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농 텃밭 가꾸며 농부로 사는 김신 셰프

안성에 텃밭을 마련해 4년째 농사꾼의 삶을 살고 있는 김신 셰프. 그는 주말마다 텃밭을 가꾸며 힐링 타임을 갖는다.

2020-06-18     DEN(덴)

 

 

 

Profile 김신 •1972년생 •이탤리언 레스토랑 ‘가드너 아드리아’ 오너 셰프 

 

압구정동 도산공원 인근을 지나다 보면 초록 식물들을 가게 앞에 놓아둔 식당 하나가 눈길을 끈다. 커다랗고 키 큰 나무들이 식당을 둘러싸고 있어 마치 예쁜 정원처럼 보이는 이곳은 삼치파스타로 유명한 이탤리언 레스토랑 ‘가드너 아드리아’다.

이곳의 오너 셰프 김신은 식당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가드너’다. 안성에 텃밭을 장만해 직접 키운 유기농 채소로 요리를 만들어 손님의 식탁에 올린다. 셰프와 가드너라는 매력적인 삶을 살고 있는 김신의 유기농 라이프를 엿봤다.

 

 

텃밭 가꾸기 좋은 날이 이어지고 있다. 올해 분위기는 어떤가? 

텃밭을 가꾸며 배운 게 있다. 농사를 시작하는 때는 대기의 기온이 아니라 ‘대지’의 기온에 달렸다는 것! 한겨울 꽁꽁 얼어 있던 땅이 풀리며 괭이와 호미가 땅에 들어갈 수 있는 때가 와야 비로소 씨앗을 뿌릴 수 있다. 2·3월에 씨앗을 뿌리거나 모종을 심어두었던 잎채소류, 허브류는 올봄에 많이 수확했다. 민트와 타임, 차이브는 지난주에 많이 땄는데도 오늘 보니 그때보다 더 자라 있다. 루콜라는 1차 수확을 마무리할 시점으로, 조만간 다시 씨앗을 뿌릴 계획이다. 

 

봄에 첫 수확하는 채소의 맛은 어떤가?

뿌리가 땅에 계속 있는 상태에서 재배하는 허브의 경우 겨울철을 나고 올라온 잎은 향이 강하고 맛이 진하다. 씨앗이나 묘종으로 재배하는 채소는 지금 수확해 먹으면 굉장히 부드럽고 맛있다. 비가 많이 오는 장마철에는 채소 맛이 빠지기 마련이니 그전에 수확해 먹으면 좋다. 과일도 마찬가지다. 딸기나 수박도 4·5월에 먹는 게 맛있다. 

 

텃밭을 가꾸기 시작한 계기는? 

안성은 우리 가족에게 연고가 없는 지역이었다. 우연한 기회로 아버님이 이곳에 집을 짓게 되었는데, 이웃들과 교류하면서 그분들이 땅을 빌려주어 텃밭을 시작했다. 하지만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내가 농사 경험이 있을 리 없지 않나. 다행히 이웃 분들을 잘 만나 농사짓는 노하우도 배우는 등 많은 도움을 받았다. 올해로 4년째 텃밭 농사를 짓고 있는데, 지금도 여유가 생길 때마다 이곳에 내려와 시간을 보낸다. 

 

텃밭을 가꾸면서 가장 즐거울 때는 언제인가? 

농사일이 생각보다 힘들다. 혼자 내려와 땀 뻘뻘 흘리며 일 마치고 나면 오후 7시쯤 된다. 저녁상을 받아 앞에 두고, 좋아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틀어놓는다. 거기에 차가운 맥주 한잔을 곁들인다. 이 순간이 정말이지, 너무 행복하다. 눈앞에 펼쳐진 풍광을 마주하며 오롯이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어쩌면 이 맛 때문에 텃밭을 가꾸는 게 아닌가 싶다. 

가끔 혼자 놀기 심심할 때는 이웃 분들과 어울려 와인이나 막걸리 등을 나눠 마시며 친목을 도모하기도 한다. 나 때문에 와인 맛을 알아버린 동네 분이 꽤 된다.(웃음)

 

텃밭에서 수확한 채소를 레스토랑에서도 사용하나? 

이제 제법 농사꾼이 되어 텃밭에서 재배하는 채소로 레스토랑에서 사용하는 재료의 30% 정도를 충당할 정도가 되었다. 그뿐 아니라 이곳 안성에 있는 도축업체에서 고기도 공급받는다. 재료비가 덜 드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지역에서 생산된 신선하고 믿을 수 있는 식재료를 쓴다는 데 의미가 크다. 요리는 재료의 퀄리티가 좌우하니까. 

 

 

텃밭에서 키우고 있는 작물을 소개해달라 

올해는 영국에서 공수한 당근 씨앗을 뿌렸다. 만화에서 자주 보는 아주 가늘고 긴 당근인데, 한국에서 키우면 어떤 모양일지 궁금하다. 예전에 이탈리아에서 나는 동그란 가지의 씨앗을 구해 심어본 적이 있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아는 길쭉한 가지가 나오더라. 똑같은 씨앗이라도 땅과 기후, 풍토에 따라 다른 모양의 열매를 맺는 것이다. 

허브는 로즈메리, 타임, 애플민트, 차이브, 레몬밤, 루콜라 등 여러 종류를 키운다. 그런데 이상한 게 바질 농사가 잘 안 된다. 바질만큼 키우기 쉬운 허브가 없다고 하는데, 정말 이유를 모르겠다. 바질을 키우는 데 땅이 적합하지 않은 게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양상추도 특유의 아삭한 식감이 나오지 않아 계속 키울지 말지 고민이다. 우리가 시중에서 사 먹는 아삭한 식감의 양상추는 주로 평창이나 그 위쪽 지역에서 재배된다. 토양과 기후가 채소의 식감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게 분명하다.

 

비료나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으면 농사짓기가 어렵지 않나?

자라면서 이런 환경에 노출된 적이 없었다. 농사나 재배와 거리가 먼 삶을 살다가 텃밭을 시작하면서 많은 부분이 바뀌었다. 우선 음식 만드는 셰프로서 재료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가능한 한 내가 키운 식재료로 만든 음식을 고객에게 대접하고 싶다. 레스토랑에서 쓰는 애플민트는 전량 텃밭에서 키운 것을 사용한다. 노지에서 자란 민트는 생명력 자체가 시중 제품과 다르다. 

우리 밭에서 수확한 애플민트는 레스토랑에서 시들시들 있다가도 물에만 담그면 언제 그랬냐는 듯 싱싱하게 되살아난다. 2주 정도는 너끈히 간다. 타임이나 루콜라도 마찬가지다. 시들해져 있다가 물에 닿으면 생생해진다. 그런 경험을 하면서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키운 채소와 노지에서 키운 것은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배웠다. 유기농 텃밭을 가꿀수록 보람이 커진다.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인가? 

서울에서 안성까지 오는 데 1시간 20분 정도 걸린다. 적지 않은 시간을 투자하는 셈이다. 제일 안타까운 게 종자를 뿌린 후 적당한 시점마다 제대로 관리해줘야 하는데, 바쁠 때는 때를 놓치기도 한다는 것이다. 외국에서 어렵게 공수한 씨앗의 경우는 특히 아깝다.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내 손으로 직접 뭔가를 생산해낸다는 것. 싱글이라 자식을 키우는 것이 어떤 기쁨인지는 잘 알지 못하지만, 텃밭을 가꾸며 그와 비슷한 기분이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다. 뿌려놓은 씨앗이 싹이 트고 조금씩 자라다 결국 커다란 수확물이 될 때의 기분이란 해본 사람만 알 것이다. 

 

나만의 텃밭 가꾸기 노하우가 있다면? 

예전에는 씨앗을 한꺼번에 다 뿌렸다. 그런데 성장 시기가 같다 보니 한 번에 너무 많이 수확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레스토랑에서 쓰고도 남아 여기저기 나눠주기도 했다. 지금은 노하우가 생겼다. 땅을 작게 구획한 후 시간 차이를 두고 씨앗을 뿌린다. 일주일에 한 번씩 씨를 뿌렸더니 수확하기 훨씬 쉬워졌다. 매주 한 번씩 내려와 적당한 양을 거둘 수 있게 된 것이다. 특히 잎채소는 심은 대로 올라오는데, 잎이 너무 커지면 억새져 맛이 덜하다. 시차를 두고 재배하면 적당한 크기일 때 연하고 순한 맛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 

 

텃밭을 가꾸며 삶의 위로를 받고 있나?

이곳에서 키우던 개가 있었다. 진돗개였는데, 겨울에 와서 개와 함께 숲속으로 들어가 하염없이 앉아 있곤 했다. 개도 뭘 아는지 나를 전혀 귀찮게 하지 않았다. 멍하게 있는 그 순간에는 내가 사라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 있으면 서서히 내 속에서 뭔가 다시 시작되는 기분이 들었다. 

당시 레스토랑이 엄청 바쁜 시절이었다. 자정이 돼야 일이 끝나고, 아침에 눈뜨기가 무섭게 일터로 달려가야 했다. 그때 이곳에 내려와서 넋 놓고 있는 시간을 통해 위안과 휴식을 얻었다. 자연에서 얻는 힐링이 바로 이런 것임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좋은 땅에서 자란 농작물이 가진 힘은 대단하다. 햇살과 비와 바람을 고스란히 맞으며 노지에서 자란 채소는 생명력이 강하다. 모양은 예쁘지 않지만 대지의 기운을 온전히 품고 있으니 맛도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

 

 

김신 셰프가 추천하는 ‘유기농 샐러드 맛있게 만드는 법’

 

➊ 샐러드 재료의 질감이 다양하면 좋다. 아삭한 양상추, 고소한 루콜라. 부드러운 상추 등 재료의 식감을 다양하게 느낄 수 있게 재료를 구성한다. 채소는 한 입 크기로 찢어 올리브 오일과 후추, 소금을 살짝 뿌리고 레몬 대신 타바스코나 우스터소스를 섞어 사용하면 새로운 맛을 느낄 수 있다. 식사 대용이라면 달걀부침, 과일, 고구마 등을 넣는다. 생각보다 조화가 훌륭하다. 

➋ 가지를 다양한 방식으로 조리해보자. 구운 가지, 말린 가지, 튀긴 가지 등을 채소나 토스트에 곁들이면 좋다. 특히 올리브 오일에 구운 가지는 언제나 최고의 맛을 낸다. 

➌ 루콜라를 레몬 음료 혹은 레모네이드와 함께 갈아 주스로 마시는 방법을 추천한다. 의외로 궁합이 잘 맞는다. 채소 샐러드를 싫어한다면 ‘마시는 샐러드’로 즐길 수 있어 더욱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