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을 향한 사유, 아임낫서울 남형석 대표 [인터뷰]
정처 없이 기우는 사회에서 경계 너머로 향하다.
급변하는 시대를 사는 이들이 대세의 흐름에서 이탈하지 않고자 번잡한 서울로 몸을 내던진다. 기어코 중심을 향하는 구심력이 두드러지는 시대다. 이 와중에 자신만의 원심력으로 꿋꿋이 서울을 벗어나려는 이가 있다.
남형석 대표는 이력부터 남다른 인물이다. 기자로 잘 다니던 방송사를 불현듯 휴직하고 서울을 떠나더니, 춘천에 터를 잡고는 ‘첫서재’라는 이름으로 공유 서재를 열었다. 복직해 서울로 돌아온 후에도 여전히 춘천에 머무르는 이유는, 서울 밖의 삶에서 얻는 만족이 크기 때문일 테다. 이런 그가 이번에는 MBC사내 벤처기업 ‘아임낫서울’의 공동대표로서 서울 안에서 ‘낫서울’을 외친다. 서울과 로컬의 연결 고리를 자처하는 이유를 묻고자 춘천의 첫서재에서 남형석 대표를 만났다.
생각의 중심이 서울을 벗어나기 시작한 계기가 무엇인가?
기자 시절 ‘로드맨’이라는 뉴스 기획 코너의 PD를 맡았다. 전국을 돌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프로그램이었다. 그중 지방 소멸을 주제로 한 기획을 진행했다. 인구가 서울로 몰리고, 지역은 사라져 가는 현실을 다뤘다.
취재 과정에서 구조적 문제를 발견했다. 지역 자생력을 강조하는 전문가와 교수를 인터뷰했는데, 모두 서울에 살았다. 누구도 자신의 이익은 내려놓지 않으면서 순진한 사람들만 지방으로 이끄는 구조라고 생각했다. ‘직접 지방에 살아보지도 않고 무슨 문제의식을 느끼겠나’ 하는 생각에, 아내와 상의해 서울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원래 계획은 2년 후 복직 시점에 맞춰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막상 살아보니 가족 모두 춘천에 사는 것이 훨씬 좋다는 의견이었다. 그래서 복직 이후에도 3년째 춘천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며 생활하고 있다.
서울을 처음 벗어난 계기가 ‘첫서재’다. 첫서재를 만들게 된 과정은?
서울을 벗어나 뭘 하면 좋을지 고민하다 완벽히 ‘나다운 공간을 만들어보자’ 결심했다. 아내와의 공통점이 책이었기에 같이 책방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서점을 하기엔 규모가 너무 큰 것 같고, 북 카페를 하기엔 카페가 주일 것 같았다. 이래저래 고민하다 책을 좋아하는 이들과 공간을 공유하면 어떨까, 공유 서재라는 아이디어가 떠올라 ‘첫서재’라 이름 지었다.
왜 춘천을 선택했나?
춘천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이 집이 마음에 들어 결정했다. 아내의 직장 관계로 서울을 오가기 용이한 지역으로 찾아보는 중이었다. 그러다 춘천을 방문해 골목을 걷다 우연히 이 집을 발견했다. 사람이 살지 않는 폐가였는데, 집의 분위기도 좋았고, 크기도 아담했다. 늦은 오후 햇살이 스며드는 모습을 보면서 절로 ‘이 집이다’ 싶은 마음이 들었다. 서울 출퇴근이 가능하다는 점에서도 조건이 좋았다.
다시 서울로 돌아가 복직했다. 하던 일을 뒤로한 채 아임낫서울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복직 후 공동대표로 일하는 지인이 사내 벤처기업 공고를 소개해 준 것이 계기다. 원래 춘천에서는 책과 여행을 연결하는 작은 브랜드를 기획 중이었다. 출판사는 아니지만 로컬 브랜드를 만드는 일이었다. 그러던 중 공동대표가 “춘천에서 하려던 일이 로컬 관련 아이디어라면 회사에서 실현해 볼 기회”라며 제안했다. 브랜드 하나를 만드는 것보다 여러 브랜드를 연결하는 일이 더 의미 있을 것 같아 지원을 하게 됐고, 지금의 아임낫서울에 이르렀다.
회사명이 아임낫서울이다. 서울을 벗어난다는 취지에서 그렇게 지은 것 같은데, 막상 서울 중심부에 위치한 채 그 이름을 쓴다는 것이 흥미롭다
개인적으로 일반명사이면서도 고유명사 같은 이름을 선호한다. ‘첫서재’도 같은 맥락이다. ‘서울’이라는 이름을 역전하면 서울이라는 대도시가 지닌 브랜드 파워를 활용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또 아임낫서울이라는 이름은 그 자체로 ‘낫 서울(Not Seoul)’인 지역을 아우르는 의미이기도 하다. 서울의 중심에서, 서울을 벗어나자는 의미를 강조하고자 문법에도 맞지 않는 도발적인 이름을 선택했다.
서울에 본사를 둔 기업이
‘아임낫서울’이라고 말하는 건 모순이다.
그럼에도 결국 서울 사람들에게
‘인 서울’이 아닌 ‘낫 서울’을 외치게
하고 싶었다.
보통 로컬 활성화 취지의 기업은 해당 로컬 지역으로 유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 중심지에서 로컬로 향하고자 추진하는 기업은 흔치 않다. 어쩌다 이런 형태를 구상하게 되었나?
어떤 방식이든 타깃층은 결국 서울 수도권 지역 사람이다. 여행이나 거주지 이동 등 결국 수도권 사람이 교외로 뻗어가려면 수도권 밖에서 재미있는 경험을 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서울에 정착하려고 아등바등 살아가는 이들에게 갑자기 서울 바깥에서 살라고 하는 건 터무니없는 요구다. 당장 거주지를 옮기기 전에, 서울을 벗어나서도 재미를 누리는 경험을 더 쌓아야 한다.
재미를 추구하는 이들을 위해 아임낫서울이 기획한 프로그램이 있다면 소개해 달라
‘미스터리 트립’이라는 오프라인 상품이 대표적이다. 사전에 목적지를 알리지 않고 떠나는 여행 프로그램이다. 스웨덴 스칸디나비아항공(SAS)의 ‘미스터리 항공’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대형 버스 한 대 정도를 정원으로 목적지를 알리지 않고 떠났다. 버스 창에 암막을 치고 스마트폰 사용도 자제시켰다. 도착 즈음엔 안대까지 씌워 내리게 한 뒤 목적지까지 이동했다. 이벤트성으로 기획한 프로그램인데 반응이 너무 좋아 정기 프로그램으로 운영한다.
최근에는 미스터리 트립의 일환으로 여행과 러닝을 엮은 ‘런 트립’을 기획했다. 러닝이 취미인 사람들을 모집해 ‘여의도보다 달리기 좋은 당일치기 런 트립’이라는 아이템으로 세종시를 방문했다. 세종시는 관광지로서 인지도가 높지 않지만, 행정도시가 들어서기 전부터 자리 잡은 고유한 문화가 도심과 어우러져 나름의 매력을 품고 있다.
아임낫서울이 추구하는 방향은?
크게 두 가지다. ‘로컬의 팝업화’와 ‘여행의 게임화’다. 중요한 건, 두 가지 모두 1차원적 재미를 먼저 충족시킨다는 점이다.
로컬의 팝업화는 성수동에 팝업이 유행하듯 지방에서도 그런 행사가 많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시작했다. 한편으론 지역 행사도 연중 벌어지는 며칠짜리 팝업인 셈이다. 마치 기발한 아이템으로 팝업스토어를 열듯, 그 도시를 방문할 이유가 될 만한 행사를 기획하고자 한다.
그 첫 번째 사례로 춘천 지역과 협의 중이다. 춘천은 2026년 ‘대한민국 독서대전’ 개최지로 선정됐다. ‘텍스트 힙’ 트렌드에 발맞춰 독서 하면 떠오르는 도시로 춘천을 브랜딩하고자 제안했다. 아직 협의 단계다.
여행의 게임화는 현재의 젊은 세대, 또는 다음 세대의 니즈를 고려한 방향성이다. 지금까진 함께 모여 떠나는 패키지 여행, 또는 본인 뜻대로 떠나는 자유여행이 주를 이뤘다. 다음 세대는 콘셉트를 정해 떠나는 여행이 트렌드가 될 거라 생각했다.
하나의 도시를 거대한 게임장처럼 구성하고자 한다. 주요 스폿을 둘러볼 수 있도록 스토리라인을 만든 다음 곳곳에 QR코드를 배치해 미션을 수행하도록 유도한다. 게임처럼 미션을 수행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도시의 역사를 알고, 주요 스폿을 하나하나 방문할 수 있다.
서울의 중심부에서 지역으로 뻗어나가려는 움직임이 일종의 작은 혁명 같기도 하다. 언뜻 사명감을 갖고 행하는 모습 같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균형’을 중요시한다. 가족 안에서도 균형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우리 가족의 가훈 중 하나가 ‘적당히 하자’다.(웃음) 균형이 잡히지 않은 모습을 보면 본능적으로 균형을 잡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관계 내에서도 그렇다.
사회가 점점 균형이 맞지 않는 방향으로 흐른다고 생각한다. 서울과 지방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지역 소멸을 외치고 균형을 잡아야 한다고 말하지만, 누구든 선뜻 힘이 없는 곳의 시소에 올라타고 싶어 하지 않는다. 어찌 보면 춘천에 살면서 서울로 회사를 다니는 나도 그와 같은 셈이다.
그래도 누군가는 균형을 맞춰야 한다. 나는 응원하는 스포츠 팀이 이기고 있어도, 격차가 너무 벌어지면 내심 상대 팀도 점수를 냈으면 좋겠다 생각하는 사람이다.(웃음) 대단한 사명감은 아니지만, 균형 잡힌 사회를 위해 미약하게나마 힘을 얹고 싶다.
사회적으로 엄청난 사명감이 있는
사람은 아니다. 그런데 적어도
내가 사는 사회가 어느 정도 균형이 잡힌
모습이어야 만족하고 살 수 있을 것만 같다.
나는 그저 심히 기울어진 시소에서,
조용히 반대쪽 시소에 힘을 싣는
사람이고 싶다.
각 지역의 지역 활성화 사업과 아임낫서울의 프로젝트는 어떤 점이 다른가?
우리는 지역 활성화의 모든 사업과 함께 가기를 원한다. 각 지역 브랜드나 사업을 보면 아이디어부터 기획까지 어느 하나 좋지 않은 것이 없다. 다만, ‘지역을 살려야 한다’, ‘우리 지역에 오면 이런 게 있다’ 등 수많은 지역에서 메시지를 외치다 보니 너무 산재되어 전달력이 약하다고 느꼈다. 각각의 목소리만으로는 서울이라는 대형 브랜드를 대적하기 어렵다. 아임낫서울이 각 지역의 메시지를 한데 엮는 일종의 허브로써, 그들의 활성화 사업이 부흥하는 데 이용되고 싶다.
앞으로 추구해 나갈 아임낫서울의 비전은?
아임낫서울의 철학은 ‘메이크 로컬 펀(Make Local Fun)’이다. ‘서울 밖에서 뭔가 재밌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전달하고자 한다. 늘 재미를 강조하고 뻔하지 않은 아이템을 기획하고자 노력한다. 대중으로 하여금 ‘얘들과 하는 행사는 다 재밌어’라는 경험을 쌓게 하는 게 가장 큰 미션이다.
지나온 행적이 독특한 만큼 앞으로의 삶도 궁금하다
‘균형’ 못지않게 ‘애매함’이라는 단어도 좋아한다. 사람은 애매함을 견디지 못해 늘 한쪽의 정답을 찾고, 그 쪽으로 기운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어디에서나 중간은 필요한 법이다. 무언가와 무언가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사람이 필요하다.
지금도 나는 완벽한 서울 사람도, 그렇다고 완벽한 지방 사람도 아니다. 첫서재가 완벽한 서재도, 완벽한 서점도 아닌 것처럼 말이다. 분명한 것이 지배적인 지금의 사회에서, 애매한 경계에 선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