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악하는 내과 의사 배창황 원장
취미로 노래하는 사람은 많지만, 직접 합창단을 운영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지역사회에서 손꼽히는 병원을 운영하며 합창단 단장·사회 활동가로 바쁘게 살아가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배창황 원장을 만났다.
'여러 개의 꼬리표, 그래도 천직은 의사'
배창황 원장이 SNS 채널을 소개하는 문구다. 남양주시 호평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그는 ‘Dr. 배의 진료실’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사람들과 직접 소통한다. 그런가 하면 병원 건물에 카페를 마련해 운영하면서 종종 본인이 단장으로 있는 합창단 공연을 펼친다.
의사이자 합창단 단장, 카페 사장, 갤러리 관장까지… 이쯤 되면 이 많은 일을 어떻게 다 소화해내는지 의문마저 생긴다. 그에 대한 배 원장의 대답은 명쾌했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발걸음이 되길 바라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하고 있을 뿐이다.”
합창단은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가?
전신은 이전에 다니던 교회 소속 합창단이다. 2008년 합창단 활동을 하던 중 담임 목사가 나를 합창단 단장으로 내세웠다. 일단 맡았으니 열심히 할 수밖에. 이듬해인 2009년에는 연주회도 성공적으로 마쳤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단원 간 갈등이 생겼고, 연주회가 끝난 후에는 공허함 같은 게 복합적으로 작용해 단원들이 하나둘 떠났다. 결국 대여섯 명밖에 남지 않아 합창단은 해체될 위기에 직면했다. 당시 나는 단장으로서 합창단에 대한 책임감을 느꼈다. 무책임하게 “여기까지입니다”라고 말할 수는 없으니까. 교회에서는 활동이 불가능한 상황이라 남은 멤버와 따로 합창단을 꾸려 지금의 하늘소리합창단이 출범했다. 정식으로 창립한 것은 2013년이다.
따로 성악을 배웠나?
정식 레슨을 받은 건 개원한 뒤 교회 합창단에 들어가면서부터다. 어릴 때부터 교회에 다닌 데다 성가대라든가 합창단이 낯설지 않아 당시엔 나 스스로 노래를 꽤 잘 부르는 줄 알았다. 그런데 언젠가 내 노래를 녹음해 들어보니 도저히 들어줄 수 없는 수준이었다.(웃음) 그래서 레슨을 받기 시작했고, 단장이 된 다음에는 민폐가 되지 않기 위해 더 열심히 연습했다.
노래 실력이 상당하던데, 원래 소질이 있었나?
레슨을 받으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누구나 자기만의 소리가 있지만, 그 소리를 제대로 내는 방법을 모른다. 그래서 계속 힘을 빼는 연습을 했다. 힘을 빼고, 더 빼고, 계속 빼면서 복식호흡에 소리를 싣고, 머리로 공명하는 방법을 연습하니 조금씩 소리가 좋아졌다. 노래를 잘하게 됐다기보다는 나쁜 습관을 버리면서 본연의 내 목소리가 나온 것이다. 10년 넘게 레슨을 받고 나서야 스스로 듣기에 ‘나쁘지 않은’ 정도가 된 것 같다.
합창단 활동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나?
매주 일요일에 모여 두 시간씩 연습한다. 연습이 없어도 평소 카카오톡 단체방을 통해 소통하며 멤버들끼리 돈독하게 지낸다. 보통 합창단이라고 하면 매년 정기 연주회를 기획하는데, 우리는 그렇지 않다. 멤버들이 상의해 여건이 맞을 때 연주회 준비를 한다. 창립 후 10년이 다 되어가는데, 연주회를 세 번밖에 하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다. 연주회를 위한 활동보다는 단원들의 일상에 힘이 되는 합창단을 지향한다.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연주회 연습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곳에 와서 살아가는 힘을 얻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10년 넘게 꾸준히 운영해온 노하우가 있을 것 같은데
단장이지만, 하는 일은 거의 없다. 실제 운영은 단원들이 다 알아서 한다. 어떤 이슈가 있으면 내가 채팅방에 공지만 하고 단원들이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할지 상의해 결정한다.
합창단을 운영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 병원이나 어떤 조직을 운영할 때 리더 혼자 이끌어가는 건 조직이 동력을 얻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구성원 스스로 움직일 수 있도록 리더는 동기부여만 하고 가능한 한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려면 리더가 구성원을 가족처럼, 내 몸처럼 아끼고 존중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예술은 사람들에게 어떤 가치 충격을 줄 수 있는 좋은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합창단 활동을 하는 이유다.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모여 공동체를 형성한다면 그 공동체가 타인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고, 그 영향력이 확장되어 좀 더 좋은 사회로 만드는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합창단원이 되는 자격이 따로 있을까?
누구나 신청하면 가입할 수 있으며, 오디션은 보지 않는다. 초창기에는 지인들의 소개로 모집했지만, 지금은 합창단 SNS 채널을 통해 신청이 들어온다. 평균 40명 규모를 유지하고 있는데, 대부분 오랫동안 함께한 멤버들이다.
카페는 어떻게 운용하게 되었나?
합창단원이 연습할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처음에는 병원 CT실이 있던 공간을 연습실로 썼다. 그런데 아무래도 보기가 좋지 않아 연습 공간 겸 단원들이 모일 수 있는 장소로 카페를 만들었다. 그러다 병원 시설을 확장하면서 현재 자리로 옮겼다. 연습도 하고 갤러리 겸 소규모 공연장으로 운영하고 있다. 주변의 추천과 소개를 통해 실력 있는 음악가들을 초빙해 정기적으로 음악회도 개최하고 기성 작가의 초대전을 열기도 한다.
카페 수익금은 합창단을 운영하는 데 쓰나?
아니다. 카페의 수익금은 100% 기부한다. 기부하는 곳이 따로 정해져 있지는 않고, 그때그때 필요한 곳을 찾아 기부하거나 위탁하는 방식이다. 남양주에서 노숙인을 대상으로 무료 급식 봉사를 하는 ‘다산공동체’가 급식소를 보수하는 데 보태기도 했고, 불우 이웃을 돕는데 써달라고 주민센터에 위탁하기도 했다.
유튜브 활동은 언제부터 시작했나?
개설한 지 이제 딱 1년이 지났다. 채널을 연 목적은 전 세계 의료 낙후 지역에 정확한 의료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같은 내용을 영어 버전으로도 올리고 있다. 영어뿐 아니라 의료 낙후 지역에서 통용하는 언어별로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이 궁극적 목표다. 우리에겐 상식인 의료 정보가 소중한 곳이 많다. 아직은 비용의 한계 때문에 못 하고 있지만, 채널에서 수익이 발생하면 번역 작업을 하는 데 투자할 계획이다.
퀄리티가 매우 높은데, 어떻게 작업하는가?
영상 쪽에서 일하는 친구의 도움을 받고 있다. 내가 기획을 맡고 그 친구가 제작을 담당한다. 미국 LA 아트 센터(ACCD)에 다니는 아들과 아들 친구들의 도움도 받는다. 곧 입대할 예정이라 아쉽다.(웃음)
아프리카 의료 봉사도 다니던데
탤런트 정애리 씨가 이사장으로 있는 (사)더투게더 운영이사다. 아프리카 의료 봉사를 하는데, 탄자니아에 자리한 빅토리아 호수에 병원선을 띄운다. 낙후된 지역이라 의료진과 물자가 부족해 주민들이 의료 혜택을 거의 받지 못하는 곳인데, 호수가 워낙 크다 보니(남한의 70% 면적으로 세계에서 세 번째로 넓다) 호수에 병원선을 띄워 의료 봉사를 다닌다. 그 병원선의 의료 장비 세팅과 운영의 전반적 부분에 참여하고 있다.
병원 일을 하면서 이 모든 걸 어떻게 다 해내는 건가?
세상에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내 편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 이기적 관점에서 ‘패거리’를 만들라는 게 아니라 이타적 생각을 하고 실천하며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와 동시에 나의 부족한 부분을 솔직히 인정하고 타인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렇게 살아가다 보면 어느새 주위에 좋은 사람이 모인다. ‘함께’ 힘을 모으면 혼자 할 수 없는 일도 가능해진다.
궁극적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Dr. 배’라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 의사, 합창단, 사회 봉사 활동 등 내가 하는 모든 활동의 가치를 통합하는 브랜드다. 단순히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구체적 비즈니스 모델과 시스템을 만들 생각이다. 환자에게 가장 이상적인 건강검진 센터를 만드는 것은 물론, 그로 인한 좋은 영향력을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총체적 시스템을 꿈꾸고 있다. 어디까지 실현 가능할지, 내가 그 결과를 볼 수 있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일치된 가치관과 삶의 태도를 유지하며 계속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그 길에 닿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