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최고의 벗으로 삼은 50대 백패커, 김홍식 “장비는 최대한 간단하게, 날것 그대로의 여행이 최고다”
세상에서 가장 바쁜 직업이라고 해도 무방할 방송 프로그램 제작 PD 김홍식 씨. 그는 분주한 생활 중에도 시간이 허락하면 배낭을 챙겨 캠핑을 떠난다. 일상에서 탈출해 자연과 휴식을 즐기는 시간이야말로 그에게는 최고의 위로다.
김홍식 PD는 방송 다큐멘터리를 주로 제작한다. KBS 환경 스페셜 <갈색 여치의 습격>을 비롯해 MBN <여행생활자 집시맨>이 그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 전국 방방곡곡 안 가본 데가 없고, 작업을 하다 보면 야근과 밤샘은 필수였다. 일을 위해 떠나는 출장은 여행이 아니어서, 제아무리 좋은 곳을 가도 그곳은 작업 현장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진짜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바쁜 일과 중 틈틈이 짬을 내어 자연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갖기로 한 것이다. 처음엔 아이들과 함께 가족 캠핑으로 시작했다. 캠핑에 구력이 붙으면서 백패킹의 묘미를 알게 되었다. 단출하게 떠나 자연 속에서 호젓하고 평화롭게 지내는 시간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백패커 생활 10여 년이 훌쩍 넘은 지금도 그는 여전히 캠핑을 즐긴다. 50대에 접어든 그의 일상에 캠핑은 가장 편안하고 소중한 힐링 타임을 선사한다.
캠핑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아이들이 어릴 때 자연에서 함께 즐기는 시간을 마련해 주고 싶었다. 처음엔 차를 이용한 캠핑을 주로 했다. 이것저것 다양한 장비를 싣고 가족과 함께 이동해 하루 이틀 머물다 돌아오는 식으로 여행을 즐겼다. 시간이 지나면서 백패킹의 묘미를 알게 됐다. 가족을 동반하지 않은 나 홀로 캠퍼끼리 모여 백패 킹을 떠났다. 돌봐야 할 사람 없이 단출하게 떠나는 캠핑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고 할까? 장비가 간편해지니 홀가분하게 떠나서 즐기고 오는 매력이 있었다. 흔히 ‘솔캠’이 라고 하는데, 솔로 캠핑도 가고, 종종 마음 맞는 친구 한두 명과 떠나기도 한다. 캠핑을 지속적으로 하다 보면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그 형태와 모습도 바뀌는 것 같다.
요즘은 어떤 캠핑을 즐기나?
과거에는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려 보내는 시간을 즐겼다면, 지금은 호젓한 것이 좋다. 진짜 편한 상대는 대화가 오가지 않아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관계라고 하는데, 그런 친구들과 함께 가는 게 마음 편하다. 젊을 때는 높은 산을 오르는 것도 거리낌 없었는데, 요즘은 산에 가도 정상에 오르겠다는 욕심을 내지 않는다. 이제는 무릎이 아플 나이 아닌가.(웃음). 산 초입이나 근방에 머물며 캠핑하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최근엔 제주도를 자주 찾았다. 제주 바다가 참 아름답다. 캠핑이지만 큰 부담 없이 떠나고 싶을 때 떠날 수 있어 좋다.
캠핑을 처음 시작한 10년 전과 지금 가장 많이 달라진 점은?
예전에는 장비를 많이 갖고 다녔다. 아마 다들 그런 과정을 겪었을 텐데, 나 역시 처음 캠핑을 할 때는 장비 사 모으는 재미에 빠져 있었다. 다양한 장비를 갖추고 캠핑을 떠나 소꿉장난하듯 즐겼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장비 진열하려고 캠핑하나?’ 하는 회의감이 찾아왔다. 그때부터 조금씩 장비를 줄였다. 1년 동안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장비가 있는지 살펴보고, 그런 것은 하나씩 정리해 중고 시장에 내다 팔았다. 시간이 더 흐르면서는 최소한의 것만 챙겨 떠나는 방식을 터득하게 됐다. 지금은 캠핑 짐이 아주 심플하다. 최대한 가볍고 편하게 떠났다 온다.
‘이것만큼은 꼭 챙겨 간다’는 애착 캠핑 장비가 있나?
캠핑 갈 때마다 빼놓지 않고 챙기는 장비 하나가 있다. MSR 리액터스토브인데, 백패킹 할 때 정말 유용하다. 처음 이 장비를 사용하고 혁명적이라 생각했다. 일종의 버너인데, 불꽃은 없고 철망이 빨갛게 달궈지기만 한다. 그런데도 물이 엄청 빨리 끓는다. 화력이 막강해 캠핑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이미 다 아는 유명 제품이라고 한다. 스토브는 바람을 막아주도록 설계되어 있어 바람이 많이 부는 야외에서 사용하기에 아주 요긴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캠핑이 더 재미있고 즐거워지는 이유는?
지금 생각해 보니 처음 캠핑을 시작했을 때는 그다지 재미있지 않았다. 애들과 함께해야 했으니 이것저것 챙겨야 할 것도 많고, 도착해서도 할 일이 많아 힘들었다. 아이들이 크고 나만의 여행을 떠날 수 있게 되면서 비로소 캠핑의 묘미에 눈뜰 수 있었다. 내가 쓸 장비만 챙기면 되고, 목적지에 도착해서도 나만 돌보면 되니까.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백패킹을 다녔고,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캠핑하면서 가장 즐거운 시간을 꼽는다면?
맛있는 음식 해서 나눠 먹고, 술 한잔하면서 대화하는 시간이 무척 즐겁다. 그 시간만큼은 푹 빠져서 즐길 수 있다.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게 시간이 지나가 있다. 마음 맞는 사람들과 웃고 떠들다 보면 스트레스가 확 날아가는 기분이 든다. 무엇보다 웃을 수 있어 좋다. 일주일 중 그렇게 웃을 수 있는 날이 거의 없으니까.
PD라는 직업 특성상 쉼이 반드시 필요할 것 같다
캠핑을 처음 접한 때가 30대 후반쯤인데, 돌이켜보니 인생에서 가장 일이 많고 바쁘게 살 때였다. 40대로 접어들어서는 더 심했다. 어느 순간 번아웃 상태에 이르렀는데, 그때 탈출구가 되어준 것이 캠핑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인생에서 반드시 휴식이 필요한 순간에 캠핑을 만난 것이다. 50대에 접어든 지금, 과거에 비해 많이 여유로워졌다.
백패커 경력 10년이 넘은 베테랑으로서 느끼는 캠핑의 묘미는 무엇인가?
과거에는 ‘으쌰으쌰!’ 하며 즐기는 여행에 묘미를 느꼈다면 지금은 ‘천천히’ 여행하는 것이 좋다. ‘장비발’ 세우지 않고, 시간에 쫓기지 않고, 사람에 치이지 않으면서 유유자적, 시간을 즐기면서 하는 캠핑이 매력적이다.
그렇다고 혼자 고독을 씹는 여행을 추구한다는 건 아니다. 형식이야 어떻든 여행은 일상을 탈출해 쉼표 같은 시간을 마련한다는 데 의미가 있는 일이다. 캠핑이라고 해서 무조건 산과 강, 바다만 찾아 떠나는 것도 아니다. 도심 속에서 아이들과 호캉스를 즐기는 순간도 좋아한다.
여행은 지겨운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이다. 낯선 곳을 찾아
새로운 것을 눈에 담고, 새로운 공기를 맡으며 삶을 리프레시한다.
힐링 타임에 자연이 동반되면 뭐가 좋은가?
눈이 덜 피로하다. 자연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눈이 맑아지는 기분이 든다. 공기도 좋고, 그곳에서 나는 향기가 좋고, 소리가 좋다. 오감 만족이랄까? 이런저런 수식어 필요 없이 자연 속에 있으면 편안하다. 공기가 좋으니 술도 잘 들어간다.(웃음)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혼자 훌쩍 떠나는 꿈을 꾼 적이 있나?
지금도 가끔 지인들에게 얘기하곤 한다. 일과 사회생활에서 떠날 수 있는 조건이 된다면 노매드족처럼 살고 싶다. 구체적으로는 나만의 스타일로 커스텀한 캠핑카를 한 대 구입하는 거다. 이 캠핑카를 배에 싣고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까지 간 후 그곳에서부터 육로로 차를 몰아 러시아, 유럽 등 세계 일주를 하는 걸 꿈꾼다. 지금도 이렇게 여행을 떠나는 분들이 주변에 꽤 있다. 나 역시 언젠가는 이런 여행을 할 수 있는 날이 오길 고대하며 살고 있다.
인생에서 여행이란?
지겨운 일상에서의 탈출! 사람이 일만 하다가 죽을 수는 없지 않나?(웃음) 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일상을 잠시 탈출했다가 돌아오면 다시 힘을 내 시작할 수 있다. 여행을 통해 그 힘을 마련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