고 했다. 최근 젊은 세대 테니스인이 유입되면서 연령층이 다양할 것 같은데
지역마다 차이가 있다. 테니스 인구의 절반 이상이 서울,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서울 핵심 지역 테니스 코트에는 젊은 세대가 많다. 거의 80%가 MZ세대다. 하지만 경기도나 지방으로 가면 분위기가 다르다. 중년층이 많고, 테니스 클럽에서는 40대 초반도 막내 취급을 받는다.
확실한 건 젊은 테니스 인구가 빠르게 늘고 있다는 점이다. 수도권뿐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MZ세대의 참여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수도권 주요 테니스 코트는 젊은 세대가 많이 이용한다는 의미다
그렇다. 기존에 테니스장을 이용하던 중장년층이 공간을 잃었다는 말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예약 시스템이 평등하게 바뀌었다고 본다. 다만, 인터넷 예약에 익숙지 않은 실버 세대는 상대적으로 불리할 수 있다.
고령 테니스인을 대상으로 주말 오전 몇 시간 정도는 전화 예약을 통해 이용할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 싶다. 젊은 세대가 늘면서 테니스장에 활기가 돌고 있지만, 모든 연령층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배려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테니스는 상대가 필요한 스포츠다. 커뮤니티의 역할이 중요한가?
그렇다. 테니스는 함께해야 더 재미있는 스포츠지만, 실력 차이가 크면 경기가 성립되지 않는다. 그래서 커뮤니티에서도 일정 수준 이상의 실력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초보자가 커뮤니티에 들어가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예를 들어, 4명이 모여 게임을 하려고 하는데, 새로운 사람이 서브도 제대로 못 넣으면 게임 자체가 어려워진다. 이미 시간을 내서 온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줄 수 있다. 그래서 보통 일정 수준 실력을 갖춘 후에야 커뮤니티에 합류할 수 있다. 입문자가 많아지면서 실력에 대한 우려가 많아진 탓이다. 공식 테스트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모임의 총무나 운영진이 신입 회원의 실력을 자연스럽게 평가한다. 실력뿐 아니라 커뮤니케이션 능력도 중요한 요소다. 관계 형성이 잘 이루어져야 커뮤니티 내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다.
입문자에겐 진입장벽으로 느껴질 것 같다. 커뮤니티 가입을 위한 팁이 있다면?
도전 정신이 필요하다. 테니스는 실력이 중요하지만, 커뮤니티에 적응하는 태도도 중요하다. 나는 테니스를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일대일 대결을 신청했다. 문제는 대부분 사람이 3개월 차 초보와 경기하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1년 넘게 쳤다고 살짝 과장하기도 했다.(웃음) 물론 결국엔 실력 차이가 드러나지만, 적극적인 자세를 좋게 봐주는 경우가 많았다.
첫인상도 중요하다. 모르는 사람과 처음 칠 때는 기본적인 매너뿐 아니라 친근한 접근이 도움이 된다. 나는 음료수를 사서 가거나, 먼저 인사하며 자연스럽게 관계를 형성해 나갔다. 그렇게 하면 상대도 나를 기억하고 다시 함께 치자는 연락을 주는 경우가 많다.
이런 과정들을 거치면 점차 실력을 인정받고, 테니스 커뮤니티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다. 실전 경험을 쌓고, 레슨과 병행하면 예상보다 빨리 초보에서 벗어날 수 있다.
테니스가 '부자들의 스포츠'라는 부정적인 인식도 존재한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과거에는 그랬을 수 있다. 1980년대에 테니스를 치던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경제적 여유가 있는 계층이었다. 당시 라켓 가격이 상당히 비쌌고, 테니스를 즐길 수 있는 환경 자체가 한정적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다르다. 경제 수준이 높아지면서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테니스를 즐길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중요한 건 개인의 선택이다. 돈을 테니스에 쓸지, 다른 취미에 쓸지의 문제일 뿐 테니스가 특별히 비싼 운동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비용을 따져보면 오히려 테니스가 경제적인 스포츠다. 처음 장비를 마련하는 데 몇십만 원이 들지만, 이후 코트 비용을 인원수로 나눠 계산하면 몇천 원 정도밖에 들지 않는다.
테니스 입문자를 위해 조언을 한다면?
세 가지를 꼭 지키라고 말하고 싶다. 첫째, 라켓은 좋은 걸 구비하라. 처음부터 제대로 된 라켓을 사는 게 낫다. 저렴한 라켓을 샀다가 결국 다시 비싼 걸 사면 돈이 두 배로 든다. 또 비싼 라켓을 사면 투자한 만큼 꾸준히 하려는 동기가 생긴다.
둘째, 3개월은 무조건 하라. 테니스는 처음 배울 때는 어렵다. 재미를 느끼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3개월 정도는 집이나 회사 근처에서 꾸준히 배우면서 기본기를 쌓아야 한다.
셋째, 친구와 함께 시작하라. 혼자 배우면 쉽게 포기할 수 있다. 하지만 친구와 함께하면 경쟁도 되고, 서로 응원하면서 지속할 수 있다. 또 자연스럽게 테니스 커뮤니티가 형성되면서 함께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이 생긴다. 이 세 가지를 지키면 테니스를 꾸준히 즐길 확률이 높아진다.
개인적인 꿈이 있다면?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테니스를 치는 삶을 살고 싶다. 쉽게 말하면, 언제든 테니스를 치고 싶을 때 칠 수 있고, 어디서든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삶이다. 예를 들어, 다음 주에 LA 친구가 베니스 비치의 새 테니스장에서 테니스를 칠 것이냐고 물으면, 바로 비행기표를 끊고 떠나는 것이다. 일주일 동안 그곳 테니스인들과 어울리면서 치고, 저녁엔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그런 삶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