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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전문 서점을 운영하는 시인 유희경

“나이 듦이란 매일 거울을 보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다”

  • 입력 2022.01.04 13:55
  • 수정 2022.04.25 13:37
  • 2022년 1월호
  • 진주영 에디터

2008년 스물아홉 살에 등단한 젊은 시인 유희경은 어느새 40대 시인이 됐다. 나이를 먹었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건 “나이를 잘 먹는 것”이라 말하는 시인을 그의 서점 ‘위트앤시니컬’에서 만났다.

 

서울 혜화동로터리에 자리한 ‘동양서림’ 2층에는 또 하나의 서점이 있다. 200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유희경 시인이 운영하는 시집 서점 ‘위트앤시니컬’이다. 2016년 수도권 전철 경의·중앙선 신촌역 앞에서 시작한 이 서점은 2018년 현재 자리로 이전했다.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던 그는 직업에 대한 고민, 건강 악화 같은 복합적 이유로 퇴사한 뒤 시집 서점을 열었다.

‘아래층엔 전화벨이 울리고/우산 든 사람들의 기척/친절과 상냥은 인사를 나누고/아무도 올라오지 않는다’라는 구절이 나오는 유희경 시인의 시 ‘감각’을 통해 이곳 서점의 일상을 엿볼 수 있다. 인터넷 사이트에서 클릭 몇 번만 하면 집 앞까지 책을 배송받는 시대에 시집 서점을 지키는 40대 초반의 유희경에게 시인이자 서점지기로서 삶에 대해 물었다.

유희경
유희경

‘위트앤시니컬’은 어떤 공간인가?

시와 관련한 모든 일을 하는 곳이다. 시집을 판매하는 동시에 낭독회, 시 창작 워크숍 같은 행사도 종종 연다. 2016년 서울 대현동에서 시작해 4년 전 이곳 혜화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코로나19 확산이란 고비가 찾아왔지만 최대한 버티는 중이다. 취급하는 시집의 종류도 점점 늘어 현재 1600~1800여 종의 시집을 구비하고 있다.

 

시집 서점을 연 특별한 이유가 있나?

서점을 내기 전 출판사에서 10년 정도 편집자로 근무했는데, 어느 순간 미래가 불확실해 보이더라. 편집자 일도 좋지만 시인으로서 글 쓰는 시간을 확보하고 싶었다. 그래서 회사를 그만두고 시집 서점을 준비했다. 시집을 주로 출간하는 출판사에서도 일해봤기 때문에 시집의 시장성을 어느 정도 파악한 상태였다.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이면 어떨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위트앤시니컬이라는 이름도 독특하다

동료 시인들과 대화하다 “위트 있는 시인이지”라는 말이 나왔는데, 누군가 잘못 듣고는 “위트 앤드 시니컬이 뭐야?” 하고 되물었다. 그 자리에 있 던 김소연 시인이 서점 이름으로 추천해줬다. 시는 위트(wit) 있고, 때론 시니컬(cynical)하기도 하니까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문법상으로는 두 단어 모두 형용사를 사용해 ‘위티 앤 시니컬’(witty and cynical)이라고 해야겠지만, 이 역시 시적 허용이지 않을까? 물론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에게 소개할 땐 조금 민망하지만.

 

서점을 낸다고 했을 때 주변 반응은?

친한 사람은 “이런 시대에 시집 서점을 운영한다”며 농담처럼 말하지만, 지지와 응원을 많이 받는다. 사실 만류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시장성에 대한 데이터를 이미 확보한 상태였기에 크게 귀담아듣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은 주변 사람의 의견을 많이 반영하려고 노력한다. 이곳으로 이사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마음 써주는 모든 이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주요 고객층은 누구인가?

시를 좋아하는 손님이 대부분이다. 신촌역 근처에 있을 땐 대학생들이 많이 왔다. 그중에서도 20대 여성 비율이 특히 높았다. 동네에 유동 인구가 많은 편이라 처음 방문하는 손님도 여럿 있었다. 반면 이곳 혜화동은 한 번 다녀간 사람이 계속 오는 것 같다. 여전히 여성 손님이 많다. 1층에 있는 동양서림은 종합 서점이고, 여기는 시집 서점이라 두 공간의 손님이 섞이기도 한다. 어르신 단골도 생겼다.

 

기억에 남는 손님이 있나?

어느 날, 한 손님이 시집을 구매하면서 꽃다발과 함께 쪽지를 주셨다. 쪽지에는 지난번 방문했을 때 커피를 대접해줘 감사했다는 말이 적혀 있었다. 내게는 그 또한 평범한 일상인데, 그 손님에겐 아니었던 모양이다. 자세한 건 알 수 없지만 커피 한 잔에 위로받을 만큼 유독 힘든 날이었을 수도 있다. 얼마전에는 서점을 배경으로 결혼 기념 사진을 찍고 싶다는 연인이 찾아오기도 했다. 이곳에서 열린 낭독회를 통해 두 사람이 처음 만났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렇게 직접 말을 해주셔야 알게 되는 일들이 있다.

이런 걸 보면 내가 손님을 기억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손님이 서점을 어떻게 기억하는지, 이곳에서 어떤 추억을 쌓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느낀다. 방명록에 남겨주는 다양한 사연도 기쁘게 읽고 있다. 간혹 마음에 남는 사연이나 문구가 있으면 블로그에 답장을 쓰기도 한다.


 

2011년에 출간한 첫 번째 시집 <오늘 아침 단어>를

읽을 때면 이런 생각을 한다. ‘두 번 다시 이렇게 쓸 수 없다.’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 아예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땐 몰랐지만 이젠 아는 것들이 생겼다.

당시에는 무겁게 경험한 감정이나 사건이 지금은

사소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일의 범위와 중요도도 달라졌다.

지금 쓰는 시도 훗날 보면 그럴 것이다.

시인이 나이 듦에 따라 시도 자연스레 변하는 거다.

서점을 운영하면서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예전에 남머루 목수와 나무 깎기 워크숍을 진행한 적이 있다. 그때 남 목수가 “워크숍은 돈을 벌거나 나무를 깎는 시간이 아니다. 사람을 만나는 일”이라고 했는데, 그 말에 무릎을 탁 쳤다. 위트앤시니컬에서 낭독회, 워크숍 같은 일을 기획하고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여기서 오순도순 놀고 있으면 누군가 문을 두드리겠지, 싶은 거다.

 

현재 하는 일에 얼마나 만족하나?

시인으로서 스스로 만족한다고 보긴 어렵다. 좋아하는 만큼 더 잘하고 싶기 때문이다. 서점지기로도 부족할 때가 많다. 서점 운영을 위해 여러 가지 사업을 병행하다 보니 오히려 서점을 돌볼 시간이 모자라기도 한다. 요즘은 코로나19 확산으로 행사를 진행하기 어렵다. 직업 자체보다는 상황에서 비롯한 아쉬움이 크다.

 

시도 계속 쓰고 있는데, 영감은 어디서 얻나?

대부분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얻는다. 요즘은 목요일을 제외한 모든 요일을 서점에 할애한다. 특별한 일정이 없으면 늦은 오전부터 깊은 밤까지 머무는 장소다. 그러다 보니 시나 산문 작업을 할 때 어쩔 수 없이 이곳 이야기가 녹아든다. 2021년 여름에는 서점의 일상을 담은 <세상 어딘가에 하나쯤>이라는 산문집을 내기도 했다. 서점 말고도 다양한 소재로 글을 쓰려고 노력 중이다.

 

스스로 중년이라고 느끼나?

그렇긴 한데, 중년이란 단어에 거부감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왜 그런지 고민하다 단어에 담긴 사회적 편견 때문이라는 결론을 냈다. ‘라떼’나 ‘꼰대’ 같은 단어가 유쾌하게 쓰일 때도 있지만, 반대의 경우도 많지 않나. 나이 듦을 부정하게 하는 사회 분위기도 한몫하는 것 같다. 청년과 노년 사이, 편견을 배제한 채 중년이라는 단어를 정직하게 대하면 좋겠다.

 

시인이 생각하는 ‘나이 듦’이란?

매일 거울을 보는 일과 같지 않을까? 자연스러운 일이라 의식하지 못하다 문득 깨닫는 거다. 어느 날, 거울에 비친 얼굴에서 눈가에 진 주름을 발견할 때처럼 말이다. 체력의 한계로 예전만큼 일에 몰두하기 어려울 때도 세월을 체감한다. 그런데 이건 당연한 일이니까, 어떻게 하면 나이를 잘 먹을지에 집중하겠다.

 

위트앤시니컬이 어떤 서점이 되길 바라는지 궁금하다

일단은 잘 살아남아보겠다. 장기적으로는 “예전에 거기 시집 서점이 있었어. 그때 이런 일을 했지” 하고 회상하는 공간이 되면 좋겠다. 그렇게 말한다는 건 인상 깊다는 뜻이니까. 어떤 감상이든 시집 서점의 존재를 오래도록 기억해주는 것 자체가 기쁠 것 같다.

 

인생 목표가 있다면?

시인으로서는 스스로한테 만족해보고 싶다. 과거에는 시를 통해 독자에게 좋은 것을 전하고자 했다면, 이제는 좋음에 대해 고민하게 하는 시를 쓰려 한다. 서점지기로서는 주변 사람과 손님 모두 잘 자리 잡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서점이 이사하면서 더 이상 보기 힘들어진 손님들도 가끔 생각난다. 다들 무사하고 안전하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마지막으로, 언젠가 오로라를 보러 떠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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