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는 일찍이 “40세가 되어서는 유혹에 흔들리지 않게 됐다(不惑)”라고 말했지만, 이는 평균 수명이 환갑에도 못 미친 옛날 옛적 이야기. 지금의 40대는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에너지가 넘치고 하고 싶은 것도 많다. 각자의 욕망에 충실하게 살며 자기만의 영역을 구축한 40대 신중년을 소개한다.
아무도 모르는 억만장자보다
누구나 다 아는 백만장자가 더 낫다.
등 굽은 서울대 의대생보다
어깨 넓고 인스타그램 팔로워 많은 내가 더 낫다.
온라인상에서 유행하는 말이다. 유명한 삶이 곧 성공한 인생이라는 의미다. 실제로 예전에는 성공한 사람이 유명해졌지만, 요즘은 유명해져야 성공한다. 일단 유명해진 후 대중의 관심과 인정을 받아 ‘인플루언서’가 되면 부와 명성이 뒤따른다. 정연욱 작가는 2000명 이상의 팔로워와 구독자를 가진 인플루언서 325명을 인터뷰하며 유명해진 비결과 인기에 따른 뒷 이야기를 책으로 엮었다. 이에 작가에게 물었다. 40대 이상 중년도 따라 할 수 있는 인플루언서 되는 전략에 관하여.
인플루언서의 이야기에 집중하게 된 계기는?
대학원 소속으로 연구 중 하나로 시작하게 됐다. ‘문화인류학과 질적 연구 방법론’ 수업의 연장이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막상 하다 보니 사람들 반응이 뜨거웠다. 그때부터 왜 사람들은 인기에 연연하는지, ‘유명한 사람의 인생’은 어떨는지 궁금해졌다. 오늘날 유명세라는 것이 흥미롭게 느껴졌달까? 그래서 연구를 확장해 16개월 동안 325명의 인플루언서를 인터뷰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알게 된 것이 있다면?
과거 일반인이 귀족이나 왕족의 삶을 궁금해하던것처럼 오늘날 인플루언서의 삶은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인플루언서의 인기에는 돈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유명해지고 싶어 한다. 특히 미래가 불안한 젊은 세대에게는 인플루언서가 하나의 기회로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인플루언서가 된 이 중 대다수는 한두 가지 결핍은 갖고 있더라. 친구를 얻고 싶다거나, 정말 좋은 사람과 어울리고 싶다는 이가 특히 많았다.
인플루언서는 부와 명예를 모두 가졌는데, 왜 사람 관계에 대해 고민할까?
인간적인 친밀감을 얻고자 하는 것과 인기를 얻고자 하는 욕망은 서로 다르다. 그런데 이 둘을 혼동하거나 유명해지면서 동시에 인간적인 친밀감을 기대할 경우 상황이 복잡해진다. 여기서 고충을 겪는다. 친밀한 유대 관계를 갈망했던 사람이라면 인기도 공허하게 느껴질 수 있다.
반면 돈을 벌겠다고 작정하거나, 생계형으로 절박하게 활동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심적인 갈등이나 충돌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돈만 벌면 그만이지 관계의 깊이나 내밀한 감정을 원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밥만 먹고 살 수는 없듯이 돈만 벌기로 작정한 이들도 가끔 외로움을 느낀다. 어느 순간 구독자들이 냉정하게 변한다거나 무례한 농담을 거리낌 없이 던질 때 특히 그렇다. 그럴 땐 그토록 원하던 사람들의 주목이 소음처럼 느껴진다고 한다. 돈을 아무리 많이 버는 인플루언서도 그런 ‘노이즈’는 피하기 어렵다.
유명세의 의미가 과거와 많이 달라진 것 같다
오늘날 유명세는 ‘긁지 않은 로또’와 같다. 노동소득으로 어찌할 수 없는, 지루한 현실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인 셈이다. 따지고 보면 유명세로 인한 고소득을 원하는 거다. 결국 돈이 많은 게 중요한 거지, 유명세는 그걸 이루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하지만 거기에는 극심한 심신의 피로 같은 대가가 따른다. 그걸 기꺼이 감내하면서도 유명해지길 원하는 사람들은 그만큼 상승 욕구가 큰 사람이다. 이들은 절실하고 절박하기에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진지하게 임한다. 유명세에는 돈과 관심이라는 보상이 확실히 따르니 인생을 걸고 달려드는 것이다.
인플루언서의 성공 비결을 세 가지로 구분했다
인플루언서 수백 명을 분석한 결과 성공 전략은 크게 세 가지 타입이었다. 이들 전략에 따라 물질파, 육체파, 정신파 인플루언서로 정리한 것이다.
물질파는 말 그대로 ‘돈 자랑’을 하는 유형이다. 부유한 억만장자의 라이프스타일은 언제나 대중의 이목을 끄는 주제다. 거기에 충실히 따르는 이들로, 비싼 명품 사진 등을 올려 사람들의 관심을 얻는다.
육체파는 외모를 강조한다. 자신의 육체가 얼마나 매력적인지 연신 자랑하는 유형이다. 최근 화제를 모은 넷플릭스 예능 <솔로지옥> 속 출연자들이 육체파에 해당한다. 그들은 탄탄한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운동을 열심히 하고, 노출이 심할수록 ‘좋아요’를 많이 얻는다. 시각적으로 도드라지니 겸손하게 행동하면 호감도가 급상승하기도 한다.
정신파는 지적 관심과 해석만으로 주목받는다. 우주선이나 인공지능 로봇을 만들기도 하고, 비평도 한다. 또 숨겨진 내용을 파헤치거나 흘러간 내용을 들추기도 한다. 정신파에겐 집요함과 성찰이 필요할 뿐 큰 돈도, 매력적인 외모도 필요 없다. 스티브 잡스의 “Stay hungry, stay foolish(자만하지 말고 항상 배우자)”는 이 시대 정신파들의 행동 강령이자 정체성이다.
지금 성공으로 가는 가장 확실한 경로는
유명해지는 것이다. 유튜브 구독자,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가 많은 사람에게
성공했다는 말을 아끼지 않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유명해지려면 세 가지 전략이 필요하다.
바로 물질적인 부 과시하기,
육체적 매력 과시하기, 지식·정보·인사이트 등
지적인 면 과시하기 등이다.
인플루언서가 되는 방법이 있다면?
뻔한 얘기지만, 콘텐츠의 차별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내 계정에서만 볼 수 있는 콘텐츠가 무엇인가를 찾아야 한다. 그다음이 지속적으로 관심을 끌 수 있는 내용을 만드는 것이다. 이는 현업 인플루언서들도 어려워하는 부분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이 명제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풀어내는 자가 인플루언서가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최근 영화 <에밀리, 파리에 가다> 시즌 2의 리뷰 콘텐츠를 네이버에 검색했더니 각종 리뷰로 검색창이 열 페이지를 넘어갔다. 영화의 화제성에 대한 방증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누구나 쉽게 다루는 콘텐츠라는 말이기도 하다. 결국 화제성 있는 키워드를 다룬건 매우 잘한 거지만, 차별화된 내용을 구성하지는 못한 것이다. 화제성 있는 키워드를 짚어주면서도 나의 관점이나 생각이 드러나는 콘텐츠를 기획해야 롱런이 가능하다.
인플루언서가 될 의향은 없나?
없다. 내 책이 많이 팔리는 건 좋지만 꼭 그렇게 유명해지고 싶은 마음은 없다. 성향의 차이다. 개인적인 인기는 부담스러울 것 같다. 나는 MBTI 결과, INTJ로 나왔다. 내향적인 성향인데 실제로 집에 혼자 있을 때도 많고 무리 속에서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을 수도 있다. 필요한 이야기가 아니라면 굳이 사람들에게 안 해도 상관없다는 주의다.
내향적이라면서 수백 명의 인플루언서를 섭외한 비결은?
일이니까 하게 되더라.(웃음) 거절도 숱하게 많이 당했다. 애초에 1500명 정도에게 연락했고, 그들 중 325명과 인터뷰할 수 있었다. 섭외 비결은 따로 없다. 수소문해서 연락하고 지인들의 주변 인물을 조사해서 기준에 부합하면 연락했다. 처음에 SNS 메시지를 보내고, 전화하고, 안 받으면 더 문자나 이메일을 보내고. 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현재 하는 일에는 만족하나?
10년 전부터 제일기획 AE와 신세계인터내셔날 브랜드 수입 전담 업무를 거치면서 대학원 생활을 병행해왔다. 회사와 학교를 오가며 택시비만 한 달에 100만원씩 들었다. 일 때문에 수업에 집중할 수도 없어서 퇴사를 결심하고 대학원에 집중하고 있는 상황이다. 향후 1년 안에 졸업 후 새로운 일을 찾아나설 예정이다.
현재 일의 만족도는 상중하 중 상이다. 매우 만족하며 재미있게 하고 있다. 관심 있는 부분에 대한 연구를 하고 그걸 토대로 책을 내고. 연구는 한국연구재단 등에서 펀딩을 받아 진행하고 있다.
보통의 40대처럼 경제적 안정을 좇는다면 직장을 떠나지 않을 것 같은데
나 역시 보통 동년배처럼 경제적 안정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아직 결혼도 안 한 싱글이라 책임질 사람이 없다.(웃음) 왠지 나를 둘러싼 환경이 ‘지금은 미래의 경제적 안정을 위한 도전을 할 때’라고 말하는 것 같다.
만약 시간을 되돌린다고 해도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회사 생활은 이미 경험했고, 다 아는 건데 다시 그걸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차라리 새로운 걸 하는 게 더 재미있을 것 같다. 예를 들면 빠르게 바뀌는 세상의 변화를 예측하고 해석하는 데 관심이 있다. 나이를 먹더라도 그런 변화를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그러려면 감을 잃지 않도록 끊임없이 연구해야 할 것 같다.
다음 연구 주제와 목표는?
‘외로움’을 연구할 생각이다. ‘인간은 왜, 어떤 맥락에서, 무엇을 느끼며 외로워하나?’에 대한 답을 정리할 것이다. 우리 주변에 1인 가구가 급속히 늘고있다. 현재 나를 포함해 열 가구 중 세 가구 이상이 1인 가구다. 사람들은 점점 외로워지고 있고, 높은 자살률은 그 최악의 결과물이다. 이런 외로움이라는 손에 잡히지 않는 개념을 정리해 세상에 도움을 주는 것이 목표다.
