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스팩’으로 인생 역전한 몸짱 의사 김용철
40년을 살과 함께 ‘동고동락’해온 김용철 교수. 하지만 마흔이 넘으면서 살은 건강을 위협하는 적으로 돌변했다. 살기 위해 시작한 운동, 운동으로 삶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그의 인생역전 이야기를 들어보자.
•1980년생
•용인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 교수
코로나19 시대는 그를 ‘확찐자’로 만들었다. 2020년 7월, 인생 최대 몸무게인 95kg을 찍었다. 어느 날 숙취에 시달리다 거울을 본 그는 깜짝 놀랐다. 20대에 꿈꿔온 40대의 모습은 아련했고, 거울 속에는 살과 삶에 지친 ‘아저씨’만이 남아 있었다.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 보기 싫었다. 김용철 교수는 바로 다음 날부터 술과 탄산음료, 라면을 끊었다.
살기 위해 운동을 시작했다. 무거워진 몸을 다그쳤고, 이를 악물고 음식을 조절했다. 자신의 장점을 “시키는 건 잘한다”라고 밝힌 김 교수는 트레이너의 말을 철저히 신뢰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자 사람들이 그를 못 알아보기 시작했다. 지지부진하던 다이어트는 가속도가 붙었고, 하루하루 달라지는 자신의 모습에 희열을 느낀 그는 무아지경에 빠져 운동에 몰두했다. 그리고 1년 남짓한 시간 동안 무려 30kg을 감량하고 제2의 인생을 살게 됐다.
언제부터 몸 관리를 했나?
2020년 7월에 인생 최대 몸무게인 95kg을 찍은 후 식이조절을 시작했다. 운동은 그해 9월 말부터 시작했다. 2021년 7월 31일에 최종 체중 65.7kg으로 보디 프로필을 찍었고, 현재는 벌크업을 목표로 식이조절과 운동을 병행하고 있다. 지금 체중은 70kg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
다이어트를 시작할 당시 목표는?
살기 위해 다이어트를 했다. 내 체중을 못 이겨 숨이 가쁘고 허리가 아픈 경험을 하고 나니 이렇게 살다가는 정말 큰일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목표는 막연하게 몸무게 앞 자리를 9에서 7로 바꾸는 것이었다. 작년 7월에 95kg으로 시작해 7개월 만인 올해 3월에 70kg대로 감량에 성공했다. 그러고 나니 ‘죽기 전에 한 번은 내 복근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주변에서 “이미 완전히 달라 보인다, 그만 빼도 될 것 같다”라고 말했지만, 트레이너만은 내 소원을 듣고 보디 프로필을 찍어보자고 권했다. 고된 과정이었지만, 덕분에 평생 소중한 추억으로 남을 사진을 얻었다. 무엇보다 삶의 방식 자체가 변했다.
삶의 방식이 달라졌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평생 마음속에 담아두기만 했던 꿈을 실현해본 적이 있는가? 내 꿈은 식스팩을 가져보는 것이었다. 그게 현실이 된 것이다. 매일 아침 일어나서 거울에 비친 내 식스팩을 보고 있으면 꿈인지 생시인지 싶어 꼬집어보기도 한다. 아픈 걸 느끼고는 ‘꿈이 아니라 다행이다’ 생각하며 하루를 즐겁게 시작한다. 믿기 어렵겠지만, 하루의 시작이 늘 구름 위를 걷는 듯 즐거우니 행복하지 않을 수 있겠나? 단순히 성취감이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넘칠 만큼 행복하니까.
구체적인 다이어트 과정이 궁금하다
처음 3개월 동안 술과 탄산음료, 라면만 끊었는데 3개월 만에 체중이 90kg 정도로 줄었다. 그걸 본 병원 동료 중 한 명이 나에게 같이 운동을 하자고 권하더라. 그전까지 PT(퍼스널 트레이닝)는 세상 돈 아까운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정말 살기 위해서 50회를 덜컥 결제하고 운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인생의 은인 같은 트레이너를 만났다. 운동은 유산소운동을 기본으로 하되 웨이트트레이닝을 병행했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식이조절도 시작했다. 식이조절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단순당(단당류, 이당류) 섭취를 조절하는 거다. 당류는 순간적으로 혈액 속 당수치를 높이는데, 혈액 속에 과잉 상태인 당을 에너지원으로 쓰지 않으면 우리 몸은 남은 당을 중성지방으로 바꿔 체지방으로 축적한다. 이게 살이 찌는 과정이다. 그래서 섭취하는 식품의 당류를 일일이 체크하고 클린 푸드(고구마, 바나나, 단호박, 현미밥 등 단순당보다 다당류가 많은 음식) 위주로 식단을 구성했다.
보디 프로필 촬영은 어떻게 계획했나?
트레이너가 “내 말대로 하면 100일이면 된다”라고 장담했을 때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손을 내저은 기억이 선명하다. 시작한 후에는 단군신화 속 곰이 사람이 되기 위해 쑥과 마늘만 먹듯이 고구마, 단호박, 닭 가슴살과 소고기 이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부상과 코로나19 여파 등 우여곡절을 겪으며 예정된 일정을 두어 번 미뤘고, 지난 7월 31일에 촬영을 마무리했다. 촬영 3개월 전부터는 주 3회 PT를 받고, 그 외의 시간은 혼자서 웨이트트레이닝과 유산소운동을 했다.
주변 반응은 어땠나?
SNS에 사진을 올렸더니 주변 지인들은 물론 외국의 친구들까지 난리가 났다. “독한 놈”이라고 혀를 내두르는 반응도 많았다. 이달 초에 큰 규모의 심장학회에 참석했는데, 단 한 사람도 내가 먼저 인사하기 전까지는 나를 못 알아보더라. 이런 주위의 반응을 즐기는 중이다. 물론 아내는 마냥 좋지만은 않다고 한다. 같이 맛있는 거 먹고 싶은데 나 혼자 닭 가슴살 을 먹는 모습이 보기 싫다나?(웃음)
운동을 하며 시행착오나 어려움은 없었나?
우리 나이에는 누구나 한군데 정도는 성치 않은 곳이 있다. 나 역시 20대부터 허리 디스크로 고생을 많이 했다. 작년 11월에는 혼자서 하체 운동을 하다가 허리를 다쳐 1개월간 도수치료를 받았고, 2월에는 어깨를 다쳐 관절 주사를 맞았다. 그래도 낫지 않아 아예 두 달간 운동을 쉬었다. 지금은 머신을 이용해야 하는 웨이트트레이닝은 반드시 트레이너와 함께한다. ‘3대 500’ 같은 고중량 운동은 젊은 친구들에게 맡기고, 건강을 되찾고 유지하는 쪽으로 목표를 잡아야 한다.
“체중이 70kg대로 접어들자
외래에 진료를 보러 온 환자들이 나를 못 알아봤다.
어르신들 중에는 “진짜 김 교수가 맞나? 마스크 내려봐라”라고
말씀하시는 분도 있고, 진료실을 나가서 간호사에게
‘담당 교수가 바뀌었으면 말을 해야지 왜 내 허락도 없이 바꾸냐!’
라며 화를 내시는 분도 있었다.”
대학병원 의사가 운동할 시간이 있었나?
심장내과 특성상 새벽에도 응급환자가 오면 병원으로 달려가야 한다. 진료뿐 아니라 연구도 병행해야 하고. 하지만 나는 ‘살기 위해서’라는 간절한 목표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보디 프로필을 찍기 전 약 5개월은 하루 일과를 정말 잘게 쪼개 2~3시간씩 운동했다. 병원에 출근해 외래 진료를 보고, 시술하고, 남은 시간에 연구하고, 그리고 퇴근 후 체육관이나 집에서 운동하는 스케줄을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의사로서, 교수로서 일을 소홀히 한다는 이야기를 듣는 건 죽기보다 싫었다. 덕분에 지난 상반기에는 교수 135명 중 연구 실적 공동 3등을 차지했다. 시간이 없어서 운동을 못 한다는 건 그만큼 건강에 대한 간절함이 없다는 말일 것이다.
이젠 운동을 놀이처럼 즐긴다는 얘기로 들린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을 줄 안다’ 하지 않던가. 웨이트트레이닝의 거짓 없이 솔직하고 정직한 피드백을 경험해보면 운동 중 힘든 게 고스란히 내 것이 된다는 걸 잘 알기에 어느 순간에 힘든 걸 즐기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견디는 게 아니라 즐기는 것이다. 고강도 운동을 했는데 다음 날 근육통이 느껴지면 뿌듯하고 아픈 데가 없으면 기분이 별로다.
운동을 시작할 때 주의할 점이 있을까?
40대면 생물학적 정점은 지난 나이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부상에 주의해야 한다. 처음 운동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는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돈으로 노하우를 사라.” PT를 통해 내 몸이 어떤 상태인지,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전문가의 조언을 받는 게 좋다. 나 역시 세상에서 가장 돈 아까운 게 PT라고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니 40대 들어 가장 현명하게 돈 쓴 것이 바로 PT였다. PT를 받으며 운동에 대한 시행착오를 최소화하라. 20대처럼 시행착오로 경험치를 쌓고 한 발씩 나아가기에 우린 그다지 젊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