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발칵 뒤집은 희대의 사기꾼
막대한 수익률로 사람을 현혹하는 금융 사기꾼부터 신분을 속이고 호화롭게 생활한 사기꾼까지,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여덟 가지 사건을 모았다.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의 실화
조던 벨포트 Jordan Belfort
1962년생, 미국
20대 초반 미국 월스트리트에 입문한 조던 벨포트는 화려한 언변으로 승승장구한다. 그 기세를 몰아 설립한 증권투자회사 ‘스트래튼 오크먼트’ 역시 직원 1000명 규모로 성장하면서 성공을 거둔다. 일반적인 주식이 아니라 투기성 짙은 장외주식으로 막대한 수수료를 챙긴 것이 그 비결. 그러나 2억 달러(2400억원) 규모의 주가 조작 범죄를 저지르면서 1999년 증권 불법 사기 행위로 22개월형을 선고 받는다. 이와 함께 그간 모은 재산도 모조리 압수당했다.
억만장자에서 금융 사기꾼으로 전락한 그는 출소 후 자전소설 <월가의 늑대들>을 발간하며 화제의 중심에 선다. 이를 원작으로 한 영화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2014)까지 흥행에 성공하면서 현재는 투자와 재테크, 인생에 대한 팟캐스트를 운영하며 동기부여 연설가로 활동 중이다.
여자 스티브 잡스? 알고 보니 사기꾼
엘리자베스 홈스 Elizabeth Holmes
1984년생, 미국
2003년 19세 나이로 의료 기술 스타트업 ‘테라노스(Theranos)’를 설립한 엘리자베스 홈스는 한때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각광받는 젊은 여성 CEO였다. 테라노스는 2012년 피 몇 방울로 콜레스테롤 수치부터 암에 이르는 250여 가지 질병을 진단하는 기기를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획기적인 기술에 혹한 투자자가 몰려 테라노스의 기업 가치는 2015년 90억 달러(11조원)까지 치솟았다. 홈스의 개인 순자산은 45억 달러(5조5000억원)로 같은 해 <포브스>선정 400대 부자 중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갈색 머리를 금발로 염색한 엘리자베스 홈스는 스티브 잡스처럼 검은 터틀넥 티셔츠를 자주 입으며 ‘여자 스티브 잡스’로 이미지 메이킹을 해왔다. 명문대인 스탠퍼드 대학교를 중퇴했다는 이력도 투자자들을 현혹시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테라노스의 기술은 고작 몇 가지 질병만 진단 가능한 것으로 드러났다. 실험 결과 등을 조작해 투자자의 눈을 속여온 것. 엘리자베스 홈스는 지난 1월 투자자 사기 공모를 포함한 열한 가지 범죄 혐의 중 네 건에 대해 유죄 평결을 받았다. 그의 이야기는 미국 OTT서비스 훌루에서 <드롭아웃>(2022)이란 제목의 드라마로 제작했다.
독일 상속녀로 신분 세탁 후 호의호식
아나 소로킨 Anna Sorokin
1991년생, 독일
2013년 미국 뉴욕 사교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애나 델비(본명 아나 소로킨)’는 6000만 달러(740억원)의 재산을 물려받을 독일 상속녀로 이목을 끌었다. 유럽식 억양, 헤픈 씀씀이, 화려한 패션 감각을 바탕으로 일약 사교계의 스타로 떠올랐다. 그는 가짜 신분을 이용해 고급 호텔에 무료로 숙박하거나 전용기를 이용하는 등 크고 작은 사기 행각을 일삼았다. 주변 지인에게 돈을 빌리는 것은 물론 은행에서 대출받는 데에도 거리낌이 없었다. 그러다 2017년 프라이빗 멤버 전용 클럽을 설립한다는 명목으로 은행에 위조 서류를 제출했다가 그간의 사기 행각이 모두 들통났다.
뉴욕 검찰이 파악한 사기 범죄 규모만 27만5000달러(3억4000만원). 아나 소로킨의 진짜 신분은 독일 국적의 백만장자가 아닌 트럭 운전사의 딸이었다. 2017년 기소되어 2019년 실형을 선고 받았으나 2021년 모범수로 가석방됐다. 현재 독일로 강제추방 명령을 받은 상태다. 아나 소로킨은 법정에 출석할 때도 스타일리스트를 고용하고 취재 카메라를 향해 포즈를 취하는 등 기이한 면모를 보였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애나 만들기>(2022)의 실제 주인공이다.
역사상 최대 규모의 폰지 사기
버나드 메이도프 Bernard Madoff
1938~2021, 미국
버나드 메이도프는 나스닥 증권거래소 위원장을 역임할 정도로 명성 높았던 증권 거래인이자 역사상 최대 규모의 폰지 사기 주모자다. 그는 1970년대 초부터 2008년까지 전 세계 136개국 3만7000여 명의 투자자를 대상으로 다단계 금융 사기를 벌였다. 신규 투자금을 유치해 그 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수익금 명목으로 지급해 온 것. 자신의 이름을 내건 투자 회사를 차려 경기침체에도 두 자릿수 수익률을 보장하며 투자자의 신임을 얻었다.
하지만 버나드 메이도프는 고객이 맡긴 돈으로 아무런 투자도 하지 않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원금 회수를 요청하는 이가 많아지면서 그의 사기 행각은 만천하에 드러났다. 전체 피해액만 650억 달러(80조2500억원).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배우 존 말코비치, 메이저리거 샌디 쿠팩스, 노벨 평화상 수상자 엘리 위젤 같은 유명 인사도 피해자 명단에 이름이 올랐다. 이후 150년형을 선고받아 교도소에서 복역하던 그는 지난해 83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외환위기를 초래한 ‘노다지’ 소동
브렉스 스캔들 The Bre-X Gold Scandal
1995년 캐나다의 소규모 광산회사 브렉스(BRE-X)가 인도네시아 보루네오섬의 밀림 지대에서 금맥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20세기 최대 금맥을 발견했다는 소식에 10센트에 불과하던 브렉스의 주가는 200달러까지 치솟았다. 인도네시아 정부도 브렉스와 손잡고 금광 개발에 동참했다. 하지만 1997년 미국의 한 광산 컨설턴트사에 의해 거짓임이 드러났다. 해당 지역에서 채굴한 금광석이 금가루를 덧입힌 가짜라는 것. 이에 브렉스의 주가가 폭락하면서 투자자들은 수십조원대의 손해를 입었고, 인도네시아는 한때 외환위기를 겪었다.
사건은 현장 책임자이자 지질학자인 마이클 구즈만이 헬기로 이동하던 중 상공에서 뛰어내려 자살하면서 미궁에 빠졌다. 이 와중에 브렉스의 회장 데이비드 월시와 부회장 존 펠더호프는 파산 직전 주식을 매각해 엄청난 이익을 챙겼다. 이에 대한 법적 분쟁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2016년 개봉한 영화 <골드>의 실제 이야기다.
가해자 없는 가짜 미술품?
뇌들러 화랑 위작 판매 사건 The Knoedler Gallery Forgery Scandal
165년 역사를 지닌 미국 뉴욕의 뇌들러 화랑이 2011년 11월 문을 닫았다. 이 화랑의 전 대표인 앤 프리드먼이 위작 판매 논란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1994년 앤 프리드먼은 글라피라 로살레스라는 딜러에게 추상표현주의 대가들의 작품 40점을 구매한다. 그러나 이 작품들은 글라피라 로살레스가 중국인 초상화가 첸 페이션에게 의뢰한 가짜였다. 작품의 진위를 가릴 문서가 없었고, 시가보다 싸게 팔겠다며 현금 결제를 유도하는 등 다소 수상한 행보를 보였음에도 앤 프리드먼은 거래를 진행한다. 약 20년간 뇌들러 화랑에서 판매된 이 그림들은 일부 구매자를 통해 위작임이 밝혀졌다.
미국 FBI는 앤 프리드먼, 글라피라 로살레스, 첸 페이션, 로살레스의 연인 호세 카를로스 베르간티뇨스 디오스까지 4명을 용의선상에 올렸으나 글라피라 로살레스만 9개월 가택연금형을 받는다. 앤 프리드먼은 위작인 줄 모르고 판매했다고 주장했고, 첸 페이션과 호세 디오스는 미국을 떠나 수사 자체가 어려웠다. 이 사건의 전체 사기 규모는 8000만 달러(990억원)로 추정된다. 이 사건을 집중 조명한 다큐멘터리 <당신의 눈을 속이다: 세기의 미술품 위조 사건>은 앤 프리드먼을 포함해 다양한 인물의 인터뷰로 구성돼 있다.
‘빌리어네어 보이즈 클럽’ 살인 사건
조 헌트 Joe Hunt
1960년생, 미국
1980년대 하버드 대학교 재학생이던 조 헌트와 딘 카니는 베벌리힐스의 부잣집 자제들을 상대로 투자 사기를 벌인다. ‘빌리어네어 보이즈 클럽’이라는 사교 모임이자 회사를 만들어 고수익을 담보로 투자자를 끌어 모은 뒤 신규 투자자의 돈을 기존 투자자에게 수익금인 양 지급했다. 전형적인 폰지 사기 수법으로 큰 돈을 번 두 사람은 호화로운 생활을 누린다.
그러나 사기 행각을 눈치챈 투자자들이 원금 회수를 시도하면서 파국에 이른다. 여기에 더해 투자자 중 한 명인 론 레빈과 또 다른 투자자의 아버지가 살해당하면서 금융사기 사건이 일대 살인 사건으로 확대된다. 그중 이 클럽의 수장인 조 헌트는 투자금 문제로 다투다 론 레빈을 살해한 혐의로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아 수감 중이다. 다만 론 레빈의 시체가 발견되지 않는 등 풀리지 않은 의문이 남아 있다. 이 이야기는 <빌리어네어 보이즈 클럽>이란 동명의 드라마(1987)와 영화(2018)로 각색됐다.
네 번이나 탈옥에 성공한 ‘빠삐용’
스티븐 러셀 Steven Russell
1957년생, 미국
IQ 163의 비상한 두뇌를 지닌 사기꾼 스티븐 러셀은 절도, 보험 사기를 비롯해 가짜 변호사 행세 등 크고 작은 범죄를 저질렀다. 그런 그가 정작 유명세를 탄 건 기상천외한 탈옥 방법 때문이다. 첫 번째 탈옥은 1992년 해리스 카운티 교도소에서 절도죄로 복역할 때였다. 스티븐 러셀은 평소 일부러 모범적인 태도로 수감 생활을 하면서 교도관이 방심한 틈을 노려 무전기를 훔쳐 달아났다. 이후 공금 횡령죄로 수감됐을 때는 90만 달러(11억원)에 이르는 자신의 보석금을 4만5000달러(5500만원)로 조작해 가석방된다. 세 번째는 교도소 내 의무실 의사처럼 녹색 가운을 입고 의사 행세를 하며 교도소 정문으로 당당히 빠져 나왔다. 또다시 수감됐을 때는 에이즈 환자인 것처럼 의료 기록을 조작해 사망진단서까지 만들었다.
이렇듯 여러 가지 범죄를 저지르고 다양한 방법으로 탈옥한 그는 1998년 탈옥 99년, 사기 45년으로 총 144년형을 선고 받고 현재 텍사스의 한 교도소 독방에 수감되어 있다. 스티븐 러셀의 탈옥기는 짐 캐리, 이완 맥그리거 주연의 영화 <필립 모리스>(2009)로 제작됐으나 흥행에는 실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