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유의 ‘라일락’을 작곡한 의사 작곡가 닥터조
의사 출신 작곡가는 많지만 국내 음원 차트를 석권한 이는 그가 유일하다.
닥터조는 아이유의 정규 5집 (2021) 타이틀곡 ‘라일락’을 작곡하며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다.
• 1986년생
• 작곡가, 의사
• 現 줌바스뮤직그룹 소속 작곡가
• 아이유 ‘라일락’, 트와이스 ‘젤리젤리’, 유빈 ‘숙녀’, 마마무 ‘칠해줘’, 에이핑크 ‘오버라이트’ 등에 참여
본명은 조민형. 의사 출신이라는 특이한 이력 덕분에 닥터조라는 예명을 사용 중이다. 처음부터 히트곡을 낸 것은 아니었으니 슬럼프에 빠진 시절도 있었다. 그럴 땐 본업인 의사로 돌아가 한 템포 쉬어갔다. 의사 면허까지는 반드시 따고, 그 후에 꿈을 따라가보자는 생각을 해온 터라 가능한 일이었다.
닥터조는 ‘라일락’ 히트 이후 작곡에 전념하고 있다 보니 이제는 작곡가가 본업이고 의사가 부업이라고 말한다. 그는 ‘라일락’이 사랑받은 것도 좋지만 내성적인 자신이 이를 통해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평범하지 않은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작곡가로서 가장 큰 즐거움이라고 말한다. 인터뷰에서는 무료한 일상에 새로운 재미를 찾는 중년에게 다시금 도전의식을 갖게 할 만큼 신나는 대화가 이어졌다.
자신을 소개한다면?
의사이면서 작곡가이자 작사가이기도 하고, 프로듀서이자 작곡 아카데미 강사이기도 한 사람! 물론 지금은 음악에 매진하느라 의사 일은 개점 휴업 상태다.
작곡은 언제부터 했나?
초등학생 때부터 음반을 하나 사면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들을 만큼 음악을 사랑했다. 중학생 시절, 어느 날 친구가 급식실 앞에서 ‘케이크워크(Cakewalk)’라는 작곡 프로그램으로 노래를 만들 수 있다고 알려줬다. 신세계였다. 그때부터 프로그램을 만지기 시작하면서 작곡에 입문했다.
본격적으로 작곡가가 되기로 마음먹은 계기는?
대학에 붙자마자 종로 낙원상가에 가서 작곡 장비를 샀다. 본과에 들어가기 전이 취미를 즐길 수 있는 최적의 시기라고 생각했고, 예과 시절 최대한 많은 곡을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작곡한 곡이 점점 쌓이면서 내 음악이 정말 괜찮은지 궁금해졌다. 마침 그 당시 방탄소년단을기획한 방시혁 PD가 후배 음악가 양성을 위해 인터넷 작곡 카페 ‘퓨처 프로듀서’를 운영하고 있었다. 카페에 ‘A 가수가 B라는 콘셉트의 곡을 수급하려 한다’는 내용이 고지되면 회원들이 자기 곡을 올리고, 방 PD가 피드백을 하는 모임이었다. 그때 정말 열심히 작곡했다. 한번 고지가 올라오면 열 곡씩 작곡해 올리고, 각 곡을 믹스해 새로운 분위기의 곡을 또 올리고, 그런 식으로 온종일 음악에만 매달리던 시기였다.
감사하게도 내 곡에 방 PD의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고, 언제부턴가 내 곡에는 빼놓지 않고 피드백을 남겼다. ‘곡이 좋다’, ‘감각이 있다’ 같은 댓글이 달리면 날아갈 듯 기뻤다. 그때부터 작곡가로서 인생을 꿈꾸게 된 것 같다.
데뷔는 어떻게 했나?
카페 활동 중 가수 케이윌의 곡을 작곡하는 미션이 있었다. 곡을 올렸는데, 뜻밖에도 방 PD가 피드백을 하지 않았다. 곡을 올릴 때마다 피드백을 거른 적이 없던 터라 마음이 쓰였다. 그런데 한참 후에 그 곡을 혼성 그룹 에이트의 정규 2집 <Infinity>(2008)에 넣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에이트는 ‘심장이 없어’라는 노래로 유명한 3인조 그룹으로, 제안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뜻하지 않게 데뷔하게 됐다.
박진영 PD와도 인연이 있다고 들었다
의대생 시절 작곡한 곡을 유명 기획사에 보내기도 했는데, 그 과정에서 내 곡을 좋게 본 박진영 PD와 한두 번 미팅을 한 적이 있다. 음반 취입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가능성을 알게 됐다.
그 뒤 의대생으로 열심히 살았고, 의사 국가고시에 붙었다. 이후 강원도에서 공중보건의로 일하면서 작곡을 다시 하게 됐다. 퇴근 후 남는 시간을 오롯이 작곡하는 데 썼다. 그즈음 예전 박진영 PD와 미팅을 주선한 JYP 직원에게 연락해 새롭게 작곡한 곡을 들려줬다. USB에 데모 파일을 담아 무작정 JYP에 찾아갔는데 긍정적으로 봐줬고, 계약을 하고 JYP 소속 작곡가로 활동하게 됐다. 다행히 기획사 소속 작곡가는 4대 보험이 적용되는 일이 아니라 겸직 금지 조항은 문제시되지 않았다.
어떤 뮤지션들과 곡 작업을 했나?
트와이스, 있지, 에이핑크, AOA, 마마무, 구구단 등 걸 그룹과 2AM, 갓세븐, 아스트로 등 보이 그룹과 작업했다. 하지만 뚜렷한 히트곡이 없어 계속해야 할지 고민했다. 안정적인 일도 아닌 데다 창작이라는 것 자체가 엄청난 스트레스를 동반하기에 건강도 나빠졌다.
결국 모두 관두고 의사 일에만 전념하기로 마음먹고는 그간의 작곡가 커리어를 정리하는 차원에서 여행을 떠났다. 태국, 대만을 다녀왔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여행 도중 작곡을 더 해도 되겠다는 확신을 얻었다. 공항에서 유심칩을 갈아 끼우고 휴대폰을 켜니 걸 그룹 구구단의 앨범에 내 곡이 들어간다는 연락이 와 있더라. 용기를 얻어 작곡을 계속했고, 원더걸스 출신 유빈의 솔로 앨범 타이틀곡 ‘숙녀’(2018)를 작곡하게 됐다.
원더걸스 멤버의 타이틀곡이라니, 기분이 어땠나?
‘이제 죽어도 되겠다’ 싶었다.(웃음) 그만큼 기뻤다. 데뷔 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보람을 느꼈다. 데뷔 때는 너무 막연하니까 감동보다는 음반에 수록해 준 관계자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컸지만, 내 곡이 유명 가수의 타이틀곡이 된다니 인정받았다는 생각에 감격한 것 같다. 한편으로는 ‘이룰 거 이뤘으니 이제 작곡 그만하고 의사라는 본업에 전념해도 되겠다’ 싶기도 했다. 그간 겪은 희로애락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기도 했고.
‘라일락’의 탄생 과정은?
작곡 제안을 받고 부담이 매우 컸다. 총 네 가지 버전을 만들었는데 각각 도입부, 후렴 등 파트별로 다른 멜로디를 적용해 변주했기 때문에 조합해 보면 100가지 정도의 시안이 나왔다. 그중 라일락은 두 번째 버전이었다. 심리적 압박감이 하도 크다 보니 반쯤 포기해야겠다 싶어 마음을 비우고 샤워하러 들어갔다가 갑자기 멜로디 라인이 떠올랐다. 정말 찰나였다. 이후 30개 이상 변주한 버전을 만들어 아이유 측에 보냈다. 한 달쯤 지나 아이유가 직접 가이드를 녹음해 보내줬는데, 환상적이었다. 부모님과 한 차에 타고 있을 때 처음 들었는데 그대로 음반에 실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좋았다.
꿈만 같았다. 아이유는 명실상부 국내 최고
여가수 아닌가. 아이유의 타이틀곡이 내가 만든
곡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소속사의 의뢰를
받고 열정을 다해 만들었다.
주변의 반응은 어땠나?
어머니는 ‘라일락’을 메신저 프로필 뮤직으로 설정해 두는 등 은근히 좋아하셨다. 작곡가가 되기로 했을 때만 해도 학생이다 보니 가족은 공부를 계속해 안정적인 직업을 갖길 원했다. 물론 반대를 심하게 하진 않았지만 딱히 응원해 주는 분위기도 아니었다. 그저 묵묵히 지켜봐줬다. 나 역시 시시콜콜 얘기하지 않았기에 가족은 내가 뭘 하는지 모르고 있다가 ‘라일락’ 같은 결과물이 나오면서 그제야 작곡가인 걸 확실히 알게 됐다. 반면 의대 동기들은 대부분 ‘신기하다’는 반응이었다.
스스로 스타 작곡가임을 실감하나?
실감하지 못한다. ‘히트곡 작곡가’라는 타이틀은 화려해 보이지만 보장된 미래 같은 건 없다. 물론 곡의 인기로 앞으로 활동 상황은 많이 좋아지겠지만, 한편으로는 ‘원 히트 원더’로 끝나면 안 된다는 부담감이 생긴다. 꾸준히 창작 활동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곡 의뢰가 들어왔으면 하는 신인 시절의 바람은 지금도 변함없다.
의사와 작곡가, 둘 다 성과를 내기는 힘들지 않나?
그래서 지금은 의사직을 잠깐 내려놓고 음악에 몰두하고 있다. ‘라일락’ 히트 이후로는 소속사를 옮겨 작사, 작곡, 프로듀싱, 아카데미 작곡 클래스의 강사 등으로 활동 중이다.
가장 신경을 많이 쓰는 건 음반 제작이다. 작곡가 와이닉(Y.nik)과 함께 ‘후암레코즈’ 크루를 이끌면서 남자 솔로 가수 ‘루이드’를 맡고 있다. 작사, 작곡, 프로듀싱부터 앨범 유통사 컨택, 앨범 디자인과 뮤직비디오 콘셉트까지 관여하려니 몸이 10개라도 모자라다. 하지만 새롭게 도전하는 분야인 만큼 즐거운 마음으로 임하게 된다.
작곡가로서, 의사로서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
목표가 너무 많아 딱히 한 가지만 꼽을 수 없다. 작곡가뿐 아니라 작사가로서도 더 인정받고 싶고, 앨범 제작하는 프로듀서로서도 더 성장하고 싶다. 욕심이 많아 큰일이다.(웃음) 나중에는 ‘닥터조’ 하면 ‘믿고 들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 그러려면 인지도를 더 높여야 한다.
어떤 이들은 ‘라일락’으로 목표에 근접하지 않았냐고 하는데, 내 생각은 다르다. ‘원 히트 원더’에 갇히지 않으려면 오히려 ‘라일락’의 그늘에서 벗어나야 한다. 다른 아티스트와 작업하는데 기존 히트곡의 아티스트, 곡 분위기, 장르 등에 구속되면 안 된다. 그건 작곡가의 숙명인 것 같다. 계속 카멜레온처럼 변해야 하는 사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