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회, 어디까지 먹어봤니?
얼음 동동 띄운 시원한 육수와 쫄깃한 제철 회가 환상의 궁합을 이룬다. 재료나 요리법, 먹는 방법이 제각각 다른 여름 별미 물회의 지역적 특색과 맛을 비교했다.
어부들의 간편한 한 끼에서 유래
물회는 말 그대로 물에 말아 먹는 회다. 어부들이 바쁜 조업 시간을 쪼개 간편하게 식사를 하던 데서 유래한 음식으로, 조리법 또한 간단하다. 갓 잡은 생선을 잘게 썰어 그릇에 담은 뒤 차가운 생수를 붓는다. 간혹 오이 냉국을 준비하기도 한다. 여기에 초고추장과 김가루, 오이 등을 추가해 먹는다. 밥도 처음부터 말아서 한 그릇 뚝딱. 식사 시간은 3분 남짓이다. 물회는 1980년대 중반만 해도 몇몇 어촌에서 만들어 먹던 토속 음식이지만, 미디어 등에 소개되면서 전국으로 퍼져나가 지금은 탄산수를 가미해 톡 쏘는 살얼음 육수에 아삭한 채소, 각종 해산물, 마무리로 소면까지 말아 먹는 푸짐한 별식으로 진화했다.
제주도식 물회
전통 된장 물회와 뼈째 씹어 먹는 자리 물회, 담백한 한치 물회, 오직 제주에만 있는 황놀래기 물회 등이 대표적이다.
제주의 전통 물회는 '된장 육수'
고추가 귀한 제주도는 된장으로 맛을 낸 음식이 발달했다. 물회도 예외는 아니다. 집된장과 보리밥을 발효해 직접 만든 ‘쉰다리 식초’를 이용해 구수하고 개운하면서 새콤한 물회를 만들어 먹었다.
된장은 생선 비린내를 줄일 뿐 아니라 감칠맛과 구수한 풍미를 더하는 데 일조한다. 여기에 제피나무잎을 다져 넣어 특유의 향을 살리는데, 제피나무잎은 호불호가 있기도 하지만 지금은 빠져선 안 될 토속 재료로 자리매김했다.
봄, 여름이 제철인 자리 물회
자리 물회의 원재료인 자리돔은 봄~여름이 산란기다. 이 시기의 자리돔은 뼈가 약해 뼈째 먹는 물회에 사용하기 좋다. 그중에서도 얕은 바다와 느린 조류를 헤엄치는 보목리 자리돔을 으뜸으로 친다. 가장 씨알이 잘기 때문이다.
칼질도 중요하다. 자리 물회를 다루는 집이라면 저마다 칼질 노하우가 있겠지만, 결 반대 방향으로 어슷하게 잘게 쳐내야 별다른 이물감 없이 씹어 삼킬 수 있다. 하지만 제주의 몇몇 맛집은 자리 물회가 투박하다 못해 너무 억세 삼키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된장 육수의 강한 맛도 아쉬운 부분.
제주에서만 맛보는 황놀래기 물회와 옥돔 물회
아열대기후인 제주도는 다른 지역에서 보기 어려운 자리돔과 한치, 황놀래기(어랭이) 등 독특한 횟감으로 만든 물회를 맛볼 수 있다. 오징어와 같은 두족류인 한치는 오징어보다 육질이 부드럽고 단맛이 나는 고급 횟감이다. 황놀래기는 낚시꾼에게 잡어 취급을 받는 어류지만, 제주도에서는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횟감으로 인기가 높다.
모두 봄부터 여름까지가 제철로 이 시기 제주도를 여행한다면 갓 잡은 활어회 또는 활어 물회를 맛볼 수 있다. 한치의 경우 냉동하더라도 맛이 크게 떨어지지 않아 1년 내내 맛볼 수 있는 물회다. 이 밖에 옥돔 물회와 성게·소라·문어가 들어간 모둠 물회는 제주도를 여행할 때 꼭 한 번 맛봐야 할 별미다.
자리 물회의 진가를 맛보려면 제주시 '두루두루'
제대로 된 자리 물회를 맛보려면 현지인이 많이 찾는 식당에 가야 한다. 그중 한 곳이 제주시에 위치한 ‘두루두루’다. 이 식당에서는 구수한 된장 육수에 초피 향이 은은한 전통 제주식 자리 물회를 내놓는데, 조미료 맛은 물론 흔한 사이다도 첨가하지 않는다. 자리회도 적당히 씹어 삼킬 수 있을 만큼 연하다.
주소: 제주시 삼무로3길 14
문의: 064-744-9711
남해식 물회
오징어, 한치, 우럭, 부시리까지 다양한 제철 생선의 물회를 맛볼 수 있다.
입문용으로 좋은 달짝지근한 남해식 물회
거제, 진해, 통영 일대에서 맛볼 수 있는 남해식 물회는 재료 맛을 살리기보다는 당장 입에 들어갔을 때 자극적인 맛이 특징이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몇몇 식당에서 맛본 남해식 물회는 사이다 같은 탄산수를 육수에 넣어 몇 술 뜨다 보면 이내 물리는 느낌이다.
오징어회의 경우 칼질에 따라 전반적 맛이 좌우된다. 국수 가락처럼 살을 얇게 쳐내야 식감이 살아난다. 맛있는 오징어 물회를 찾으려면 오징어를 썬 모양을 먼저 살펴볼 것.
고추장 vs. 된장
남해의 물회는 포항의 고추장 양념 물회로 대표되는 ‘경상남도식’과 제주도식 된장 물회의 영향을 받은 ‘전라남도식’으로 나뉜다. 전반적으로 지역 특색을 살리기보다 강하고 자극적인 맛으로 관광객의 입맛에 맞춘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반면, 들어가는 횟감은 매우 풍성하다. 양식 활어(우럭, 광어)와 산지에서 나는 한치, 부시리, 용치 놀래기(술뱅이), 청보리멸, 말쥐치(객주리) 등을 주로 넣는다. 완도산 전복을 넣은 전복 물회나 해삼, 멍게 등을 넣은 모둠 물회도 유명하다.
포항식 물회
슬러시처럼 얼린 매콤새콤한 육수를 부어 먹는 포항 물회는 호불호 없는 맛을 자랑한다.
외지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퓨전식 포항 물회
어부식 물회가 맹물을 쓴다면, 포항 물회는 단맛과 짠맛, 새콤한 육수 맛을 내세워 외지인의 입맛을 공략했다. 처음에는 살얼음 동동 띄운 냉면 육수 같았지만, 요즘은 아예 육수를 얼려 빙수처럼 곱게 갈아 소복이 쌓아 내놓는다. 이를 생선회와 버무려 먹다 보면 시원하면서 차진 식감에 더위가 싹 가시는 듯하다.
재료는 온갖 제철 생선
포항에서 물회 횟감으로 주로 사용하는 생선은 양식과 자연산으로 나뉜다. 양식은 우럭·광어·쥐노래미(노래미)·가숭어(밀치) 등을 쓰고, 자연산을 선택하면 그때그때 잡은 다양한 생선을 섞어 쓰는 경우가 많다. 문치가자미(도다리)·참가자미(노랭이)·등가시치(고랑치)·빨간 횟대(홍치)·횟대류·말쥐치 등으로, 도시 사람에게는 맛도 이름도 생소한 생선이 많으니 포항을 방문하면 꼭 한번 맛볼 것을 권한다.
강원도식 물회
직접 양념을 조제해 먹는 동해식, 현지 어부들이 먹는 횟밥, 철저히 외지인의 입맛에 맞춘 물회 등이 있다.
어부들의 간편하고 맛있는 한 끼, 횟밥
묵호항 등 강원도 현지 식당에 가면 어부들의 물회와 유사한 ‘물회밥’이 있다. 메뉴판에 ‘횟밥’ 또는 ‘물회밥’으로 표기하는데, 관광객보다는 주로 토박이들이 즐겨 찾는다. 특히 뱃일을 마친 어부들이 반주를 곁들여 먹는 한 끼 식사. 역시 초고추장과 식초, 설탕 등 양념을 추가할 수 있다.
직접 양념을 참가하는 동해식 물회
동해의 횟집에 가면 테이블 위에 초고추장과 식초, 설탕 등이 놓여 있다. 원하는 만큼 양념을 넣어 먹으라는 뜻. 무엇을 어떻게 조합해야 할지 처음에는 당황하지만 어지간히 부족한 맛은 초고추장으로 해결 가능하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또 단맛을 좋아하면 설탕을, 새콤한 맛을 좋아하면 식초를 추가한다. 보통 횟감은 강원도에서 흔한 기름가자미(물가자미, 미주구리), 청어 등을 쓴다.
철저히 외지인의 입맛에 맞춘 속초 물회
속초에는 청초수물회, 봉포머구리집 등 유명한 물회 맛집이 많다. 자극적인 맛의 육수, 생선회뿐 아니라 전복·멍게·해삼 등 각종 해산물이 푸짐하게 들어간, 우리가 익히 아는 그 물회다. 싱싱한 제철 생선회 고유의 맛을 느끼고 싶다면 현지 물회를 찾을 것.
도움말, 사진: 김지민
바다낚시 마니아로, 블로그와 유튜브 채널 ‘입질의추억TV’를 운영하며 수산물 관련 콘텐츠를 제작·공유한다. <수산물이 맛있어지는 순간> 저자이자 신문, 잡지 등 각종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