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교양 시대

2025-11-26     조윤주 에디터

짧은 호흡과 속도감에서 벗어나 길이와 깊이를 찾는 이유.

바야흐로 숏폼 전성시대다. 15초에서 1분 이내의 짧은 영상이 스마트폰 화면을 점령했다. 짧고 강렬한 자극에 중독돼 끝없이 스크롤을 내리다 보면, 시계 시침이 바뀌는 건 순식간이다.

숏폼의 속도감은 콘텐츠 형식을 넘어 시청 방식 자체를 바꿔 놓았다. 이제 우리는 영상을 1.5배속으로 재생하거나 10초 단위로 건너뛰며 지루하거나 관심 없는 장면은 자체 편집한다. 두 시간 분량의 영화가 20분으로 요약되고, 드라마 전 회차가 단 두 시간으로 압축되는 일 역시 낯설지 않다.

그런데 최근 유튜브에서 이와 정반대 현상이 나타났다. 짧은 호흡이 익숙해진 시대에, 몇십 분을 훌쩍 넘는 긴 호흡의 콘텐츠가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이다. 그 성장세는 특히 지식·교양 분야에서 두드러진다. 짧고 자극적인 숏폼의 파도 한가운데, 길고 진지한 지식·교양 콘텐츠가 떠오른 이유가 무엇일까?

 

 

귀로 즐기는 영상

숏폼이 트렌드가 된 이유 중 하나는 짧은 시간 안에 핵심을 전달하는 이른바 ‘시성비(시간 대비 성과 비율)’에 있다. 볼거리는 넘쳐나지만 시간은 늘 부족한 현대인에게 숏폼은 효율적인 선택지인 것. 하지만 짧은 호흡 안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건, 그만큼 시청하는 동안 영상에 온전히 집중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영상은 끝나 버린다.

길이가 짧지는 않지만, 잠시도 한눈을 팔면 안 된다는 측면에선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 콘텐츠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전체 흐름을 이해하며 이야기를 따라가려면 한 장면도 놓치면 안 될 것 같다는 부담이 따른다. 숏폼이 강렬한 자극과 속도감으로 즉각적인 몰입을 요구한다면, OTT는 서사와 인물의 감정선에 점진적으로 빠져드는 지속적인 몰입을 유도하는 셈이다.

반면 롱폼의 매력은 ‘틀어놓기 좋은 콘텐츠’라는 데 있다. 롱폼에 ‘밥 친구’라는 키워드가 따라붙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대부분 롱폼 콘텐츠는 한 사람이 자신의 생각을 풀어 설명하거나, 여러 사람이 대화하는 형식으로 구성된다. 그래서 화면을 ‘보는’ 것보다 이야기를 ‘듣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덕분에 시청하는 내내 스마트폰을 붙잡고 있거나 집중할 필요가 없어 피로감이 덜하다. 집안일을 하거나 이동 중에도 무리 없이 볼 수 있다. 시청보다는 청취에 가까운 개념인 만큼 롱폼은 숏폼이나 OTT보다는 라디오 혹은 팟캐스트와 닮았다. 실제로 롱폼 콘텐츠를 제작하는 유튜브 채널 중에는 팟캐스트를 함께 운영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특히 [머니그라피]의 ‘토킹 헤즈’는 팟캐스트를 병행할 뿐 아니라 유튜브에서도 ‘지식 교양 팟캐스트’라는 정체성을 전면에 내세웠다.

 

여가 시간을 생산적으로 보내는 방법

듣기에 최적화된 롱폼은 지식·교양 분야와 결합할 때 그 진가가 발휘된다. 사실 지식·교양 콘텐츠는 깊이 있는 논의와 충분한 맥락을 전달해야 하므로 자연스럽게 긴 호흡을 전제로 한 롱폼 형식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불가피한 선택이 아니라 여가 시간을 생산적인 경험으로 전환시킨다는 점에서 오히려 강점으로 작용한다.

콘텐츠 제작사 큰그림연구소는 2020년부터 [일당백], [셜록현준], [B tv 이동진의 파이아키아], [김지윤의 지식Play] 등 다양한 지식·교양 유튜브 채널과 협업해 파급력 있는 롱폼 콘텐츠를 선보여 왔다. 큰그림연구소 유재룡 제작총괄(PD)은 유튜브에서 지식·교양 롱폼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로 “여가와 생산적인 일의 경계에 놓여 있다”는 점을 꼽는다. 그는 “의식적으로 집중하지 않아도 되는 편안함 속에서 유익한 정보까지 얻을 수 있다는 점이 지식·교양 롱폼 콘텐츠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덧붙였다. 다시 말해 지식·교양 롱폼 콘텐츠는 시청자에게 지적 만족감을 제공하는 동시에 주어진 시간을 보다 가치 있고 생산적으로 활용한다는 감각을 전한다.

트렌드 변화에 민감한 예능과 달리, 탄탄한 주제와 깊이를 지닌 지식·교양 콘텐츠는 꾸준히 소비되며 긴 생명력을 유지한다. 유재룡 PD는 “지식·교양 콘텐츠는 시간이 흘러도 가치를 지니기 때문에 언제든 다시 발견될 수 있다는 것이 강점”이라고 강조한다.

 

지식 큐레이터로서의 전문가

 

지식·교양 분야 유튜브 채널을 보면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영상에 전문가가 등장한다는 점이다. 특정 주제를 두고 한 전문가가 자신의 견해를 설명하거나, 여러 명의 전문가가 함께 대화를 나누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한 명의 전문가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채널은 [셜록현준], [B tv 이동진의 파이아키아], [김지윤의 지식Play], [장동선의 궁금한 뇌]처럼 전문가의 이름을 전면에 내세우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해당 채널에서 전문가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다. 시청자는 난무하는 가짜 뉴스를 걸러내고 사회 이슈나 관심 분야에 대한 깊이 있는 정보를 얻기 위해 공신력 있는 전문가를 찾는다. 즉 전문가는 인문 교양 지식을 대중에게 전하는 믿음직한 지식 큐레이터 역할을 하는 셈이다. [지식인사이드]처럼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되는 채널 역시 인터뷰어가 인터뷰이의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이와 유사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큰그림연구소는 시청자의 이러한 니즈를 일찌감치 읽어내고, 콘텐츠 제작 과정에서 필수적인 작가를 과감히 없앴다. 그 대신 전문가가 기획 단계부터 참여한다. 전문가가 직접 이슈를 분석하고 자신의 생각을 제시하면, 큰그림연구소는 시청자에게 이를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할 방식과 포맷을 고민해 콘텐츠화한다. 유재룡 PD는 “시청자는 작가가 써준 정제되고 편집된 이야기보다 전문가의 솔직하고 진정성 있는 이야기를 원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전문가 중심으로 제작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여러 명의 전문가가 등장해 특정 주제를 함께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다. 이때는 서로 의견을 교환하며 토론하는 토크쇼 형식을 띤다. [머니그라피]의 ‘토킹 헤즈’, [LIFEPLUS TV]의 ‘라플위클리’, [보다 BODA]의 ‘과학을 보다’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이 경우 역시 전문가의 공신력을 기반으로 콘텐츠를 진행하지만, 하나의 해석에 머무르지 않고 다층적 관점이 오가며 논의를 확장한다는 점에서 1인 전문가 중심의 채널과 차이가 난다. 출연자 간 자연스러운 ‘케미’가 또 다른 재미를 만들어내기도 하며, 호스트가 존재해 대화의 흐름을 매끄럽게 이끌고 시청자의 이해를 돕는 경우도 있다.

 

숨은 조력자, 알고리즘

롱폼 지식·교양 콘텐츠의 성공에는 유튜브라는 매체 특성도 한몫했다. 사실 TV 매체에서도 지식·교양 프로그램을 찾는 시청자층은 분명 존재했다. ‘알쓸’ 시리즈, [어쩌다 어른], [요즘책방: 책 읽어드립니다], [벌거벗은 세계사] 등은 오늘날 지식·교양 유튜브 채널의 원형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방송 편성 구조상 예능을 비롯한 다른 장르와 경쟁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교양 프로그램이 설 자리는 점점 좁아졌다. 더구나 인문·역사·과학 등 세분화된 주제를 다루다 보니 TV 환경에서는 시청자가 원하는 특정 주제의 콘텐츠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게 한 건 바로 유튜브의 알고리즘이다. 유재룡 PD는 “알고리즘이 시청자의 관심사를 정교하게 분석해 소수의 취향이라도 그에 맞는 콘텐츠를 찾아 도달하게 한 점이 성공 요인으로 작용했다”라고 분석한다.

 

깊이를 향한 갈증

유튜브 채널 [사피엔스 스튜디오]는 TV 프로그램 [어쩌다 어른], [요즘책방: 책 읽어드립니다] 제작진이 만든 지식 큐레이팅 채널이다. TV에서 유튜브로 무대를 옮긴 후 더욱 폭넓고 다채로운 콘텐츠를 선보이며 지식·교양 콘텐츠의 확장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책에서 영상으로, TV에서 유튜브로 형태와 매체는 달라졌지만 한 가지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바로 사람들은 여전히 깊이 있는 이야기를 원한다는 점이다. 즉각적이고 강렬한 자극이 넘쳐나는 시대에도, 사유의 여백을 제공하는 콘텐츠에 대한 갈증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일러스트. 장인범

도움말. 유재룡(큰그림연구소 제작총괄·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