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아산병원 영상의학과 최상현 교수 “영상 진단으로 조기에 간세포암을 발견할 수 있다”
최상현 교수는 복부 영상의학 중 간세포암 영상을 주로 연구한다. 그는 조직병리적 진단 대신 영상 진단만으로 조기 간세포암 확진이 가능한 만큼 향후 영상의학과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한다.
간세포암이란?
간세포로부터 생긴 암으로, 간에서 발생하는 악성종양의 약 90%는 간세포암이고, 나머지는 담관세포암이다. 간세포암이 가장 흔하므로 보통 ‘간암’ 하면 간세포암을 일컫는다.
복부 영상의학의 역할은?
우리 배 속에는 위, 간, 대장 등 다양한 장기가 자리하고 있다. 이들 장기에서 어떤 질환이 발생했는지 영상을 통해 살펴보고 의학적 소견을 냄으로써 환자가 정확한 진단을 받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가장 큰 역할이다. 그런 만큼 진단명을 최대한 상세히 알려주고, 가장 적절한 치료 방침을 세울 수 있도록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영상 진단만으로도 간세포암 확진이 가능할까?
일반적으로 암은 조직검사를 통해 진단한다. 만약 폐암소견이 보인다고 가정할 때, 환자가 폐암인지 아닌지는 조직검사를 통해 확정 진단을 받아야 알 수 있다. 하지만 간세포암은 다르다. 간세포암은 악성질환 중 유일하게 조직 검사 없이 영상 검사만으로 확정 진단을 받을 수 있다. 즉 조직검사를 하지 않고 전산화단층촬영(CT)이나 자기공명영상(MRI) 검사에서 전형적인 간세포암 소견이 보이면 환자에게 간세포암 확정 진단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조직병리적 검사만큼 정확도가 높은가?
아직까지는 영상 진단이 조직 검사의 정확도를 완전히 따라가지는 못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가장 확실한 진단 방법이 조직검사라고 한다면, 영상 검사의 정확도는 조직검사의 약 85~90%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간에는 워낙 다양한 병변이 다수로 발생하는 만큼 모든 병변을 조직검사를 통해 하나하나 확인하기에는 환자의 위험 부담이 크다. 따라서 전형적인 영상소견을 보이는 경우는 영상검사로 확진하고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 영상 진단 수준은 정확도가 꽤 높다고 할 수 있지 않나?
최근 20~30년간 영상 검사 기술이 매우 크게 발전했다. CT, MRI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MRI 검사의 발전이 눈에 띈다. 조영제에서도 발전이 있었는데, 기존에는 혈관이나 혈역학적 상태 등을 잘 관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혈관 조영제만으로 검사를 진행했다면 2008년부터는 간 MRI에 한해 ‘간세포 특이 조영제’를 새로 도입했다. 이는 혈류를 파악하는 데 도움을 주고, 기존 방식으로 잘 관찰되지 않는 병변을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는 간세포암을 조기 발견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고, 기술 발전에는 가속도가 붙었다.
간세포암은 영상만으로도 진단을 확정할 수 있다. 이에 MRI 촬영을 통해 간세포암을 조기 진단할 수 있는 방법이 최근 많이 소개되었다. 그러한 흐름 속에서 어떻게 간세포암을 보다 더 초기에, 정확히 진단할 수 있는지에 대해 연구했고, 기존의 진단과 달리 간세포 특이 조영제를 이용해 MRI 촬영을 했을 때 좀 더 일찍 간암을 발견할 수 있었다.
2016년 발표한 논문이 세계적 화제가 되었다. 어떤 내용인가?
간세포 특이 조영제를 이용한 MRI 검사에서 초기 간암 영상진단 방법에 관한 연구였다. 간세포 특이 조영제를 도입하면서 상당히 많은 연구가 진행됐지만, 간암을 어떻게 조기에 진단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정확한 진단 기준은 마련되지 않았다. 2016년 실행한 연구는 간세포 특이 조영제를 통한 간암의 조기 진단 기준을 제시하는 데 목적이 있었고, 그 연구가 간암 분야 최고 학술지 <저널 오브 헤파톨로지(Journal of Hepatology)>에 실리면서 결과적으로 영상 진단의 좋은 모델을 제시하게 되었다. 최근 미국, 유럽 간세포암 영상진단 기준에서 우리 연구결과 등을 기반으로 간세포 특이 조영제를 채택했고 새롭게 진단기준을 발표했다.
여러 성과 덕분인지 최근 학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감사하게도 그랬다. 대웅재단 학술상인데 연구의 학술적 가치와 공헌도를 높게 봐주신 듯하다. 45세 미만의 의학자(MD)에게 시상하는 걸로 안다. 영광스러운 일로 생각한다.
간은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침묵의 장기’인 만큼 환자 스스로 조기에 이상 증상을 발견하기 어렵다. 증상이 나타났을 때는 이미 상당 부분 병이 진행됐을 가능성이 높다. 결국 주기적으로 추적 관찰하는 것이 간세포암을 조기 진단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모든 암이 그렇지만, 특히 간세포암은 치료하는 데 조기 진단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다. 환자 스스로 이상 증상을 빠르게 발견하는 방법이 있을까?
조기에 간암의 증상을 발견하기는 매우 어렵다. 간은 병이 어느 정도 진행되기 전에는 별다른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침묵의 장기’이기 때문이다. 황달이 있거나 우상복부 통증이 느껴진다면 이미 간세포암 등이 상당히 진행된 경우가 많다. 결국 간세포암은 증상과 상관없이 주기적으로 추적 관찰하는 수밖에 없다. 특히 고위험군 환자, 즉 간경변 또는 만성B형간염·C형간염을 앓는 환자는 반드시 주기적으로 초음파나 혈액검사를 실시해야 한다.
표준화된 영상 진단 방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어떤 내용인지 궁금하다.
현재 많은 병원에서 자체적으로 MRI를 촬영하고 있다. 문제는 촬영 기법이 저마다 다르다는 점이다. 방법이 다르니 결과도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한 환자가 A병원과 B병원에서 찍은 MRI 사진이 각기 다르다면 정확한 진단을 얻는 데 상당히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따라서 표준화된 방법으로 MRI 검사 결과를 획득하는 게 중요하다.
또 MRI에 대한 의사들의 판독 소견을 표준화할 필요성도 있다. 같은 사진을 보고 의사마다 다르게 표현한다면 그 역시 정확한 진단을 어렵게 만드는 요소일 테니까.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영상의학회에서는 2008년부터 표준화된 영상 분석 방법을 도입하고 꾸준히 업데이트하고 있다. 결국 간세포암 환자들에게 보다 정확한 진단을 할 수 있도록 ‘영상 진단 기법’, ‘영상 진단 기준’, ‘영상 판독’ 등에서 표준화를 이뤄야 한다.
영상의학이 빠르게 발달하면서 인공지능(AI) 적용에 대한 의견도 많이 나오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AI는 영상의학뿐 아니라 우리 의료 현장 곳곳에서 활용될 만한 잠재성이 상당히 높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현재 환자의 질병상태를 더 잘 진단할 수 있고 더욱 유용한 치료 방침을 내려줄 수 있는 방향으로 AI 관련 연구 결과가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인공지능에 대한 검증은 아직 불완전한 상태이므로, 이들 정보와 결과가 ‘얼마나 잘 설계된 연구에 의해 도출되었는가’, ‘얼마나 결과를 신뢰할 수 있는가’ 등에 대해서는 연구자나 의학자들이 비판적 시각으로 볼 필요가 있다.
그런 점이 반영되어 최근 AI에 관한 연구는 예전에 비해 발전된 방향으로 진화하는 중이다. 연구 설계 단계부터 ‘인공지능을 과연 우리 임상 현장에 적용했을 때 어떤 유용성을 보일 수 있는가’, ‘환자들에게 얼마나 더 큰 이득을 줄 수 있는가’, ‘환자에게 어떤 정보를 줄 수 있는가’ 등을 심각하게 고민한다. 즉 ‘AI + 영상의학’의 관심이 임상적 유용성으로 좀 더 이동한 상태라고 보면 된다. 영상의학의 AI 접목은 여전히 잠재성이 높지만, 아직은 잘 설계된 연구방법론을 바탕으로 임상적 유용성에 초점을 맞춘 연구가 더 많이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국내 영상의학이 현재 당면한 과제가 있다면?
현재 국내 영상의학은 미국이나 유럽 영상의학에 전혀 뒤지지 않을뿐더러 어떤 부분에서는 선도적 역할을 하는 경우도 많다. 앞으로도 나를 포함한 젊은 연구자들이 영상의학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선도적으로 미래의 좋은 주제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AI 등 기술적 분야의 강점을 잘 살려 전 세계 영상의학의 선두 주자로서 우리 위치를 잘 유지하면 좋을 것 같다.
향후 계획이 있다면?
2023년에 해외 연수를 계획하고 있다. 지금까지 연구해 온 영상의학의 표준화에 대해 더 깊이 연구하려고 한다. 간 영상의학의 표준화와 진단기준의 개척자이기도 한 미국 설린 박사와 함께 연구할 예정이며, 많은 지식과 인적 교류를 할 예정이다. 또 영상을 통한 간암 진단이 아직 완벽하지 못하다. 앞서 말했듯 조직병리적 검사의 85~90% 정확도는 나쁘지 않은 수치지만, 나머지 10%의 갭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할 생각이다.
간세포암 영상 진단 결과에 대한 높은 정확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영상 촬영 방법, 영상 결과 판독, 영상 결과에 따른 진단 기준, 영상 결과에 따른 예후 해석 등 영상 진단의 각 단계별로 표준화를 이뤄야 한다. 의사마다 해석이 다르고, 병원마다 촬영 방법이 다르면 환자가 정확한 진단을 받기가 어렵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