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을 보면 그 나라의 문화가 보인다
우리가 마주하는 아무리 사소한 공간이라도 허투루 만들어진 것은 없다. 저마다 존재 이유가 있는 법. 그 숨겨진 이야기를 공개한다.
PART 1. 국회의사당
왜 우리나라 국회는 몸싸움을 벌이는 ‘동물 국회’나 아예 일하기를 멈추는 ‘식물 국회’가 되곤 할까? 그 이유는 사람이 아닌 국회의사당이라는 공간에서 찾을 수 있다.
적극적 토론을 이끌어내는 좁은 공간
영국 하원의사당
영국 하원의사당은 가운데 테이블을 두고 상대가 바로 앞에 보이도록 서로 마주 보는 구조다. 발언권을 얻은 발표자의 육성을 듣기 위해 좁고 딱딱한 좌석에 앉아 집중하고 함성과 야유, 박수, 손짓과 표정 등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면서 토론에 적극 참여한다.
영국 의원들이 처음부터 신사적인 것은 아니었다. 옛 영국 의원들은 기사 출신이 많아 의견이 충돌하면 칼부림도 서슴지 않았다. 그 해결책으로 ‘선(sword line)’을 그어 어떤 일이 있어도 서로 넘지 않기로 합의했다. 오랜 시간 좁은 공간에서 서로 부대끼고, 상처를 주고받는 피곤한 시간을 보내면서 서로에게 더 좋은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그들의 토론 문화에 자연스레 스며든 것이다.
너무 넓어 대화 불가능한 극장 객석형
한국 국회의사당
공간이 넓은 데다 경사도마저 낮아 앞에 앉은 의원의 뒤통수에 반쯤 가려 단상이 잘 보이지 않고, 마이크 때문에 소리는 들리겠지만 저 멀리 단상에 선 발언자에게 반론을 전해야 할 때는 고함치지 않으면 의사를 전달할 방법이 없다. 넓고 푹신한 소파식 의자는 등과 목을 등받이에 기대기 좋고, 1인당 면적이 3.16㎡로 넓어 몸을 한껏 기울여야 옆 사람과 대화를 할 수 있으니 적극적인 토론이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자기 자리에서 특별히 할 것도 없으니 소통을 포기하고 자신만의 세계에 빠지기도 한다.
국회의사당은 어떻게 지었나?
1975년 개관한 국회의사당은 설계가 끝난 건물에 ‘서양 건축물’처럼 돔을 올려달라는 당시 국회의원들의 요구로 시공 도중 원래 계획에 없던 돔을 얹게 됐다. 남북통일이나 개헌 등으로 의원 수가 늘어날 것을 고려해 600석으로 설계됐지만 현재 300석만 사용하고 있다. 국회의원 수가 300명인 한국 국회의사당의 대회의장 면적은 950m2로, 의원 수가 577명에 달하는 프랑스 국회의사당 대회의장(545m2)보다 넓다.
PART 2. 공공장소
한국의 도시가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은 ‘인간은 선하고 믿을 만하다’는 쪽에 가깝다. 반면 유럽의 도시 문화는 기본적으로 인간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 예는 공공장소에서 잘 나타난다.
차선을 없앤 파리 vs. 차선 있는 한국
도로
파리 시내의 차선이나 중앙선 없는 도로. 완만한 경사에 폭이 넓어 멀리까지 시야가 확보되는 이 도로는 운전자가 속도를 내고 싶은 욕구가 강해진다. 이런 환경에서 차선은 옆 차선의 차와 나를 심리적으로 구분해 주는 역할을 하기에 운전자는 안심하고 속도를 올리게 된다. 하지만 차선이 없어지면 자신의 영역을 구분해 주는 가이드라인이 없어지면서 운전자는 위축되고 주위 차에 신경 쓰게 된다. 그 덕에 차들의 주행 속도가 줄어 덩달아 사고도 줄었다. 반면 한국은 단속 카메라를 설치하고 속도를 줄이도록 캠페인을 벌인다. 유럽은 이 같은 캠페인이나 선도 등의 과정을 낭비로 여긴다.
각자 영역을 구분한 유럽 vs. 경계 없는 한국
지하철 벤치
영국 런던의 한 지하철 벤치는 4명만 앉을 수 있게 팔걸이로 자리를 구분해 뒀다. 반면 한국의 지하철에는 구획 구분 없는 벤치가 설치되어 있다. 이는 유럽과 한국의 도시를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를 보여준다. 유럽에서 모든 것은 구체적으로 규정돼야 하고, 물리적으로 구분돼야 한다. 인간은 저마다 생각이 다르니 각자의 몫을 정해주지 않으면 누구도 지키지 않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한편 한국은 ‘선진 국민’처럼 우측통행을 하고, ‘예의 바르게’ 노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등 ‘사람은 그래야 한다’는 유교적이고 공동체적 상식이 작용한다. 즉 벤치도 여럿이 알아서 나눠 앉을 거라고 믿는 것이다.
신호 규제하는 한국 vs. 알아서 유럽
신호등
서울의 횡단보도는 신호등이 대부분 횡단보도 건너편에 멀찌감치 있다. 운전자에게 잘 보이도록 만들어놓은 것인데, 빨리 가고 싶은 마음에 횡단보도 정지선을 넘어서도 운전자가 볼 신호등은 여전히 잘 보이기 때문에 불편함이 없다. 여기에는 운전자가 ‘양심적’으로 정지하면 된다는 믿음이 깔려 있다. 그러나 유럽의 신호등은 횡단보도 앞에 위치한다. 만약 정지선을 넘어가면 자신이 봐야 할 신호등이 보이지 않으니 위반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대중은 질서 따위 지키지 않을 것이니 질서를 지킬 수밖에 없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PART 3. 광장
1000명이 사는 조그만 유럽 도시에도 사람 가득한 광장이 있는데, 1000만 명이 사는 서울에는 왜 광장다운 광장이 하나도 없는 걸까? ‘광장의 조건’을 알면 수수께끼가 풀린다.
인간적이고 포근히 머무는 공간
유럽식 광장
유럽에는 도시 규모와는 상관없이 도심 곳곳에 광장이 있다. 로마 성베드로 광장, 파리 콩코르드 광장, 베를린 포츠담 광장이 대표적인 예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마음 편하게 휴식을 취한다. 심지어 더러운 길바닥에 모여 앉거나 드러눕기도 한다. 유럽 광장들이 이처럼 실질적 광장으로 거듭난 데에는 크게 여섯 가지 조건을 충족했기 때문이다.
유럽식 광장의 조건
1. ‘공터’를 향해 개개의 건물은 높이와 형태를 통일함.
2. 광장에 접한 건물 1층에 상점을 열어 사람들이 광장과 건물을 자유롭게 오가도록 함.
3. 건물 상층에 발코니, 투명 창을 설치해 광장의 사람과 건물 내 사람의 시야가 자연스레 교차돼 늘 사람이 있는 것 같은 안정감을 줌.
4. 인접 건물에 캐노피를 설치, 뜨거운 태양이나 소나기를 피하도록 해 광장이 자신을 보호한다는 느낌을 줌.
5. 눈이 부시지 않으면서 물이 고이거나 때가 끼지 않는 바닥재로 시각, 촉각적 안정감을 줌.
6. 자동차로부터 완벽하게 분리됨.
머물지 못하고 지나쳐 가는 공간
한국식 광장
한국의 대표 광장인 광화문광장이나 시청 앞 광장을 보면 유럽의 광장과 다르다. 가장 큰 차이는 대부분 그 속에서 사람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 유럽 광장처럼 카페 테라스에 앉아 신문을 읽거나 계단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는 연인, 길거리 공연자와 군중은 찾아보기 힘들다. 한국의 광장에 있는 모든 사람은 마치 도로 위에서처럼 어딘가로 이동 중이다. 이름은 광장인데 사람들은 길처럼 받아들인다.
한국에 광장이 없는 이유
한국은 2002년 한일 월드컵 응원 이후 뒤늦게 광장의 필요성을 인식한 만큼 이미 자리하고 있던 건물과 길 위에 광장을 조성해야 했다. 그런 만큼 유럽의 광장이 갖는 조건을 충족하지 못할 수밖에 없었다. 바닥에 잔디를 깔고 분수와 동상을 세운 뒤 광장이라 칭해도 시민은 큰 공터나 길의 한 형태로 받아들일 뿐이다. 아무도 그곳에 앉아 누군가를 만나거나 쉬려고 하지 않는다. 머물지 못하고 지나쳐 가는 길과 같은 공간이 된 것이다.
PART 4. 발코니
대다수 한국인에게 발코니는 ‘추가 실내 면적’처럼 인식되지만, 유럽의 건물에서 발코니는 쉬거나 화초를 가꾸는 등 ‘자신의 공간적 경험을 외부로 확장하는 공간’이다.
‘사람-건물-도시’ 연결의 핵심
파리의 발코니
파리의 아파트 발코니는 거주민의 사생활은 보호하되 그들의 존재는 숨기지 않도록 섬세하게 설계했다. 거주민은 원할 때 발코니에 나와 바깥 풍경을 즐기고, 발코니에 보이는 삶의 흔적은 집 앞 거리를 따뜻하고 인간적인 분위기로 바꿔준다. 반사유리로 서로를 분리하는 것은 만들기 쉽고 효과적이지만 이렇게 사람, 건물, 도시를 적절하게 연결하는 것은 건축 기술의 문제가 아닌 도시라는, 모두가 함께 사는 공간을 바라보는 철학의 문제다. 수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도시에서 외로움을 느끼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그 어디에도 사람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고립된 공간
한국의 발코니
오늘날 한국의 아파트 발코니는 확장 시공으로 실내 면적을 추가한 대신 거주민 스스로 그 공간 속에 고립되어 버렸다. 이로 인해 건물도 도시와 단절됐다. 예를 들어 4~5층의 저층 아파트 발코니에 서서 집 앞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을 향해 외치던 엄마의 “저녁 먹어라” 하는 소리는 반사유리, 강화유리, 삼중창 등으로 막힌 30층 고층 아파트 거실에 앉아 휴대폰으로 아들에게 연락하는 것으로 대체되었다. 발코니의 엄마와 놀이터의 아이가 서로 보인다는 사실은 건축물과 외부 공간이 서로 연결된, 즉 공간적 구심력이 작용한다는 의미다. 오늘날 우리가 발코니 확장으로 잃게 된 건 바로 이것이다.
PART 5. 극장
중세 시대 이후 가장 흔한 유형의 공연장은 영화관과 오페라극장이다. 이 두 공간은 구성 원리상 서로 극단적으로 다르다.
불편한 의자가 무대와의 소통을 높인다
오페라극장
오페라는 표정, 몸짓, 무용 등의 디테일이 관객에게 직접 전해져야 하는 공연 방식으로, 대부분 확성 장치를 쓰지 않고 연기자의 육성으로 이야기를 전달한다. 무대와 객석의 호흡이 중요하다 보니 관객석에 많은 층을 경사지게 둬 위에서 내려다보더라도 최대한 무대가 가깝게 보이게 했다. 이런 상호 호흡 때문에 오페라극장의 규모는 어느 정도 크기를 넘지 않는다.
편안히 정보를 수용하도록 설계한 공간
영화관
영화관은 무대인 대형 스크린에서 객석으로 일방적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이다. 평면인 무대는 크면 클수록 좋고, 객석에서는 팝콘을 먹으며 스크린이 전해주는 영상 정보와 음향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관객은 편하지만 지극히 수동적인 위치에 놓이는 것이다.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정보가 쉽게 전달되므로 관객은 굳이 배우의 입 모양이나 몸짓에 신경을 곤두세울 필요가 없다.
세종문화회관의 오페라가 감동이 덜한 이유
오페라극장에서 오래 활동해 온 한 한국계 뮤지컬 가수가 처음 고국을 찾아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공연할 때 마치 관객석에 아무도 없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층도 3개 층이나 되고 3000석 넘는 대규모 극장인데도 배우들은 “허공에 대고 말하는 듯 허합니다”라고 말했다. 이유는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이 오페라극장보다는 영화관 구조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PART 6. 길
집이 먼저냐, 길이 먼저냐? 한국과 유럽은 그 해답이 달랐다.
길 먼저 내고, 건물은 그 부속품으로
유럽의 길
중세 시대 유럽인들이 생각한 이상적인 도시로 손꼽히는 이탈리아의 팔마노바를 보면 기하학에 입각한 방사형 구조의 길을 따라 건물이 부속품처럼 늘어서 있다. 건물을 기존에 나 있는 길과 공원에 접해 조화를 이루도록 설계한 것이다. 유럽인들에게 길은 효율적이고 유기적인 도시를 만드는 핵심 요소이자 질서 체계를 만드는 소재다.
지금도 유럽의 건물은 세워지기 전에 통행하기 쉬운 포장도로부터 만들고 그 아래에 하수도, 전기, 통신 시설을 매설한 뒤에야 들어선다. 상점 문을 나서면 예외 없이 철저한 공공 도로인 셈이다. 자기 건물 앞이라고 해도 도로는 건물에 속하지 않기 때문에 주차장으로 사용할 수 없고, 테라스를 설치할 수도 없다.
건물 먼저 들어서고 길이 난다
한국의 길
한국 전통 마을의 전형을 보여주는 안동 하회마을은 몇 개의 집이 모여 하나의 군집을 이루고, 그 군집들 사이에 남은 공간이 길이 되었다. 한국에서의 길은 누가 의도해 만든 것이 아니라 각자의 필요에 의해 건물이 들어선 후 남은 이후의 결과물이다.
오늘날에도 ‘남향’, ‘ㅇㅇ 뷰’ 등 인기 많은 조건에 따라 건물이 자리하고, 남은 공간이 길과 주차장이 되고 있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차, 자전거, 보행자, 상점이 혼재되어있는 길을 흔히 볼 수 있다. 통행을 위한 도로인지, 건물을 위한 주차장인지, 가게를 위한 야외 공간인지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 한국의 길은 도시가 생길 때 부터 건물의 연결로였기 때문이다.
PART 7. 마천루
건물을 높이 짓는 것으로 자신의 부와 권력을 드러내려 한 시도들은 유구할 정도로 역사가 깊다. 맨해튼도 그 대표 사례다.
환상적 외관 이면의 암투
맨해튼
권력이 사랑한 대표 상징물은 단연 건축물이다. 하늘을 찌를 듯 높게 지었던 고딕양식 성당의 첨탑이 하느님에게 가까이 가고자 함이 아니라 사람들의 시선을 위로 향하게 해경외심을 갖게 하기 위함이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마천루의 대표 도시 맨해튼도 그런 속성을 기반으로 건설됐다. 1890년 10층 건물이 1930년 70층으로 높아지더니 1931년 100층에 다다른다.
건축물의 높이 경쟁은 비열한 역사
경쟁 건물보다 1m라도 높게 짓기 위해 꼭대기에 사람이 살지 못하는 송신탑을 올린다거나, 완성하지 않고 기다렸다가 경쟁 건물이 얼마나 높이 올리는지 상황을 보고 마지막에 설계를 변경해 그보다 더 높이 완공하는 눈치 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건축가들은 도시의 적정한 밀도나 규모는 외면한 채 높이 경쟁에만 몰두했고, 맨해튼은 건물들이 너무 밀집해 햇빛도 들지 않는 수천 개의 암울한 공간을 낳았다. 맨해튼의 야경이 아름다운 진짜 이유는 그 속의 욕망과 암투의 실체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도시>
임우진┃을유문화사┃2022┃1만6500원
우리가 보지 못한 도시의 체제와 공간의 의미가 있다면? 이 책은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는 공간, 도시에 대한 판에 박힌 인식을 한 꺼풀 벗겨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