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의료의 한계를 깨는
뇌혈관 치료 혁신가
[Den이 만난 명의]

2025-06-11     정지환 에디터

수술과 시술, 두 영역을 넘나들며 뇌혈관 치료의 새로운 기준을 세운 이가 있다. 지역 의료의 한계를 실력과 신뢰로 돌파하며 환자 곁을 지켜온 의사, 양구현 교수를 만났다.

양구현 교수는…
2004년 건양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아산병원에서 인턴과 전공의 과정을 수료했다. 이후 울진 중앙병원에서 공중 보건의 시절을 거처 다시 서울 아산병원에서 신경외과 뇌혈관 수술 전임의 2년과 영상 의학과 뇌혈관 중재술 전임의 2년을 거쳤다. 2016년 강릉아산병원 신경외과 조교수를 시작으로 현재 강릉아산병원 신경외과 교수이자 뇌졸중센터 센터장을 맡고 있다.
뇌동맥류, 뇌출혈, 모야모야병, 뇌혈관 기형 등 뇌혈관질환 수술을 전문으로 하며, 혈관내수술과 개두술을 모두 집도할 수 있는 복합 술기를 보유한 전문가다. 혈관질환의 정밀 진단과 치료 전략 수립에 특화되어 있으며, 수술 효율성과 예후 향상에 기여하는 술기 개발과 임상 적용에 힘쓰고 있다.
국내 주요 신경외과 학회 정회원으로 활동 중이며, SCI급 국제 학술지에 다수의 연구 논문을 발표했다. 특히 복잡 뇌동맥류 수술과 관련한 3D 영상 융합 진단 기법과 우회술 연구로 주목받고 있다.

 

“강릉에 사는 게 죄가 되어선 안 된다.” 강릉아산병원 신경외과 양구현 교수는 이 한마디를 가슴에 새기고, 지난 10년간 영동 지역 뇌혈관 치료의 기준을 다시 세웠다. 지방 병원이라는 선입견과 한계를 딛고 실력과 시스템으로 신뢰를 쌓아온 결과다. 수도권 환자들까지 찾아오는 지금, 그는 여전히 현장을 지키며 지역 의료의 격차를 좁히고 있다.

양구현 교수는 강릉아산병원 신경외과 교수이자 뇌졸중센터 센터장이다. 뇌동맥류, 뇌출혈, 모야모야병 등 중증 뇌혈관질환이 전문 분야이며, 혈관내수술과 개두술을 모두 집도할 수 있는 복합 술기를 갖춘 몇 안 되는 의사 중 하나다. 환자 상태에 따라 최적의 치료 방식을 제시하며, 실제로 그가 이끄는 뇌졸중센터는 세계뇌졸중기구(WSO)가 주관하는 ‘엔젤스 어워드’에서 최고 등급인 다이아몬드상을 3회 연속 수상했다. 이는 지방 의료기관의 한계를 넘어 세계적 수준의 치료 역량과 시스템을 갖췄음을 인정받은 결과다. 의료 인력 부족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AI 기반의 ‘씽크(THiNQ) 모니터링 시스템’을 국내 최초로 도입하는 등, 그는 진료뿐 아니라 시스템 혁신에도 앞장서고 있다.

환자에게 ‘든든한 의사’로 기억되고 싶다는 양구현 교수는 단 한 생명도 놓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오늘도 수술실에 들어선다.

 


 

의학의 길에 들어서게 된 계기는?

고등학생 시절엔 법관이 되는 게 꿈이었다. 정의를 실현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대학에 진학하던 시기가 IMF 직후였기에, 당시 가장 안정적인 직업으로 선호하던 의사로 진로 선택을 다시 하게 됐다. 현실적인 이유로 의사를 택한 만큼 처음 의대에 들어갈 때는 ‘맞지 않으면 언제든 그만두자’는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의사라는 직업에 매력을 느꼈다. 법조인이 사회 정의를 위해 싸운다면, 의사는 내 앞에 있는 한 사람의 삶을 변화시킨다. 내 손으로 직접 환자를 치료하고, 그 사람이 병에서 벗어나 다시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보람을 느꼈다. 이후 지금까지 의학의 길을 선택한 걸 후회한 적이 없다.

 

신경외과, 그중에서도 뇌혈관 분야를 선택했다. 필수 진료과로 전공을 선택한 이유도 궁금하다

누군가가 나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순간, 그 곁에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뇌혈관질환은 골든타임이 생명이다. ‘오늘은 힘드니 내일 보자’는 선택지는 없다. 환자가 지금 당장 나를 필요로 할 때 그 자리에 내가 있어 주는 것 자체가 의사로서 큰 의미라 생각했다.

물론 피곤하고 힘든 순간도 많다. 하지만 누군가는 응급 상황에 바로 대응해야 한다. 누군가가 해야 한다면 내가 그 역할을 맡고 싶었다.

 

책임감을 넘어 사명감이 엿보인다. 인생에 전환점이 있었나?

서울아산병원에서 오랜 시간 근무하다 강릉아산병원에서 일해 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처음엔 단기 파견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일하면서 지역 병원의 현실을 마주했다.

처음 강릉에 왔을 무렵 우리 병원 응급실을 찾은 환자가 생각난다. 보호자가 ‘강릉 병원은 못 믿겠다’며 서울로 이송을 결정했다. 그 사이에 재출혈이 발생했고, 결국 환자는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가 됐다. 그때 ‘강릉에 산다는 게 죄가 되어선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서울이었다면 살았을 수 있는 환자가 단지 지역 병원을 찾았다는 이유로 손쓸 기회를 놓친 것이다. 그때부터 오기가 생겼고, 진짜 실력을 증명해 보이겠다고 다짐했다.

 

환자들이 선입견 때문에 수도권 병원에서 진료받길 원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지방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환자들이 병원 시스템이나 의료진을 신뢰하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지역 병원이라는 배경만으로 환자들이 불안을 느끼고 병원을 떠나는 현실이 안타깝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경우가 억울하진 않다. 시간적 여유가 충분한 상태에서 2주, 한 달 후 수술을 계획할 수 있는 환자가 서울 병원을 선택하는 건 당연히 이해가 되고, 선택은 환자의 권리이기도 하다. 걱정하는 건 지금 당장 수술하지 않으면 생명을 위협받는 환자가 병원과 의료진을 믿지 못해 이송을 결정하는 상황이다. 그런 선택이 결국 예후에 영향을 주고, 실제로 치명적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를 많이 봤다.

지금은 그런 인식이 크게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지난 10년간 강릉아산병원 뇌졸중센터를 구축하고 시스템을 세팅하며, 전국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는 수준까지 올라왔다고 자부한다. 실제로 지금은 타 지역뿐 아니라 서울에서 일부러 찾아오는 환자도 있다. 내가 여기 있다는 걸 알고, 믿고 찾아오는 사람들이다. 이제는 서울 병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의료 수준을 걱정할 단계는 지났다고 본다.

 

 

환자가 서울에서 진료받길 희망한다면

막지 않는다. 다만 소견서에

내 이름을 꼭 적어 넣는다. 그러면 서울의 동료,

선후배 의사들이 보고 환자에게

‘그 의사는 믿을 만하다’라고 말한다.

그렇게 다시 돌아온 환자가 적지 않다.

내가 병원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환자들이 믿고 안심할 수 있길 바란다.

 

한편으로는 지역 의료 현장 입장에서 어려움도 있을 것 같다

아무래도 전문 의료진을 확보하는 것이 어려운 문제다. 강릉뿐 아니라 지역 의료기관 전체의 공통된 문제일 거다. 단순히 병원의 조건이나 급여의 문제가 아니다. 의료인도 한 사회의 구성원인 만큼 자녀 교육, 생활 여건, 사회적 인프라 등 여러 요소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 서울에 직장이 있어야 아이들 학군이나 교육 환경 등에서 불이익이 없다는 인식이 여전히 강하다.

단기적으로 좋은 조건을 내걸어 사람을 데려오는 방식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현재 강릉아산병원은 대학병원으로서 후배들의 교육과 수련을 위한 시스템을 꾸준히 정비해 왔다. 단순히 서울에서 수련한 사람을 데려오는 것이 아니라 지역에서 자라고 배운 의료인이 병원에 남아 자긍심을 갖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현재 영동 지역에서 뇌혈관 수술과 시술을 모두 할 수 있는 의사로 활약 중이다. 이런 역할에 대해 스스로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 책임감이 막중할 것 같다

대표적인 뇌혈관 질환인 대뇌 동맥류를 예시로 할 때, 치료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다리 혈관을 통해 뇌혈관에 색전 코일을 삽입해 출혈을 막는 시술이고, 다른 하나는 두개골을 열고 현미경 하에서 클립으로 직접 막는 수술이다.

두 가지 치료법 모두 정식 자격이 있으면 할 수 있지만, 실질적으로 두 가지 다 높은 수준으로 수행하기는 쉽지 않다.

전문의 이후에도 수년간 두 치료법을 모두 익히기 위해 시간을 들였고, 지금도 그 균형을 유지하려 애쓴다. 단순히 기술을 모두 갖추고 싶어서가 아니라 환자에게 더 적절한 치료를 해주고 싶기 때문이다. 색전술만으로도, 수술만으로도 대부분 환자를 치료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환자를 대상으로 한 가지 방식만 고집하기보다는 병의 양상에 따라 최선의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 내 가족이라면 어떻게 할지를 기준으로 판단해 환자에게 적합한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본인만의 의료 철학이 있다면?

의료는 결국 ‘직업’이다. 의료인에게 봉사와 희생만을 강요하는 건 건강하지 않다. 수술실에 들어가면 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한 채 밤을 새우는 일이 다반사이고, 그런 노동이 단순히 사명감 하나로만 이뤄지는 건 아니다. 의료는 ‘상생 구조’라고 생각한다.

환자는 건강을 되찾고 안심할 수 있어야 하고, 보호자는 환자가 회복하는 모습을 보며 기뻐해야 한다. 의사는 환자를 치료하며 자긍심을 느끼고, 그 보람을 바탕으로 안정적인 삶을 꾸릴 수 있어야 한다. 간호사나 병원 관계자도 마찬가지다. 이 모두가 함께 행복해질 수 있는 구조가 바로 ‘건강한 의료 생태’일 것이다.

환자와 의사, 병원과 직원, 그 사이의 모든 연결이 조화를 이루는 구조. 이 구조가 무너지면 결국 의료계 전체가 무너진다. 의사 없는 환자 없고, 환자 없는 의사도 없다.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많은 환자를 만나왔을 텐데, 특히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다면?

색소폰을 연주하던 환자가 있었다. 뇌줄기에 3cm 크기의 해면상 혈관종이 있었고, 이 혈관이 터지면서 상태가 급격히 악화됐다. 특히 말하는 기능이 무너지다 보니 평생 이어온 색소폰 연주도 영영 못 하게 됐다며 환자 스스로 자포자기한 상황이었다. 수술은 끝났지만 환자가 마취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도 환자의 반응이 없던 그 순간이 내게는 악몽 같았다. 다행히 6시간쯤 지나 환자가 눈을 떴고, 서서히 회복했다.

대략 10개월이 지난 후, 병원에서 진행한 심포지엄에 그 환자가 초대 손님으로 방문했다. “교수님께 보여드리고 싶었다”며 색소폰 연주 영상을 틀어줬다. 그 순간은 정말 평생 잊을 수 없다. 환자가 무사히 회복해 일상을 되찾은 모습을 눈앞에서 확인하는 순간이 선명하게 기억난다.

 

강릉아산병원 뇌졸중센터가 ‘WSO 엔젤스 어워드’ 최고 등급인 다이아몬드상을 3회 연속 수상했다. 리더십의 진가가 입증된 것 같다

팀원들의 헌신 덕분이다. 개인적으로 리더십은 명령하는 구조가 아닌 협력하는 구조라 생각한다. 각자가 자기 자리에서 꽃처럼 피어야 전체 팀이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잘못된 부분이 생기면 비난보다 개선 방향을 제시하고, 잘한 부분은 아낌없이 칭찬한다. 채찍보다 당근이 더 효과적이라 믿기 때문이다. 구성원이 스스로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리더십이자 이번 수상의 원동력이었다고 생각한다.

 

 

씽크 모니터링 시스템을 갖추고자 직접 노력했다고 들었다. 그 덕분에 강릉아산병원은 씽크 모니터링 시스템을 갖춘 1호 병원이 되었다. 씽크 모니터링 시스템을 갖춘 이유가 무엇인가?

현재 의료 현장은 전반적으로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의사든 간호사든 모두 지쳐 있는 상황에서 제한된 인력으로 최대 효과를 내기 위해선 시스템 보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점에서 씽크 모니터링 시스템은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었다.

씽크는 AI 기술을 접목한 원격 간편 부착형 생체 징후 모니터링 시스템이다. 중앙 감시 기능을 기반으로 환자의 주요 바이탈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AI가 이상 징후를 자동으로 감지해 알림 신호를 보낸다. 간호사가 한 명의 환자 곁에만 계속 붙어 있을 수 없는 현실에서, 이 시스템은 의료진이 여러 환자의 상태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의사 역시 직접 환자 차트를 일일이 열어보지 않고도 모니터 한 번으로 전체 병동의 상태를 빠르게 점검할 수 있다.

특히 회진 시간의 효율성이 눈에 띄게 높아졌다. 이전에는 차트를 하나하나 확인하며 환자의 상태를 체크했지만, 지금은 모니터링 데이터를 기반으로 우선순위가 높은 환자를 선별해 집중 치료를 할 수 있다. 커뮤니케이션도 빨라지고, 판단도 더 정확해졌다.

지금 같은 인력난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의료 인력을 최소화하면서 환자 안전을 극대화할 수 있는 이 시스템은 우리 병원으로서는 꼭 필요한 선택이었다. 지금도 이 시스템이 가져온 변화에 만족하고, 앞으로 더 적극적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든든한 의사’로 기억되고 싶다.

내가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안심이 되고, 병에 대한 두려움을

덜 수 있는 존재 말이다.

 

어떤 의사로 기억되고 싶나?

‘최고의 의사’보다는 ‘든든한 의사’로 기억되고 싶다. 언제든 믿고 찾을 수 있는 의사, 그 자체로 환자에게 위로가 되는 존재이면 좋겠다.

환자에게 고통이 아닌 회복과 희망을 주기 위해 매 순간 최선을 다한다. 실제로 한 보호자는 내 모습에 후광을 그려 넣어 “이 사람이 주치의라면 나는 걱정 없다”는 말과 함께 웹툰을 만들어줬다.(웃음) 모야모야병처럼 평생 관리가 필요한 환자도 있다. 그들에겐 “언제든지 오시면 됩니다. 저는 항상 병원에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내 말 한마디에 안심하는 환자들을 볼 때마다 내가 있어야 할 자리가 어딘지 분명히 느낀다.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강릉아산병원이 영동권 뇌혈관 치료의 중심이 되면서 지역 전체가 함께 수준을 끌어올리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현재 강릉아산병원 뇌졸중센터는 빠르게 발전하고 있지만 영동 지역 전체를 보면 뇌혈관 치료의 격차가 여전히 크다. 간단한 진료조차 뇌혈관 관련 치료라는 이유만으로 거절하거나 대학병원으로 넘기는 경우가 다반사다.

강릉아산병원은 대학병원으로서 중심 역할을 해야 하지만 모든 환자를 떠맡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경과 관찰만으로도 충분한 환자까지 모두 대학병원으로 몰리면 중증 환자에게 충분한 시간을 쓰지 못하게 된다.

이를 보완하고자 영동 지역의 여러 병원과 뇌혈관 전문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단순한 인적 네트워크를 넘어 각 병원이 자율성과 적극성을 갖고 일정 수준 이상의 치료를 해낼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이런 시스템으로 지역 전체의 의료 수준을 높여 환자에게 더 나은 치료를 제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