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깊어진 내털리 포트먼의 세계

2025-06-24     윤여수(맥스무비 기자)

스크린의 찬란한 시작점에서, 이제는 이야기의 흐름을 만들어가는 자리까지. 내털리 포트먼은 배우라는 경계를 넘어 독자적인 깊이를 완성해 가고 있다. 자신만의 길을 걷고 있는 품격 있는 배우, 내털리 포트먼이 지나온 시간을 들여다본다. 

©alamy

킬러 레옹 옆 단발머리 소녀, 마틸다로 스타덤에 오르다

내털리 포트먼은 열한 살이던 1994년 뤼크 베송 감독의 영화 [레옹]으로 연기 무대에 데뷔했다. 오디션을 거쳐 극 중 ‘마틸다’로 분한 그는 단박에 세계의 시선을 모았다. 킬러 ‘레옹’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뒤 그와 함께 일상을 보내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에서 내털리 포트먼은 어린 나이에 보여줄 수 있는 연기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특히 레옹을 연기한 장 르노는 물론 비리 경찰관으로 나오는 게리 올드먼 등 성인 연기자들에 게 전혀 밀리지 않는 연기로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했다. 극 중 가족을 모두 잃은 채 레옹에게 의지하게 되지만 결코 연약하지 않은, 영민한 소녀의 이미지를 통해 내털리 포트먼은 마틸다를 강인한 여성 캐릭터를 대표하는 새로운 상징으로 각인시켰다.

하지만 [레옹]과 마틸다로 단박에 스타덤에 오른 만큼 그 이미지가 대중의 뇌리에 오래남을 수밖에 없었다. ‘내털리 포트먼=마틸라’라는 공식 아닌 공식에 그는 한동안 갇혀 지내야 했다.

[레옹] 스틸컷 ©alamy
[레옹]의 뤼크 베송 감독은 내털리 포트먼의 순수하면서도 어두운 매력을 발견해 마틸다 역에 캐스팅했다.©alamy

과감한 캐릭터 연기로 이미지 변신을 꾀하다

내털리 포트먼은 [스타워즈: 보이지 않는 위험]과 [스타워즈: 클론의 습격]을 거친 뒤 조금씩 새로운 꽃망울을 터뜨리다 드디어 만개를 예고하는 무대를 만난다. 바로 2004년 선보인 [클로저]다. [클로저]는 그가 줄리아 로버츠, 주드 로, 클라이브 오웬과 호흡을 맞춘 작품이다.

영국 런던을 배경으로 소설가를 꿈꾸는 기자와 뉴욕 출신 스트립 댄서, 사진작가와 마초 의사 등 네 남녀의 엇갈리는 사랑과 유혹, 욕망을 그린 영화는 극 중 인물들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며 이야기를 펼쳐 호평받았다. 내털리 포트먼은 스트립 댄서 역할을 통해 과감한 캐릭터 연기에 도전했다. 그는 강렬한 섹시함과 민낯의 순수함 사이를 오가며 사랑에 진심으로 다가서는 모습으로 찬사를 받았다. 한순간 빠져든 사랑, 하지만 늘 불안하기만 한 관계를 이어가는 과정을 내밀하게 연기했다.

호평과 찬사는 결국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품에 안는 성과로 이어졌다. 하지만 더욱 큰 성취는 내털리 포트먼이 [레옹] 속 마틸다는 이제 더 이상 자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했다는 점이다.

[클로저] 스틸컷 ©alamy
내털리 포트먼은 [클로저]를 통해 그간의 모범생 이미지를 탈피하고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는 데 성공했다. ©alamy

성숙한 배우를 향한 날갯짓, [블랙 스완]을 만나다

이후 그는 여전히 ‘명작’이라는 이름으로 영화사에 기록될 [블랙 스완]을 만난다.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이 연출한 [블랙 스완]은 고전발레 ‘백조의 호수’를 소재로 무대 위 순수하고 가녀린 백조와 관능적이고 도발적인 흑조의 완벽한 캐릭터를 동시에 꿈꾸는 프리마돈나 ‘니나’의 욕망과 집착, 불안을 그린 작품이다.

내털리 포트먼은 [블랙 스완]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자리가 위협당한다는 강박으로 광기에 사로잡혀 점차 파멸로 치닫는 니나를 연기했다. 마침 그는 어린 시절 배운 발레에 대한 기억을 꺼내놓기도 했다. 무려 1년여의 시간을 발레에 투자한 그는 매일 교습을 받으며 실제 발레리나와 다르지 않은 연습을 이어갔다. 결국 토슈즈에 온몸을 맡긴 채 다양하고 현란한 발레 동작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극 중 80%에 해당하는 발레 장면이 내털리 포트먼의 이 같은 노력으로 완성됐다는 후문이다.

[블랙 스완]에서 완벽한 발레리나로 변신한 그녀는 늑골이 부러지고 인대가 늘어나는 고통을 감내하며 연기에 투혼을 발휘했다. ©alamy

하지만 전 세계 관객의 시선을 모은 것은 단연 그의 연기력. 스스로를 파괴하지 않으면 도저히 현실과 무대를 견뎌낼 수 없을 것처럼 파국으로 빠져 들어가는 어두운 내면을 내털리 포트먼은 훌륭한 연기로 승화하는 데 성공했다.

앞서 [클로저]가 내털리 포트먼이 비로소 성인 연기자로서 세상에 새롭게 발을 내딛게 한 무대였다면, [블랙 스완]은 그가 이제 더없이 성숙한 배우의 세계를 향해 우아하면서도 강렬한 날갯짓으로 날아올랐음을 선포한 작품이었다.

내털리 포트먼이 [클로저]에 이어 또 한 번 골든글로브 트로피를 거머쥔 데 이어 미국 배우조합상은 물론 미국 아카데미상과 영국 아카데미상 여우주연상 등 주요 시상식 무대의 주역으로 떠오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미국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품에 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린 것도 배우로서 꾸준히 내디뎌 온 자신의 지난 발걸음과 함께 스스로에 대한 믿음으로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다는 점을 세상이 더 크게 인정해 주는 것으로 받아들였을 만하다.

내털리 포트먼은 <블랙 스완>을 통해 명실공히 할리우드 대표 배우로 우뚝 섰다. ©alamy

연기의 정점을 찍다

[레옹]과 [클로저] 그리고 [블랙 스완]처럼 내털리 포트먼은 때로는 능동적이면서, 또 때로는 불안에 시달리는 여성 캐릭터로 더욱 빛났다. 2016년 영화 [재키] 역시 그런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영화는 미국 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의 부인 재클린 케네디가 남편이 암살당한 이후 혼란스러운 현실에 내던져진 뒤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자신의 눈앞에서 남편이 총탄에 스러져가는 순간을 똑똑히 목격한 뒤 충격과 혼란을 맞닥뜨린 아내를 연기한 내털리 포트먼은 클로즈업 화면을 통해 불안과 혼돈스러운, 하지만 그 이면에 숨겨진 무언가 의미심장한 눈망울을 드러냈다. 실제 인물 재클린 케네디의 목소리와 억양까지 그대로 묘사하며 관객의 시선을 모으기도 했다.

[블랙 스완]으로 아카데미상 여우주연상을 안겨 준 대런 애로노프스키 감독이 [재키] 제작자로서 다시 한번 내민 손을 잡은 내털리 포트먼은 또다시 수상 후보에 올랐다. 트로피를 품에 안지는 못했지만 [재키] 속 내털리 포트먼에 대한 찬사의 시선은 식지 않았다.

영화 [재키]에서 섬세한 감정 연기를 선보이며 전 세계 관객의 찬사를 받았다. ©alamy
[재키] 스틸컷 ©alamy

배우에서 제작자까지,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배우

내털리 포트먼은 연출자와 제작자로서도 나서고 있다. 배우로서 미처 채우지 못한, 혹은 채울 수 없는 연기의 공간을 연출과 제작의 길 위에서 메워가고 있는 셈이다. 최근에는 안시 국제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작품상을 받은 [아르코]의 작품 제작자로 참여하기도 했다. 이번 수상은 새로운 도전 속에서 거머쥔 또 하나의 성취다.

이미 예전부터 내털리 포트먼은 2008년 옴니버스 영화 [뉴욕 아이 러브 유]와 2015년 [사랑과 어둠의 이야기] 등을 연출했다. 또 [아르코]에 앞서 2009년 [디 아더 우먼]을 시작으로 영화 제작자로서도 명성을 얻어왔다. 특히 2011년 [친구와 연인사이]에 이어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2016) 등을 거쳐 2023년 칸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작이기도한 [메이 디셈버]로 주연배우의 힘과 동시에 제작자로서 안목과 역량을 인정받았다.

[아르코]를 만든 위고 비앙베누 감독과 제작자로 참여한 내털리 포트먼 ©alamy

최근에는 영화 [젊음의 샘]을 통해 전 세계 시청자를 만나고 있다. 글로벌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플랫폼 디즈니+가 공개한 작품이다. 소원한 사이이던 오빠(존 크래신스키)에게서 연락을 받고 그와 함께 전설 속 젊음의 샘을 찾아 나서는 여동생 역할이 내털리 포트먼의 몫으로, 다시 한번 다채로운 매력을 선보이고 있다.

<젊음의 샘> 스틸컷 ©alamy

내털리 포트먼의 더욱 깊고도 넓은 매력의 향취는 앞서 그가 내보인 캐릭터에서 뿜어져 나온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특히 강렬하면서도 새로운 여성성을 드러내는 캐릭터는 그만이 쌓아온 특별한 경험이다. [레옹]에서부터 시작된 배우의 인생에서 만나온 캐릭터와 이를 연기해 얻은 경험을 통해 그는 무대와 카메라 밖에서도 성평등과 여성의 주체적 권리를 온전히 주장해 온 스타로도 인식돼 왔다. 실제로도 적대적이거나 편견에 사로잡힌 시각에서 벗어나 더 열린 자세를 잃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