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다시 보는 스포츠 명장면

손흥민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에 등극하면서 1998년 박세리, 2010년 김연아처럼 우리 가슴을 끓어오르게 한 ‘한순간’이 또 하나 늘었다. 스포츠의 매력은 바로 이 한순간에 짜릿함을 만끽할 수 있다는 것. 세계 스포츠 역사에 길이 남은 명장면을 모았다.

2022-07-12     이영민 에디터

세계 복싱 전설의 출현

알리의 1차 방어전 1965년 5월 25일•미국 메인주

프로권투 헤비급 타이틀 매치에서 챔피언 무하마드 알리(1942~2016, 미국)가 도전자 소니 리스턴을 KO 시킨 뒤 포효하고 있다. 이 경기가 열리기 불과 1년여 전만 해도 알리와 리스턴은 정반대의 처지였다. 리스턴은 당대의 돌주먹으로 평가받는 세계 챔피언이었고, 알리는 ‘풋내기 도전자’에 불과했던 것. 일전을 앞두고 알리는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겠다”라고 각오를 다졌고, 그는 이를 경기를 통해 증명해 보였다. 빠른 발놀림으로 상대를 혼란에 빠뜨리는 ‘알리 스텝’은 지금도 복싱 선수 사이에 일종의 교본으로 통한다.

그렇게 리스턴을 물리치고 22세에 역대 최연소 세계 챔피언에 오른 알리는 1년 만에 열린 1차 방어전에서 리스턴과 재결투를 벌였다. 실력은 압도적이었다. 그는 1회전에서 KO로 리스턴을 쓰러뜨려 다시 한번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후 그는 챔피언 타이틀을 아홉 차례 방어하며 전설의 복서로 남았다. 그의 프로 전적은 이전 56승(37KO) 5패다.

 

10점 만점의 전설

코마네치의 얼굴 1976년 7월 17일•캐나다 몬트리올

체조 요정 나디아 코마네치(1961~, 루마니아)가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출전을 앞두고 마루운동을 연습하다 카메라에 포착됐다. 당시 앳되고 청순해 보이는 그의 얼굴은 연일 대중에게 화제가 되었다. 그러나 코마네치의 진가는 압도적 실력에서 발휘되었다. 이 사진이 찍힌 다음 날인 7월 18일, 14세의 어린 코마네치가 이단평행봉에서 현란한 연기를 펼치자 전광판에 ‘1.0’이라는 숫자가 떴다. 10점 만점이었다. 당시 전광판은 최대 9.99점까지 표시할 수 있었기에 10점이 1.0으로 표시된 것. 세계 체조사상 최초의 10점 만점 연기를 지켜본 관중은 우레와 같은 함성과 박수를 보냈다. 그는 이 대회에서만 일곱 차례나 10점 만점 연기를 펼치며 개인종합과 이단평행봉, 평균대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축구사상 최악의 오심

마라도나의 손 1986년 6월 22일•멕시코 멕시코시티

1986 멕시코 월드컵 8강전 당시 디에고 마라도나(1960~2020, 아르헨티나)가 잉글랜드의 골키퍼와 공중 경합을 벌이던 와중에 헤딩을 하는 척하며 왼손으로 공을 쳐 골대에 넣어버렸다. 당시 주심은 그가 손을 쓰지 않았다고 판단해 득점을 인정했고, 이는 세계 축구 역사에 길이 남는 오심으로 기록됐다. 경기가 끝나고 마라도나는 “신의 손을 약간 빌렸지만 결국 내 머리로 득점한 것”이라는 묘한 인터뷰를 남겼다. 이후 이 사건은 ‘신의 손(Hand of God Goal)’이라 불리게 됐다. 물론 당시 잉글랜드 축구 감독 보비 롭슨은 ‘추악한 사기꾼의 손’이라고 일갈했다.

 

올림픽 육상 4관왕의 등장

칼 루이스의 점프 1984년 6월 1일•미국 로스앤젤레스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육상대회 ‘펩시 인비테이셔널’에서 칼 루이스(1961~, 미국)는 멀리뛰기 경기 도중 가공할 만한 점프를 선보였다. 지면을 강하게 박차고 공중으로 도약하는 장면인데,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혼자만 공중에 ‘붕’ 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한 달 뒤 열릴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의 전초전으로 펼쳐진 이 대회는 마치 ‘육상 황제’의 등장을 예고하는 듯하다. 실제로 칼 루이스는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멀리뛰기를 비롯해 100m, 200m, 4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따며 4관왕에 올랐다. 주종목인 멀리뛰기의 경우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 이르기까지 올림픽 4연패의 금자탑을 달성했다.

 

‘에어(air)’라고 불리는 이유

마이클 조던의 덩크 1989년 5월 11일•미국 뉴욕

시카고 불스와 뉴욕 닉스의 동부 컨퍼런스 세미파이널 경기 도중 마이클 조던(1963~, 미국)의 슬램덩크가 작렬한다. 림이 부서져라 내리꽂는 그의 덩크슛을 보면 넘치는 힘이 느껴진다. 집중할 때 버릇처럼 나오는 특유의 ‘혀 내밀기’도 관전 포인트다. 조던은 체공 시간만 1.7초가 넘는 만큼 ‘공중을 걸어 다니는 사나이’를 뜻하는 ‘에어 워크’ 또는 ‘에어’라고 불렸다. 특히 1988년 덩크 콘테스트에서 자유투 라인에서 점프해 한 손으로 슬램덩크를 꽂아 넣는 장면은 지금까지도 ‘가장 아름다운 덩크슛’으로 회자될 정도다.

조던의 위대함은 기록으로 증명되지만, 더욱 대단한 것은 영향력이다. 그는 코트 밖에서 더욱 큰 임팩트를 발휘했다. ‘에어 조던’으로 대표되는 농구화 등 스포츠용품 시장에서 그의 존재감은 상상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그의 말 한마디에도 큰 반향이 일었을까. 일례로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참가했을 때 한 기자가 “당신은 하늘을 날 수 있나요?”라고 묻자 그는 “조금은?”이라고 답했다. 이는 수많은 팬과 미디어의 마음을 훔친 전설적 인터뷰로 남았다.

 

‘하얀 맨발’이 준 따뜻한 위로

박세리의 주먹 1998년 7월 7일•미국 위스콘신주

세계 최고 권위의 골프 대회 ‘제53회 US여자오픈’ 에서 우승을 차지한 20세의 박세리(1977~, 한국) 선수는 주먹을 불끈 쥐고 승리를 만끽했다. 당시 대한민국이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겪고 있던 와중에 보여준 우승 세리머니는 온 국민에게 희망과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여기에 드라마 같은 우승 스토리도 기쁨을 배가하는 데 한몫했다. 박세리는 상대 선수와 18홀 연장 대결을 펼치며 역전과 재역전을 거듭하는 팽팽한 접전을 벌이는 상황에서 연장 18번 홀 티샷이 페어웨이 왼쪽 해저드로 빠지고 말았다. 그는 양말을 벗고 물속으로 들어가 시도한 두 번째 샷으로 공을 다시 필드 위에 올려놓았다. 관중은 환호했고, 신발을 다시 신을때 우리는 그의 발이 하얗다는걸 알았다. 하얀 발과 대비되는 까맣게 그을린 피부를 보며 그간 그의 노고를 알 수 있었다.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벗어나는 박세리의 굴하지 않는 모습에 상대는 흔들렸고, 끝내 우승은 박세리 차지였다.

 

2002년 최고의 세리머니

박지성과 히딩크 2002년 6월 14일•대한민국 인천

2002년 한일 월드컵 한국과 포르투갈이 맞붙은 예선 3차전에서 박지성(1981~, 한국) 선수가 골을 넣은 뒤 거스 히딩크(1946~, 네덜란드) 감독에게 달려가 매달려 안겼다. 히딩크도 자신을 향해 달려온 박지성을 두 팔 벌려 힘껏 안아줬다. 2002년 최고의 세리머니는 이렇게 탄생했다. 세계 최고의 미드필더로 군림하던 루이스 피구가 이끌던 포르투갈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명경기였기에 훗날 더욱 값진 장면으로 남았다. 골 장면도 인상적이다. 이영표 선수가 올려준 크로스를 박지성이 침착하게 가슴으로 공을 받은 뒤 오른발로 살짝 공을 트래핑하듯이 올려 달려드는 수비수를 완벽하게 제쳤고, 왼발 강슛으로 연결해 골망을 흔들었다. 박지성은 입술에 검지를 대는 세리머니를 한 뒤 히딩크 감독의 품으로 뛰어들며 16강 진출을 자축했다.

 

여왕의 퇴장

김연아의 미소 2010년 2월 24일•캐나다 밴쿠버

2010년 밴쿠버 올림픽 여자 싱글 피겨 쇼트 프로그램이 열린 경기장에서 김연아(1990~, 한국) 선수가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경기를 마친 김연아는 만족스러운 미소와 함께 오른손을 불끈 쥐며 승리를 예감했고, 기립 박수로 환호하는 1만5000여 명의 관중에게 두 손을 흔들며 ‘피겨 퀸’의 자태를 뽐냈다. 점수가 나오기를 기다리던 김연아는 점수판에 적힌 78.50이라는 세계신기록을 확인하는 순간, 깜짝 놀라며 기쁨을 만끽했다. 이틀 뒤인 2월 26일 열린 프리 프로그램에서도 그는 150.06으로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종합 228.56으로 금메달을 차지했다. 외신들은 김연아를 ‘피겨 여왕’, ‘피겨계의 신’, ‘피겨계의 비욘세’, ‘퀸 연아’ 등으로 부르며 칭송했고, 우리 국민은 그런 그를 한없이 자랑스러워했다.

 

아시아 최초

프리미어리그 득점왕

손흥민의 포효 2022년 5월 23일•영국 노퍽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2021~2022 시즌을 마무리하는 38라운드에서 골을 성공시킨 손흥민(1992~, 한국) 선수가 동료들과 기쁨을 나누고 있다. 손흥민이 소속된 토트넘과 노리치시티의 이날 경기는 그가 EPL 득점왕에 등극하느냐 마느냐 하는 중요한 일전이었다. 이내 후반 25분, 수비수의 실책을 놓치지 않고 상대 골문으로 치고 들어간 손흥민이 골을 넣었다. 5분 뒤인 후반 30분, 이번에는 좌측에서 공을 잡은 손흥민이 오른발로 중거리 슛을 성공시켰다. 골은 아름다운 궤적을 그렸다. 경기는 그대로 종료. 리그 23호 골을 넣은 손흥민이 아시아인 최초로 득점왕을 차지하는 순간이다. 경기 내내 동료들은 손흥민에게 득점 기회를 만들어주기 위해 희생하고 양보했으며, 그는 동료들의 마음에 화답하듯 득점왕에 올랐다. 손흥민이 이룬 쾌거는 많은 이가 함께 만들어낸 만큼 그 의미가 더욱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