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정부의
현실판 오징어 게임 [십자말풀이로 알아보는 국제 상식]
500만 달러(약 72억원)를 내면 미국 영주권을 얻을 수 있는 이른바 ‘골드 카드’의 실물을 공개하는가 하면, 우승자에게 시민권을 주는 리얼리티 쇼 검토까지. 트럼프 정부의 파격 행보로 미국이 떠들썩하다.
➀ ○○○ 코미 전 FBI 국장이 소셜미디어 X에 올린 숫자 ‘86 47’ 사진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분노하게 했다.
➁ 올라프 숄츠 독일 전 총리가 퇴임 기념 열병식에서 듣고 싶은 고별 음악으로 영국 그룹 ○○○의 노래 ‘In My Life’를 신청했다.
➂ 미국 프로듀서가 외국인들에게 미국 시민권을 경품으로 내건 ○○○○○를 제작하자고 트럼프 정부에 제안했다.
➃ 스포츠 브랜드 아디다스가 그리스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인근에서 ○○○를 진행했다가 예상하지 못한 문화유산 모독 논란에 휘말렸다.
➄ 미국인으로는 사상 처음 교황이 된 ‘레오 14세’의 즉위 ○○가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열렸다.
➅ 인도네시아 서자바 ○○○가 가난한 남성은 정관수술을 받아야 정부의 복지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해 구설에 올랐다.
➀ 숫자에 숨은 정치적 메시지
“팔사 삽십이, 팔오 사십, 팔육 사십팔….” 이렇게 86 48인데, 왜 ‘86 47’이라고 했을까? 혹시 구구단을 잘못한 건 아닐까? 저는 지난달 86 47 사진을 처음 봤을 때 구구단을 떠올렸습니다. ‘86 47’이라는 수가 미국 정계에서 뜨거운 논란이 됐는데요, 발단은 제임스 코미 전 연방수사국(FBI) 국장이 소셜미디어 X에 올린 사진이었습니다. 해변에 86 47 모양으로 조개껍데기를 배열한 것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 사진에 “아이들도 이 사진이 무얼 뜻하는지 안다”며 “더러운 놈”이라고 비난했습니다. 대체 무슨 뜻이기에 이렇게 발끈한 걸까요? 미국에서 ‘86(에이티식스)’는 내쫓다, 없애버리다 등의 뜻을 담은 속어입니다. 트럼프는 47대 대통령이고요. 따라서 86 47은 ‘트럼프를 없애버리라’는 뜻이라는 것이 트럼프 지지자들의 주장입니다.
86은 원래 식당에서 특정 메뉴를 더 이상 제공하지 않거나, 술집에서 취객을 쫓아낸다는 의미로 주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The bartender 86ed the drunk guy(바텐더가 취객을 쫓아냈다)’, 이렇게 속된 말로 쓰는 것이죠. 86을 왜 이런 뜻으로 사용했는지에 대해선 여러 가지 설이 있습니다. 1920~1930년대 레스토랑이나 바에서 햄 샌드위치가 품절됐을 때 점원들이 “86 the ham sandwich!”라고 주고받던 말의 의미가 ‘(메뉴가)없어지다’에서 ‘(사람을)없애버리다’로 확장됐다는 것이 그중 하나죠. 미국 시사 주간지 <뉴스위크>는 마피아들이 ‘86’을 살해한다는 말로 쓴다고 전했습니다. 누군가를 ‘마을에서 8마일 떨어진 곳’으로 데려가 ‘6피트 아래’에 묻는다는 뜻이라는 겁니다. 서양 무덤의 표준 규격이 길이 8피트(약 2.4m), 높이 6피트(약 1.8m)인 점에서 86이 죽음을 뜻한다는 설도 있습니다. 미국 금주령 시대의 불법 술집 ‘첨리즈(Chumley’s)’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죠. 이 술집이 베드퍼드 거리 86번지에 있었는데요, 경찰이 술집을 급습하면 종업원들이 취객들을 뒷문으로 내보냈다고 합니다. 문밖으로 빠져나오면 바로 86번지가 나왔다고 하네요. 그래서 86이 쫓아내다는 뜻으로 쓰였다는 겁니다. 또 미 해군에서 재고를 분류할 때 폐기 예정 장비에 ‘AT-6(에이티-식스)’라는 코드를 쓴 데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86 외에도 특이한 뜻으로 쓰는 숫자가 있는데요. 5150입니다. 명사로는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사람’, 동사로는 ‘정신병원에 보낸다’는 뜻으로 씁니다. 예문을 들자면 ‘They 5150’d him after he lost it(그가 이성을 잃자 그들이 그를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시켰다)’입니다. 정신병원 강제 입원에 관한 캘리포니아주 법률 조항 번호가 5150인 데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기원도 많고 뜻도 복잡한 미국의 숫자 속어를 외우자니 정신적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네요. 이럴 때 토종 숫자 속어가 떠오르네요. 구구단으로 표현하자면 이구 십칠?
➁ 독일 총리가 고른 비틀스 음악에 담긴 의미
독일에서는 대통령, 총리, 국방부 장관 등이 퇴임할 때 고별 행사로 연방군이 열병식을 하는 전통이 있는데요, 군악대 연주 희망곡을 미리 신청할 수 있습니다. 지난달 퇴임한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고별 음악으로 비틀스의 ‘In my life’,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2번 중 일부, 어리사 프랭클린의 ‘Respect’를 순서대로 연주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독일 언론은 숄츠 총리의 신청곡이 자신의 심경과 정치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분석했는데요, 예를 들면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은 숄츠 총리의 지역구가 있는 브란덴부르크주를 염두에 둔 포석이라는 겁니다. 비틀스 노래를 고른 이유도 비틀스가 무명 시절 활동 무대인 함부르크가 숄츠 총리 정치 활동의 기반이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습니다. 함부르크 시장을 지낸 숄츠 총리의 정치적 이력을 고려한 선곡이라는 겁니다. 비틀스 ‘In my life’는 “내 평생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장소들이 있어요”라는 가사로 시작해 “내 삶에서 나는 당신을 더 사랑해요”로 끝나는데요, 역시 베테랑 정치인답습니다. 제가 웃음을 빵 터트린 곡은 마지막 노래 ‘Respect’입니다. 매우 경쾌한 곡인데요, 가사가 압권입니다. “내가 딱 하나 바라는 건 / 나를 조금만 존중해 줘요”. 특히 후렴 코러스로 “Just a little bit(조금만)”이 여러 번 나옵니다. 이에 대해 현지 언론은 총리로 재임한 3년 5개월 동안 국민의 지지를 많이 받지 못한 숄츠의 심정을 대변하는 가사라고 분석했습니다. 앞서 숄츠 총리는 재직 당시 자신이 연립정부와 언론의 존중을 받지 못했다고 종종 털어놓았는데요, 이렇게 유쾌한 곡의 가사로 자기 마음을 표현하는 걸 보니 감춰놓은 유머가 있나 봅니다.
➂ 트럼프 정부가 계획한 야심찬 리얼리티 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500만 달러(약 72억원)를 내면 미국 영주권을 얻을 수 있는 이른바 ‘골드 카드’의 실물을 공개한 데 이어,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가 골드 카드를 이민 시스템에 통합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골드 카드 신청과 발급에 필요한 시스템을 개발하고 테스트 중이라는 겁니다. 골드 카드로 ‘EB-5’ 투자 이민 제도를 대체한다는 것인데요, 기존에는 11억~15억원을 내면 영주권을 받을 수 있었는데 골드 카드 제도가 시행되면 72억원을 내야 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골드 카드가 100만장 이상 팔릴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습니다. 100만 장을 팔아 무려 5조 달러(약 7200조원) 수입을 거두겠다는 겁니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정부가 시민권을 경품으로 내건 리얼리티 쇼 제작에 참여할 것이라는 현지 보도가 나와 논란을 불렀습니다. 외국인 12명을 출연시켜 미국 전역을 돌며 뉴욕에서 피자 만들기, 플로리다에서 로켓 발사 챌린지하기 등 지역별 전통과 특색에 맞는 대결을 펼치게 한다는 구상입니다. 프로그램 이름은 <미국인(The American)>으로 논의했다는데요, 프로그램 기획 취지는 미국인이 되기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미국인들이 자긍심을 느끼고, 미국 시민이라는 지위가 어떤 의미인지 깨닫게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방송 프로듀서가 정부에 제안한 것이어서 확정된 사안은 아닌데요, 기획 의도가 로마 시대에 로마 시민권을 갈망했던 이방인들과 로마인들의 특권 의식을 연상시키는군요. 이번 시민권 리얼리티 쇼 구상에 대해 일각에서는 영화 <헝거 게임>을 떠올리게 하는 비인간적 구태라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 시즌 1의 우승자 상금이 456억원이었는데, 72억원짜리 미국 영주권보다 귀한 시민권 리얼리티 쇼의 우승 상금은 100억원은 넘겠네요. 이런 데 돈 쓰려고 골드 카드를 파는 건 아니겠죠?
➃ 아디다스의 드론 쇼가 여론의 뭇매를 맞은 이유
몇 달 전 부산 광안리해변에서 주말 드론 쇼를 감상했는데요, 별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군집 드론이 세배하는 어린이들 모습까지 구현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와 비슷한 드론쇼를 그리스 아테네에서 연 아디다스가 고대 유산을 모독했다는 오해를 받으며 곤욕을 치렀습니다. 5월 15일 아디다스는 1896년 제1회 근대 올림픽 당시 펜싱 경기장으로 사용된 자페이온 홀에서 드론 쇼를 진행했는데요, 아디다스 운동화를 비롯해 사람들이 달려가는 모습 등 다양한 형상을 선보였습니다. 그런데 뜻밖의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이곳에서 걸어가면 20분이면 닿는 1.5km 거리에 아크로폴리스가 있는데요, 멀리서는 자페이온 홀 위의 드론과 아크로폴리스가 겹쳐진 것처럼 보여 아크로폴리스 드론 쇼 같은 착시를 불러일으킨 겁니다. 특히 이날 드론 쇼를 먼 거리에서 촬영한 각종 사진에는 아디다스 운동화가 아크로폴리스를 짓밟는 듯한 모습으로 보이기도 했습니다. 2차원으로 나타나는 사진을 보면 이렇게 오해할 수 있는 장면들이 나온 겁니다. 아디다스는 “드론 쇼는 아크로폴리스가 아닌 자페이온 홀에서만 한 것이고, 돈을 내고 허가받은 정당한 행사”라며 억울해했지만, 논란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습니다. 그리스 문화부 장관도 가세해 “이번 드론 쇼는 아크로폴리스를 상업적으로 이용한 불법행위”라며 “드론이 형상화한 아디다스 신발이 아크로폴리스를 걷어차는 것처럼 보였다”라고 비난했습니다. 야당이 “드론 쇼가 문화유산을 모욕적으로 상업화했다”라고 지적하자, 그리스 정부는 이번 논란과 관련한 책임자 전원에게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멕시코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는데요, 구독자가 4억 명에 육박하는 유튜버 ‘미스터 비스트(Mr. Beast)’가 멕시코 정부의 협조를 받아 촬영한 마야 문명 유적지 영상에 자기 회사의 초콜릿 광고를 담은 겁니다. 멕시코 문화유산 콘텐츠에 PPL(간접광고)을 채운 셈이니 멕시코가 화날 만하죠?
➄ 사상 첫 미국인 교황 탄생
제267대 교황 레오 14세의 즉위 미사가 5월 18일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에서 열렸습니다. 사상 첫 미국인 교황의 즉위를 축하하기 위해 180여 개국 대표단과 20만 가톨릭 신자가 바티칸에 몰렸습니다. 이날 교황은 “자신에게 맡겨진 이들을 사랑으로 돌봐야 한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앞서 ‘콘클라베’(교황을 선출하는 추기경단의 비밀 투표)를 앞두고, 누가 교황으로 선출될지 알아맞히려는 도박업체들의 열기가 뜨거웠습니다. 영국 주간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3개 도박업체에 모인 판돈이 1900만 달러(약 260억원)가 넘었다고 합니다. 이는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3년 선출됐을 당시 판돈의 50배에 달하는 규모입니다. 교황 선출을 알아맞히는 도박의 역사는 16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가는데요, 16세기 후반에는 돈을 거는 것을 금지하는 칙령이 시행됐을 정도로 유행이었다고 합니다. 이번에 교황으로 선출된 레오 14세(로버트 프랜시스 프레보스트)는 도박가들이 예상하지 못한 ‘다크호스’였습니다.
콘클라베 직전, 도박사들 예측으로는 피에트로 파롤린(이탈리아) 추기경이 선출될 가능성이 28%로 가장 높았고, 루이스 안토니오 타글레(필리핀) 추기경이 18%로 그 뒤를 이었습니다. 이번에 교황이 된 추기경은 당시 베팅에서는 상위 10인에 들지 못했는데, 예상을 뒤엎은 겁니다. 자신을 교황 후보군으로도 생각하지 않은 도박사들을 레오 14세는 어떻게 보고 있을지 궁금합니다. 교황님, 호모 알레아토르(Homo Aleator, 도박하는 인간)를 불쌍히 여기소서!
➅ 주지사가 비행 청소년을 훈육하는 방법
인도네시아의 한 주지사가 말실수를 거듭해 도마에 올랐습니다. 주인공은 인도네시아 서자바 주지사입니다. 그의 이름은 데디 물야디인데요, 수도 자카르타 인근 도시에서 청소년 범죄가 잇따르자 비행 청소년들에게 중국식 군사훈련을 시키자고 제안한 겁니다. 비행 청소년들에게 6개월에서 1년간 군사훈련과 유사한 프로그램을 적용하자는 것이니, 우리로 치면 1980년대 초반 정부가 운영한 ‘삼청교육대’에 청소년들을 입소시키자는 셈입니다.
서자바 주지사의 이 주장은 역풍을 맞았습니다. 그는 “중국 비행 청소년들이 훈련을 받고 난 뒤 인생의 방향을 찾았다”며 도입 필요성을 강조했지만, 일부 학부모가 국가인권위원회에 주지사를 신고할 정도로 반응은 차갑습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이 주지사는 가난한 남성이 정부의 복지 혜택을 받으려면 정관수술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쳐 논란을 키웠습니다. 심지어 “가난한 가정이 아이는 왜 많이 낳느냐”라고 꾸짖듯 말하기도 했습니다. 9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주지사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요, 아무리 올해 2월 취임한 초보 주지사라고 해도 말실수가 너무 잦은 것 같습니다. 그에게 우리 속담을 들려주고 싶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