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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를 만드는 미술 평론가 김종근

20대 후반에 압구정 현대백화점 미술관 관장에 취임해 미술계를 깜짝 놀라게 한 김종근 평론가. 그는 에콜 드 파리의 작가, 동구권 작가, 소비에트 미술전, 하정우, 구혜선, 김완선 등 스타들의 전시를 기획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 사람이 언급하면 스타가 된다”는 평을 받는 미술 평론가 김종근.

1980년대에 20대의 젊은 나이에 압구정 현대백화점 미술관 관장에 취임하면서 미술계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이후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전후한 우리나라 경제 고도성장 기의 미술계를 온몸으로 겪었다.

35년 이상 평론가, 전시 기획자, 대학교수를 병행한

그는 명실상부 한국 현대미술의 산 증인이다.

<Den>의 미술 고문 임선희 작가가 그를 만나 덴맨을 위해 현대미술 보는 법과 국내 미술계의 이모저모에 대해 물었다.

 

 

 

Profile 임선희•1975년생•작가,  미술 고문Profile 김종근•1958년생•미술 평론가, 전시 기획자•現 (사)한국미술협회 학술평론분과위원장•前 홍익대학교 겸임교수18
Profile 임선희•1975년생•작가, 미술 고문Profile 김종근•1958년생•미술 평론가, 전시 기획자•現 (사)한국미술협회 학술평론분과위원장•前 홍익대학교 겸임교수18

 

미술계에 입문한 과정은?

어릴 때부터 그림을 좋아해 미대를 갔지만 꿈에 그리던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고 지방대학에서 미술을 전공, 졸업 후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미학을 전공했다. 원래 독일이나 뉴욕으로 유학을 가고 싶었다. 미학을 전공하다 보니 아무래도 해외에서 공부를 더 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러나 인생이 맘대로 되지 않아 잠시 환일고등학교에서 미술교사를 한 후 뒤늦게 군에 입대했다. 제대 후 대학원을 마치고 스물아홉 살 때 은사님의 추천으로 압구정 현대백화점 미술관 관장으로 취임하게 됐다. 당시 내로라하는 화가, 예를 들면 천경자·유영국·장욱진·김흥수·권옥연·이대원·김기창 화백 등과 친하게 교류할 수 있었다. 김흥수 화백이 친히 20호 크기의 초상화를 선물로 그려줄 정도로 말이다.

 

정주영 회장이 뒤를 봐준다는 루머가 있었다

대학원 재학 때부터 일찌감치 대학강사를 하고 너무 젊은 나이에 관장으로 취임하다 보니 그랬다. 대학원 생활을 할 때 미술 평론 글을 많이 썼다. 지도교수는 “공부나 열심히 하지 자꾸 평론한다고 난리냐”라고 핀잔을 줬지만, 평론 활동을 통해 당대 미술계의 젊은 작가들과 교류할 수 있었다. 안창홍·정복수·신학철·이흥덕 작가 등이었다.

 당시 현대백화점 사장이 정장현 씨였는데, 당시 나를 이쁘게 잘 봐주었다. 하고 싶은 기획 전시를 눈치 안 보고 기획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기존 갤러리와는 다른 젊은 감각을 수혈하고 싶었는데, 내가 적임자라고 본 거였다. 흔히 말하는 ‘백이 있다’는 루머는 사실무근이었다.

 

압구정 현대백화점 미술관의 당시 위상은?

1985년에 개관했는데 당시에는 백화점에서 갤러리를 운영하는 게 트렌드였다. 제일 처음이 미도파였고, 그다음이 롯데, 신세계였다. 가장 나중에 문을 연 곳이 압구정 현대백화점이었는데, 개관하자마자 최고의 갤러리로 떠올랐다.

 당시 서울 올림픽 등 시대상과 맞물려 ‘압구정동’이 부의 대명사로 떠오르던 시기였다. 돈 좀 있다는 사람들은 다 몰렸다. 시간이 많이 지났으니 할 수 있는 얘기지만, ‘벽 띄기’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갤러리 한쪽 벽면에 걸린 작품을 싹 쓸어 컬렉션하는 소장가도 있었고, 30대의 사장 아들 컬렉터도 몇 명 있었다. 그때 갤러리 현대 박명자 대표님의 강남분점이 지하 2층에 있었다.

 그렇게 그림을 산 분들이 나중에는 갤러리를 오픈하고, 큰 컬렉터로 지금도 만나고 지낸다. 이런 과정을 통해 컬렉터가 늘어나고, 수많은 작가가 발굴되면서 우리나라 현대미술의 발전에 이바지했다.

 

천경자 ‘미인도’ 사건의 중심에 있었다는데…

어느 날 저녁 천경자 선생이 나에게 급하게 전화를 했다. 한양아파트 집에 와달라는 것이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내 그림도 아닌 걸 내 그림이라고 하고 그걸로 포스터를 만들어 팔고 있다”며 노발대발했다. 그래서 내가 당시 방송에 나가 이에 대한 인터뷰를 했고, 이 사건이 본격적으로 이슈가 됐다. 이후의 자세한 이야기는 YTN 영상 인터뷰에 남아 있다.

 

스타 작가를 만들어내는 평론가라는 평가에 대한 생각은?

작가는 자기 ‘브랜드’를 갖고 있어야 한다. 나는 먼저 이런 작가들에 주목한다. 평론을 할 때도 이 부분에 주목해 작가와 작품을 소개했는데, 유명 작가로 커 나간 작가들이 있다. 그러다 보니 그런 평을 받게 된 모양인데, 사실 성공할 만한 작가가 성공한 거다. 나는 단지 조금 빨리 알아봤을 뿐이고.

 

작가의 ‘브랜드’란 무엇인가?

철학, 스타일을 아우르는 작가만의 독창적인 작품 세계다. 작가는 그림을 팔지만 사실은 그만의 브랜드를 파는 것이다. 예를 들어 김창열 화백 하면 ‘물방울’이 떠오른다. 이우환 하면 ‘점’, 박서보는 ‘선’이다. 일본의 구사마 야요이를 생각하면 바로 도트 문양이 떠오른다.

 그런데 작가가 이런 브랜드를 확립하기 위해선 지난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언젠가 이제는 스타 작가가 된 H 작가가 하소연을 했다. 사람들이 자꾸 “똑같은 것만 그린다”, “자기 복제다”라고 평가해 고민스럽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김창열 화백한테 물어봐라. 그분은 45년 이상 물방울만 그렸다”라고 했다.

 프랑스 화가 중 장 피에르 레이노가 있다. 원래 원예를 전공한 사람 인데, 이 작가의 작품은 대부분 화분으로 파리 퐁피두 센터에, 중국 톈 안먼 광장에 전시해 놓았다. 즉 ‘자기 것’을 그리고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수업할 때도 항상 “남이 했던 것을 따라하면 안 된다. 자기 것을 그려라”라고 강조했다. 결국 자기만의 철학과 자존심, 스타일을 끝까지 가지고 가야 한다. 그래야만 작가로 대성할 수 있고, 그것이 바로 작가다.

 

김흥수 화백이 그려준 초상화
김흥수 화백이 그려준 초상화

 

연예인 작가를 등용한 주인공으로 알려졌다.

등용이라는 말은 좀 안 어울린다. 2010년 닥터박갤러리에서 하정우 씨가 전시를 할 때 평을 쓴 것이 인연이 되어 홍콩, 뉴욕 전시를 위한 글을 썼다. 이후 어떻게 연결이 되었는지 YG엔터테인먼트에서 구혜선 씨 전시 글을 써달라고 요청해 왔다.

 그런 인상이 새겨진 계기는 아마 2013년인 듯하다. 청주공예비엔날레 때 특별전 ‘스타크래프트’의 감독으로서 작품 활동을 하는 연예인을 초청해 기획 전시를 열었다. 당시 언론에 오르내리는 등 제법 이슈가 됐었다.

 

연예인 작가들에 대한 생각은?

평생 한길만 파온 전업 작가들이 보기에는 좀 억울한 면이 있을 거다. 그러나 연예인 중에도 작가로서의 철학, 실력을 갖춘 이가 많다. 남궁옥분 씨나 추가열 씨 등은 고교 때 미술부장을 했을 정도로 그림 실력이 뛰어나다. 하정우 씨도 이미 작가로 자기 영역을 확립해 가는 수순이고, 임혁필 씨는 아예 미술대학 전공자로 실력이 상당한 수준이다. 다만 간혹 일부 연예인이 겸손하지 못한 언행으로 빈축을 사는 경우가 있다. 이건 개인의 문제다.

 

현대미술은 어떻게 감상해야 하는가?

영어를 배우기 위해서는 알파벳을 알아야 한다. 미술도 마찬가지다. 아는 만큼 볼 수 있다. 미술사를 공부해 미술 사조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알아야 비로소 현대미술을 이해할 수 있는 기반이 생기는 거다. 일례로 과거에는 직관적으로 ‘아름다움’이 느껴져야 좋은 작품이라고 했다. 하지만 현대미술은 그 수많은 아름다움을 파괴, 해체하고 새로운 세계를 찾는다. 따라서 이 새로운 것을 이해하려면 당연히 과거 미술의 흐름과 역사를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공부해야 할까? 우선 추천할 만한 방법은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 같은 책을 읽는 거다. 아니면 유익한 유튜브 채널이나 작가들의 인터뷰도 좋다. 대신 신뢰할 수 있는, 권위 있고 콘텐츠의 질이 보장되는 채널을 잘 골라야 한다. 작가로는 폴 세잔을 볼 필요가 있어 우선 추천한다. 평면적인 회화를 입체의 세계로 끌어들인 선구자이면서 고전 미술이 현대미술로 넘어오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한 개척자이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조만간 우리나라 극사실주의 계열 작가들을 모아 1·2부 기획전을 열 계획이다. 이후에는 국제적 스타가 되는 30가지 방법과 비결을 연재하거나, 유튜브 채널을 만들까 고민하고 있다. 오랫동안 홍대와 서울대에서 강의하면서 경험적으로 스타가 되는 비결이나 노하우를 알았다. 그것을 풀어내 작가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스타 작가는 어떻게 탄생하는지에 대한 책과 한국 작가들에 대한 평론집을 해외에 영문으로 출판하고도 싶다. 오랫동안 써온 시집과 칼럼집 출판도 2023년의 숙제로 생각 중이다. 미술계에 오래 있다 보니 그 프로세스가 보이더라. 장기적으로는 그동안 집사람 몰래 사둔 작품이 적지 않은데, ‘프티 미술관’ 이라도 갖고 싶다. 마릴린 먼로 컬렉션도, 춘화도 전시하고 싶다. 꿈꾸면 이루어진다고 하니 꿈을 꾸는 것이다. 꿈꾸는 데는 돈이 안 들기 때문이다.

 

 

 

‘브랜드論’에서 유일한 예외가 피카소다. 어떤 미술사가가 ‘피카소는 여자가 바뀔 때마다 그림이 바뀌었다’라고 평했는데, 농담이면서도 팩트다. 요점은 피카소는 죽을 때까지 한곳에 정체되어 있지 않고 작품 세계를 끊임없이 발전시켜 나갔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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