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류식 소주의 진화,
전통에 현대를 더하다 [인터뷰]

2025-04-03     조윤주 에디터

시대가 변하며 전통주도 변모하는 추세다. 다양한 개성과 풍미를 지닌 증류식 소주가 전통주의 영역을 넓히고 있다. 증류식 소주 시장의 변화하는 흐름과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전통주갤러리 남선희 관장을 만났다.

남선희
· 전통주갤러리 관장

우리나라의 전통주 중 증류식 소주 시장이 최근 몇 년 사이 급성장했다. 국세청 통계 연보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기준 증류식 소주 시장점유율은 3~4%대로, 2022년 1% 수준에서 3년 만에 3배 이상 증가했다.

전통주 중에서도 특히 증류식 소주 시장이 급성장한 이유는 무엇일까. 전통주갤러리 남선희 관장은 원료와 양조 방식에 따라 다채롭게 변모 가능한 증류식 소주의 확장성에 주목한다.

 

증류식 소주란 무엇인가?

초록 병에 담긴 희석식 소주가 에탄올(주정)에 물을 타고 감미료를 넣어 만든 술이라면, 증류식 소주는 쌀이나 보리 등 곡물을 발효한 후 증류 과정을 거쳐 만든다. 우리 농산물을 사용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안동소주와 문배주 등이 대표적인 증류식 소주이며, 예로부터 내려온 전통주라는 점에서 각 술마다 스토리가 깃들어 있다.

분류 기준에 따라 종류는 다양하다. 먼저 쌀이나 조 등 원재료에 따라 다양한 맛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증류 방식에 따라 상압식 증류와 감압식 증류로도 나뉜다. 상압식 증류는 일반적인 대기압에서 가열해 증류하는 방식으로, 풍부한 맛과 향을 낸다. 감압식 증류는 압력을 낮춰 낮은 온도에서 증류하는 방식으로, 부드럽고 깔끔한 맛을 낸다.

 

약주나 탁주와 다른 점은 무엇인가?

약주나 탁주 같은 발효주는 일반적으로 도수가 낮고 시간이 지나면서 변질되기 쉽다. 반면, 증류식 소주는 그에 비해 알코올 함량이 높아 변질 위험이 적어 저장성이 뛰어나다. 또 약재나 과일 등을 활용해 다양하게 발전시킬 가능성이 크다. 숙성 과정을 거치면서 더욱 특색 있고 고급화된 술로 변모하며, 오랜 숙성 기간을 거칠수록 깊은 맛이 우러난다.

 

관련 시장이 커졌다는 사실을 체감하나?

그렇다. 예전에는 술 하면 맥주나 와인, 막걸리 등의 발효주나 증류주 중에서도 희석식 소주가 주로 언급되었다. 그러나 위스키나 브랜디 등 고급 주류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프리미엄 소주로 여겨지는 증류식 소주에 대한 수요도 높아졌다.

다양한 원재료와 양조 방식으로 빚은 증류식 소주. ⓒDen

 

증류식 소주가 인기를 끌게 된 계기가 있나?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인이 있지만, 2022년 초 출시된 ‘원소주’가 전통주 열풍을 촉발한 계기라고 본다. 프리미엄 증류식 소주인 원소주는 기존 전통주와 다른 트렌디한 이미지를 내세우며 출시와 동시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또 강원도 원주 지역 특산주로 분류되는 만큼 지역마다 다양한 증류식 소주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에도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다양한 증류식 소주 브랜드가 등장하면서 관련 시장이 급성장했다.

 

당시를 기점으로 특히 젊은 층의 관심이 커진 것 같다

팬데믹 이후 집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홈술’, ‘혼술’ 문화가 유행했다. 이에 따라 술을 음미하는 문화가 자리 잡고 고품질의 프리미엄 주류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면서 증류식 소주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특히 젊은 세대는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에 깊이 몰입하고 집중 탐구하는 경향이 있는데, 온라인을 통해 우리 술의 역사, 양조 과정 등 다양한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게 되면서 술을 그냥 마시는 것이 아니라 배우고 학습하며 즐기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다양한 양조 방법이 등장하며 전통주의 범주가 확장되는 추세다.

사람마다 입맛이 다른 만큼 세분화된 취향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새롭고 다양한 술을

지속적으로 개발할 필요가 있다.

최근 저도수의 증류식 소주 제품도 출시되는 추세다. 본래 증류식 소주는 도수가 높은 것이 특징이지 않나?

일반적으로 증류주는 도수가 40% 정도는 되어야 맛과 향이 풍부해진다. 그러나 술을 즐기면서 마시는 문화가 확산되고 도수가 높은 술을 부담스러워하는 소비자가 늘어났다. 저도수의 증류식 소주는 이런 수요를 충족하기 위한 시도로 보인다.

탁주의 경우 도수가 8% 미만이면 저도 탁주, 8% 이상이면 고도 탁주로 분류한다. 증류식 소주 역시 소비자의 취향에 맞춰 다양한 도수의 제품이 출시되고 있는 만큼 탁주처럼 세분화된 분류가 필요하다고 본다.

 

오크통에서 숙성 과정을 거친 증류식 소주도 등장했다고

예전에는 숙성을 위한 용기가 옹기나 도자기밖에 없었다면, 이제는 그 선택지가 훨씬 다양해졌다. 해외 교역이 활발해지면서 오크통 숙성 방식이 보편화되는 추세이며, 이를 통해 더욱 깊고 풍부한 풍미를 지닌 증류식 소주가 등장하고 있다.

오크통에서 숙성시킨 증류식 소주는 옹기나 도자기에서 숙성한 증류식 소주와 맛과 향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옹기나 도자기에서 숙성하면 증류주 본연의 맛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반면, 오크통 숙성 과정을 거치면 나무 향과 포도주의 향이 술에 스며들어 색은 물론 맛과 향이 한층 깊고 복합적으로 변한다. 이런 차이를 경험하기 위해 최근에는 같은 원료로 만든 술을 옹기와 오크통에서 각각 숙성시켜 맛과 향을 비교해 보는 시도도 늘고 있다.

 

오크통 숙성은 서양에서 유래된 양조 기술이라는 점에서 이를 전통주의 범주에 넣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전통주의 범주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라 범주 자체가 확장되면서 더 많은 종류의 술을 포괄하게 되었다고 본다. 새로운 방식으로 빚은 술이 사람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으면 자연스럽게 증류 전 발효주인 원주에 대한 관심도 높아질 것이라고 예상한다.

다양한 양조 방법이 등장하며 전통주의 개념이 확장되는 흐름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모든 사람의 입맛이 다 같지 않으니 소비자의 다양한 입맛과 취향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다채로운 술이 생겨나야 한다.

ⓒDen

 

증류식 소주를 더욱 맛있게 즐기는 팁이 있다면?

잔에 따르자마자 바로 마시기보다는 테이블 위에 잠시 두어 공기를 순환시킨 뒤 한 모금 마시는 것이 좋다. 곧바로 마실 수도 있지만, 시간 차를 조금씩 두고 천천히 맛과 향을 음미하면서 즐기는 것을 추천한다. 또 잔을 살짝 데운 후 따라 마시는 것도 향을 살리는 방법 중 하나다.

잔의 경우 도자기 잔도 좋지만 입구가 좁아 향을 모아주는 잔을 선택하면 증류식 소주의 맛과 향을 더욱 깊이 즐길 수 있다. 그러나 증류식 소주를 마시는 방법이 정해져 있는 건 아니기 때문에 다양한 방식으로 마시면서 자신에게 맞는 방식을 찾아가길 권한다.

 

어떤 음식과 페어링하면 좋은가?

도수가 높은 편이다 보니 뜨끈한 국물이 있는 찌개나 전골류 혹은 기름진 고기를 곁들여 먹으면 좋다. 그러나 가장 추천하는 방식은 안주 없이 술만 즐기는 것이다. 음식은 다양한 양념을 통해 복합적인 맛을 내기 때문에 아무래도 음식을 곁들여 먹다 보면 본연의 술맛이 묻히기 쉽다. 따라서 한 번쯤은 안주 없이 마시며 증류식 소주 본연의 맛을 온전히 음미해 보길 권한다.

 

3월 말부터 소규모 양조장에서 발효주 외에 증류식 소주와 위스키를 비롯한 증류주도 만들 수 있게 되었다고. 앞으로는 다양한 종류의 수제 소주를 맛볼 수 있게 되는 것인가?

그렇다. 앞으로 정말 많은 수제 소주가 생겨날 것으로 예상한다. 더불어 수제 맥주처럼 보다 다양하고 개성 있는 수제 소주가 나오지 않을까 기대한다. 이처럼 증류식 소주의 종류가 세분화되면서 소비자들이 자신의 취향에 맞는 증류식 소주를 더욱 쉽게 즐길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한편 다양한 증류식 소주가 생겨날수록 잊히는 술도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 따라서 각 양조장에서는 자신이 빚은 술의 맛과 품질을 더욱 철저히 관리하며 차별화된 개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

 

증류식 소주의 전망을 어떻게 바라보나?

밝다고 본다. 소규모 양조장에서 증류주를 만들 수 있게 되는 등 전통주에 대한 지원이 확대되는 추세다. 이에 따라 앞으로 더욱 다양한 맛과 향을 지닌 증류식 소주가 생산될 것으로 기대한다. 또 품질관리에도 철저히 신경 쓰면서 소비자가 안심하고 마실 수 있는 제품이 많이 나오고 있다.

이제는 판로를 개척하는 등 소비자와의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 오프라인 시음회를 비롯해 증류식 소주를 직접 맛보고 경험할 수 있는 창구가 더 많이 생겨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