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세계를 빛낸
한판의 예술, 승부
역사에 길이 남을 세기의 대결은 언제나 뛰어난 라이벌이 있을 때 더욱 빛났다.
제29기 최고위전 도전 5번기 최종국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사제 대결
필살기▶ 빠른 행마와 판 흔들기
대표 업적▶ 1982년 제1회 응씨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 우승 /ⓒ연합포토
필살기▶두터운 계산과 정교한 끝내기
대표 업적▶ 1992년 동양증권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 최연소(16세) 우승 /ⓒ연합포토
1990년 2월 2일, 당시 15세 소년 이창호 4단이 스승 조훈현 9단을 상대로 반집 승리를 거뒀다. 2025년 3월 26일 개봉한 영화 <승부>의 모티브가 된 대국으로, 한국 바둑계를 뒤흔든 메가톤급 사건이었다. 바둑계에서는 제자가 스승을 이겼을 때 가르침에 보답했다는 뜻으로 ‘보은(報恩)’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전투의 신’ 조훈현 9단이 세계를 재패하며 최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 소년 이창호의 승리는 보은을 운운할 차원이 아닌 ‘파천황(破天荒)’을 거론할 정도로 새로운 역사가 쓰이는 순간이었다.
워낙 말이 없어 ‘돌부처’라 불리는 이창호의 승리는 조훈현이 이창호를 내제자로 들이며 내다본 “최소 10년은 걸릴 것”이라는 예상보다 훨씬 빠른 5년 만에 이룬 역전이었다. 이후로는 대국 후 제자에게 패한 스승이 지친 걸음으로 집에 돌아오고 승리한 제자는 큰 죄를 지은 것처럼 뒤를 따르는 풍경이 계속되었다. 조훈현 9단의 부인 정미화 씨는 남편의 패배를 위로해야 할지, 제자의 승리를 축하해야 할지 난감한 상황에 자주 놓였다고 한다.
2016년 구글이 선보인 인공지능 알파고와의 대국으로 화제를 모은 이세돌 9단은 2020년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해 ‘당시의 알파고’라고 표현할 정도로 13세 때 이창호의 압도적 실력을 인정했다. 2004년 중국 스포츠지 [체단주보(體壇週報)]와의 인터뷰에서는 세계 최강자로 이창호를, 그다음으로 조훈현과 일본 기사 요다 노리모토를 꼽았다. 이어서 그는 “조훈현 9단은 연세가 많으셔서 이전보다 그렇게 강하지 않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2011년 UEFA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전
메시와 호날두의 전성시대
필살기▶화려한 드리블, 플레이메이킹
대표 업적▶ 발롱도르 통산 8회 수상 /ⓒalamy
필살기▶ 헤딩슛, 골 결정력
대표 업적▶ UEFA 챔피언스 리그 최다 득점(140골) /ⓒalamy
2011년 4월 27일, 전 세계 축구 팬들의 시선이 마드리드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경기장에 집중됐다. 스페인 축구의 두 강호인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의 ‘엘 클라시코(El Clásico)’ 라이벌전이자 당시 세계 최고 선수 리오넬 메시와 크리스티아누호날두의 맞대결이었기 때문이다. 75분간 이어진 치열한 접전 끝에 메시는 경기 종료 직전 솔로 드리블로 수비수 넷을 차례로 제치고 골키퍼 카시야스까지 돌파해 득점하며 1986년 마라도나의 잉글랜드전 골이 연상되는 명장면을 만들어냈다.
바르셀로나는 메시의 쐐기골로 2 대 0 승리를 거뒀지만, 호날두도 과감한 장거리 슈팅으로 발데스 골키퍼를 계속해서 위협했다. 메시와 호날두는 2011년 4월에만 세 차례 엘 클라시코를 치르며 서로 승패를 주고받았다. 메시는 그해 UEFA 베스트 플레이어상과 발롱도르를 차지했고, 호날두는 2011~2012시즌 라리가에서 40골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2018년 6월, 미국 스포츠 매체 [블리처 리포트(Bleacher Report)]는 이 경기를 역대 최고의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 매치업 중 하나로 선정했다.
2011년 9월 24일, 메시와 호날두는 우연히도 같은 날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또 2022년 UEFA 기록에 따르면 두 선수는 UEFA 챔피언스 리그 역사상 가장 많은 해트트릭(8회)을 공동 보유하고 있다.
1979년 NCAA 챔피언십 결승전
미국을 사로잡은 하프 코트 드라마
필살기▶노룩 패스, 빠른 속공
대표 업적▶ NBA 챔피언십 통산 5회 우승 /ⓒalamy
필살기▶ 페이드어웨이 점퍼, 스텝백 점프슛
대표 업적▶ NBA 챔피언십 통산 3회 우승 /ⓒalamy
1979년 3월 26일, NCAA 챔피언십 결승전에서 두 농구 천재의 역사적 첫 만남이 이루어졌다. 당시 미시간 주립대학교의 매직 존슨과 인디애나 주립대학교의 래리 버드는 흑돌과 백돌처럼 극명한 대비를 이루며 미국 전역을 열광시켰다. 경기 전부터 이 두 선수의 대결은 ‘도시 vs시골’ 구도로 포장되어 큰 관심을 모았고, 당시 닐슨 시청률 조사 결과 24.1%라는 농구 중계 사상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경기장에서는 존슨이 24점을 터뜨리며 코트를 종횡무진 누비고, 버드는 부진한 슛 성적에도 불구하고 19점 13리바운드로 분전했지만, 승부는 결국 미시간 주립대학교의 압승으로 끝났다.
침체기에 빠져 있던 NBA는 이들의 프로리그 진출로 ‘존슨 vs. 버드’라는 세 번의 결승전 맞대결을 통해 부활했다. 코트 위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던 두 스타는 코트 밖에서는 친구 사이였다. 1985년 컨버스 광고를 함께 촬영하면서 친분을 쌓기 시작했다. 당시 버드의 어머니가 존슨을 점심 식사에 초대한 것을 계기로 두 선수는 서로의 공통점을 발견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고 한다.
마이클 조던은 NBA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꼽히지만, 그도 처음에는 매직 존슨과 래리 버드를 동경하며 농구 선수의 꿈을 키웠다. 마이클 조던은 1991년 NBA 첫 우승 후 한 인터뷰에서 “마침내 나도 버드와 존슨의 범주에 속하게 되었다”라며 전설적 두 선수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성취감을 드러냈다. 세 선수는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드림팀’을 이뤄 8전 전승으로 금메달을 획득했다.
2008년 윔블던 결승전
런던을 빛낸 4시간 48분
필살기▶ 톱스핀을 활용한 포핸드 샷, 코트 커버력
대표 업적▶ 2008년, 2010년 윔블던 테니스 대회 우승 /ⓒalamy
필살기▶ 정교한 포핸드 샷, 한 손 백핸드
대표 업적▶ 2003~2007년 윔블던 테니스 대회 5회 연속 우승 /ⓒalamy
2008년 7월 6일, 윔블던 센터 코트에서는 당시 5년 연속 윔블던 챔피언이었던 로저 페더러와 클레이코트의 황제 라파엘 나달의 결승전이 무려 4시간 48분 동안 펼쳐졌다. 나달이 먼저 2세트를 따냈지만, 페더러는 포기하지 않고 두 번의 타이브레이크를 거쳐 최종 세트까지 경기를 끌고 갔다. 페더러는 ‘아이스맨’으로 불리는 테니스 전설 비외른 보리의 기록을 넘어서는 6연패를 노리고 있었고, 나달은 1980년 보리 이후 최초로 프랑스 오픈과 윔블던을 동시에 제패하는 ‘채널 슬램’에 도전하고 있었다.
승부를 매듭지을 5세트에서는 두 선수의 숨막히는 공방이 이어졌다. 치열한 접전이 이어지는 가운데 나달은 과감히 승부수를 던졌고, 첫 서브 앤 발리 시도로 페더러를 놀라게 하며 타이틀을 확보했다. 밤 9시 무렵, 나달이 코트에 누워 승리를 만끽할 때 윔블던 센터 코트는 플래시 세례로 환하게 빛났다. 런던 당국은 경기가 끝났을 때 도시 전체의 전기 사용량이 급증했다고 발표할 정도로 많은 사람이 열광한 명승부였다.
그랜드 슬램 단식 타이틀 7개를 보유한 테니스 전설 존 매켄로는 2008년 윔블던 테니스 대회결승전에서 NBC 해설위원으로 활약했다. 페더러와 나달의 역사적 대결을 중계하던 그는 “내가 지금까지 본 경기 중 최고였고, 테니스 역사상 가장 위대한 경기였다”라며 극찬했다. 특히 5세트에서 펼쳐진 숨 막히는 접전에 완전히 매료된 존 매켄로는 해설자임에도 말을 잇지 못할 정도로 두 선수의 혈전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